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에 미친 총각-108화 (108/225)

〈 108화 〉 뷰리의 활약(1)

* * *

잠깐 잠을 잤을까?

다슬이 상준을 깨우자 잽싸게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한번 더 다슬을 안고 싶었지만 조금만 지나면 어머님이 깨어나시고 출근 시간이 늦는다며 보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다슬을 안고 진한 입맞춤만 해준 뒤 급히 나와 차에 올랐다.

새로 구입한 상준의 스포츠카는 신항 주변에는 가진 사람이 거의없어 누가 봐도 상준의 차라는 것을 쉽게 알수 있었다.

‘내차가 너무 표티가 나나?’

상준은 혼자 중얼거리며 급히 집으로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넣어두고 정원에 있는 정자 옆에 가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벌써 정원에는 백일홍과 가을 장미가 피어 아름답기가 그지없었다.

“오빠, 오늘 일찍 일어나셨네.”

“음.”

“식사하세요.”

상준은 서둘러 아침을 먹고 회사로 출근했다.

사무실에 앉아 신문을 들고 않아있으니 대표실 문을 두드리는 녹크 소리가 들렸다.

“네.” 하고 고개를 들고보니 얼굴이 빨갛게 홍조를 띤 송이가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오늘 아침 차는 뭘로 드릴까요?”

“음. 녹차.”

송이의 일과는 대표께 드릴 차를 끓여 들이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평소엔 늘 커피가 주된 메뉴지만 특별한 날은 녹차로 대체한다.

오늘도 상준은 목이 칼칼하고 입에 가시가 돋은 것 같아 녹차를 주문했다.

잠시 후 녹차 찻잔을 들고 들어와 상준의 앞에 찻잔을 놓았다. 상준은 녹차 잔을 들고 책상 앞에 놓여있는 회의용 소파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송이를 처다 봤다. 얼굴이 온통 홍당무가 된 송이는 맞은 편 소파 뒤에 서서 눈을 맞추지 못하고 어쩔줄을 몰라 했다.

“전비서. 어제 밤 일 기억나는 것 있어?”

상준의 말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뭘?”

“대표님이 저를 방에 데려다 주셨잖아요.”

“응. 알고 있었네.”

“죄송해요. 그리고 금방 잠이 들어 언제 가셨는지는 몰랐어요.”

“잠은 잘잤고?”

“네, 모처럼 푹잤어요.”

사실 송이는 백장어를 먹은 뒤 야한 꿈을 자주 꾸었다. 그런데 생애 처음 여자의 몽정을 경험하였다. 상준이 자신을 부둥켜안고 방에까지 데려다준 것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후 금방 잠에 빠졌고 종종 꿈속에 나타나는 야릇한 것을 경험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흔히 말하는 몽정이란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원래 몽정은 사춘기에 있는 청소년이 경험하는 일이다. 여성에게도 이것이 있는지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간혹 경험했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죄송해요. 대표님.”

“뭣이 죄송하다는 거지?”

“제가 너무 술을 많이 먹고 전화할 곳이 없어서,”

“치맥집 주인이 전화가 했더라고, 전비서 폰으로.”

“네.”

“전비서 있지. 백장어는 우리 같은 젊은 사람이 먹는것은 아닌가 봐.”

“네.”

송이는 얼른 찻잔을 들고 대표실에서 빠져 나왔으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대표님께서 나의 이런 상태를 알고 계시나?’

자리에 돌아왔으나 얼굴에 느껴지는 화끈한 열기는 죄송함과 창피함의 복합적 현상 같았다.

점심을 먹은 후 상준은 뷰리에게 전화를 했다.

“네, 저예요.”

“오늘 금요일이잖아.”

“네, 아저씨.”

“이번 주말에 나 좀 도와주겠어?”

“네, 얼마든지요.”

상준은 뷰리의 일과를 체크한 후 도움을 요청했다. 도움이 아니라 뷰리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시간이었다.

“그럼 저녁먹고 요트에서 만나.”

뷰리는 신이 났다.

머리엔 썬캡을 쓰고 힌색 마스크를 끼고 발랄한 소녀 같은 치마와 티셔츠를 입고 여행용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누가 보아도 여행가는 소녀 같았다.

