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대책 없이 야한 여자(3)
* * *
종일토록 몇번이나 크라캔을 불렀으나 소식은 전혀없었고 그렇다고 어느 누가 이들을 찾는 사람도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곤 하였다.
며칠이 지나도록 구조대의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상준은 거의 미칠지경이었다.
아줌마가 주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도 환장할 노릇이었다.
모든 일에 피동적이고 남이 해주기만 바라는 이상한 성격이다.
꼭 꼬집어 탓할 수도 없는것이 더 미칠지경이다.
‘저 아줌마는 걱정도 안될까?’
어떻게 보면 은근히 상황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
‘마음속으로는 걱정이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더 한심한 것 같다.
소식이 없다는 건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이 무인도가 사고 발생 지점에서 엄청나게 먼 곳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왜 이곳에는 지나가는 어선이나 상선도 없을까?’
해괴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쓰레기 더미를 찾아 쓸만한 것이 있으면 주워모으고 아침이 되면 철사를 갈아 낚시 바늘을 만들어 고기도 잡는다.
신기한 것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조개를 구워 먹고, 전복을 먹으니 몸이 점점 알아서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기를 잡고 물속으로 드나드니 힘은 오히려 생기는 것 같다.
단지 밤에는 녹초가 되어 곯아 떨어지지만 아침이 되면 더 생생해 진다.
산에 올라 잔대도 캐고, 더덕도 캔다.
알 수도 없는 버섯도 따먹는다.
독버섯은 색갈이 곱고 입에 넣으면 혀끝이 아리다고 했다.
그런것이 아니면 그냥 모두 따먹었다.
그래도 이제 끄떡도 없다.
칡도 캐어먹고 소나무 껍질로 보충을 하며 방풍나물도 뜯어서 먹는다.
양염이라고는 소금물뿐이다.
그런데도 이제 입맛에 맞다.
저녁이 되면 랜턴을 들고 언젠가 희진이, 아니 상미가 했던 것처럼 낙지라도 잡아 볼까 물속을 뒤진다.
물속을 비춰가며 돌을 뒤적여 낙지 몇마리를 잡을 때도 있고 간혹 소라를 따기도 한다.
저녁이 되면 기온이 떨어져 약간의 한기를 느끼곤 한다.
이제 아줌마를 시켜 나무를 구해오라 역성도 낸다.
그런 대로 불은 잘 지키고 있다.
그게 아줌마 역할의 전부였다.
자신은 오직 먹을 것을 구하는게 하루 일과였다.
잠시도 쉬지않고 낚시를 한다.
낚시 미끼는 다슬기 같은 작은 고등을 돌로 깨어 그 살을 이용한다.
홍합의 알을 이용할 때도 있다.
신기하게도 굶어죽지 않을 만큼 걸려 올라온다.
그러다 어느 날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엄청 큰 조개를 찾아내었다.
처음보는 조개가 엄청나게 커서 한끼 식사는 가능할 것 같았다.
잘만하면 조개껍질 냄비로 사용할 수 있겠다.
낙지를 장만하여 말려두고 소라도 있는 대로 잡아 올렸다.
이제 불을 피워두었으니 조개류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먹거리 확보가 보다더 쉬워졌다.
바로 대형 조개를 이용한 작은 냄비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홍합도 따고, 거북손도 따고, 작은 고등도 삶아 먹을 수가 있게 되었다.
불가능했던 먹거리들이 모두 가능해 졌다.
"동생 나 배고파."
아줌마의 이런 소리도 자연 줄어들었다.
자신이 할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수시로 투정하는 아줌마가 갈수록 미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간다.
‘미친.’
"배고프면 앉아만 있지말고 뭐라도 좀 노력해 보시던지."
"....?"
이제 노골적으로 감정선을 드러낸다.
날씨가 흐려져 비가 올것 같아 저녁 먹을 생각을 하지않고 계속 물속으로 드나들었다.
날씨에 대비해서 하나라도 더 확보에 주력하자 아줌마는 화를 내며 투정을 한다.
그 날 아줌마는 상준에게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
많이 서운한 모양이었다.
바다에 나갈 체력이 고갈되자 물에서 나와 불가에 앉았다.
큰 돌 두개를 모닥불 양편에 높게 세운뒤 대형 조개를 걸쳐놓았다.
"지글지글, 지글지글."
조개가 끓기 시작하자 구수한 냄새가 모닥불 주변을 퍼져나왔다.
이제야 배가 고프다는 실감이 났다.
아줌마는 계속 침을 삼키며 기다리고 있었다.
대도를 이용하여 조개를 먹을 수 있도록 잘게 잘라 놓았다.
나무젓가락을 만들어 정신없이 조개를 주워먹었다.
아줌마에겐 먹어보란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아줌마 역시 배가 고파 미칠 것 같았다.
허기가 면해지자 생각했던 것보다 맛이 없었고 짠 것 같았다.
상준은 구운 낙지도 먹어보았다.
짭조름한 맛이 구미가 당겼다.
실컷 주어먹은 상준은 젓가락을 놓고 나니 피곤과 식곤이 겹쳐 졸음이 왔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여행용 자리를 동굴바닥에 깔아 놓고 자리에 누웠다.
상준은 동굴안에서 세상모르게 골아 떨어졌다.
며칠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든 것 같다.
그의 잠든 얼굴이 불빛을 받아 이글거린다.
아줌마의 눈에 들어왔다.
