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여자의 직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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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준은 총무 부장을 불러 은밀하게 지시를 내렸다. 괴물 가공업체 중에서 보석가공과 관련된 업체 중 최근 불황을 겪고 있는 기업을 은밀하게 알아보고 기업을 넘길 의사가 있는지 타진을 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황에 시달리는 상황이라 예상외의 성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대표의 지시를 받은 총무부장은 학연, 지연 등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보석가동업체를 내사하였으나 기업 경기의 전반적 불황이라 큰 이윤을 남기는 기업은 많지 않으나 자신이 운영해 오던 기업을 매각하겠다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자연히 전략을 바꾸어야 할 형편이었다.
일차 전략이 실패하자 이번엔 기업 인수설을 퍼뜨리게 했다. 뉴 해양 컴퍼니에서 우주보석 관련 기업을 인수한다는 루머를 퍼뜨렸다.
그리고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어느 날 다슬의 어머니가 상준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상준의 집에 찾아왔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어머니 방에서 머물다 돌아갔다. 딸을 가진 부모로써 당연한 걱정을 하고 갔을 것이다. 그때 다슬은 상준의 방에서 상준의 간호를 핑계 삼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상준의 집에 눌러 있었으니 어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다슬은 꼭 잠을 잘 때는 어머니와 함께하거나 아니면 상미와 함께 잠을 잔다. 정작 낮에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상준의 옆에서 공부를 하거나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곤 하였다.
때때로는 상준과 더불어 갯바위 낚시를 하기도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슬은 뷰리에 대해 말을 꺼냈다.
상준이 행방불명이 되자 수시로 뷰리가 상준의 집에 와서 아저씨 소식을 묻거나 함께 걱정하는 일이 많아 처음에는 단순히 회사 직원으로 대표를 염려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또한 마음 씀씀이가 착하고 예의도 밝아 아무도 뷰리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상준이 돌아오는 날.
뷰리가 갑자기 상준을 끌어안고 모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을 듣고 다슬의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아저씨. 오늘도 오시지 않으면 죽어버리려고 했어요.”
이런 말은 아무나 하는 말이 결코 아니었다.
자기 회사 대표에게 직원이 하는 말은 더구나 아니었다.
그렇다고 상준을 못 믿는 것도 아니었고 그의 마음을 몰라서도 아니었다.
그런대도 다슬은 의혹이 생겨났다.
다시 말하면 다슬과 상준의 인간관계였다.
아마 이런 생각은 어머니도 그렇고 상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날 이 후 가끔 상준을 방문하여 그의 건강을 체크하였으나 특별히 의심이 간다거나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슬은 함부로 상준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의심하는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오빠. 뷰리 있잖아요? 그 애 예쁘죠?”
“응, 예쁘지.”
“그 애 오빠 소식 끊겼을 때 걱정 많이 하드라고?”
“응, 그랬을 거야.”
더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상미는 뷰리를 알게 된 것이 인사팀장으로 있을 때였다.
오빠의 지시로 뷰리를 특채하였고 내부 인사 때도 오빠의 의견이 강하게 작용을 했다. 다행인 것은 처음 오빠의 추천대로 사람이 성실했고 책임감이 강해 아쿠아리움에 배치한 것이었다.
바다 생물과 바다괴물을 관리함에 능력이 탁월했고 인어쇼까지 맡아 회사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빠와 뷰리가 어떤 인연으로 어디서, 어떻게 만났으며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먼저 다슬이에게 뷰리의 이야기를 꺼내 봤지만 다슬이 역시 뷰리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었다.
결국은 다슬과 상미는 서로 의논하여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겠다고 결심하였고 그 일을 상미가 맡기로 결정하였다.
다슬은 자신이 오빠를 믿지 않는다는 인식을 남길까봐 상미에게 미룬 것이고 상미는 동생이니 쉽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그 뒤 어머니는 자식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부산으로 내러가셨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려니 도저히 갑갑하여 그냥 놀고 먹기가 힘이 든다고 하셨다.
