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뷰미의 변신(2)
* * *
‘어제는 내가 꿈을 꿨나?’
흘깃 흘깃 뷰미의 발을 살펴보았으나 여전히 뷰미의 드레스 아래쪽에는 Y자 모양의 인어 꼬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착각을 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자신의 상상이 뷰미의 변신을 기대했나 보다.
낚시를 던져두고 멍때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린 것일까?
상준은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찌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런 미모와 날씬한 몸매에 사람의 하반신을 가지게 된다면?’
가끔 그런 상상을 안해 본게 아니었다.
‘어찌 그런 상상을?’
머리를 흔들며 묘하게 일렁이는 심리적 호기심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파도를 따라 이리저리 떠다니던 그의 찌에 미세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것도 고긴가?’
상준은 기다리지 않고 본능적으로 챔질을 하였다.
손에 전해오는 약간의 떨림을 느끼면서 낚싯대를 들러 올렸다.
붕장어 한 마리가 걸려있다.
다시 미끼를 갈아 던져 넣었다.
요즘 와서 낚시에 권태 같은 것이 느껴지곤한다.
의욕도 줄어들고 흥미가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낚시꾼이 낚시에 흥미를 잃으면 끝장 아닌가?’
상준은 머리에 든 잡념을 지우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다시 붕장어를 건져 올렸다.
‘오늘 술이나 한잔 해야겠다. 꿀꿀한 날은 술 한잔이 제격이다.’
상준은 뷰미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술 한잔 하고 싶어 집에 갔다 올 테니 돌아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뷰미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낚싯대는 거치대에 걸어두고 집으로 올라왔다.
“아줌마, 초장과 와사비, 깻잎 있으면 좀 챙겨주세요.”
“회 드시려구요?”
“네.”
상준은 아줌마가 챙겨주는 가방을 들고 마트에 가서 소주 몇 병과 오징어포를 사서 갯바위로 돌아왔다.
뷰미는 그의 낚시를 가리키며 손가락질을 한다.
낚시의 찌가 보이지 않았다.
파도에 밀려 옆 갯바위에 걸려 있었다.
‘낚싯대는 제대로 놓아두고.’
낚싯대를 올려보니 횡재였다.
엄청 큰 붕장어가 걸려 있었다.
바늘을 통째 삼켜 버렸는지 뽑히지를 않는다.
일단 바늘을 뽑지 않고 잘라버린 후 다시 채비를 하여 갯지렁이로 미끼를 바꾸었다. 그냥 던져두는 데는 갯지렁이가 최고였다.
이유는 간단하나.
쉽게 먹이를 따가지 못한다.
그리고는 다시 던져 넣었다.
요트에 가서 도마를 꺼내 가장 큰 놈부터 장만하였다.
흔히 말하는 아나고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는 사이 벌써 저녁 아홉시다.
뷰미를 부르려다 준비해 온 것들을 모두 꺼내 갯바위에 늘어놓았다.
“아저씨.”
“.....?”
뷰미였다.
'....?'
어제 본 천사 그 모습이다.
“아니, 그럼?”
“저 어떼요? 아저씨?”
뷰미는 조심조심 그가 앉은 갯바위로 건너오고 있었다.
드디어 뷰미가 그의 옆에 섰다.
드레스가 흘러 내려 뷰미의 발이 보이지를 않았다.
본능적으로 드레스 자락을 들어 올렸다.
하얀 피부에 가로등 불빛을 받은 뷰리의 조그만 두 발이 안쓰럽게 보일 정도로 바위 위에 버티고 서 있었다.
“뷰미야?"
그의 입에서는 신음이 나왔다.
탄성을 내지르며 그녀의 드레스를 더 추켜올렸다.
깎아 놓은 것 같은 날씬한 곡선'
탄력을 지닌 부드러운 살결.
무릎을 지나 허벅지로 이어진다.
“흐윽.”
그제야 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의자 가져다 놓았다.
“여기 앉아 봐.”
"고마워요. 아저씨."
“어제 너를 보고 꿈인 줄 알았는데?”
보조개를 만들어 가볍게 웃으며 의자에 앉는다.
상준은 이미 넋을 잃었다.
의자에 앉는 뷰미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뷰미는 가볍게 자신의 드레스를 살짝 들어 올렸다.
다시 그녀의 발이 밖으로 노출되었다.
