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보물선에서 건진 보물(2)
* * *
“이 섬이 이렇게 무인도로 변할줄 누가 알았겠나. 모두 떠났고 죽고 했지. 자식들도 나가고 돌아오지 않으니.”
노인은 이제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시며 사는 것 같았다.
상준은 오늘 바다 상황을 말씀드리면서 내일 파도가 자면 보물선을 탐사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래, 그렇게 해봐. 나도 그 배가 정말 보물선인지 꼭 알고 싶어. 죽기 전에 그것만은 꼭 알고 싶어.”
“할아버지, 혹시 자녀분들 전화번호 아세요?”
“글쎄. 전에 어디 적어는 뒀는데 그 번호 그대로일까?”
“배가 없으면 자제분들을 태워다 드릴 수 있는데.”
할아버지는 방에 들어가셔서 한참동안 전화번호를 찾는지 나오시지 않으셨다.
“내 정신도 이제 다 된 것 같아. 전화기가 없으니 전화번호를 어디에 뒀는지.”
말씀을 하시는 할아버지는 너무나 쓸쓸한 모습이었다.
“좀 자야겠다. 모처럼 술을 마셨더니 취기가 많이 오르네.”
술을 몇 잔 하신 할아버지는 상준과 뷰리에게 잘 자라는 말씀만 남기시고 당신의 방안으로 들어가셨다.
“치킨 먹어. 너 양념치킨 좋아하잖아?”
"아저씨도 드세요."
뷰리는 남아있던 술잔을 마셔 버리고 치킨을 먹고 있다.
그러자 자신도 술잔을 비우고는 바다를 섬 아래쪽 바다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는 괴 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을까?’
상준이 특히 괴 생명체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뷰리를 처음 만났을 때 일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상준은 처음 뷰라를 봤을 때 바다 사자나 물개가 수면위로 잠깐 고개를 내밀다 잠수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그 때는 그렇게 보였었다.
그런데 지난번 거북섬에서 본 것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물개가 아니면 바다 사자와 비슷한 것이 물위로 솟았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옆에 앉아 치킨을 뜯던 뷰리가 자기 손으로 술을 부어 한잔을 더 한다.
"....?"
"아저씨도 드릴까요?"
상준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아저씨. 이것 마지막.”
상준은 받지 않으려다 본인이 사양하면 뷰리가 마져 마실것 같아 마지못해 술잔을 받았다.
“화이팅!”
뷰리는 술잔을 부딪치며 파이팅을 외쳤다.
“내일은 바다가 좀 잠잠해야 할 텐데?”
“네, 아저씨.”
역시 뷰리는 양념치킨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기어이 바닥을 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나서 케리어를 끌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후 세수를 하랴. 양치를 하랴 방과 샘터로 들락날락 거렸다.
“아저씨도 씻을 거예요?”
“음, 간단하게.”
“들어오라면 들어와요.”
“....?”
상준도 가볍게 우물가에 가서 양치를 한후 세수도 하고 발을 씻고 있었다.
언제 나왔는지 잠옷을 갈아 입은 뷰리가 타월을 들고 샘터에 나와 있다.
"이거."
손수건을 꺼내려는 상준을 보자 얼른 수건을 건네준다.
"....?"
“아저씨. 타월.”
할아버지 방에서는 가끔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려오곤 하더니 잠꼬대를 하는 소리까지 새어 너온다.
“아저씨, 이제 들어가요.”
“너 먼저 들어가 자. 난 좀 있다 들어갈게.”
뷰리는 타월을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상준은 랜턴을 찾아 조심조심 바닷가로 내러갔다.
바람이 더 세게 불어 온다.
오솔길 옆 억새밭에서 마치 동물이라도 지나가는 것처럼 으스스한 소리가 파도소리와 뒤섞여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랜턴으로 파도가 치는 갯바위를 비춰보았다.
혹시라도 갯바위에 무엇인가 올라와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물이 이렇게 소용돌이치고 조류가 빠를 때는 어떤 동물이든 해안가 갯바위로 피신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빗나간 것 같다.
아무리 살펴봤으나 이상한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바닷가에 한참을 머물다 다시 할아버지 댁으로 돌아왔다.
