〈 141화 〉 친구와 여동생(2)
* * *
며칠 뒤 구내식당 점심시간에 민수가 식사를 마치고 상준의 앞에 다가와 앉았다.
“오늘 저녁 시간 좀 내줘.”
민수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무슨 일로?”
“그냥 할 이야기가 좀 있어.”
“그래. 어디서?”
“중산 한식집.”
민수는 한식집에 코스요리를 준비했는지 가득 차려진 상에 조그만 그릇에 담긴 잣죽부터 올라왔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단정하게 차려입은 상미가 얼굴에 홍조를 띠고 들어서고 있었다.
순간 상준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란히 앉은 그들을 보며 상준은 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야? 왜 이런 곳에?”
민수는 차분하게 잔을 건네며 백세주 한잔을 상준의 부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도 가득채웠다.
“친구냐. 정말 미안하다.”
민수가 꺼낸 첫 마디였다.
“야, 네가 어찌?”
상준은 직감이라도 한듯이 민수를 보며 원망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상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미안해, 상준아.”
“오빠, 미안해요.”
상준은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상미가 다시 오빠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상준은 다시 술은 마셔버리고는 천천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후회 안하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한다.”
상미는 오빠의 말을 듣고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내일 휴가 내서 당장 네희 집부터 다녀와, 상미 데리고 가서 부모님께 인사올리고 다음에 우리 어머님 만나고 와.”
“우리 어머니께는 전화해 둘게.”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미 너도 민수 집에서 실수하지 말고.”
“네.”
“자, 너도 한잔 받아.”
상준은 술병을 들고 민수를 바라봤다.
민수의 얼굴은 여전히 상준에게 미안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요즘, 추세가 혼전 아기는 선물이라 하잖아. 좋은 쪽으로 생각해.”
“미안해, 걱정하게 해서.”
“그래, 조심은 좀 하지.”
상준은 술잔을 내밀어 민수와 잔을 부딪쳤다.
“오빠, 미안해요. 오빠두고 제가 먼저.”
“짜슥, 너 그러려고 일부러 작정한 거 아니야?”
“아니야. 오빠.”
상미는 오빠 앞이라 귀까지 빨갛게 물든 것 같았다.
동생이지만 너무나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다른게 뭐 있겠어? 네가 너무 이뻐서 이 친구가 중심을 잃은 거겠지.”
다음날 당장 민수는 상미를 데리고 부산에 자기 부모님을 만났고 이어서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그래, 부모님은 뭐라고 하셔?”
상준은 일부러 민수에게 물었다.
“무척 좋아하셨어, 너 동생이라 하니 더 좋아하시더라고. 그리고 상미가 예쁘고 귀엽잖아?”
“임신 이야기는 하지 않았겠지?”
“물론이지. 내가 뭐 바본가?”
“우리 어머니는?”
“알고 계시는 눈치였어. 우리집에 인사드리고 왔다니까. 상견례 말씀하시더라고,”
집에서 만난 상미도 표정이 매우 밝아 보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상미는 상준의 방으로 내러왔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 있는 오빠 뒤에 서서 오빠의 어깨를 껴안고 서 있었다.
“몇개월?”
“3개월.”
“자슥, 너 제주 좋다.”
“오빠.”
“행복해?”
“응.”
“그럼 됐어, 앞으로 잘살아.”
“응, 오빠.”
“너 결혼식 날은 내가 잡는다. 어머니와 의논 할게.”
“알았어요.”
“항상 몸조심해. 건강관리 잘하고.”
상준은 어머니께 연락하여 즉시 상견례를 추진하였고 새해 1월 7일을 결혼식 날자로 정했다..
민수의 아버님은 구청에 근무하시는 공무원이시고 어머니는 전업 주부시다.
민수에게도 여동생이 하나있다.
상준은 민수의 부모님을 여러번 만난 일이 있다.
특히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닐 때 민수가 상준의 집에 자주 방문했듯이 자신도 방학 때가 되면 민수 부모님을 종종 만났었다.
