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대책 없이 야한 여자(2)
* * *
"안돼."
혜영을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몸이 잘 움직이지 않고 가위에 눌린 것처럼 버둥대다 눈을 떴다.
이미 날이 훤히 밝아 있었다.
'꿈이 었구나.'
해가 뜬지 한참 지난것 같았다.
팬티 밴드가 아래쪽으로 내려가 있었다.
자신의 심볼이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 있다.
'흐걱.'
깜짝놀라 여자를 보니 미동도 않고 잠이 들어 있다.
다행이었다.
잘못했으면 자신의 모습을 보일 뻔 했다.
한쪽 가슴이 반쯤 들어난 체 아침 햇살을 받은 여자의 모습은 욕망을 부추기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인 탓일까?
이상하게도 자제력이 줄어들고 본능적인 행동을 취하고 싶다.
'저게 서른 다섯이라고?'
아무래도 거짓말 같다.
자리에서 빠져나와 밖으로 나왔으나 꿈인지 현실이었는지 구별할 수 없었다.
'갑자기 혜영씨가 내 꿈에 나와?'
올때 그녀가 한 말 때문일까?
"일찍 일어났네."
그의 뒤에서 금방 깨어난 듯 말을 걸었다.
"예."
"동생 덕분에 목숨도 구했고, 잠도 잘 잤어."
"예, 다행입니다."
상준은 다시 크라캔을 불렀으나 끝내 소식이 없었다.
뭐라도 찾아 식사라도 좀 해야겠다.
"뭘 좀 먹어야 할 텐데?"
"나도 배가 고파."
여자를 보니 그럴 재간은 없어 보였다.
하늘하늘한 몸매가 힘을 쓸것 같지 않아 보였다.
불빛에 볼 때는 고딩같아 보이더니 아침에 보니 그 정도는 아니다.
나이는 좀 있어보였다.
체구는 좀 작은 편이지만 아줌마 같진 않아 보였다.
‘하기야, 요즘은 처녀인지 아줌만지 구별이 돼야지.’
그건 사실이었다.
헤어스타일이나 입는 의상이나 구별하기 어려운 건 요즘 대세다.
"아줌마."
상준은 일부러 아줌마라 불렀다.
".....?"
"같이 가서 조개가 있나 찾아 봐요."
그러나 자리에 앉아 꼼작을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물가에 나가 작은 돌들을 하나하나 뒤져보며 먹을 것이 있나 찾아 보았다.
보이는 건 거의 없었다.
홍합이나 거북손, 작은 고등은 간혹 보였지만 불이 없으니 먹을 수도 없다.
불만 피울 수 있으면 조개라도 잡아보겠지만 먹을 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름이 뭐라 했지?”
“상준.”
“난, 남희야.”
결국 상준은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다.
이곳 저곳을 찿아 헤메다 전복 한 마리를 찾아내게 되었고 작은 돌문어와 소라 몇개도 주어 올렸다.
"이야!"
물에 들어올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팔장을 끼고 갯바위에 앉아 그의 모습을 지켜만 본다.
뭐리도 잡아봉 흉내조차 내지 않는다.
'뭐 저런게 다 있어?'
'잡는 흉내라도 내야 할게 아니야?"
아예 물에는 들어올 생각조차 없다.
'참 대책없는 여자네.'
상준은 일단 돌문어를 장만하여 깨끗하게 씻은 다음 돌 위에 올려 놓았다.
대도를 이용하여 먹을 수 있도록 잘게 썰었다.
전복 역시 깨끗하게 썰어 손질을 하였다.
“이리 오세요. 식사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남희라는 여자에게 기대를 한다는 건 어려울 것 같다.
"맛있다.”
전복 한조각을 뽀드득 씹으면서 그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갑자기 남희가 얄미워 진다.
생문어는 좀 질기기는 했으나 그런대로 오래도록 씹히는 맛이 있었다.
소라를 깨어 먹으려고 했으나 생소라의 아닌 것 같다.
비린내만 나고 도저히 생으로는 못 먹을 것 같다.
소라는 역시 데쳐서 먹어야만 제맛이 나나보다.
“우릴 찾는다고 야단이겠지?”
“아마도.”
당장 불이라도 피워야 할 텐데 좋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1박 2일.’
‘아닌데, 정글의 법칙?’