'내가 너무 사가지 없이 굴었나?'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며 상준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역시 좀 심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배가고파 상준이 먹던 젓가락을 집어 남아있는 조갯살과 낚지를 모두 골라먹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누워있는 상준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생각이 바뀌자 마음 또한 설레었다.
어느 날 새벽에 한기를 느껴 잠어서 깨어보니 그의 품에 파고든 자신을 발견하였다.
얼마나 가슴이 뛰고 심장이 콩닥거렸던가?
잠깐 동안만이라도 이 남자와 함께 이곳에서 살고싶은 욕망이 생겼다.
모든 여자들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전에도 누군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결국 상준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남자가 깨어나서 자신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좀 미쳤었나 보다.‘
‘아무리 남편과 헤어진 지가 오래됐지만, 남자를 전혀 멀리한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선 아니란 생각이 들었었다.
모닥불 옆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나름 상상을 해 보았다.
좀은 무뚝뚝하고 좀은 우직스럽기는 해도 저런 남자라면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것 같았다.
무인도면 어떻고 산속이면 또 어떨까 싶었다.
상상의 나래를 펴다 동굴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나도 자야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연하의 남자 상준의 옆에 끼어들었다.
*
한편 낚시를 하던중 엄청난 괴물이 배를 덮치면서 한 사람이 희생되자 모든 낚싯배들은 혼비 백산하여 신속히 귀항하였다.
요트에 있던 명호는 순식간에 대표님이 요트를 몰아 괴물을 쫒다 두 마리의 괴물이 사람 하나를 두고 먹이 경쟁 싸움이 벌어진 것 까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대표님이 옷을 벗어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당시 상황을 정리해 보니 분명 사람을 구하기 위한 행동일거라 짐작은 되었지만. 괴물들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 돌발적 행동을 보인 것만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납치됐던 사람이 괴물의 싸움 도중에 튕겨나오는 걸 명호는 미처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상준의 모습을 더는 보지 못했다. 목이 터져라 대표를 부르던 명호도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렸다. 여자의 부모와 낚시꾼들의 신고를 받은 해경은 신속하게 출동하여 표류중인 요트와 실신한 명호를 구조했으나 더 이상의 희생자는 찾을 수 없었다.
해경의 조사 결과 목격자자들의 증언과 명호의 설명을 분석한 결과 살아있기는 불가능하다는 추측을 하였으나 살아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시신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여론이 빗발쳐 연일 주변 어선과 헬기, 해경의 연합 작전으로 주변 바다를 물색하고 있었으나 결국은 찾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신 전국에 괴물 잡이 포상령이 발동되었다. 괴물을 잡지 않고서는 어부들의 안전과 여객선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많은 프로 낚시꾼들도 모두 출동하였고 새로운 작살이 제작 동원 되었지만 괴물의 형체도 볼 수가 없었다. 이 또한 며칠 만에 흐지부지 되었다.
상준의 집에서는 발칵 뒤집혔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실신하였고 상미도 까무러쳐 기절해 있었다. 회사에도 비상이 걸려 상미를 중심으로 운영체제를 재편하였으나 상미 또한 기력을 잃어 출근은 아예 하지 못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다슬은 장기 휴가를 내어 상준의 집에 머물면서 어머니를 간호하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빠는 절대로 죽을 사람이 아니야.”
다슬은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근하지 않고 어머니와 상미 옆에서 그들과 함께 서로를 위로하며 지내고 있었다.
“어머니. 전 알아요. 오빠는 절대 죽을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 너 말 맞다. 상준인 달라 절대 죽지 않아.”
“오빠는 나도 알아. 우리가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상미와 다슬은 어머니와 함께하며 매일 기도하였다. 반드시 상준이 살아 돌아돌아 올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수도 그랬다. 분명히 상준이는 살아 있을거라 믿고있었다.
“제가 확신합니다. 상준인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이들의 말을 철석 같이 믿으며 한 가닥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죽은 줄로 알았던 상미도 살아왔다. 그렇게 쉽게 갈놈이 아니다.”
상준의 어머니는 이 말씀을 반복하며 울고 웃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연상준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사람을 구하려고 단신으로 물속으로 뛰어 들다.
상준의 소식은 전 세계의 뉴스를 타고 퍼져 나갔다.
상준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그의 꿈.
그가 이룬 괴물 사냥과 해양박물관과 괴물 아쿠아리움 까지 상세하게 뉴스가 되어 온 나라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가 실종된지 보름이 지났다. 세상 어느 구석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이제 가게 문을 닫고 아예 중산으로 내러와 있다.
진작 아들이 함께 살자고 하였을 때 그때 오지 않는 것이 한없이 후회가 되었다.
그 넓은 집에는 어머니와 상미, 다슬이가 함께 셋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께서 남편이 저 세상으로 떠나간 뒤에 도우미를 그만 두려하고 마지막 인사를 위해 돌아왔는데 상준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쑥대밭이 된 집안 분위기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고 당분간만 더 있겠다고 약속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의리가 있다.
이 분이 있어서 세 사람의 모녀가 죽지 않고 살아 연명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기한 것은 상준의 행방불명으로 집안은 온통 쑥대밭이 되었는데도 해양박물관과 괴물아쿠아리움은 연일 사람들이 밀어닥친다.
상준의 소식에 더 많은 사람들이 상준이 이룩해둔 괴물들을 보려 더욱 몰려드는 모양이었다.
전세계에 알려져 홍보가 된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상준의 마지막 희생이 수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인 요인도 된다.
세상일이란 이래서 아이러니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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