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1)
* * *
상준은 이 아줌마가 오자마자 무슨 부탁을 하나 싶기도 했으나 달리 피할 길도 없고 커피를 마시며 보고만 있었다.
“사실 제가 양해를 부탁드릴 일이 있어요.”
“양해를 요?”
“네, 제게 두살짜리 애기가 있는데 지금 저의 친정어머니가 돌봐주고 있어요.”
“그래서요?”
결국 아줌마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친정어머니가 돌봐주시고 계시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애기를 볼 입장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양해만 얻을 수 있다면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는 24시간 가사 도우미를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기를 데리고 와서 일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잘 부탁합니다. 아기를 데려와도 가사 일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아기 아빠는요?”
24시간 가사도우미는 먹고 자고 한다는 이야기라 상미가 다시 물었다.
“아기 아빠는 없어요.”
“네?”
아줌마는 대답이 곤란한지 얼버무리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상준은 속으로 가사도우미를 하는 사람하고는 지나치게 젊은 아줌마란 생각을 잠깐 했었다.
“오빠 어쩌죠?”
곤란하게 상미가 오빠에게 의견을 물었다. 상준이 뭐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한다는데.
“아기가 몇 살이라 했죠?”
“네, 두 살.”
상준과 상미는 두 살 아기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상준은 상미의 눈치를 보며 허락하자
“일단 두 달 정도 지나보고 결정하도록 할게요. 우리도 이런 일이 처음이라 몰라서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다음 날부터 아줌마는 두살 박이 남자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귀여워.”
상미가 처음 아기를 봤을 때 한 반응이었다. 상준도 아기가 귀엽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구경만 하였다.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 아기가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아줌마 방이 아래층이라 아기가 종횡무진하며 거실과 주방, 욕실과 소파 등 어디 한 곳도 그냥 두는 법은 없는 것 같았으나 흐트러진 물건들을 비교적 빨리 정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한 번씩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청나게 큰 소리로 울어대긴 해도 윗층에 있는 상준의 방까지는 그리 크게 들리지 않는 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아줌마의 방을 보게 됐는데 그 넓은 방안에 수많은 종류의 장남감을 비롯하여 아기의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많은데도 가급적이면 장난감 잔해들이 거실에서 뒹구는 일이 적다는 것이었다.
저녁을 먹으면 운동을 나가고, 화암대 갯바위에 낚시를 담그고, 가급적 집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있었다.
하루는 갯바위에 앉아 낚싯대를 던져두고 멍 때리고 있었다.
“아기를 키운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그제야 상준은 아기를 기르는 아주머니들의 고충을 알 것 같았다. 밖에서 잠깐 남의 아기를 볼 때는 오직 귀여운 것 한가지 밖에는 없었었는데 같이 살아보니 육아 전쟁이란 말이 왜 나오는지 알게 되었다.
‘너무 친해지면 안될 것 같아.’
상준은 낚싯대를 던져두고 얼마 전까지 거실에 앉아 TV보는 것도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고 상미와 오순도순 대화를 하는 것도 끝장이 난 것 같았다.
그때였다.
요트 계류장 방파제에 세워진 가로등 아래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이런 살살한 밤에 저기서 뭐하지?’
그 사람도 자신처럼 바다를 보며 멍 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하는 마음에 손전등을 켜 그 사람이 있는 곳을 비춰보았다. 그곳은 유일하게 상준의 요트만 들어올 수 있는 개인 계류장이기 때문이었다.
불빛을 받은 사람은 고개를 돌려 한참동안 상준을 바라보다 바닷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갑자기 상준의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으스스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상준의 머리에 뭔가 와 닿는 느낌이 왔다.
‘인어다.’
상준은 재빨리 요트로 가서 맥주 안주로 사용하던 육포를 가지고 갯바위로 나왔다. 육포를 꿰어 던져볼 생각이다.
“인어야. 너도 한번 물어봐라.”
낚싯대를 한손에 쥐고 주문 아닌 주문을 해 보았다.
“흡.”
언제 왔는지 20m전방에서 고개를 내밀어 빤히 상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배시시 웃고 있었다.
완전히 놀림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야, 너 내말 알아 들어?”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 시발.’
‘인어야, 해인이야?’
인어라면 하체가 물고기일 것이고 해인(바다인간)이라면 사람과 같을 것이다.
“쑥.”
