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보물선에서 건진 보물(1)
* * *
추석을 며칠 남겨두지 않는 상태에서 상준은 다시 보물선 탐사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의 머리 한 구석에서는 보물섬 탐사와 더불어 항상 머리 속에서 맴도는 괴 생명체의 정체를 밝히는 것도 주요 과제로 남게 되었다.
지난번 거북섬 탐사 마지막 날 극히 짧은 순간이긴 했으나 뭔가 집히는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계획은 총무부장과 상미가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면서 이들과 함께 보물선 탐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이들의 다이빙 실력이 심해 다이빙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었다.
생각해낸 것이 크라캔에게 도움을 신청하고 뷰리도 어느 정도까지는 심해 탐사가 가능하리란 판단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뷰리와 함께 인어도에 다녀 온지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뷰리에게 부탁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마음뿐이었고 뷰리에게 연거푸 부탁을 하는 것은 자신의 양심상 도저히 허용되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차라리 뷰리가 경제적인 지원을 받거나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댓가를 바란다면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겠지만 뷰리는 그런 일에는 지나치게 초연하기 때문에 매번 부탁하기가 더 어려운 실정이었다.
며칠을 망설이다 결국 상준은 뷰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왜?”
전화를 받을 때도 뷰리는 상준을 보며 아저씨라 한다.
“내가 이번에 새로운 계획을 세웠는데 너 도움 없인 도저히 안 되겠어.”
“뭔데 그래요? 그런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 하라했잖아요?”
“그럼, 네가 인어쇼를 하지 않는 날이 언제라고 그랬어?”
“내일 없고요. 있어도 괜찮아요. 알바생과 바꾸면 되잖아요.”
“그럼 오늘 저녁에 같이 갈까?”
“좋죠. 그럼.”
“그럼 너 출장 내어 저녁에 보자. 저녁 일곱 시.”
막상 전화를 하고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너무나 쉽게 그의 요구를 들어줬기 때문이었다.
상준은 전화를 끊고 요트를 정비하고 연료를 채우고 식사 준비에 전력하였다.
결국 도우미 아주머니는 새 도우미를 소개시킨 뒤 순천에 있는 자식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셨다.
추석이 끝날 때까지 있어주신다더니 생각보다 일찍 새로 오실 분이 구해졌나보다.
새로 오신 분 역시 생각보다 젊은 새댁이었다.
총무 부장은 인어도 별장 진입로 계단 위에 대문을 세우면서 대문 옆에 작은 관리실을 넣어 관리자들이 생활할 수 있게 했다는 보고를 하였고 추석이 끝 난 뒤부터 관리자가 파견되어 별장을 관리를 하게 됐다고 했다.
모든 비용은 회사가 아닌 상준의 자택경비였다.
저녁에도 상미는 아직 퇴근을 하지 않았다.
야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상준은 요트에 나가기 전 양념치킨 하나를 챙겨 요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제법 어둑할 무렵이었다.
항상 그랬지만 뷰리의 복장은 발랄한 소녀 같은 복장이었다.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띠고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꼭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처럼 요트계류장에 나타났다.
상준은 얼른 캐리어를 받아 요트에 싣고 뷰리의 손을 잡아주자 껑충 뛰어 올랐다.
요트는 한 두번의 고속엔진 소리를 내다가 천천히 계류장을 빠져나와 해자도 오른쪽을 돌아 점점 중산 앞바다로 벗어나고 있었다.
초저녁의 기온은 가을날의 따가웠던 낮 기온에 비해 떨어지면서 달리는 요트의 바람을 받아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가을 날씨는 낮 기온에 비해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하게 느껴진다.
새벽이 되면 쌀쌀한 느낌마저 들게 해 준다.
환절기란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일교차가 큰 것 같다.
얼마가지 않아 인어도 좌측을 지나가면서 불이켜진 인어도 밤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상준은 휴대폰을 꺼내 야간 조명이 밝혀진 인어도 밤풍경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한 컷 담았다.
그리고는 요트의 핸들을 놓아두고 카카오톡 공동방에 날려 보냈다.
“카톡.”
“오빠 어디?”
제일먼저 반응을 보인 것이 상미였다.
“카톡.”