가끔 뷰리는 시내에 나가거나 유원지로 나갈 때면 데이트 신청을 받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대학생들이거나 젊은 총각들이었다.

그러나 뷰리 자신은 인간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아예 그들의 데이트 신청을 거부하고 있었다.

날이 어둑해 지자 상준은 뷰리를 태워 바다로 나갔다. 인어도 부근에 요트를 정박해 두고 상준은 고기를 잡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고 뷰리는 자신의 활력을 찾기 위해 바다로 뛰어 들었다.

언젠가 말했듯이 본연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본격적인 가을은 아직 멀었으나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은 시원하였다. 음력 보름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하늘에는 조각달이 떠 있었다.

요트 사각 모서리에 불을 밝혀두고 의자에 앉아 야광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간간히 한 번씩 자신의 대상어가 눈에 들어올지 점검도 하고 멀리서 유영하는 뷰리도 지켜보았다.

역시 뷰리는 바다의 여신 같았다. 마치 한 마리의 돌고래가 쇼를 하는 것 같이 보였고 유연한 몸동작과 아름다운 곡예는 올림픽에서나 볼 수 있는 싱크로나이즈 스위밍 선수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상준의 낚시에 어신의 소식이 왔다. 그때 갑자기 뷰리가 다가와서 소리를 질었다.

“아저씨. 물반 고기반이에요.”

“무슨 고기 같아?”

“갈치에요. 갈치.”

상준은 즉시 낚시를 감아 올렸다. 정말 삼지짜리 갈치가 물결처럼 나부끼며 딸려 올라왔다.

뷰리는 다시 물속으로 곤두박질하고는 다리를 흔들며 다이빙을 하듯 잠수하였다.

상준의 낚시에는 수시로 갈치가 올라오고 있었다. 불빛을 받은 갈치는 한결 같이 예쁘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지느러미를 팔랑이며 올라오고 있었다. 요트를 비추는 사방의 불빛이 심층 갈치를 수면 가까이 유인하는 듯 했다.

계속되는 갈치의 행진에 어느 듯 고기통은 갈치가 차곡차곡 쌓여만 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상준은 3지 짜리 갈치는 모두 놓아주고 4지 이상 갈치만 통에 담았다. 그만큼 갈치가 자주 올라오는 것이었다.

갈치는 많이 잡아도 버리지는 않는다. 얼마든지 이웃과 갈라먹을 수 있는 어종의 하나다.

‘나의 대상어는 없는 것일까?’

상준은 이제 갈치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원석 어종을 찾고 있었다.

한참 만에 뷰리가 주먹을 쥔 팔을 들고 유유히 헤엄을 치며 요트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저씨. 이거.”

낚싯대를 놓고 뷰리가 내민 것을 받아보았다. 좁쌀만 한 원석들 몇 개가 들어있었다.

“어두운 바닥에서 이런 것들이 보여?”

“어두울수록 잘 보여요. 빛을 내거든요.”

아마 이런 원석들은 유성우에 섞여서 가루가 되어 떨어진것 같았다.

“작은 것들은 그냥두고, 좀 큰 것들이 보이면 건져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뷰리는 물속으로 잠수하였다.

‘1, 2, 3,,,..10, 11,...40, 41,... 70,...90,... 100,.... 200,....300.’

상준은 뷰리가 잠수한 뒤 가만히 마음속으로 세어보았다.

뷰리의 잠수 시간이 무려 5분이나 되었다. 그리고 이번엔 콩알크기의 원석 두개를 들고 나왔다.

하나는 붉은 야광 홍옥, 하나는 푸른 홍옥이었다.

“좀 쉬었다 해. 무리하지 말고.”

“무리 아니에요. 그냥 재미있어요.”

상준은 원석 두 개를 낚시가방 포켓에 넣어두고 처음 가져온 원석 중에 좀 큰 것만 골라내고 바다에 뿌렸다. 그때 갈치 때가 순식간에 퍼덕이며 원석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먹이인줄 알고 덤벼드는 것 같았다.

‘저렇게 해서 고기들이 원석을 삼키는 구나.’