다슬의 방으로 들어가려다 툇마루에 누웠다.
약간의 쌀쌀한 기운을 느껴지긴 했으나 추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몸에 열기가 식자 슬슬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뷰리는 아저씨가 오기를 기다리다 잠깐 잠이 들었다.
아직 아저씨가 돌아오지 않자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툇마루에서 잠이 든 상준을 발견하였다.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가져 나와 아저씨께 덮어주었다.
잠을 깨워 들어가자고 하고 싶었으나 도리어 잠만 깨울 것 같아 그냥 둔 것이었다.
방안에 들어왔으나 잠은 모두 달아나 휴대폰을 켜 유튜브를 검색하며 이것저것 살펴보다 휴대폰을 쥔 체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잠이 깬 상준은 뷰리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을 알고는 이불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휴대폰을 쥔 체 잠든 뷰리는 몸을 온통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이번엔 상준이 뷰리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벽에 등을 기대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인지 달빛이 방문을 훤히 밝혀주고 있었다.
잠이든 뷰리는 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당겨 목까지 끌어 올렸다.
뷰리의 금발은 언제 잘랐는지 지난번 볼 때보다 많이 짧아진 것 같았다.
‘넌 전지현을 닮은 게 아니고 내가 보기엔 조보아를 닮았어.’
어느 날 뷰리가 은근히 [푸른 바다의 전설]이란 드라마를 들먹이며 상준을 이민호, 자신을 전지현에 비유하여 인어와의 사랑의 그린 드라마와 연관시키려 했던 점이 기억에 떠올랐다.
뷰리의 얼굴은 콧날이 오뚝하고 가름한 것이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다.
어쩌면 며칠 전 거북섬 앞에서 본 생명체가 뷰리와 같은 동족이 아닐는지 그것이 궁금하였다.
자신과 같은 동족을 발견하면 얼마나 좋아할까?
그래서 오늘도 확인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상준이 옆으로 쓰러져 잠에 골아 떨어졌다.
뷰리는 일찍 일어나 상준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다 주방에서 아침밥을 챙겼다.
할아바지와 함께 식사를 마친 상준은 뷰리를 데리고 요트에 있던 쌀과 라면, 무와 양파 등을 챙겨 할아버지께 가져다 드린 후 보물선이 있다는 해역으로 나왔다.
다행인 것은 어제 밤에는 조류도 심하고 파도가 매우 불규칙적으로 밀려오고 간혹 돌풍이 몰아치더니 오늘은 예상외로 잠잠해 졌다.
일단 요트 주변의 수심부터 재어 본 후 조류의 세기도 점검하였다.
주변의 수심은 20m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뷰리의 슈트와 장비들은 오래전에 상준이 구해준 것들이라 다시 안전한지를 확인하였다.
뷰리는 원래 바다에 익숙하여 맨 몸으로 입수하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슈트를 입지 않고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준은 심해 탐색에 대비하여 뷰리의 장비를 철저히 점검하고 딥 다이빙에 적합한지를 확인해 보았다.
호흡기 상태도 확인을 한 후 수중 잔압계와 탱크, 부력조절기도 일일이 점검한 후 체온보호를 위한 슈트를 입도록 하였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슈트를 입고 스노클링 마스크를 한후 핀을 신었다.
그는 늘 물에들어 갈 때도 대도를 찬다.
그 외에도 보조호흡기, 수심계, 시계, 나침반도 챙기고 수중라이트와 작살을 가지고 하강하였다.
해저 30m까지는 경험이 있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뷰리는 자기 말로는 수중 50m 정도는 어릴 때부터 일상적인 것이었다고 장담을 하였다.
하지만 상준은 불안한 심정으로 자신이 들어가는 수심 이상은 절대 더는 하강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였다.
“아저씨. 제 고향이 바로 바다예요.”
뷰리는 상준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큰 소리를 쳤으나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가먼저 입수하자 뷰리도 따라 바다로 들었다. 뷰리의 속도를 손으로 제지하며 천천히 물속으로 진입하였다.
요트 주변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침몰한 배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형성된 바위와 골짜기에 풍성한 해초가 일렁이고 있었고 소라와 고동을 주워 올라오곤 하였다.
