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제멋에 산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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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크라캔이 모처럼 벨을 눌러 화암대 아래 갯바위로 나갔더니 대형 전복을 전해 주었다. 수온이 낮은 것이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돌연변이나 변형 괴 물고기도 보이지 않고 특별한 소식이 없었다.
화암대 갯바위의 주된 낚시터에 늘 잡는 볼락과 쏨팽이 등의 낱마리가 나오거나 아니면 작은 노래미와 보리멸이 전부였다.
바람이 쌀쌀하고 기온이 더 떨어지자 갯바위 보다 진호강 하류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낚시를 하였다.
여기에서도 특별한 건 없지만 숭어(모치)와 볼락이 올라와서 손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프로 낚시꾼들은 모치를 대부분 놓아주고 있었다.
살이 너무 물러 맛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상준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큰 놈이 올라올 경우에만 통에 담아두었다.
숭어는 바로 잡아 회를 뜨면 그런대로 먹을 만 하다.
상준은 숭어 회보다도 숭어고기는 구워먹는 편이었다.
포를 떠 튀김을 만들어 소스에 찍어 먹는 것도 좋은 것 같았다.
제일 맛있는 건 역시 볼락이었다.
강 하류에 잡히는 겨울철 볼락은 대부분 작은 고기들이다.
그러나 겨울 볼락 회맛은 일품 중에 일품이다.
쫄깃하고 야들야들한 식감은 어떤 회보다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에 자주 찾는다.
다슬은 11월 말에 있는 1차 이론시험에 합격하여 한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1차 시험은 최종인원의 1.5배수를 뽑기 때문에 1차가 합격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일단 1차 시험에 합격해야 2차 시험에 응시할 수 있어 하나의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2차 시험에서는 교수학습 교안 작성과 수업실연, 면접시험이 남아있는 셈이다.
상준은 모처럼 따뜻한 날을 택하여 다슬을 데리고 해자도 근해로 낚시를 나갔다.
다슬이 역시 1차 관문을 통과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다.
그만큼 준비를 해야할 학습량이 줄어들었고 시험에 대한 부담도 많이 해소된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조금이라도 가까이 그의 곁에 있고 싶어 하는 고생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그였다.
어느 때처럼 낚시를 던져두고 준비해 간 간식을 먹으며 오손 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는 결국 자신이 알아본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이것은 서울에 있는 고교 교사인 친구 병설을 통해 임용고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자신 나름 공부해서 조언을 하려 하였다.
어쩌면 그녀도 이미 다 알고있는 이야길지 모르지만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내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2차 시험은 수업시연을 하기 전에 지원한 교과목에 대한 학습 단원을 제시하면 일정 시간 안에 교수학습지도안을 작성해야 한다고 해.”
다슬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한다.
“이때 학습지도안에 먼저 학습목표를 설정한 후 도입, 전개, 결론의 형식으로 실제 수업할 내용을 기록 한 후 형성평가 문항까지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나 봐.”
“맞아요.”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응시자에 따라 지도안 양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도입에는 학생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질의 응답이 있어야 하고, 전개 단계에는 세로로 나누어 왼편에는 교사의 활동과 질의 내용, 오른 편에는 학생의 활동 내용을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고, 결론 부분에서는 학습한 내용의 요점을 요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데.”
그의 말을 들으며 이미 다슬은 알고 있는 내용인 것 같았다.
“그리고 형성평가 문항도 처음 제시한 학습목표에 충족할 수 있는 3개 정도의 문항 제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해.”
“맞아요.”
“그러고 난 후 세 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자신이 제시한 교수학습 지도안을 가지고 실제 수업을 하는 것처럼 시연을 하게 되는데 이때 자기 앞에 앉은 심사 위원을 학생들이라 생각하고 교안에 있는 것처럼 설명하고, 질의하고, 활동도 시키는데 이때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없으니 학생들이 진짜 반응하는 것처럼 수업을 전개한다는 거야.”
“응.”
“예를 들자면 무엇 무엇에 대해 설명해 보세요. 하고는 예, 잘 알고 있네요. 라고 하든가, 조사 다 했어요? 라고 하고는 잠시 후 이제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라고 하는 것처럼."