상준은 소가락으로 발등을 살짝 눌러 보았다.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그러자 그녀는 드레스를 잡도 더 추겨올린다.
그러자 무릎까지 눈에 다시 들어온다.
“어떻게 된 거지? 뷰미?”
“육지에 올라왔을 때 본래 제 모습이에요,”
“육지 모습?”
“전 바다에선 인어, 육지에선 사람이에요.”
“사람?”
“물에 있을 땐 인어지만 밖으로 나오면 사람으로 변신해요. 단지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에요.”
"아, 그랬구나."
이제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거?”
갑자기 뷰미가 손을 내밀엇다.
그녀의 손에는 포도알 크기의 원석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이런 거 찾는 거죠?”
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에 가까이 다가오고 싶었지만 저의 꼬리를 보여주기 싫어서,”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술 하시려고요?”
“응. 넌 몇살이야?”
“전 아직 어려요.”
“몇 살?”
“모르겠어요. 우리는 나이를 잘 몰라요. 그런데 저를 보고 아직 어리데요.”
상준은 종이컵에 술을 가득 부었다.
일단 한잔 키고 나서야 나무젓가락을 찢어 뷰미에게 건네주었다.
“통닭을 먹던지 회를 먹던지 한번 먹어봐.”
“...?”
뷰미는 젓가락을 받아 들고 먹고 싶은 것을 고르는 듯 하였다.
“아저씨는 낚시를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응. 낚시는 내 인생이고 내 삶이지.”
“매일 밤 전 아저씨를 봤어요.”
“나를?”
“아저씨는 다른 인간들과는 좀 달라 보였어요.”
“....?”
“참, 좋은 분 같았어요.”
“무엇보다 이 드레스 정말 감사해요. 감사인사를 꼭 하고 싶었어요.”
뷰미는 통닭을 먹으며 곧잘 재잘거렸다.
낮은 음성에 발음은 또박또박 분명하였다.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너 같은 인어가 바다에 많이 있어?”
"아니에요."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다.
연거푸 술을 몇잔 마셨다.
초장에 찍은 장어회를 뷰미에게 내 밀었다.
망설이던 뷰미가 입을 벌리고 받아 먹는다.
“맛있어요.”
“그렇지?”
“저도 술 한잔 주세요.”
상준은 종이컵에 소주를 조금 부어 건네주었다.
“아이 써.”
맛만 본 뷰미는 더는 마시지 않았다.
“이건 안주.”
상준은 다시 안주를 집어 주고 가지고 온 오징어포 봉지를 통째 주었다.
술은 먹지 않으면서 오징어포는 잘근잘근 잘도 씹어 있다.
“너, 사람들 조심해야 한다?
"알고 있어요."
뷰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조그만 입이 꼬물꼬물 하면서 그녀의 양 볼에는 조그만 보조개가 나타나곤 하였다.
“너, 정말 예쁘구나.”
“아저씨, 우리 친구해요.”
“친구 좋지. 나 말고 친구 또 누구 있어?”
“없어요. 그딴 것.”
“그럼?”
“아저씨 같이 좋은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았어요.”
“내가 좀 모자라기는 하지.”
상준은 놈담 같은 말을 하였다.
“호호호.”
“좋아, 친구해. 이제 부터 우린 친구야.”
“고마워요.”
“옷은 불편하지 않아?”
“전혀요. 이걸 입었으니 이렇게 밖으로 나올 수 있잖아요.”
뷰미는 자신의 드레스를 약간 추켜들었다.
"제 예쁘죠?"
"응. 무척."
뷰미는 자랑스럽게 사뿐히 내려 놓았다.
“넌 언제부터 나를 봤어?”
“인어도에서 처음 봤어요. 크라캔과 있을 때.”
“너 크라캔 알아?”
“네.”
“어떻게? 위험 안 해?”
“저가 아저씨 친구라고 했거든요.”
“그때부터 크라캔과 친구가 됐어요.”
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 친구는 많아?”
역시 뷰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크라캔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갯바위 아래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오, 크라캔.”
뷰미도 크라캔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상준은 통닭 몇 조각을 크라캔에게 던져주었다.
긴 다리를 들어 원석 하나를 건네주고 망고 크기의 멍게를 넘겨주었다.
“고맙다 크라캔. 잘 먹을게.”
크라캔은 다시 물속으로 잠수하려 했다.
