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사랑의 매물도 낚시(1)
* * *
“제가 그래서 마음도 안정되고 뱃살도 빠진다고 해서 밤마다 보이차를 마시곤 해요.”
아주머니는 뱃살 이야기를 하며 왼 손으로 자신의 배를 쓸어내렸다.
아무 생각 없이 아줌마의 손길을 따라 바라보니 뱃살이고 뭐고 아랫배가 푹 들어갈 정도로 비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꽃무늬 잠옷이 짧은지 탁자 넘어 허벅지가 그대로 다 드러나 보였고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헐렁한 잠옷을 입고 있었다.
상준은 얼른 눈을 피하면서 남아있는 차를 다 마셔버리고 잔을 소반에 얹어주었다.
이제 좀 내러 가줬으면 하는 폼을 잡았다.
“대표님은 결혼 안하세요?”
느닷없는 질문에 상준은 자신의 의견을 뚜렷하게 밝혔다.
“아주머니 제가 원고 작성할 것이 있어서.”
“참, 제가 주책을.”
아줌마는 자리에 일어서면서 몇번이나 그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아래층으로 내러가는 것 같았다.
‘왜 다들 저래?’
'내게 왜 그러냐고?'
상준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았으나 제대로 된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침실로 돌아와 잠을 청하였다.
다음 날 그는 사무실에 들러 차를 한잔 한 후에 다슬에게 전화를 하였다.
“여보세요?”
잠을 자고 있었는지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잠을 깨웠나 보네.”
“아니야 오빠. 새벽에 잠이 들었어. 이제 일어나려고 해.”
“시험 준비 하느라 고생 많지?”
“고생은 뭐.”
“시험은 언젠데?”
“이미 시도별 모집 인원은 발표가 됐어. 10월 말에 원서접수 받아 1차 시험이 11월 말이야.”
“넌 꼭 합격할 거야.”
“고마워. 그런데 오빠 왜 전화했어?”
“바람 쐐러 가자고 하려했는데 그만 둬야겠다.”
“아니야. 쉬었다 하면 더 잘 될걸. 어디가게?”
“1박 2일도 괜찮겠어?”
“응, 상관없어.”
“그럼 상미랑 내 친구 민수랑 같이 낚시한번 다녀오자. 더 추워지면 멀리 못가거든.”
“알았어요. 결정되면 연락 줘요.”
그래서 결국 이번 출조는 다슬을 포함시켜 4인조 낚시팀으로 조직되었다.
다슬을 제외하곤 모두 출장조치 하였다.
여기에서 집고 넘어갈 부분이 분명하게 대두된다.
앞으로 회사 낚시팀이 조직이 되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즉 어획량의 귀속을 어디에 두느냐가 관건이 된다.
회사 입장에서 출근일이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휴일이라 하드라고 출장조치 후 잡은 모든 어획량은 당연 회사 재산으로 귀속이 된다. 그러나 만약 공휴일에 출근하지 않은 개인적인 낚시는 개인에게 귀속된다.
때때로 상준은 자신의 거취로 얻은 수확을 개인에게 귀속시킬지 회사 재산으로 잡을 건지 애매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동안 본인은 출장조치를 하지 않은 상태로 잡은 괴물 고기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서 간혹 편한 대로 처리했다. 만약 앞으로 회사 소속의 직책을 가진 낚시팀이 생기게 되면 공사의 구별을 확실히 해야 하고 사원들을 채용할 때 서약서를 받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도 출장 조치 여부에 따라 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 같았다.
출조 지역은 매물도 근해다.
얼마 전부터 벵에돔과 참돔이 나온다는 소문으로 인근 낚시꾼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대부분은 갯바위 낚시를 주로 하지만 거제에서나 통영에서 출조하는 배낚시도 적지 않는 곳이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요트에 올랐다.
일찍 출발한 탓인지 현지에 도착하였을 땐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채비를 완료하여 낚시를 던져 넣으면서 파이팅을 외쳤다.
“화이팅!”
연거푸 세 번이나 결의를 다졌다.
깨끗한 청정해역, 시원한 가을바람. 사랑하는 친구와 연인.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네 명 모두가 낚시를 던져두고 어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요트는 소매물도 부근 갯바위가 있는 절벽 아래쪽이었다.