“와. 멋지다. 여행 갔어요?” 이번엔 다슬이었다.“
아직 한 사람이 보고 있지 않았다.
보낸 사진 옆에 “1”자가 아직 남아있었다.
상준은 모두 다 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참 뒤에야 마지막 숫자 1자도 사라졌다.
“저녁 묵었나?”
어머니였다.
“네.”
“이 사진 가리비 별장.”
“우와. 별장에 낚시 갔어요?”
“아니, 지나가는 중.”
“그럼. 어디로?”
다슬이의 반응이었다.
“누구하고?”
요건 상미다.
“조심해서 다녀라.”
“네, 어머니.”
상준은 흥분된 기분으로 폼을 잡고 요트 키를 돌리며 몸과 고개까지 같이 돌렸다.
“아저씨. 오늘 기분 좋으신가봐?”
지켜만 보고 앉아있던 뷰리가 한마디 한다.
"그렇게 보여?"
"네."
“기분 좋지. 바다는 항상 좋찮아?”
“오늘는ㅁ 제가 뭘 도와야 해요?‘
“아! 참.”
상준은 인어도의 가리비 별장 풍경에 혼자 마음이 들떴다가 카톡을 보내느라 본론을 잊고 엉뚱한 생각만 한 것 같았다.
“미안, 내가 너무 흥분해서.”
“그런 같았어요. 아저씨 답지않게.”
“나 다운게 뭔데?”
“항상 말이 없고, 속 마음을 들어내지 않고, 약간의 미소만 짓곤하죠.”
“내가 그런가?”
“네.”
“우리 오늘 밤에는 요트에서 낚시하고 내일 아침부터 보물선 탐사하려고.”
“죽순도 옆에 가라 않았다던 그 보물선 말이죠.?”
“네가 그걸 어떻게?”
“할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아, 그렇지.”
“저도 들었어요. 아저씨 없을 때.”
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북섬을 지나가는데 조류가 좀 심한 것 같았다.
상준은 요트의 속도를 늦춰 천천히 순회하며 거북섬 주위를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지난번 탐사 마지막에 본 미확인 생명체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거북섬은 크기가 작아 금방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생명체는 보이지 않았다.
한 바퀴를 더 돌려다 그만두고 죽순도를 향해 키를 잡았다.
보물선은 거북섬과 죽순도 사이 바다 해역 어디엔가 가라 앉아 있다고 한다.
조류가 심하면 허탕을 칠 수도 있다. 일단 죽순도 근해까지 도착하였다.
요트를 세워두고 낚시채비를 하고 있는데 조금 전보다 파도가 심해지는 것 같다.
일기 예보에는 2 3 m에의 파고라고 했는데 현장 상황은 3 4 m는 족히 될 것 같다.
“할아버지 만나보고 가실거예요?”
“그래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네."
“네도 뵙고 싶지?”
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준은 갯지렁이를 꿰어 바다에 던졌다.
찌는 야광 유동찌를 달았다. 요트가 파도를 따라 일렁일렁 움직였다.
뷰리도 채비를 하여 상준과 같이 야광찌를 달았다.
안락의자를 가져와 등받이를 세워서 낚시에 들어갔다.
요트 사방에는 불을 밝혔다.
죽순도를 바라보니 할아버지 댁에도 작은 불빛이 보이고 있었다.
상준이 설치해 드린 태양광 불빛이 틀림없었다.
뷰리도 불빛을 보았는가 보다.
상준을 처다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맞아. 할아버지 댁.”
상준의 낚시에 신호가 왔다. 얼른 챔질을 하자 우럭이었다.
그때 파도가 요트에 튀어 오르며 심하게 일렁거렸다.
바람이 점점 세어지고 있다.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고 반달이 휀하게 비추고 있는데 때 아닌 바람은 왜 이렇게 심한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파도가 이는 가운데도 뷰리의 찌가 물에 잠겼다 올라왔다 반복하더니 갑자기 물속 깊이 빨려들고 있었다.
“아항.”
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챔질을 한다.
부르르 떨리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누가 봐도 대물임이 틀림없었다.
뷰리의 가느다란 팔이 바르르 떨리며 릴을 감느라 입술을 꼭 다문다.