"......"
"심지어 실제 영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것 보세요. 이 사진 좀 봐 주세요. 등의 말도 중요하다고 했어.”
“응.”
“마칠 때는 차시 예고를 하고, 심지어 예습 과제를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해. 그래야 수업역량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다고 하드라고.”
“오빠. 친구 말만 들은 것이 아닌 것 같은데?”
“응?”
“날 도와주려고 공부 많이 했네?”
“표티 났어?”
“응.”
그들은 웃었다.
“그리고 면접 때도 몇 문항을 제시한 후 응시자의 대답을 요구하는데 주로 교육학 이론, 교육심리학, 생활지도 이론, 공직자 사명감 이런 것들을 묻는다고 하더라고.”
“알았어요. 고마워요. 오빠.”
상준은 얼마 후 낚싯대의 신호를 받아 참돔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모처럼 건져 올린 참돔이었다.
마침 그때 이들의 요트 옆으로 어선 한척이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었다. 바로 동네 프로 낚시꾼 김영달 형이었다.
저 형 하고는 한때 낚시도 같이 다녔고 특히 거제 이수도에서 참돔을 잡던 기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날 밤은 참 재미있었던 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자신이 이렇게 빨리 사업이 확장되고 안정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남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었다.
다슬은 상준의 옆에 앉아 상준의 팔을 꼭 쥐고 있었다.
간식을 먹고 나니 커피 생각이 떠올랐다.
담배를 끊은 이후 제일 많이 먹는 것이 생수고 다음은 커피다.
흡연시간이 되면 이 런 것들이 생각이 나곤 한다.
다슬은 얼른 일어나 선실로 들어가 커피를 타서 건네준다.
“오빠, 이제 담배를 완전히 끊었나 봐요.”
“글쎄, 아직은 장담 못하겠어.”
“어째든 잘한 건 맞네요.”
“그래도 넌 나보고 담배 끊으라는 말은 안했잖아?”
“그야. 안한 게 아니고 못했죠. 헤헤.”
상준은 커피를 마시며 눈은 계속 물에 뜬 찌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슬은 곁 눈길로 한번씩 상준의 옆모습을 처다 보곤 하였다.
“왜, 자꾸 날 처다 보는 거야?”
“오빠, 알지?”
“뭐?”
“내가 오빠 똑바로 잘 못 보는 것.”
“응, 그런데 왜 그래?”
“난 오빠를 똑바로 볼 수가 없어. 눈길을 어디 둬야 할지.”
“내가 너무 잘생겼나?”
“맞는가봐. 처음 볼 때 오빠 보니 광채가 나는 것 같았어. 눈이 부셔 볼 수가 없었어.”
“야, 남 듣는 데는 절대 그런 소리 하지 마. 비웃는다.”
“아니야. 상미도 그랬고, 아줌마도 그랬고, 엄마도 그랬데.”
“어구, 참.”
“정말이야 오빠. 난 오빠만 보면 지금도 여기가 막 뛰어.”
다슬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진심이란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늘 걱정이야.”
“또 뭐가?”
“혹시 오빠가 다른 사람의 유혹에 넘어가면 어쩌나 하고.”
“......?”
그때 상준은 햇볕이 비치는 바다 속에 미세한 푸른 섬광을 목격하게 되었다.
‘혹시 괴물 아귀인가?’
상준은 눈엔 어느 듯 보이지 않은 레이저광을 분출하고 있었다.
챔질을 하였더니 손맛이 괜찮다.
상준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왼손으로 낚싯대를 잡아 하늘을 향해 팔을 45도 접고는 오른 손으로 릴을 감았다.
뒤뚱거리며 올라오는 모양세가 무게를 느끼게 해 주었다.
다슬은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처다보다 그에게 물었다.
“뜰채 가져 올까?”
상준은 고개를 저었다.
‘음. 이 손 맛.’
모처럼 상준은 괴 물고기의 손맛을 즐기고 있었다.
요트 가까지 접근을 하자 낚싯대의 탄력과 손의 반동을 이용하여 껑충 고기를 갑판위에 올려놓았다.