들물이 되면 벵에돔을 비롯하여 참돔, 감성돔이 많이 올라온다는 블로그를 보았었다.
상미는 얼른 선실로 들어가 커피를 끓여 나눠주었다.
“그렇지. 커피 한잔하고 낚시 해야지.”
상준은 동생이 주는 커피를 받아 친구 민수와 종이컵을 부딪쳤다.
“화이팅!”
오늘 벌써 파이팅을 외친 것이 몇 번이란 말인가?
“저도요.”
다슬이도 상준에게 커피 잔을 내밀었다.
상준은 소리 없이 받아주었다.
“왔어요.”
민수의 낚시에 소식이 왔다.
어느 새 찌가 물속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찌의 놀림이 대물 같아 보였다.
“에이. 요건 아기 참돔.”
‘조그만 놈이 무슨 찌를 이렇게나.’
실망은 있었으나 놓아주었다.
“30 cm는 돼야 낚시통 안을 구경이라도 하지.”
“너 누나 데리고 와.”
민수는 아기를 달래듯이 한 후 놓아주었다.
상준은 낚싯대를 걸어두고 사방팔방으로 밑밥을 뿌려주었다.
“오빠. 밑밥 너무 많이 뿌린다. 그것 먹느라고 우리 미끼 먹겠어요?”
“그러니 밑밥이지.”
“무슨 소리래.”
“왔어요. 저도.”
다슬은 입을 만개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감아올린다.
“언니, 큰 놈 같아?”
상미의 물음에 대답도 없이 가느다란 팔이 부르르 떤다.
‘헛질이야.’
상준은 벌써 감을 잡았다.
다슬이 올린 것은 벵에돔 새끼다.
“이것 놓아줘야 해요?”
“길이 한번 재봐. 30넘으면 회해 먹자.”
“31 cm이에요.”
“그럼 통에 넣어 둬.”
“야호.”
첫 조과의 기쁨에 다슬의 볼에 미소가 듬뿍 피어올랐다.
“난 뭐야. 소식도 없구.”
투덜대는 상미이의 소리를 뒤로하고 상준도 한 마리 건져 올렸으나 아무 말도 없이 바다로 던져 넣었다.
이러다가 회 맛도 못 볼 것 같다.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벌써부터 배가 고프다.
선실로 들어가 포도 통조림과 복숭아 통조림을 꺼내와 하나씩 갈라준다.
“이제 힘이 좀 나네.”
상준이 통조림 빈통을 갑판위에 던져 놓자 다슬은 발로 졸졸 밀어 한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상미의 찌가 파도를 가르며 물속으로 끌려들어 간다.
“민수 오빠. 저도 물었어요.”
“어, 그러네.”
얼른 봐도 상미의 폼이 보통이 아니었다.
두 손으로 낚싯대를 잡고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도와줄까?”
민수의 물음에 상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올라오면 뜰채로.”
“알았어.”
민수와 상미는 한조가 된 것처럼 대화를 해가며 릴을 감고 있었다.
“오빠, 저도 물었어요.”
“.....?”
고개를 돌려 다슬이를 바라보았다.
“와우.”
상준은 낚싯대를 거치대에 걸어두고 다슬의 옆에 바싹 다가섰다.
다슬의 팔도 상미 못지않게 부르르 떨고 있었다.
순간 상준은 본래의 승부욕을 자극하였다.
“오늘 식사 당번 내기 낚시.”
“뭐?”
“너희 둘은 한편하고점심때까지 잡은 고기 무게 총량.”
“오빠, 꼼짝을 안 해요.”
“좀 기다렸다 당겨.”
“올려 주기 없기다.”
결국 민수가 걸려든다.
“당연하지. 대신 올려주면 무효지.”
상미와 다슬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민수야. 뜰채 이리 줘 봐.”
“안돼. 우리도 곧 올라와.”
“.....?”
이제 아예 우리란다.
상준의 입가에 미소가 뜬다.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미가 올린 것은 60cm급 참돔이었다.
‘가스나, 기껏 고걸 잡는다고 그 소동이야?’
상준은 뜰채를 넘겨받아 다슬이가 올리는 고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오빠, 이게 뭐야?”
민수와 상미가 배를 잡고 웃는다.
“통발이네. 통발 잡았어.”
“에이 참!”
다슬은 분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상준을 처다 보았다.
