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뷰미의 변신(1)
* * *
저녁을 먹고 다시 솔밭 길을 걸어 화암대로 향했다.
본래 화암이란 돌에 붙어있는 석화에서 나온 꽃바위를 뜻한다. 옛날 이곳 바위에 굴들이 많아 굴이 달라붙어 있는 바위를 꽃바위라 불렀고 꽃바위를 한자로 화암이라 표기하였다. 그러다 언덕위에 정자가 세워지면서 이 정자를 화암대라 했다.
정자는 지금 소실되고 없지만 그 이름만 남아 아직까지 이곳을 화암대로 부르고 있다고 하였다.
상준은 이곳에 정자를 다시 복원하고 싶었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자신의 낚시터가 외부로 공개되고 방문객이 늘어나게 되면 요트 계류장도 위험해질 것이다.
현재 지역 야산을 상준이 구입하면서 그의 소유가 된 것이다.
오늘도 그는 화암대 아래쪽 갯바위에 앉아 낚시를 던져두었다.
하루도 낚시를 하지 않으면 손바닥에 바늘이 돋을 지경이었다.
날이 체 어두워지기 전에 벌써 뷰미가 나타나서 건너편 갯바위에 걸터 앉아있었다.
이제 옷을 입었으니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모처럼 돌연변이 아귀를 건져 올렸다.
파란빛 원석과 보라색 구슬을 뷰미에게 보며 주며 입을 열었다.
“난 이런 것을 가지고 있는 괴물고기 낚시꾼이야.”
뷰미는 상준의 말을 알아 들었다는 듯이 눈을 깜박거렸다.
“넌 왜 내 주변을 맴돌곤 하지?”
그는 뷰미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나 뷰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표정만 지켜보고 있었다.
상준은 다시 뷰미에게 말했다.
“난 너를 뷰미라고 부를 거야. 그리고 나는 아저씨.”
상준은 뷰미라고 할 때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고 아저씨라 할 때는 자신을 가리켰다.
“뷰, 미.”
“아, 저, 씨.”
몇 번을 반복하여 이야기를 하였더니 결국 뷰미는 입을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 입에서는 버걱거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입 모양을 봐서는 금방 말을 배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낚시를 하면서 그녀를 한번씩 보고 있는데 혼자서 계속해서 입을 오물거렸다.
‘연습을 하는 걸까?'
정말 그렇다면 금방이라도 할 것 같았다.
시간이 벌써 제법 흘렀다.
그때였다. 갑자기 뷰미가 꼬리를 퍼덕이더니 한쪽 다리를 치켜 올렸다.
“아니. 너?”
뷰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그리고는 갯바위에 사뿐히 올라선다.
“야, 너 발이.”
상준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모습이 갑자기 인어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두발로 거뜬히 갯바위에 올라 서서 당당한 포스를 취하고 있었다.
두 손은 허리에 올리고 가볍게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날씬 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저씨, 저 어때요?”
“아니, 너.”
그때 였다.
다시 뷰미가 주위를 살펴보다 물속으로 뛰어 들어 자취를 감춰버렸다.
“야?”
그러나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그녀가 사라진 곳에는 잔잔한 파도만 밀려오고 있었다.
‘내가 잠시 졸았나?’
꼭 꿈을 꾼 것 같다.
허벅지를 꼬집어 보니 분명 꿈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오빠.”
“응? 뷰미?"
“낚시는 잘돼?”
“아, 상미구나. 잘되기는 뭐. 맨 날 그렇지.”
“근데 오빠 갑자기 뷰리는 왜 불러? 뷰리가 왔어?”
“아니야.”
“나보고 뷰리로 알았구나.”
“응.”
상준은 정신을 차리고 낚시를 건져올려 미끼를 교체한 후 다시 던져 넣었다.
상미는 갯바위 아래 접어 두었던 의자를 가지고 바위로 올라왔다.
“오빠. 배고프지?”
“넌 이 시간에 여긴 왜?”
“그냥 심심해서.”
“오늘 데이트 좋았어?”
“어떻게 알았어?”
