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뷰리의 활약(2)
* * *
“그냥 버려?”
“그럴 일이 있어.”
상준은 장어라면 이제 겁이 난다. 너무나 혈기가 왕성해져 솟아나는 기가 겁이 났다.
주체할 수 없는 기.
상준은 얼마전 먹었던 백장어를 떠올리며 아직도 송이가 백장어 탓에 고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신도 아직 주체하기 어렵지만. 뷰리를 생각하니 더 걱정이 되었다.
“뷰리야. 넌 앞으로 절대 장어고기는 먹지마.”
“아저씨, 왜요?”
“묻지는 말고 먹지 말라면 먹지마.”
뷰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가라앉고 있는 용장어를 포기하였다.
“우리 갈치회나 한번 먹어보자.”
새벽이 되자 상준도 피곤하였지만 뷰리도 좀 지친 모습이었다.
“뷰리야. 너 선실에 들어가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
“아저씨는요.”
“난 여기 안락의자에서 잠깐만 잘게.”
“춥지 안겠어요? 밤바람이 쌀쌀할 텐데.”
“괜찮아.”
결국 뷰리는 선실 소파에 가서 누웠다. 뷰리의 키에는 선실 소파가 꼭 맞춤형 침대처럼 길이가 맞는 것 같아보였다.
상준은 안락의자의 등받이를 뒤로 조금 넘겨 고정시킨 뒤 팔짱을 끼고 누웠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면 좀 나아질 것 같아서였다.
얼마 되지 않아 추위를 느껴 잠이 깨 버렸다. 새벽으로 가니 점점 기온이 낮아지는 듯 하였다. 상준은 선실에 들어가 얇은 모포라도 꺼내와 뒤집어쓰려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 갔다.
이불장을 뒤져 모포 한장을 찾아 나오려는데 뷰리가 잠에서 깨어났는지 상준을 불렀다.
“아저씨 춥죠?”
“응. 깼어.”
“여기 바닥에서 주무세요.”
“네가 여기서 편하게 자지.”
“아저씨, 들어오세요.”
상준은 잠시 그럴까하고 생각하다 다시 밖으로 나와 모포 한장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일분이 채 안된 것 같은 시간인데 뷰리가 밖으로 나와 의자를 흔들었다.
“아저씨. 여기 쌀쌀하네. 들어가요.”
상준은 하는 수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선실 바닥에 모포를 깔고 얇은 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웠다. 뷰리는 역시 자기가 자던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리고 상준은 지친 나머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소파에 누워있던 뷰리도 추위를 느꼈는지 상준이 덮고있는 모포를 들추며 상준의 옆으로 파고들었다.
“음.”
상준은 뷰리가 꼼작거리자 잠결인지 꿈결인지 몸을 뒤척이다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뷰리는 옆에 누운 상준을 한참동안 쳐다보다 상준의 팔을 당겨 팔베개로 삼아 눈을 감았다.
상준이 눈을 떴을 때 아침 아홉시는 넘은 시간이었다.
“아저씨. 일어나셨어요?”
“응. 너도 잘 잤어?”
“네. 손 씻으시고 식사해요.”
상준은 싱크대 물을 받아 간단하게 세수를 한뒤 선실로 들어서자 뷰리는 타월을 가지고 기다리다 상준에게 건네주었다.
“음, 냄새 죽이네. 뭐지?”
“갈치탕 만들어 봤어요.”
“지졌어?”
지졌다는 말은 물을 조금 붓고 끓여 익혔다는 사투리 같다. 반은 국, 반은 찌개. 뭐 그런 말인 것 같긴 하다.
갈치를 토막내어 양파와 고춧가루, 파와 마늘을 썰어넣고 물을 조금 부은 뒤 끓인 갈치조림과 비슷한 맛이었다.
“음, 맛있다.”
“고마워요. 아저씨. 그렇게 말해줘서.”
“아니야. 진짜야.”
“제가 요즘 집에서 요리공부 좀 하고 있어요.”
“누구에게 배우나?”
“아뇨, 인터넷 뒤져가며 연습하죠. 종종 실패도 하지만.”
상준은 뷰리와 아침 식사를 한후 커피를 타서 나누어 먹었다.
“우리 이러고 있으니 신혼부부 같지 않아요?”
“짜슥. 또 까분다.”
“까분 건 아닌데.”
“우리 오후 6시 까지만 하고 돌아가자. 오늘 토요일 아니야.”
“내일까지 해도 되는데. 집에가도 할일도 없고.”
“내일은 쉬어야지.”