민수의 부모님은 상준의 인물과 됨됨이에 반해 은근히 자신의 딸과 연을 맺었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한일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민수의 동생이 며느리가 된다하니 기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상미를 만나보자 첫눈에 마음이 흡족한 것 같았다.
더군다나 아들 민수와 상준은 친구의 연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으니 어찌 반갑지 않았겠는가?
부산에서 상견례를 하는 날 양가 가족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였고 상미는 벌써 타고난 상냥함으로 민수 어머니의 마음을 차지한 것 같았다.
상준의 어머니도 아들의 친구 민수를 사위로 맞이하게 되자 무엇보다 든든하고 한시름을 놓는 것 같았다.
뒤 늦게 이 소식을 들은 다슬은 두사람을 축하해 주면서 상준의 어머니께 전화를 내어 축하를 해드렸다.
“어머니, 축하드려요.”
“고맙다. 다슬아. 너희가 먼저 결혼해야 하는데?”
“아니에요. 어머니.”
상준은 친구와 동생의 결혼식 날짜가 잡히다 보니 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망설이든 중에 두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새집을 사주기로 결정하였다.
지금 민수가 있는 아파트도 불편하지 않겠지만 좀 더 넓은 아파트를 선물로 사주고 싶었다.
그리고 새 집은 두 사람의 공동명의로 등기완료 하였다.
다시 일이 잠잠해 지자 바람이 쌀쌀한 어느 토요일 오후에 바닷가로 나갔다.
파도도 많고 바람이 많이 불어 낚시하기엔 불편하였다.
파도가 심할때는 상준이 앉아있는 갯바위까지 물이 한번씩 튀어오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자리를 옮겨 요트 계류장 방파제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루어 낚싯대에 물고기 모양의 윔을 달아 멀리 바다로 던져넣었다.
보통 루어 낚시는 인조미끼를 이용해 공격성이 강한 어종을 낚는다.
유인동작을 통해 고기를 잡기 때문에 매우 활발하게 손을 움직여야 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낚싯줄을 던지고, 감기를 반복하며 대상어를 유인해야 잡을 수 있다.
루어 낚시는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많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루어 낚시는 방파제, 방조제, 갯바위, 선상 등 어디에서든 가능하다.
채비가 간단하고 필요한 소품이 많지 않아 포인트 이동이 용이하고 채비가 가벼워 큰 고기를 낚지 않더라도 당찬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인조미끼를 사용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미끼에 거부감을 없고 일일이 미끼를 갈아주지 않아도 좋다.
단지 약점이라면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커서 쉽게 피곤하고 동작이 늦으면 밑걸림이 잦고 채비가 금방 손실되기 때문에 약간의 부담이 되는 점은 있다.
상준은 최대한 멀리 던진 뒤에 감기를 반복하였다. 간혹 미끼를 따라 물보라가 일어나고 번떡이는 모습이 무엇인가가 따라오다 떨어지는 것 같다.
추격 속도가 빠른 걸 봐서는 삼치 아니면 방어같은 기분이다.
상준의 호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찌르르 전해온다.
“아저씨.”
“뷰미구나. 네가 이제 전화를 다 하네.”
“전화 시험 해봤어요.”
“그래, 내 목소리는 잘 들려?”
“네, 조금 전에 뷰리와 통화했어요.”
“지금 뷰리 집에 없어?”
“거실에 있어요. 호호호. 아저씨 고마워요. 휴대폰 사주셔서.”
“그래, 나 지금 낚시하고 있거든. 나중에 통화하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가운데서 멀리 물위에 보일링이 일어나고 있다.
“더럭, 터득.”
뭔가가 걸린 것 같더니 금방 빠져버리기가 일수였다.
“걸렸어.”
상준은 감고있는 릴이 갑자기 빡빡해 지면서 팔에 전해지는 감각이 고기가 문 것임을 확신하였다.
신속하면서도 꾸준히 감기를 반복하자 놈은 세차게 물을 가르며 좌우로 발버둥을 쳤다.
“덜덜덜 더들, 더들.”