“네가 약속있다 하면 뻔할 뻔자지.”
그때 그의 눈에 보랏빛 섬광이 잠깐 스쳐갔다.
상준은 애써 돌연변이를 잡을 생각도 못하고 좀 전에 본 뷰미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오빠, 찌 들어갔어.”
정신을 차렸더니 이미 찌는 보이지 않았다.
낚싯대를 잡고 릴을 감아 올렸다.
괴물 아귀였다.
상준은 아귀를 손질하여 구슬 하나를 얻고는 봉지에 고기를 담아 상미에게 주었다.
“이거 냉동실에.”
“구슬 한번 봐.”
상미는 구슬을 들여다보며 가로등 불빛에 구슬의 속을 비춰보고 있었다.
“뭐 보여?”
“아니, 온통 보라색이야.”
상준은 낚시를 챙겨 상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 잘자.”
상미가 3층으로 올라간 후 상준은 자기방에서 샤워를 한 후 휴대폰을 꺼내 들여다보고 있다.
내내 뷰미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목소리도 정말 고운 소녀였다.
‘설마 내가 의자에 앉아 졸은 건 아니겠지?’
그날 밤 상준은 꿈속에서 다시 뷰미를 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워 천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진호 해수욕장을 유유히 유영하며 우아한 모습을 보여 주었고 자신을 향해 손까지 흔들었다.
몇 번인가 불러 보았으나 끝내 대답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음, 꿈이었네.’
상준은 다시 꿈속으로 헤매고 있었다.
도우미 아줌마는 휴일에도 이제 집에 가지 않았다.
친정집에 가느니 차라리 이곳에 있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앞에 있던 도우미는 매주 월요일에 집에 다니러 가서 화요일 저녁에야 돌아오곤 했는데 이번 아줌마는 휴가를 찾을 생각조차 않았다.
상미가 몇 번이나 휴가를 가라 권고를 했지만 휴가보다도 상준의 집에서 애기를 보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이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사무실에서 나오려고 하는데 이차만 부장이 전화를 하였다.
이차만 부장은 명물낚시 공장장을 겸하고 있다.
자신 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은 40대 중년이시다.
“대표님, 대표님께 식사 대접하려고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슨 일로 갑자기.”
“죄송하지만 선약이 없으시면.”
상준은 회사 정문 앞에서 이차만 부장의 차에 올랐다.
이 부장은 중산 시내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한우식당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집 고기가 맛이 있더라구요. 주변 여러 곳을 먹어 봤지만 이곳 고기가 제일 좋아서.”
“네.”
고기가 나오자 밥을 함께 주문하고 소주 한병을 같이 시켰다.
“좀 들어보세요. 육질이 좋고 맛이 좋아요.”
“네, 부장님도 많이 드세요.”
잠시 뒤에 주방장이 방으로 찾아 왔다.
"....?"
그의 손에는 갈비 한쟁반이 들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이 사람이 저의 친구입니다. 이집 사장이구요.”
“아, 예.”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직원 모임 있을 때 많이 애용해 주십시오.”
“예.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는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간다.
“대표님, 우리 공장에는 구내식당이 없어 불편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
“본사 구내식당까지 오려니 직원들도 번거로워 하고 그래서 말씀 드립니다."
"....?"
"우리 공장에도 별도 식당을 내면 안 되겠습니까?”
상준은 한참 생각하다 대답을 하였다.
“그러지 말고 버스 한대를 구입하여 단체로 왕복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면 기사를 별도 채용해야 하고 버스구입도 만만찮은데.”
“본사와 자꾸 거리를 두면 직원 상호간 거리감이 생겨나고 좋지 않습니다. 20분 거리니 가급적이면 같이 식사하면 좋죠.”
"그렇기는 한데?"
"당분간은 그렇게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버스 한 대와 기사채용은 허럭해 주시는 겁니까?"
"예, 결제 올리세요."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공장장 이차만 부장은 만족하진 않았으나 그런대로 수용하였다.
