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친구와 여동생 (1)
* * *
몇일 뒤 중산 일대에 아침부터 눈발이 휘날리더니 회사 앞마당에 눈이 많이 쌓였다.
년 말 결산보고서와 재무재표를 검토해 보고 있는데 뷰리에게 전화가 왔다.
“아저씨. 오늘 퇴근 하신 후 바쁜 일 있으세요?”
“왜?”
“저하고 뷰미가 오늘 저녁에 가족 송년회를 할 예정이거든요.”
“뭐? 벌써 송년회를?”
“좀 있으면 다들 바쁠 것 같아서요. 연말 모임도 많을 거고.”
“그래서?”
“아저씨, 초대하려고요.”
“응, 어디서 할건데?”
“집에서요.”
“몇시에 갈까?”
“제가 퇴근한 후 저녁 7시 30분 경에요.”
“알았어.”
상준은 가족 송년회란 말에 거절을 할 수 없었다.
식사를 한후 집앞 갯바위로 나왔다.
오늘 같이 눈발이 뿌리는 날이 오히려 날씨가 온화하여 낚시하기에는 더 좋을 것 같았다.
두꺼운 방한복과 귀를 가리는 모자를 쓰고 한가롭게 낚시를 던져 넣었다.
무엇보다 바람이 불지 않아 좋을 것만 같았다.
만약 몇마리만 잡으면 저녁 초대에 가져갈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송년회 모임에 초대를 받았는데 잡은 물고기를 가져간다?
뭔가 좀 맞지 않다.
사실 뷰미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대 놓고 뷰리에게 물어보기도 그렇고 더구나 뷰미는 휴대폰도 없다.
순간 상준은 무릎을 쳤다.
‘뷰미에겐 휴대폰을 선물하면 되겠네.’
‘그럼, 뷰리에겐?’
상준은 순간 미소가 번져나왔다.
하고 있던 낚시를 접고 차를 몰아 휴대폰 매장에 들리게 되었다.
무려 네 개를 휴대폰을 자신의 이름으로 개통하여 본인의 통장에서 휴대폰 대금이 지불되도록 하였다.
전자 대리점에 전화하여 다슬의 컴퓨터를 신형으로 교체하도록 연락해두었다.
그렇지 않아도 크리스마스가 곧 다가오고 연말 연초라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을 하던 차에 이것으로 모두 퉁칠 생각이었다.
상준의 전화를 받은 전자 대리점은 상준의 회사와 거래를 하는 곳으로 그들에게는 최상의 고객으로 손꼽고 있는 곳이다.
즉시 기사를 시켜 다슬의 집으로 직행하였다.
뜻하지 않게 대리점 기사의 출동으로 다슬은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그의 부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하였다.
“오빠, 고마워요.”
“그래, 너 PC 좀 오래됐더라.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까지 합친 선물.”
“고마워요.”
상준은 저녁 초대받은 사실을 이야기하려다 그냥 덮어두었다. 저녁 준비를 하는 아줌마에게 저녁 약속이 있다는 말을 전한 후 시간에 맞춰 차를 몰고 뷰리의 집으로 향했다. 사실 상준은 뷰리의 집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 이제 뷰미와 함께 있으니 오히려 드나들기 쉬울 것이다.
“딩동.”
“아저씨.”
뷰미였다.
뷰미는 상준을 보자 와락 상준의 품에 안기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잘있었지?”
뷰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손을 모아 다시 배꼽인사를 하였다.
“환영합니다. 아저씨.”
현관에서 말소리가 들리자 뷰리도 나와 인사를 하였다.
“초대해줘서 고맙다.”
상준은 그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들고온 폰을 거내 연말 연초 선물이라면서 휴데폰을 건네주었다.
“뷰미는 날아갈 듯이 좋아했고 뷰리도 고맙다며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거실로 들어서니 식사 시간이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평소보다 늦어 배가 고파 그럴지도 모름다.
“아, 맛있는 냄새.”
“잠깐만요.”
그때 방문이 열렸다.
“아니, 너희들?”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다름아닌 다슬이와 상미였다.
“오빠.”
다슬이와 상미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거의 동시에 오빠를 불렀다. 상준은 소파에 털썩 주저않아 눈만 껌벅거렸다.
“뭐야, 너희들. 너희들이 왜 여기에.”