TV 프로에서 불을 피우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군에서도 배웠다.
플라스틱 물병에 햇볕을 이용하였고, 불꽃이 튀는 돌을 주워 마찰력을 이용하여 부운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방송 프로다.
현실에선 어려울 것 같았다.
부싯돌만 있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요즘 누가 부싯돌을.
‘버티다 보면 우릴 찾아 오겠지.’
사실 답답할 것은 별로 없었다.
요트에는 명호가 있고. 주변에서는 많은 낚싯배가 떠 있었으니. 지금 쯤 아마 수색조를 편성하느라 야단일 것이다.
방송에도 보도가 됐겠지?
남여 두 사람이 바다 괴물에게 잡혀 갔다고?
대한민국에는 든든한 해양 경찰도 있잖아?
아침은 문어와 전복으로 때웠으니 당장 허기는 면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뭔가 부족한 것 같다.
“섬 위로 한번 올라가 볼까요?”
“섬 위로?”
"예, 같이 가요."
"난 여기 있을게."
"구경 가는게 아니에요. 먹을게 있나 찾아 보자구요."
".....?"
상준은 대도를 들고 섬으로 올라가자 어쩔 수 없이 남희도 따라 온다.
아랫도리는 팬티 한 장만 걸치고 브래지어를 한 부분은 손으로 가린다고 열십자를 만들어 가슴을 가리고 있다.
그런다고 뭐 달라질 것이 있나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을 찾는 일이었다.
전체 섬 모양을 살펴 보았다.
섬의 봉우리가 두개였다.
두 개의 봉우리면 접점지역을 찾는 것이 물을 찾을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상준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작은 무인도라 골짜기는 없었지만 형태를 갖춘 골이 있는것 같다.
그곳을 향해 따라 올라간다.
"상준아. 나 발 아파."
"....?"
"나 좀 잡아 줘."
남이 보면 가관일 것이다.
남자는 오직 팬티만 입고 있고 여자는 팬티에 브래지어만 입은 상태.
해수욕장도 아니고.
그러나 어쩌랴.
먹고는 살아야지.
"그냥 따라 와요."
"아, 씨."
남희는 죽을 상을 하며 얼굴을 찌푸린다.
“이게 잔대라는 겁니다.”
여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상준은 잔대를 설명해 주었다.
대도를 이용하여 흙을 파낸 후 잔대를 뽑아 여자에게 주었다.
신비롭게도 이 섬에는 잔대가 제법 많은 것 같다.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조금 더 올라가니 비가 올 때 파인 작은 도랑이 나 있었다.
칼로 바닥을 긁어 보았다.
지룩하게 물기가 쓰며나온다. 최근에 비가 온 것 같았다.
상준은 본격적으로 도랑의 바닥을 긁어내었다.
바닥에 박힌 돌을 뽑아내고 손으로 흙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었다.
"힘들에 뭐하고 있어?"
"....?"
무릎정도 깊이로 구덩이를 팠다.
흙이 점점 지룩하게 바뀌어 물기가 조금씩 스미고 있다.
응급용 셈터.
작은 우물.
그게 아니면 그냥 물구덩이.
고인 흙탕물을 모두 퍼낸다음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마침 그의 옆에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풀잎이 스치자 그의 후각을 자극하고 있다.
“킁킁.”
"이거 무슨 냄새지?"
남희 역시 마찬가지다.
냄새를 맡으려고 두리번 거린다.
"음."
더덕 넝쿨이었다.
더덕 덩굴은 스치기만 해도 냄새가 진동한다.
“이게 더덕이에요.”
“더덕? 이거 맛있는데?”
“음, 향기.”
더덕의 냄새는 잎에 스쳐도 향이 퍼져 나온다.
향긋하고 구수하여 한 번 더 맡아보려 숨을 들이킨다.
원래 더덕은 초롱꽃과에 속한 여러해살이 덩굴성 식물이다.
8~9월에는 자주색 꽃이 종 모양으로 피며 꽃부리 안쪽에는 반점이 있다. 뿌리는 독특한 냄새가 나며, 생채로 먹거나 볶아 먹는다.
생각보다 꽤 뿌리가 굵다.
하나를 찾으면 그 주위에는 여러 개가 나온다.
원종에서 씨가 떨어져 잘 번지기 때문이었다.
가지고 있어요."