“신소재 루어개발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틈틈이 낚시팀을 현장으로 보내세요. 분명히 좋은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표님, 낚시팀 중에 프로 낚시꾼은 이해가 되지만 선혜영 사원은 어떻게 그 팀에 포함시켰는지요?”
“아, 제가 지시했어요. 그 사람에게 기대를 하고 있거든요. 분명 재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부장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낚시팀의 조과에 개인적인 성과와 회사 차원의 성과를 엄격히 구별해야 합니다. 아마 서약서에도 분명히 해 뒀을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과에 성과가 있을 때는 그때마다 특별 성과금을 지급하세요.”
“그 말씀도 들었습니다.”
“전 명물낚시 공장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잘 부탁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식사를 한 후 상준은 회사로 들어가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 갯바위로 나갔다.
빨리 밤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게 된 것이었다.
뷰미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커져버린 것이었다.
낚싯대를 던져두고 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간히 보리멸과 망상어가 올라오고 게르치도 따라 올라왔다.
복어와 숭어도 걸려들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담을 것은 담았다.
이런 잡어들은 매운탕 끓일 때 유용하게 쓸 때가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인기척이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도우미 아줌마였다.
“여긴 어떻게?”
“낚시하시는 것 구경 좀 하고 싶었어요.”
“아기는요?”
“동생이 와서 데려 갔어요.”
“네.”
“저기 저 요트 대표님 요트에요?”
“네.”
“아, 멋져요. 저것 한번 타 봤으면.”
“....?”
그때 그의 찌가 물속으로 미끄러지듯 처박힌다.
중자 우럭 한 마리가 걸려 올라왔다.
‘이 아줌마는 원래 저런 스타일인가?’
상준은 갯바위 아래 서서 구경을 하는 아줌마를 보니 예사 도우미 스타일이 아니것 같았다.
가슴골이 다 페인 짧은 원피스에 하얀 운동화를 신은 아줌마의 모습은 가정집 주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처음 집에 왔을 때는 어린 아기를 기르는 새댁으로 보였는데 갈수록 복장이 변화는 것 같고 어딘지도 모르게 달라지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저도 낚시해 보면 안될까요?”
“.....?”
상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도우미 아줌마가 낚시터에 와서 구경을 하는 것도 거북스러운데 낚시까지 한다고 옆에 앉아 있으면 남들 보기가 민망할 것 같았다.
세상 소문이란 것이 그리 만만치 않고 더구나 기업을 운영하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작은 것도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아줌마는 올라가 보세요.”
자르는 것 같은 그의 말에 아줌마는 약간 당황하더니 절벽을 따라 화암대로 올라갔다. 해안에서 화암대 빈터까지는 돌계단이 놓여있었다.
“많이 낚으세요.”
그리고 곧 솔밭 오솔길을 따라 사자져 버린다.
‘시발.’
뭔가가 좀 어색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친절한 것 같고 어떻게 보면 꼬리를 치는 것 같다.
‘내 착각이겠지?’
며칠 전 밤에는 우연히 2층에서 거실을 내다보니 샤워를 했는지 전라의 상태로 욕실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그것도 거실에 대낮처럼 불을 다 켜둔 상태로.
그런데 그 이후부터 자꾸 상준의 머릿속에 선입견이 생겨났다.
‘그럴 수도 있지. 아무도 없는 거실이었으니. 방으로 빨리 가려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을 몇 번이나 해 보았으나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 생각이 잘못된 거야?’
그러나 상준은 좀 더 서로가 조심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저녁을 먹자는 상미의 전화를 받고 고기통만 매고 집으로 들어가서 잡은 고기를 내어 놓았다.
아직 어린 용석이는 보이지 않았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입맛이 없어 숟가락을 놓고 해수욕장 앞 치킨집에서 통닭 한 마리를 사서 갯바위로 돌아왔다.
어둑할 무렵에 다시 뷰미가 건너편 갯바위에 앉아 있었다.
먼저 발부터 살펴 보았다.
Y자 모양의 인어 꼬리가 은색을 띠고 눈에 들어왔다.
뷰미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 역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면 그렇지.'
분명 그날 밤은 꿈이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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