그녀의 얼굴에는 놓치지 않으려는 결의마저 감도는 것 같다.
상준은 뷰리의 낚시에 신호가 와도 느긋하게 지켜만 보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녀에게 통쾌감을 키워주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손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버티던 고기는 점점 힘이 부치는지 릴을 감는 뷰리의 손놀림이 빨라지고 있었다.
결국 고기가 힘을 빼면서 수면위로 떠오른다.
만만치 않는 농어였다.
물결이 세어지고 파도가 일자 농어가 활동하며 미끼를 문 것 같다.
상준은 뜰채를 가지고 뷰리가 낚은 농어를 건져 올려 주었다.
“휴우.”
부리는 가벼운 쉼을 몰아쉬며 얼굴엔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녀의 금발머리는 바람에 나부끼며 그녀의 양 볼을 쓰다듬는 것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한손으로 이마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귓 뒤로 넘기면서 농어를 빼어 통에 담는다.
또다시 요트가 요동을 친다.
“뷰리야. 안되겠다. 이대로는 위험해.”
상준은 뷰리에게 낚싯대를 거두라고 일러주고는 자신의 낚싯대도 건져올렸다.
그리고 즉시 닻을 거두어 시통을 켰다.
“어떻게 하시게요?”
“죽순도 폐항에 들어가 요트를 세워두고 할아버지 댁으로 가자.”
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준의 말에 따랐다.
상준은 폐쇄된 죽순도 항에 요트를 정박한 후 고기통을메고 할아버지께 드릴 술 몇 병과 말린 고기포를 포함하여 가져왔던 통닭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뷰리는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요트에서 내렸다.
항구에서 마을로 가는 길은 오솔길과 다름없다. 능선을 따라 한참을 돌아가야 과거 주민이 살았던 마을이 나온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뷰리는 얼른 뛰어가서 문을 열지 않고 부르기만 했다.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놀라실까봐 그러는지 모르겠다.
잠시 후에 할아버지가 마당의 불을 켜고 문을 여셨다.
“할아버지!”
뷰리는 달려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울먹이고 있었다.
“뷰리구나. 잘 왔다. 난 네가 올 줄 알았다.”
상준도 머리를 숙여 할아버지께 인사를 했다.
툇마루에 걸쳐 앉아 할아버지 얼굴을 보니 머리 카락이 더 빠졌었는지 머리카락 숱이 좀 줄은 것 같다.
“내가 어젯밤 꿈에 너를 봤거든. 혹시 오늘 네가 올까 하루 종일 기다렸다.”
“그리셨어요. 할아버지.”
“초저녁에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시간이 너무 늦어 안오는가 했지.”
“그동안 보고 싶었어요.”
“나야 뭐, 늘 너희들 생각하곤 하지.”
“할아버지 아들과 딸은 언제 다녀갔어요?”
할아버지 얼굴엔 어두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몰라. 이번 추석에는 올란가?”
“네.”
“여긴 쉽게 못 와. 배가 없으니 어떻게 오겠어. 또 오면 뭘 해. 지거 살기도 바쁠 텐데.”
할아버지는 긴 한숨을 쉰다.
“그래, 너희들은 잘 살지?”
“네, 할아버지. 아저씨 덕분에 잘 살고 있어요.”
“너희들 이제 결혼 안 해?”
“네?”
“결혼해야지. 무슨 사연인진 몰라도 이제 헤어지지 말고 결혼해서 살아.”
뷰리는 상준의 얼굴을 빤히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상준은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눈만 껌벅껌벅 하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가지고 온 술이랑 육포 말린 것을 할아버지께 내어드리고 뷰리의 방문을 열러보았다.
뷰리의 방은 예전 그대로 변한 것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술잔과 젓가락을 챙겨오시더니 방풍 나물과 마늘 짱아치를 꺼내 오셨다.
“우리 모처럼 만났으니 술이나 한잔해.”
할아버지는 술을 부어 상준과 뷰리에게 건네주고 술 명을 내밀며 상준에게 부어달라며 잔을 내밀었다.
“건배.”
“옛날에 고기잡이 갔다 오면 친구들과 어울려 술한잔 하곤 했지. 그땐 참 좋았었는데.”
“다 돌아가셨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