저것을 먹고 세월이 지나면 먹은 고기는 섬광을 띤 변종이 되겠지. 저것이 바로 변형 원석 물고기거나, 돌연변이 물고기가 될 것이다.

처음부터 우주에서 들어온 우주 괴물도 있었지만 대부분 상준이 건진 고기는 변종이 많았다.

수십억년 동안 수많은 운석과 유성우 등이 우주보석이이나 원석과 섞여서 떨어졌을 것이다. 어디 원석이 한, 두 개일까?

언제 돌아왔는지 뷰리가 다시 요트에 매달렸다. 뷰리의 손에는 주먹만한 운석이 들려있었다. 단순한 운석이 아닌 보석 원석이었다. 은백색의 원석은 불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이다. 그 속에는 보랏빛의 산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보라빛 운석.”

“이것 가치가 있는 거예요?”

“이건 엄청난 고가를 받을 수 있을 거야. 홍콩 경매장에서 경매를 붙여 봐야겠어.”

상준의 표정에 미소가 일자 뷰리도 매우 흡족한 것 같았다.

상준이 손을 잡아 당겨주자 뷰리는 물을 박차듯이 솟아올라 갑판 위에 뛰어 올랐다. 날렵한 몸매가 물속에서는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았다.

이제 보석 가공도 자체적으로 해결된다. 익산에 가면 [뉴 해양 보석가공] 직영 공장이 있다. 보석가공부에 넘겨만 주면 모든 보석원석은 자체 해결된다.

“아저씨, 우리 간식 먹고 해요.”

상준은 대형 타월을 꺼내와 뷰리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뷰리는 메고 온 가방을 열더니 보자기에 싼 원판하나를 꺼내 놓는다.

“이게 뭔데?”

“피맥.”

그리고는 다시 가방속에서 캔맥주 몇개를 꺼내었다.

보자기를 풀어 뚜껑을 열자 피자 한판이 들어있었다.

“피자와 맥주?”

뷰리는 피자위에 소스를 뿌린후에 한조각을 뜯어 상준에게 건네준 후 자신도 피자를 손에 들었다.

상준은 맥주를 따서 뷰리에게 주었다.

“위하여.”

그러고 보니 피자는 안주 겸 간식이었다.

“넌 요즘 어때?”

“좋아요. 재밌고.”

“다행이다. 너 혹시 백장어 본적 있어?”

뷰리는 고개를 저었다.

“흔한 고기는 아니겠지.”

“흰색 장어란 말 아니에요?”

“그런 셈이지.”

“근대 그건 왜 물어요?”

“응, 얼마 전에 내가 잡은 일이 있거든.”

“네.”

뷰리는 힌색 장어를 본 기억이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아 보였다.

“아저씨 저기 저 섬에 별장 지으셨다면서요?”

“응.”

“한번 올라가 봐요.”

“다음에 가자. 오늘은 내가 키를 안 가져왔어.”

“무인도의 이름을 인어도라 지었다면서요.”

“응.”

그날 뷰리는 모처럼 마음 놓고 바다를 드나들며 수영을 하랴, 원석을 찾으랴, 지칠 줄 모르고 즐기고 있었다. 그런 뷰리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준은 뷰리의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자신도 낚시에 전념하였다.

얼마가지 않아 상준의 눈에도 그가 찾고 있던 대상어가 보였다. 섬광의 모양이 언젠가 한번 본 것이었다.

‘용장어가 맞는데?’

용장어는 진호동 앞바다에서 상준이 건진 경험이 있다. 머리는 용과 비슷하고 몸통은 장어몸통.

상준은 신중하게 천천히 감아 올렸다.

이번에는 진주와 비슷한 구슬 하나가 용장어의 몸에서 추출하였다. 고기를 먹어보려 생각하다가 그냥 바다로 던져 버렸다. 장어는 이제 조심해야겠다.

“저걸 왜 버려요?”

“그냥.”

“아까워요.”

뷰리는 굵은 용장어를 바다에 버리자 다시 주워 오려 물에 뛰어들 기세였다. 상준은 얼른 뷰리의 팔을 잡았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