이왕 들어 왔으면 대형 전복과 고동을 그냥 두고 나올 수는 없었다.
다시 요트를 거북섬 쪽으로 옮겨가며 몇번이나 입수를 하였다.
이번엔 부표를 달아 채집 바구니를 달아두고 입수해 보았다. 잡은 전복과 해삼 등을 넣기 위한 것이었다.
천천히 주변을 잠수하면서 필요한 것들은 보이는 대로 건져 올렸다.
뷰리는 신이 나는지 전복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상준은 침몰된 일본 상선이 있는지와 뷰리와 같은 바다 인간의 실체가 있는지를 꾸준히 살펴보며 간 혹 대형 전복이 보이면 따서 올라왔다.
몇 번이나 요트를 이동시켜 가며 살펴보았으나 기대했던 선박은 보이지를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뷰리의 행동이 이상하였다.
큰 바위 옆에 끼인 것처럼 해저 수중 라이트를 흔들고 있었다.
상준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것이 분명하였다.
상준은 신속하게 뷰리에게 접근하여 그녀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상준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가만히 보고 있었다.
대왕문어를 잡으려다 문어 다리에 자신의 발이 걸린 것이었다.
몇 개의 문어 다리가 뷰리의 발목을 감고 바위틈으로 들어가려 한다.
꼼짝을 못하고 잡혀있는 형국이었다.
‘가스나. 큰 소리 치더니만 겨우 저런 문어에게 걸렸어.’
상준은 얼른 문어를 떼지 않고 그녀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전복을 잡거나 고등을 주우면서 뜸을 들였다.
“살려 주세요.”
뷰리의 간절한 구원요청에 그제야 대도를 뽑아 문어의 머리를 공격하였다.
잠시 후 문어는 제풀에 꺾여 뷰리를 풀어주자 문어의 다리를 끌고 수면으로 올라왔다.
그물 채집 바구니에 문어를 메달아 둔 뒤 다시 하강하였다.
바다 속은 참으로 신비스럽다.
우리나라 연안에도 수많은 산호초가 형상되어 있고 다양한 물고기 떼들이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더러는 열대어로 보이는 아름다운 무늬를 지닌 고기도 눈에 띄었다.
결국 상준은 뷰리와 함께 요트로 돌아 왔다.
지나치게 오랫동안 물속에 있으면 그만큼 건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잡아 올린 것들은 여러 종류였다.
문어를 포함하여 해삼, 전복, 소라가 주종이었고 뷰리가 딴 버섯모양의 산호도 한 덩이가 들어있었다.
“어땠어?”
“속이 시원하고 좋았어요.”
“근데 산호는 채취 금지야.”
“알고 있어요.”
그리고 뷰리는 슈트 주머니에서 작은 원석 두개를 상준에게 내 밀었다.
“이런 것도 있었어?”
상준은 뷰리가 준 보석 원석을 받아보니 이는 운석 조각에 박힌 수정이었다.
일종의 수정운석 이라 해야 할까? 그 속에 분홍빛 수정을 내포하고 있었다.
“음, 이것도 꽤 값이 나가겠어.”
“그래요? 전 버리려다 혹시 해서.”
“슈트를 벗고 좀 쉬어. 뭘 좀 먹고 당 보충 좀 하자.”
상준은 슈트를 벗어두고 뷰리의 슈트를 도와주었다.
생각했던 만큼 수온은 아직 내러가지 않았다. 동해안 같았으면 지금쯤은 냉수대로 수온이 많이 떨어졌겠지만 남해안 쪽은 아직은 견딜 만 했다.
슈트를 벗은 뷰리는 바로 바다에 뛰어 들었다.
상준은 방금 잡은 해삼과 전복으로 회를 하고 따뜻한 밥을 하여 초장과 함께 갑판에 올려 두었다.
한참동안 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니 밥이 좀 식었다고 생각될 때쯤 요트를 잡고 얼굴을 보였다.
흠뻑 젖은 금발이 얼굴에 찰싹 달라붙어 요염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아저씨, 이거.”
뷰리가 내민 손에는 조금 전에 준 원석과 거의 흡사한 모양이었다.
손을 잡고 요트에 끌어 올려 준 뒤 대형 타월을 어깨에 걸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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