올라온 주인공은 개우럭이었다.
개복치의 머리에 우럭의 몸통을 가진 놈.
전에도 한번 진호해수욕장에서 잡아 본 놈이다.
그때는 주황색 보석 원석이 들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을 가공하니 홍옥이 나왔다고 했다.
지구에서 나는 홍옥과는 조금 질이 다른 우주 홍옥이었다고 전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두 빛 원석 두개가 추출되었다.
크기는 대체로 브라질너트 정도였다. 다슬은 원석을 쥐어보곤 신기해하였다.
그러고 난 다음 고기는 장만하여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오늘 너하고 같이 왔더니 예상외로 성과가 크네.”
“이것도 회사에 납품할 거예요?”
“아니. 이건 우리 꺼.”
“최근엔 처음인가 보죠?”
“어, 오랜만이네.”
상준은 회사 낚시 팀이 결성된 후 마음을 놓아서 그랬는지 모처럼 낚아 올린 기분이었다.
“오빠는 제가 어디가 좋았어요?”
꼭 여자들은 이런 것을 잘 묻는다.
이때 대답을 잘해야 한다.
여기서 잘못하면 평생 고생이다.
농담을 하면 절대 안 된다.
농담이라고 함부로 말했다간 당장 토라진다.
“뭐 마음엔 안 들었지만 네가 좋다하니 나도.”
아니면,
“뭐 별로였지만 널 구조해 주려고.”
요 딴 식으로 대답했다간 경을 치고도 남을 일이다.
“나도 널 처음 봤을 때 심장이 막 뛰었어. 참 황홀했지.”
“그럼 지금은?”
“볼수록 더 황홀해.”
간지럽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피,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하면서도 다슬은 은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대 다시 상준의 릴대에 소식이 왔다.
낚싯대를 잡은 왼쪽 팔이 부르르 떨렸다.
“왔어.”
“우와.”
다슬도 소리를 질렀다.
조금 전 대답은 오글거리긴 했지만 그런대로 성공한 것 같다.
아니면 지금 쯤 눈을 꺼시면서 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준은 릴을 감으며 최대한 포음을 잡으며 힘자랑을 하였다.
오른쪽 발은 뱃전을 밟아 버티며 허리를 약간 왼쪽으로 돌려 삼각 등판과 복근에 힘을 주어 자랑이라도 하듯이 으스대고 있었다.
물속 깊이 박히려던 고기가 다시 좌우로 요동을 친다.
“부르르.”
전해오는 감각이 장난이 아니다.
해자도 주변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고기 같았다.
다슬은 얼른 뜰채를 들고 그의 옆에 서서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침착.’
상준은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놈과 한판 승부를 걸었다.
“우와!”
다슬의 탄성과 함께 수면위로 떠오르다 다시 물속으로 차고 들어간다.
감성돔이었다.
90 cm는 족히 되어 보인다.
이런 놈이 여기서 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
‘겨울철에 여기 감성돔이 붙나?’
상준은 다시 수면위로 놈을 띄워놓았고 다슬은 큰 뜰채를 이용하여 겨우 그물망에 머리를 담았다.
순간 상준은 다슬의 뜰채를 받아 쥐고 가뿐이 요트위에 올려놓았다.
“우와.”
“크다.”
퍼드덕거리는 놈을 수족관 뚜껑을 열러 곤두박질시켰다. 그리고 상준은 옆에 있던 다슬을 와락 껴안고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였다.
“우리 식사하고 해요.”
다슬의 말이었다.
상준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농담을 하였다.
“식사하고 하자고?”
“응.”
“알았어. 꼭 약속 지켜?”
"무슨 약속?"
"식사하고 하자며?"
“응.”
“알았어. 하자고, 누가 안한대?”
다슬은 상준의 팔을 꼬집고 점심 준비를 위해 선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상준은 다시 미끼를 끼워 바다에 던져 넣었다.
겨울 날씨라지만 오늘은 참 조용하다.
바람도 잠잠하고 날씨도 따뜻하고 남해안의 겨울이 새삼 고맙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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