커피를 다 마신뒤 상준은 요트를 몰아 인도도 북쪽 편으로 나가 섬 그늘에서 낚시채비를 하였다. 따사로운 햇볕이 물에 반사되어 시력에 별로 좋지않고 대상어 찾기도 쉽지 않아서였다.
새벽 기온 쌀쌀했었는데 막상 햇살은 따가운 것 같다. 낮 기온은 적어도 25도는 넘을 걱 같았다.
낚싯대를 던져 꽂아두고 안락의자 등받이를 세워 기다리고 있었다.
“너도 낚시 해볼래?”
“네.” 상준은 다른 낚싯대를 꺼내 채비를 하여 뷰리에게 건네주었다. 뷰리도 점점 보는 눈이 있어서 제법 잘 던져 넣었다.
그리고 상준의 옆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들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고등어 한마리가 걸려들었다. 뷰리는 어느 순간 휴대폰에 몰입되어 낚시는 아예 잊어버린 것 같았다.
“아저씨. 이 드라마 보셨어요?”
“뭐?”
“[푸른 바다의 전설]”
“한번쯤은 오다가다 봤겠지. 전지현이 출연한.”
“맞아요. 전지현과 이민호 주연.”
“근대 그건 왜?”
“이민호 있잖아요. 아저씨 너무 많이 닮았어요.”
“내가?”
“네. 아저씨 얼굴 볼 때마다 이민호 닮은것 같았어요.”
“김수현이 아니고?”
“예? 그건 아니다. 호호호.”
사실 상준은 배용준 닮았다는 소리와 송승헌 닮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지만 이민호 닮았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상준의 낚시에 다시 고등어가 물었다.
“어제 밤엔 갈치가 판치더니 오늘은 또 고등어네.”
“아저씨, 제가 전지현씨 닮지 않았어요?”
“전지현? 음. 그런것 같기도 하네. 머리도 금발이고... 리틀 전지현.”
“그렇죠? 그럼 아저씨와 난 이민호와 전지현이네. 드라마 주인공처럼.”
상준은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끔 여자애들이 이런 상상을 하는 것 같았다.
전에 상미도 한번 그랬던 것 같다.
사실 뷰리를 처음 봤을때 이연희를 닮았다는 생각은 한적이 있었다.
여자 애들이 좀 상상력이 참 풍부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참신한 아이디어와 창의력도 풍부하고.
정오가 가까워 졌는데도 더는 낚시에 소식이 없다. 뷰리는 자신의 낚시에 고기가 물지 않자 직접 잡겠다며 옷을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날씨도 따뜻한데 상준도 겉옷을 벗어버리고 같이 물에 뛰어들었다. 잠깐 스쿠버다이빙 옷을 갈아입으려다 그냥 두었다.
그러자 뷰리는 상준의 손을 잡고 바다 속으로 빠르게 전진했다. 상준의 수영 솜씨가 상당한 수준인데 뷰리에 비해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뷰리는 상준의 호흡주기에 맞추기라도 하듯 한 번씩 물 밖으로 심호흡을 한 후 다시 바다로 흘러가듯이 유영을 하였다.
상준은 황홀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바위 틈 사이와 해초사이로 마치 곡예를 하듯이 요리조리 헤치며 빠르게 나가는 감각이 놀라울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방향을 바꾸어 솟아올랐다.
인어도의 반대편 남쪽 바다였다.
뷰리는 상준의 손목을 잡고 언젠가 자신이 올라앉아 상준을 기다렸던 갯바위로 올라갔다.
뷰리의 얼굴도 감격한 것 같았다.
상준의 손목은 여전히 뷰리가 잡고있었다.
“아저씨. 어땠어요?”
“야 멋졌어. 진짜좋았다.”
상준은 느낀 그대로 뷰리에게 털어놓았다.
‘바로 우리가 이민호와 전지현 같았지요?’
뷰리는 이렇게 말을 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갯바위에 앉아 있는 뷰리의 모습은 분명히 인어 같았다.
뷰리의 이런 모습도 차차 상준의 눈에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엔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전라의 여신을 볼 수가 없었다.
‘이것이 본래의 제 모습이에요.’
그 말은 들은 순간부터 애써 태연하게 봐 왔었는데, 이제는 점점 눈에 익어버렸다.
“돌아가자.”
요트로 돌아오는 길은 천천히 유영을 하며 바다 속을 관찰하여 전복도 건지고 소라도 건졌다. 잠시 후에는 뷰리는 주먹만 한 운석도 건져올렸다.