“아저씨, 제가 다슬이 언니와 상미 언니를 같이 초대했어요.”
“야, 난 몰라.”
“오빠 놀랬구나. 예쁜 아가씨들과 비밀송년회 하려다 들켰네.” 그때 뷰미가 휴대폰을 들고 자랑을 하였다.
“이폰 아저씨가 선물했어요.”
그러자 뷰리도 휴대폰을 내밀었다.
“나도요.”
뷰리는 말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눈치없는 뷰미가 먼저 털어놓으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상준은 아무 말 하지않고 밖으로 나가 트렁크에 있던 상미와 다슬의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왔다.
“자, 이거.”
“고마워요. 오빠.” 다슬은 역시 그녀 다웠다.
“오빠, 내 선물 없었으면 가만있지 않으려 했는데.” 상미다운 반응이었다.
“내가 언제 너희들 소홀이 했냐?”
“그건 그렇지만.”
거실을 살펴보니 크리스마스 트리가 TV옆에 장식되어 있고 불이 들어와 반짝이고 있었다. 대형 케이크 절단식이 있었는데 뚜렷한 명분은 없는것 같았다. 절단식 전에 상준에게 한마디 덕담을 하라는데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없고 나오는대로 한마디하였다.
“오늘 초대해 준 두사람에게 먼저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좀 이른 감은 들지만 연말년초 여기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운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밧구.”
“모두 같이 촛불 끄자.”
“박수.”
뷰리가 박수를 유도하자 모두 덩달아 박수를 쳤다. 그리고 케익을 절단하였다. 이어서 곧 큰 상이 들어왔다.
정말 많은 신경을 쓴것이 확실하였다.
엄청나게 많은 음식들이 상에 가득하였다.
“먼저, 와인 한잔씩.”
이번엔 뷰미가 공손한 자세를 취하며 잔을 채워주었다.
“이제 뷰리 너가 한 마디 해.”
상준은 와인잔을 들고 뷰리에게 청했다.
“오늘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나간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더욱 뜻 깊게 맞자는 송년회니 많이 드시고 즐겁게 놀다 가십시오. 위하여.”
“위하여.”
와인을 조금씩 머금고 다시 박수를 쳤다.
“이제 식사 하세요.”
“잘 먹을게.”
그렇게 해서 식사가 시작되고 간간히 뷰미는 와인잔을 채우곤 하였다. 멈추었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하였다.
식사를 하고나니 뷰미가 노래방에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래, 2차는 내가 쏜다.”
밖으로 나오니 눈이 제법 더 쌓여있었다. 이제는 비탈길에는 차를 운전하기는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모두들 왁자지껄 걸어 해수욕장 상가로 향하고 있는데 상미가 오빠에게 물었다.
“민수 오빠께 전화할까?”
그렇지 않아도 여자들만 있는 지금 분위기라 민수 생각이 났는데 상미가 먼저 민수 이야기를 들먹였다.
“그러자.”
결국 그들은 노래방에서 송년회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저녁 식사 초대가 이렇게 될 걸 알았을까?
잠시라도 마이크가 쉴틈이 없었다. 민수도 늦게 노래방에 왔으나 시간 아까운줄 몰랐고 뷰미는 뷰리에게 인간의 예절을 배우고 있다고는 하나 거리낌 없이 에너지를 표출했다. 그들은 그렇게 젊음을 불태우며 노래하고 춤을 추며 즐거운 12월의 하룻밤을 보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은 눈이 너무 많이 쌓여 교통이 두절되었거나 교통이 정체되어 출근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상준의 회사도 모든 관리직 직원들이 총 출동하여 하루 종일 제설 작업에 바쁜 하루를 보냈다.
“오빠. 좀 쉬었어?”
“점심을 먹은 다슬이 전화를 하였다.”
“넌, 쉬었어?”
“오빠 우리 눈구경 가요.”
“어디?”
“해자산 어때요?”
해자산은 진호동 뒷산을 말한다. 봄, 가을엔 산행을 하는 사람이 많고 간혹 상준도 운동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산행길 주변에서는 회사에서 설치한 운동시설이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그럼 회사 정문으로 올라와.”