자신도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꾹 참고 바늘에 걸린 통발 줄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이번엔 또 다른 통발로 연결되어 있었다.
상준은 직접 통발을 잡고 끌어 올리자 두 개의 통발이 한꺼번에 올라오며 통발 속에 뭔가가 들어있었다.
“문어다.”
상준이 소리치자 민수와 상미가 고개를 돌렸다.
제법 큰 돌문어였다.
“우와!”
다슬은 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질렀다.
“오빠, 이거 제가 잡은 것 맞죠?”
“아, 그럼 맞지.”
결국 잡은 고기는 두 개의 고기통에 각각 나누어 담겨 졌다.
본격적인 내기가 시작 되었다.
“그것 무효 아니냐?”
“무효는 무슨. 어떻게 잡던 잡으면 되지.”
상준은 다슬의 바늘을 물고기 모양의 새드윔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리고 찌를 약간 위로 올려주었다.
자신의 낚싯대도 같은 윔으로 교체하였다.
“우린 미끼 바꾸었다.”
상미는 오빠의 새드윔을 보고는 민수와 자신의 미끼도 새드윔으로 교체하여 달았다.
윔의 장점은 매번 미끼를 교체하지 않고 던져 넣기만 하면 되는 편리함에 있다.
얼마 후엔 상준은 50 cm급 벵에돔 한수를 건져 올렸고 민수도 참돔을 추가하였다.
“몇시지?”
“30분 전.”
“자, 대회는 지금 부터야. 마지막 10분.”
도시어부의 대사가 요즘 유행이다.
“오빠. 또 걸었어요.”
다슬은 상준에게 조그만 소리로 알려주고는 고기와의 일전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제 누가 어떤 고기를 잡는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오직 자신이 잡겠다는 일념 뿐인 것 같았다.
“민수야, 말 좀 하면서 건져라.”
상준의 말에 찌에만 몰입하던 민수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으며 상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낚시에 몰입하고 있었다.
얼마 후 민수와 다슬은 다시 참돔과 벵에돔을 건져 올렸고 상미가 낚은 참돔은 규격 미달이라 놓아 주었다.
“오전 낚시 종료.”
결국 무게를 달아 승리한 쪽은 다슬이와 상준이었다.
문어의 무게가 생각보다 많이 나가 승리를 한 셈이었다.
“헤헤헤. 오빠 나 잘하죠?”
다슬이의 말에 상미는 콩콩 달아 입을 삐죽거린다.
“다슬아. 우린 좀 쉬자. 요리 끝날 때 까지.
결국 민수와 상미는 선실 안으로 들어가 점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고 상준은 다슬이와 안락의자에 누워 느긋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잠시 후상준이 슬쩍 선실문을 열어보니 두 사람의 뒷모습이 호텔 셰프를 연상시키며 준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식사 다됐습니다. 들어오세요.”
민수의 안으로 들어가니 식탁엔 그를 듯 한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어머, 이거 누가 했어요?”
식탁 위엔 문어와 함께 참돔초밥과 문어초밥이 예쁘게 놓여있었다.
큰 쟁반 하나에는 참돔 초밥, 다른 쟁반에는 숙회로 만든 문어 초밥이었다.
쟁반위에 둥글게 나열한 모양새가 정말 유명 셰프처럼 장식을 해 두었다.
겨자 간장과 초고추장도 함께 놓여있었다.
“민수 오빠가 만들었지 롱.”
“예쁘게도 만들었어요.”
다슬은 민수를 처다보며 칭찬을 한다.
다슬의 친찬을 받은 민수도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인다.
그 역시 초밥을 집어 맛을 본다.
“뭐야. 이거. 요리 대회하자는 거야. 뭐야."
"오빠는 맛이 없어?"
상미가 오빠를 처다보며 투정같은 말을 한다.
"음, 뭐 먹어 줄만 하네."
"오빠."
초밥을 먹던 상준의 번개같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냉장고에 물을 꺼내는 척 하며 겨자 한 덩이를 가지고 나와 아무도 모르게 초밥에 집어넣고 문어숙회를 다시 덮어두었다.
“민수야. 수고했다 많이 먹어.”
초밥이 담긴 쟁반을 은근슬쩍 밀어주면서 많이 남아있는 방향으로 민수 앞에 돌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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