바다 속에서 찾은 운석은 육지에서 찾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육지에서 발견된 운석과 같은 것은 바다 속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물속에서 운석을 찾으려면 약간의 광채나 야광 성분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요트에 돌아와 한참을 쉬던 뷰리가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물위로 떠올랐을 땐 골프공 크기의 야광주를 들고 나타났다.
[신비의 야광주]
전설에서야 있을 수 있는 바로 그 야광주였다.
“아저씨, 이것 뷰리의 선물.”
이와 비슷한 야광 보석은 괴물고기에서 찾은 일이 있었지만 이토록 완벽하게 둥글고 이렇게 까지 아음다움을 지닌 야광주는 본적이 없었다.
상준은 뷰리를 꼭 안아주었다. 뷰리의 얼굴은 홍조를 띠면서 약간은 쑥스러움과 부끄럼을 띤 얼굴이었다.
뷰리는 이제 타월을 챙겨 몸을 딱은 뒤 출발 할때 입었던 짧은 미니와 티셔츠를 챙겨 입고 상준의 옆에 앉았다.
상준은 뷰리가 떤 전복과 소라를 조금 만 남겨둔 체 양동이에 담아 인어도에 올랐다. 뷰리도 재빨리 상준을 따라 계단에 오르면서 약수터에 도달하자 상준을 따라 약수 한 그릇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정원 올랐을 땐 정원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고 팔각정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환상에 젖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연석에도 올라보고 정원 옆에 남겨둔 갈대밭에도 거닐어 보았다.
“저 아래로 가보자.”
상준은 뷰리를 데리고 우물과 수영장이 있는 반대 계단 아래로 내러갔다.
“여기 수영장도 있었네.”
“응.”
“여긴 우물. 제법 깊네.”
상준이 수영장 옆에 있는 수족관에 소라와 고등, 전복을 풀어 놓았다. 지난 번 잡아다둔 물고기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우럭도 있네.”
지켜보던 뷰리는 기회를 놓칠세라 어른 옷을 벗어 던지고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작은 수영장은 사면과 바닥에 연한 하늘색 타일을 붙여 불빛을 받아 엄청 깨끗하고 산뜻해 보였다.
마치 하늘이 물속에 가라앉은 그런 모습같았다.
“응, 시원해.”
상준이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데도 뷰리는 이제 아랑곳 하지않는다.
뷰리의 수영은 인어의 영법과 거의 흡사하였다. 두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가 가볍게 벌리며 히프 쪽으로 쑥 끌어 다니면서 두다리를 모아 상하로 움직이며 쏜살같이 앞으로 뻗어 나간다.
몇 바퀴를 돌며 수영을 하며 한참만에야 밖으로 나와 우물물을 퍼서 머리를 감았다.
“이제 몸이 좀 개운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바닷물에는 염분이 섞여있어 머리와 몸이 끈끈했을 것이다. 상준도 같은 기분이라 수영장에 들어가 몸을 씻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별장 안에도 보고 싶은데.”
“지금 키를 안가지고 왔어.”
뷰리는 돌아 내려오면서 별장 안을 살펴보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우리 다음에 올때 꼭 들어가 보자.”
“할 수 없지 뭐.”
사실 상준은 별장 키를 가지고는 있었고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아무도 들어온 적이 없는 별장에 뷰리를 데리고 먼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상준은 뷰리에게는 미안했지만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같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어쩌면 뷰리가 돌아가지 않으려는 핑계를 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함께 하였다.
그만큼 별장 안은 아늑하면서도 편안함 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이런 곳에 들리면 누구라도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며칠씩은 푹 쉬고 싶고 즐기고 싶고 놀고 싶은 욕망이 치솟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그랬었다. 별장이 완공되어 마지막 점검을 왔을 때 자신을 유혹하는 뭔가가 있어 하룻밤은 체험으로 쉬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접어두고 며칠간은 여기에 머물고 싶었었다. 그만큼 편안하고 안락한 것 같았다.
그들이 화암대 절벽아래 요트 계류장에 도착 했을 때는 출발한 시간과 비슷한 시간이었다.
‘오늘도 상미가 방 앞 베란다에서 내다보고 있을까?’
상준은 괜히 신경이 쓰여 챙겨둔 물고기를 봉지에 담아 뷰리에게 쥐어주고 뷰리가 들어간 후 한참을 머물다 물고기통을 메고 집으로 올라왔다.
“오빠. 많이 잡았어요?”
“응.”
상미는 정원까지 나와 상준이 메고 있던 물고기 통을 받아 낑낑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고기 통에는 많은 량의 갈치와 고등어 몇 마리가 가득 차 있었다.
“이것 나눠 먹어야겠네.”
상준의 마음을 잘 읽고 있던 상미는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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