“아이쿠! 깜짝이야.‘
언제 왔는지 불과 3m 앞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여자였다.
‘그럼 그렇지. 설마, 남자인어가 있으려고.’
“나, 나쁜 사람 아니야.”
“......?”
“보면 몰라.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여?”
고개를 앞으로 까닥한다.
“너, 참 사람 볼 줄 모른다.”
“......?”
‘젠장 내게 웬 여자들만 득실거려. 그래서 뭐, 싫단 말이야?’
상준은 제 혼자 묻고 대답도 한다.
‘속으론 좋으면서.’
꼼짝도 않고 눈만 깜박거린다.
“내말 알아듣겠어?”
‘꾸벅.’
“그럼 말도 할 수 있어?”
‘살래살래.’
“그럼 우리 친구하자. 여기 올라와.”
‘살래살래.’
“그럼 너 다이빙 할 수 있어?”
‘꾸벅.’
“그럼 해봐.”
그러자 인어는 몸을 솟구치더니 물속으로 곤두박질하였다.
‘인어네.’
분명히 놈의 하체는 물고기 비늘로 번쩍이는 걸 목격했다.
그리고는 다시 보이지를 않았다.
“인어 아가씨!”
상준은 몇 번 불렀으나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어야! 너 사람들 조심해!”
‘내가 지금 혼자서 뭐하는 거야?’
얼마 후 상준은 손바닥 만 한 도다리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상준은 아무 생각 없이 도다리를 잘라 새꼬시를 만들어 캔맥 안주로 사용하였다.
역시 새꼬시는 고소한 맛에 반할 만 하다.
조금 있으니 다시 낚싯대가 요동을 하며 바다를 보고 춤을 춘다.
‘이번엔 뭐지?’
챔질을 하여 릴을 감는데 전해오는 품세가 장난이 아니다.
‘요놈 봐라. 힘을 좀 쓰네.’
상준은 왼팔에 힘을주며 손맛을 즐겨본다.
“들들들.”
이런 기분은 짜릿하다 해야 할까? 천천히 당겨가며 릴을 감아올린다. 농어 한 마리가 활개를 치며 걸려들었다.
지금까지 본 괴 생명체가 인어가 분명한건 사실이었다. 잘만 하면 저 인어도 상준의 낚시에 도움을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저 인어는 왜 자꾸 나를 따라다니지?’
‘내 착각인가? 아님 내가 좀 잘생겨서 그러나?’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나? 연상준. 정신 차려.’
상준은 실없이 혼자 중얼거리다 비시시 웃고 말았다.
“오빠, 낚시 잘되?”
상미였다.
“왜 자지 않고?”
“잠이 안 오네.”
“그런 날이 있더라. 괜히 마음이 뒤숭숭하고.”
상준은 동생 상미를 보며 캔맥주 하나를 건네주었다.
“여기 안주.”
“오빠, 우리 지금 잘하고 있는거지.”
“뭐가?”
“모든 일이 다.”
“왜, 벌써 실증이 난거야?”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좀 만 더 있어봐. 사업은 이제 팽창하고 있잖아. 네가 맡은 방송일도 잘 되고 있고.”
“오빤 결혼 언제 할거야?”
“나? 아직 멀었어. 오빠 나이 이제 얼마 된다고.”
“그렇지.”
“왜 너 시집가고 싶어?”
“아냐. 나 용석이 보니 시집가면 안되겠어.”
“왜, 귀엽잖아.”
“귀엽긴 한데.”
용석이는 도우미 아줌마의 아들이다. 나이는 2세, 아줌마의 남편은 해외 건설현장에 지원하여 동남아 어느 나라에 파견되었다고 하였다. 용석이가 태어나기 전에 출국한 후 아직 한 번도 귀국하지 않아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고 하였다.
가끔 화상으로 아들을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였다.
처음엔 매달 회사에서 통장으로 월급이 꼬박꼬박 입금되더니 어느 순간부터 입금이 중단되어 남편에게 물었더니 회사에 사고가 나서 어쩔 수 없다고 하였고 기다려 달란다고 하였다.
그래도 아줌마는 용석이를 돌보면서 자기 말대로 열심히 사는 것은 틀림없었다.
조금 있으니 상미의 전화에 신호가 울렸다.
“어, 언니.”
“여기, 화암대 갯바위.”
“응.”
전화를 끈은 상미를 보며 상준이 물었다.
“누구야?”