상준이 회사로 출근하면서 회사의 분위기도 많이 변화되고 있었다. 항상 상준은 점심 식사 후에는 바로 퇴근하고, 퇴근하면 낚시를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상준이 돌아온 얼마까지는 다슬과 상미가 자주 낚시에 동참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일이 평상으로 돌아갔다.
상준은 퇴근을 하여 화암대 갯바위에서 낚시를 던져두고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언제 같으면 담배를 꺼내 피우고 있었겠지만 무인도에서 담배를 끊은 것이(사실은 담배가 없어서) 아까워 꾹 참으면서 자제하고 있었다.
노래미도 낚고 게르치도 올리고 간혹 뱅어돔도 올라 왔지만 상준의 대상어는 보이지 않았다. 저녁을 먹자는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의 전화를 받고 낚싯대를 그냥 두고 집으로 올라왔다.
문득 집히는 게 있어 총무부장에게 전화를 하였다.
아직 보고를 받지 못한 무인도 등기 신청에 관한 내용이었다.
“예, 대표님, 제가 먼저 보고를 들여야 하는데 그동안 상황이 상황인지라 놓쳤습니다. 등기필증이 떨어졌습니다. 좀 복잡하고 제출 서류가 많았지만 모두 갖춰 제출하였더니 승인이 됐습니다.
“그럼 당장 내가 그곳에 집을 지을 생각이니 토목 업체를 알아보세요.”
“어떤 일을 하시려구요?”
“별장을 지을 터를 깍는 작업입니다.”
“네.”
“기본적으로 해야할 일은 해안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먼저 만들어야 하고, 정상에 올라가는 가면 펀펀한 억새밭이 약 200여 평이 있으니 건평 50여 평에 집을 지을 수 있는 축대를 쌓아야 하며 그 다음은 억새밭을 손보아 정리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럼 평면도를 그려 대표님과 협의를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럼 요트를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은 필요 없겠습니까?”
“계단 입구에 약간만 손 보면 요트 한척 정도는 정박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업체에 의뢰를 해 보세요.”
상준은 총무부장에게 인어도의 방향과 진입로 계단을 만들 곳을 일러주고 수시로 협의를 하였다.
“아주머니, 어머니도 내러 가셨으니 다시 예전처럼 같이 식사 하시죠.”
“네, 그러세요. 아주머니.”
결국 상준과 상미와 다슬이랑 아주머니는 다시 함께 식탁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식사를 하는 도중 아주머니가 무겁게 말을 꺼냈다.
“대표님, 전 이제 이 일을 그만둬야 할것 같습니다.”
“네? 왜 그러세요. 아주머니.”
“사실 아이들 아버지 돌아가시고 곧 그만 둘 생각이었는데 그동안 대표님이 사고를 당하시는 걸 보고 집안 분위기 때문에 미처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병원비랑 치료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멀리 두고 혼자 여기 와서 지냈습니다만.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엄마로써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랬군요. 중학생이라 했던가요?”
“예, 3학년, 1학년입니다.”
“아, 어쩌지 전 아주머니를 누님처럼 생각하며 집을 맡겨 왔는데.”
“예, 대표님의 따뜻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그만두실 생각이세요?”
“일단 이번 달 말까지는 있겠습니다. 추석 명절은 제가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사람이 쉽게 구해지면 그보다 일찍 나가면 더 좋구요.”
“그럼, 아주머니께서 좋은 사람 있으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식사를 마친 상준은 다시 선착장으로 나갔다. 저녁에 던져둔 낚싯대도 건져올 겸, 소화도 시킬 겸, 다시 바닷가로 나간 것이었다.
“오빠. 나도 좀 있다 가볼게요.” 다슬이었다. 상미도 같이 동행하고 싶었으나 두 사람의 사이에 끼워드는 분위기라 차마 따라 나서지 못했다.