여자는 옆에 앉아 캔 더덕을 까먹고 있다.
상준이 돌아보자 조금 떼어 준다.
'시발.'
하는 짓이 더 밉다.
적당한 시기에 한번 먹고 싶었는데 만정이 다 떨어지려 한다.
사고 자체가 다른 년인가?
'저러니 이혼까지 했지?'
잔대와 더덕을 제법 캤다.
더 이상 산으로 오를 필요가 없어졌다.
벗은 몸으로 풀숲을 오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올라갔던 길을 따라 되돌아서서 내러왔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말랐는데 내러 올 때엔 목이 더 마르다.
조금 전에 팠던 물구덩이에 물이 고여 가라앉아 있었다.
갈참나무 잎을 동그랗게 말아 나뭇가지로 찔러 깔때기를 만들었다.
“이거.”
남희에게 주었다.
물이 먹고 싶으면 알아서 퍼서 먹으라는 뜻이다.
“햐. 물맛 좋다.”
몇 번이나 물을 마시고 나서야 자리를 비켜 주었다.
다른 여자 같았으면 직접 물을 떠서 먹여줬을 것이다.
이제 얄미워 그러기도 싫었다.
이제 좀 살것 같다.
어제 밤부터 밀려오던 갈증이 이제야 좀 해소된 듯하다.
일단 물을 얻었으니 죽지는 않을 것 같다.
비가 가끔 온다면 물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우물의 상태가 날이 가물면 말라버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깔때기는 우물 옆 돌위에 얹어두었다.
정오가 다 됐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아랑 상준이랑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
“여기가 어디쯤 되는 것 같아?”
“글쎄요.”
상준도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려 해봤으나 감이 오질 않았다.
“이것 좀 깨끗하게 씻어 와요.”
상준은 더덕과 잔대를 남희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그럼 누가 해요?"
“난 이런 거 안해 봤는데?”
“친정에서 살고 있다면서요?”
“그래도 안했는데?”
"앞으로 해보세요."
나이만 처먹었지 돌아이 같은 년이었다.
"결혼한 경험도 있다면서요?"
"....."
“그냥 잘 씻기만 하면 돼요.”
상준은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뭔가를 구해 와야 점심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리저리 바다 속을 뒤져 전복과 멍게를 몇 개씩 땄다.
"이제 밥 먹어요."
돌미역은 따다 바위위에 널어두고
그녀를 불렀다.
"더덕은 씻어었요?
"응."
"이거 멍게."
칼로 잘라주자 잘도 먹는다.
잔대와 더덕도 골라 먹는다.
"전복과 멍게 두 개씩은 남겨ㄷ뒀다가 저녁으로 먹어요."
상준은 일어서서 동국 가까이 그늘에 들어가 잠시 쉬기로 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장기적인 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크라캔. 살아있어? 살아있으면 나좀 보자.”
이제 상준은 크라캔을 부르는게 습관처럼 되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바다로 입수 하였다.
먹고 사는게 가장 큰 과제였다.
여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먹기는 잘도 먹는다.
상준은 따온 전복과 멍게를 칼로 잘라 돌판 위에 얹어두고 씻어둔 더덕과 잔대를 손으로 찢어 그 옆에 올렸다.
나머지는 모두 미역과 함께 널어 두었다.
“불은 피울 수 없어?”
“.....?”
“불만 피울 수 있으면 조개 구워먹으면 좋을 텐데?”
상준은 전복을 미역에 돌돌 말아 남희의 입에 넣어주었다.
“고렇게 먹으니 맛이 좀 있네.”
이번엔 잔대와 전복도 짭조름한 미역으로 돌돌 말고 있는데 아예 입을 벌리고 내 밀었다.
‘가스나. 내가 하는 것보고 따라 하란 말인데 또 먹여 줄까봐.’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것을 못 본체 하고 자신의 입에 넣어 씹어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먹을 만 하였다.
미역향이 입안을 감돌면서 잔대와 더덕이 짠 맛을 감해 주었다.
“음,”
상준은 일부러 TV에서 본 것처럼 향을 음미했다.
“김병만 있지. 그 사람은 불도 잘 피우던데?”
"아줌마는 못 피워요?"
"나 아줌마 아니라고."
"....?"
"누나라고 해."
‘그래서 뭐?’
상준은 식사를 한후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작정이었다.