“언니가 여기로 오겠대.”
“이 시간에 왜 오지?”
얼마 후에 다슬이가 나타났다.
“낚시 잘 돼요?”
“응, 그냥.”
그때였다. 신기한 것이 누가 오면 보통 낚시가 잘 안되는 게 특성인데 다슬이가 나타나면 신기하게도 보여줄게 있다.
“쪼르륵.”
“요거 뭐야?”
손바닥 크기의 돌돔이었다.
“귀여워.”
다슬의 표현이다.
귀엽다는 소리가 나오면 벌써 꽝이다.
적어도 “와”하는 탄성이 나와야 고기다운 고기가 걸린 것이다.
검은 바탕에 힌색 줄이 선명한 돌돔이었다. 선명한 색이 나타날수록 건강한 고기다.
“이제 돌돔 철이 되었네.”
상준은 돌돔을 빼내 바다로 던져 주었다. 평소 같으면 안주거리로 딱 좋겠는데 다슬이도 보고 있으니 폼을 좀 잡으려나 보다.
“오빠, 술좀 사주세요.”
“왜 무슨 일 있어?”
“공부도 잘 안되고 스트레스도 받고.”
“그래?”
상준은 낚싯대를 접으며 준비해둔 채비를 거두었다.
“오빠. 잠깐만.”
상미가 재빨리 전화를 한다.
“민수오빠. 오빠가 이리 오래요.”
“....?”
“여기 화암대 아랜데.”
‘가스나. 내가 언제 오라했다고.’
“옷 갈아입고 아파트 앞에 나와 있으라고 해. 그리고 운전해야 된다고도 해. 내가 지금 술을 좀 먹었거든.”
“오빠, 집 앞에 나와 있어. 옷 갈아입고. 오빠가 술 먹어 운전 못한데.”
상준은 대충 정리한 후 옷을 갈아입은 후 민수의 아파트로 차를 몰았다. 민수는 상미의 전화를 받고 벌써 감을 잡았는지 단정한 복장을 하고 나왔다.
“김 관장. 운전해.”
상준은 (김기사∼, 운전해∼.)하는 음률에 맞춰 농담을 하자 민수도 따라서
“예∼, 대표님∼.”하면서 박자를 맞췄다.
“킥킥.”
상미와 다슬이 킥킥 소리를 내며 웃는다.
상준은 자동차 키를 민수에게 넘겨주고 뒷좌석에 않았다. 그러자 다슬이 따라 뒷좌석으로 옮겨 타고 상미는 뒤에 앉아있다 앞좌석 민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보면 대거 좌석이동이 일어난 셈이다.
“어디로 모실까요?”
“중산 나이트.”
“어?”
민수는 뒤를 돌아 상준의 얼굴을 보더니
“술 별로 안마셨네.”
“음, 쪼금.”
“갑니다.”
차는 어느새 중산 나이트클럽 앞에 도착하였다. 클럽 분위기는 절정에 도달하였다. 상준은 다짜고짜 다슬을 끌고 앞으로 나갔다. 민수도 마찬가지였다. 금방 이마에 땀이 젖었고 몸은 알아서 흔들고 있었다.
상준과 민수는 원래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오늘은 몸이 가는대로 놀고 싶었다.
잠시 쉴 때마다 술잔을 부딪치며 들어가는 대로 마셔댔다. 그래도 민수는 자신이 맡은 자동차 키가 생각이 나는지 많이 마시지 않는 것 같았다.
“나가자.”
또 흔들고 춤을 추었다. 상준의 춤은 족보도 없다. 조용한 음악이 나오자 상준은 다슬을 끌어 안았다. 다슬을 안자 이상하게 아랫도리가 쳐들고 일어나 다슬의 배꼽부근에서 꿈틀 거린다.
“오빠.” 다슬이 민망한지 상준을 처다 보며 눈을 흘기자. 상준은 고개를 숙여 다슬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변명하였다.
“이 놈이 글쎄. 너만 보면 이래.”
다슬은 사방을 둘러보며 다시 눈을 흘긴다.
모처럼 발바닥에 땀이 났다.
“민수야. 너도 마셔. 갈 때 대리하자.”
민수는 알았다고 하면서도 자제하고 있었다. 상미는 민수를 끌고 다시 앞쪽으로 나가버린다.
‘너 술 좀 마셨어?’
다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한잔 더.”
그들은 그렇게 젊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