상준은 다슬을 데리고 해자산 정상 정자가 있는 코스로 길을 잡았다. 눈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기는 했으나 사람들의 발자국이 많이 나 있었다. 산이 낮아 길은 완만하고 주변엔 소나무가 뜨문뜨문 서 있고 참나무와 상수리, 단풍나무와 잡목들이 많은 낙엽수들이다. 다슬의 손을 잡고 정자에 올라 산호동 해안을 내려다보니 해양박물관과 아쿠아리움이 눈에 들어오고 해수욕장과 신항이 그림처럼 보인다. 그리고 본사 건물 옆에 상준의 집이 눈에 덮여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시켰다.
“오빠 아름다워요.”
그리고 그들은 셀카도 찍고 눈이 쌓인 설경을 사진에 담았다.
사실 상준도 눈이 쌓인 해자산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둘의 시선은 회사 건물과 집을 찾게되고 박물관과 아쿠아리움을 먼저 찾게되었다. 그것이 주인의 본능인 것 같다.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가고 있는 곳.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다 능선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낙엽이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에 설화가 만개하였고 산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빨갛다. 그들은 서로 마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눈다. 눈이 깨끗하니 마음까지도 깨끗해지는 것 같다.
“오빠, 이거 오빠 회사에서 설치한 것이네요.”
산길 옆 운동 시설을 보며 다슬이 말을 꺼낸다.
“어, 몇군데 설치했지. 산행하는 분들이 이용하시게.”
“좋은 일 하셨네.”
눈 덮인 산은 정말 아름답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맑게 해 준다. 이런 것을 보려고 눈이 오게 되면 산을 찾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봄에는 봄의 산. 가을엔 가을 산이 좋은 것 같지만 겨울산은 또 다른 멋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서는 것 같다.
그들은 목적 없이 능선을 따라 계속 걷다보니 언제 왔는지 벌써 대호동 뒷산까지 와 있었다. 중산동을 지나 대호동 뒷산으로 이어지다 보니 사람들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고 하얀 눈길만 계속 이어졌다.
“벌써 우리가 대호동 뒷산까지 온 것 같아.”
상준은 걸음을 멈추고 대호동 일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호동은 아직 진호동에 비해 어촌 풍경이 많이 남아있다. 작은 어항이 눈에 들어오지만 대부분의 건물은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고 항구 주변에 약간의 상가만 보일 뿐이었다. 간혹 빌라와 펜션이 들어서긴 했으나 본격적인 개발은 되지 않고 있었다.
“저기 저 아래 공장 건물 보이지?”
“응,”
“저곳이 우리 낚시 공장이야.”
“어, 산 위에서 보니 규모가 크네.”
“그래도 앞으로 더 확장해야 돼.”
“괴물 루어 개발을 성공했다며?”
“응, 아직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상준과 다슬은 한참동안 낚시공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준은 대호동 일대의 요충지를 점쳐 보았다. 대호항 주변에 어촌 마을이 점점 개발되고 발전 된다면 과연 어디에 중심지가 될까?
‘항구 주변?’
‘신 개발지?’
대호항 주변 어촌 마을 양쪽이 작은 잔구가 형성되어있다.
“오빠. 민수씨랑 상미랑 고기집에 간 날밤, 왜 갑자기 돌아갔어요?”
“어? 그냥 그러고 싶었어.”
“난 내가 뭘 실수한 것이 있나 했어.”
“아냐. 그냥 돌아가면서 너 시험 합격해 달라고 기원하고 싶었어.”
“걱정 안해도 돼. 이제 자신 있어. 새해 1월 초에 2차 시험 있거든. 근대 1차 시험 점수와 합산을 한대. 그래서 최종 선발하나봐.”
“그럼, 1차 시험 잘쳤으면 유리하겠네.”
“아마, 그런가 봐. 그리고 면접시험은 점수 차가 많이 나지않나봐.”
“응, 다행이네.”
상준은 다슬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발걸음을 되돌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올라갈때 보다 몇번이나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다보니 아예 요령이 생겨 미끄럼을 타듯이 내러왔다. 때때로 다슬이 손을 잡고 썰매를 타듯이 끌어주기도 하였다.
웃다 넘어지고 넘어지다 뒹굴고 남들이 보기엔 가관이었다.
“와, 상쾌하다.”
“좋았어?”
“응, 짜릿했어.”
그들은 눈온 날 겨울 산행이 이렇게 멋지고 재미있는 일이란 걸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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