"크라캔?"
멍하니 처다본다.
"내 친구 뷰미야. 위험할 땐 도와 줘."
크라캔은 머리를 끄덕인다.
“아저씨는 역시 보통 인간이 아니라구요.”
“참, 뷰미야. 전에 내게 준 검은 돌 있잖아? 그 돌은 뭐야?”
“아, 그 돌, 그 속에는 우주보석 사파이어가 들어있어요.”
“사파이어?”
"네."
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신발 필요하니?”
“바다에서는 필요 없어요.”
“그럼?”
“땅에서 걸으려면 필요하겠네요.”
상준은 뷰미의 발을 잡고 손뼘으로 가늠해 보았다.
이어서 뷰리의 손을 잡고 손바닥을 펴 보았다.
자그만 손은 티 하나 없이 아기들 손처럼 잘쑥하면서도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아저씨. 고기 물었어요.”
상준은 고개를 돌려보니 찌가 물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얼른 릴을 감으면서 궁금한 점을 다시 물었다.
“너 집은 어디야?”
“바다가 다 제 집이에요.”
상준이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체크하자 뷰미는 몇 번이나 아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요. 아저씨. 그럼 또 봐요.”
“그래, 잘 가?”
“나중에 요트 한번 태워 주세요.”
“.....?”
손을 흔들어주자 그녀는 바다로 뛰어들어 곧 잠수하였다.
잠시 후 다시 얼굴을 보이더니 손을 흔들며 다시 물속으로 가라 앉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상준은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와 샤워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상미가 노크를 하였다.
“아직 안 잤어?”
“잠이 안와.”
“왜?”
상미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이야기를 하였다.
주방 도우미 아줌마 이야기였다.
며칠 전 퇴근하여 자기 방 베란다에 무심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와 아저씨 두 사람이 정자에 앉자 심각한 모습이로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아줌마의 아들 용석을 두고 큰 소리를 내더니 그들과 싸우다가 할머니가 용석이를 안고 가더라는 것이었다.
두 남자는 아줌마를 제지하고 작은 가방 하나를 던져준 뒤 울부짖는 아줌마를 떼어놓고 해안도로로 빠져나가 차를 타고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 후 아줌마는 오래도록 정자에 앉아 울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더는 아줌마에게 그 이야기를 물어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분명히 아저씨와 헤어진 것이 아니겠냐고?
상미가 흥분된 얼굴로 일러 주었다.
“무슨 사연이 있나보다.”
“오빠. 내 생각이 맞을 거야. 아저씨와 헤어지고 용석이는 뺏겼고.”
“요즘 시대에 그런 일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이 가끔 있거든.”
“그럼 그건 유괴야.”
“아저씨가 그랬다면?”
상미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밖으로 나갔다.
‘세상은 참 요지경이야.’
자리에 누웠으나 꿈만 같은 하루였다.
상식이 통하지 않은 현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상준의 꿈속에서는 뷰미와 함께 바다를 유영하는 자신을 보았다.
바다 궁전에 용왕이 살고 많은 인어들이 궁전을 지키는 말도 안되는 꿈을 꾸었다.
인어들과 어울려 바다 궁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언제 부터인가 자신의 옆에는 뷰미가 나타나따라 다니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꿈에서도 상준은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깨어났다.
‘내가 지금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뭐 이런 꿈이 다 있어.’
더는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 조깅을 하면서 마음을 정리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방파제에 서있는 등대를 돌아올 때 수많은 갈매기 떼가 수면위로 내리 앉았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무슨 고기 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놈을 잡으려는 갈매기의 아침식사 가 분명한 것 같았다.
어떤 물고기 떼가 신항 방파제에 들어온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매가리 떼 같기도 하다.
해안도로로 접어들고 있는데 소현이 어머니를 만났다.
“총각. 소현이 어머니였다.”
“운동하세요?”
“어, 총각. 내 한가지 물어 볼게.”
“예, 아주머니.”
“신용만 부장 있잖아?”
“예.”
“그 사람 어때?”
“무슨?”
“사람이 어떠냐고?”
“예, 좋은 사람이죠. 일 잘하고, 유능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응, 그래? 가스나. 난 우리 소현이가 총각하고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신 부장도 좋은 사람입니다.”
“응, 그래. 고마워요.”
상준은 돌아오면서 해수욕장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그의 머리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수많은 얼굴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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