‘오늘은 운이 좋을 것 같네.’
상준이 갯바위에 도착하자 꽂아둔 낚싯대에 뭔가가 걸려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붕장어였다.
한 움큼이나 되는 붕장어를 건져내며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미끼를 바꾸어 바다에 던져두었다.
오늘 저녁 사용하는 미끼는 갯지렁이다. 갯지렁이는 새우에 비해 자주 미끼를 갈아주지 않아도 되며 특히 밤낚시때 성과가 좋다. 더군다나 몇번 입질을 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많은 집중도 필요하지 않다. 새우는 한두번의 입질로 쉽게 미끼를 잃어버리지만 그를 걱정이 없는 것이 갯지렁이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윔을 사용하면 되겠지만 화암대 낚시에서는 윔의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시 낚시를 바다에 던지자 언제 내러 왔는지 다슬은 의자를 가져와 상준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상준의 팔뚝을 잡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빠, 드릴 말씀이 있어요."
"무슨 말?"
"며칠 전 엄마가 오빠 집에 오신것이 제 때문인가 봐요."
"....?"
"엄마 입장에서는 딸이 직장을 그만두고 총각집에 머무는 것이 어머니 보기에도 그렇고 남 보기에도 좀 그런가 봐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건 이해가 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오빠 건강도 회복되었으니 전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구요."
"왜?, 안돼."
"제가 이제 멀리가는 건 아니잖아요. 같은 동네라 옆집과 다름없는 데."
"직장 사표낸 것 후회 안돼?"
"그건 아니에요. 어차피 임용고시 보려면 사표를 내야할 텐데, 오빠 사고로 사표를 좀 일찍 낸 것 뿐이에요."
"그럼 언제부터?"
"당장 내일이라도 집으로 돌아가려구요."
결국 상준은 다슬이에게 종종 만난다는 약속을 받은 뒤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럼 이제 한집에 사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네.”
“당분간은 그렇지요. 뭐.”
상준은 던져둔 낚싯대를 거두어 요트에 실어 다슬을 태워 해자도로 향했다.
"지금 어디 가시게요?"
"해자도."
상준은 해자도 해안에 요트를 매어두고 다슬을 데리고 섬으로 올랐다. 여기엔 언젠가 다슬이와 상미(당시엔 희진)를 데리고 온적이 있었다.
"우리 당분간 만나기 어려울텐데 데이트를 하고나서 보내야지."
"참, 오빠도."
다슬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싫지않은 표정이었다."
지난 여름에만 해도 해수욕장에 온 사람들이 수영을 하여 해자도에 많이 들어오곤 했다. 오늘은 그때하고는 전혀 달랐다. 비록 해안 가까이에 위치한다고는 하나 일부로 배를 빌려 타고오지 않으면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섬이다. 여름처럼 수영을 하는 사람도 없으니 사람들의 그림자는 찾기 어려웠다.
정상에 도착한 상준은 신항이 보이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다슬아. 내가 무인도에 갇혀 있을 때 네가 보여준 마음 평생 잊지 않을게.”
“내가 뭘 했다고.”
“사고를 당했다 하면 부모형제를 제외하곤 모두 꽁무니를 뺀다고 하던데 넌 직장에 사표까지 냈잖아.”
“사실 오빠 그때, 날짜는 가는데 소식은 없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미안해.”
“지금와서 이야기를 하니 그렇지. 그땐 정말 못살 것 같았어요.”
"알아. 너 마음."
“그리고, 다슬아, 상미에게 들었는데, 절대 너 이상하게 생각지 마.”
“뷰리 말씀이세요?”
“응, 내가 지금 말할 수는 없지만 나중에 해 줄게. 내 이야기 들으면 너도 이해할 거야.”
"네. 오빠를 못믿어서가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랬어요."
그리고 상준은 다슬의 어깨를 감싸안고 그녀의 볼에 진한 키스자국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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