잘만 하면 섬 구석 어디선가 흘러온 쓰레기가 쌓인 곳이 있어 무엇이라도 좀 건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나 찾아보려 하는데 같이 갈 거예요?”
“어디?”
“섬을 한 바퀴 돌아보려고요.”
“혼자 같다 와. 난 발이 아파서.”
‘누구는 지금 신발 신고 있나?’
상준은 이런 년을 살려보겠다고 물속으로 뛰어든 자신이 한심스럽기까지 하였다.
‘에이, 제수 없어.’
갈수록 태산인 아줌마였다.
“아줌마?”
“.....?”
갑자기 상준이 아줌마라 부르니 여자의 표정이 찔끔하였다.
“나도 지금 신발 없잖아요, 그럼 여기 있어요. 나 혼자 갔다 올 테니.”
속이 상했지만 꾹 참고 섬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생각은 다행이 적중했다.
경사가 완만하고 움푹 들어간 섬 한쪽 구석에 수많은 스티로폼과 운동화 외짝, 슬리퍼를 포함하여 걸레, 헌 옷, 어구 등이 뒤엉겨 나뒹굴고 있었다.
낡은 여행용 자리와 철사. 입을만한 헌옷 등을 챙기고 나일론 끈과 깡통들도 함께 돗자리에 싸서 어깨에 메고 돌아왔다.
다행이 해안가에 밀려나와 있어 젖지 않고 말라있었다.
“아줌마. 밤이 되면 추울 텐데 이 옷 입어요.”
옷을 던져주자 시큰 둥 하게 바라보며 아무 대답도 없다.
추위도 추위지만 섹시한 몸매가 자꾸 눈에 걸린다.
볼록한 가슴과 잘쑥한 허리.
허벅지 털이 팬티 밖으로 삐져 나와 있다.
'싫으면 말고.'
상준은 단추가 없는 남방셔츠 하나를 윗몸에 끼워 겨우 몸을 가렸다.
짝이 맞지 않는 슬리퍼 두 짝을 던져주었더니 자신의 발에 꿰어 본다.
“옷은 못입겠어.”
"그럼 이걸로 하반신을 가려 보던지?"
떨어진 보자기를 골라 주었다.
역시 본체 만제다.
비록 헌 보자기긴 했으나 허리에 동여매면 좋을 것 같았다.
슬리퍼를 신고는 던져준 헌옷을 발끝으로 툭툭 차고 있었다.
“그럼 말던지.”
다시 섬으로 올라가 마른 가지와 솔가지를 찍어내어 돌아왔다.
불을 피워 볼 생각이었다.
“아줌마. 저기 있는 나무들 전부 모아주세요.”
“내가?”
“그럼 누가 해요.”
“......?”
표정을 보니 불만이 좀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짜증나는 스타일이다.
'저 버릇을 어떻게 고치지?'
진짜 탈출을 못하게 되면 저런 여자 데리고 살려면 머이나 아플 것 같았다.
상준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몇 개를 줏어들고 멍하니 서 있다.
“아줌마. 서 있지 말고 빨리 좀 모아주세요. 내가 불을 한번 지펴볼 테니.”
불을 피운다는 상준의 말에 조금은 태도가 달라지는 것도 같다.
팔목만한 솔가지 두개를 한쪽 단면을 깎아 낸 다음 마찰열을 내어 불을 피워볼 작정이었다.
문지르고 비비고, 문지르고 비비고. 생지랄을 다했다.
‘시발, 왜 이렇게 안돼지?’
상준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참, 안되네.”
지켜보던 아줌마가 한마디 하한다.
듣는 각도에 따라서 격려 같기도 하다.
아줌마로 부르면서 좀 나아진 것 같다.
동생, 동생 하면서 아예 누나 같은 행세를 하려하더니.
‘성공’
죽다가 살아났다.
상준은 재빨리 찢은 헌옷 실오라기와 마른 풀을 가지고 불을 지폈다.
“아줌마. 한꺼번에 넣지말고 조금씩 아껴서 태우고, 틈나는 대로 나뭇가지들 주워 모으세요.”
“.....?”
“아줌마는 이제 불 당번이나 하세요.”
“.....?”
“불 가까이 있으면 추위도 면할거고 여러가지로 좋잖아요?”
“알았어.”
“불 꺼지면 아줌마가 책임지세요. 다시는 못피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