놈은 대물 삼치였다. 엄청나게 90cm급 삼치.
‘이놈이구나. 손맛이 죽이네.’
상준은 한 마리를 건지고 다시 낚싯대를 멀리 던져넣었다.
“트덕,”
‘또 물었어.’ 몇번의 실패 후에 다시물었다. 그런데 이번엔 농어였다.
‘농어가 여기에?’
상준은 신이나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바람은 차츰 잠잠해 지는데도 파도는 여간 아니었다.
원래 농어는 파도가 좀 있는 갯바위 주변이 포인트라 할 수 있다.
간혹 이곳에서 잡히기는 했으나 이렇게 큰 대물이 걸린 것은 처음이었다.
“아저씨.”
정신없이 릴을 감고 있는데 누군가 상준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뷰미였다.
“추운데 여기까지 왜 왔어?”
“여기 계실줄 알았어요.”
뷰미의 옷은 추위에 비해 너무나 허술했다.
“너 혼자 왔어?”
“네.”
“뷰리는?”
잠깐 나간 사이에 도망치듯 나왔어요.
“무슨 일로?”
“그냥 오고 싶었어요.”
“너, 추운데 옷 그렇게 입고 다니면 큰일 나.”
상준은 요트에 둔 츄리닝 상의를 가져다 뷰미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저 별로 안추워요.”
“뷰리는 추위를 많이 타는 것 같던데 넌 괜찮아?”
“네. 전 괜찮아요.”
“너, 옷 별로 없지?”
상준은 뷰미가 뷰리의 집에 들어간 이후로 옷에 대해선 신경을 거의 쓰지 못했다.
“뷰리가 자기 옷을 입으라고 했어요. 그래도 전 이 옷이 좋아요.”
상준은 하는 수 없이 낚싯대를 거두고 뷰미를 태워 시내로 향했다.
누가 보면 거지와 다름없었다.
옷이 더럽다는 것이 아니라 계절에 맞지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
아무리 뷰미가 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지만 계절에 맞는 옷이 아니면 남들 보기에도 아닐 것 같았다.
“자 여기서 네가 입고 싶은 옷 마음대로 골라.”
상준은 지금까지 뷰미가 도와준 여러 원석을 생각하며 받기만 하고 준것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었다.
물론 한때 드레스를 선물했고, 원피스 한벌과 신발을 제공했다.
그러고는 까마득히 잊어먹었다.
그녀는 그냥 인어니까 드레스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한것 같았다.
뷰미는 따뜻한 옷 몇벌을 고르고는 더는 원하지 않았다.
상준은 목이 긴 부츠를 골라주었고, 겨울 장갑도 사주었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해.”
그때 뷰미의 전화벨이 울렸다.
“어, 시내.”
“아저씨랑.”
“아저씨, 뷰리가 바꿔 달래는데요.”
뷰미는 상준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아저씨, 어떻게 된 거예요.”
상준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가스나, 필요한 것 있으면 내게 말하지 않고.”
“지금 가는 중이야. 좀 있으면 도착할 거야.”
뷰미가 떡볶이를 먹어보고 싶다해서 포장마차에 들어왔다.
“아주머니, 여기 떡볶이 좀하고 어묵 한 그릇요.”
뷰미는 떡볶이가 먹고 싶었나 보다.
“너, 이제 한글 다 익혔어?”
“네.”
“그럼 덧셈, 뺄셈은?”
“산수는 좀 부족해요.”
“뷰리가 잘 가르쳐 줘?”
“네, 재미있어요.”
상준은 돌아오면서 베이커리에 들러 빵 두봉지를 싸서 진호동으로 돌아왔다.
“자, 여기 용돈. 네가 사고 싶은 것 있으면 뭐든지 사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사다 뷰리와 함께 먹어.”
“고마워요. 아저씨.”
뷰미는 뷰리와는 달리 돈이 없다는 것도 이제 깨달았다.
뷰리는 엄연한 직장생활에서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지만 뷰미는 사실 수입이 없다.
상준은 자신을 자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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