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대책없이 야한 여자(1)
* * *
‘무인도 인가?’
언제 다가왔는지 섬과 거리가 꾀 가까워졌다.
있는 힘을 다해 무인도를 향해 헤엄을 치다 바닥에 밟아 본다.
살짝 발가락이 땅바닥에 닿았다.
의식이 없는 여자를 안고 눈썹달의 달빛을 받아 섬으로 나갔다.
'아직 살아있나?'
땅바닥에 엎어 두고 등을 두드려 준다.
몇 분이 지났을까.
여자의 입에서 바닷물이 질질 흘러 나온다.
'살아 날까?'
코 끝에 손가락을 대어 보았다.
"으음."
아직도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손목을 잡아 봐도 맥박 뛰는 것도 감이 오질 않는다.
'늦은 거야?'
인공호흡부터 시켜보기로 했다.
두 손에 깍지를 끼고 가슴을 압박하였다.
한번, 두 번, 세번.
몇 번을 거듭하자 물을 토해 낸다.
숨을 들이켜 그녀의 입에 불어넣었다.
그리고 난 후 깊이 빨아들였다.
폐에 찼던 물이 입안으로 들어오며 물을 솥아 낸다.
그리고 다시 흉부를 압박하며 인공호흡을 계속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캑, 캐객."
기침을 하며 다시 물을 토해낸다.
순간 고개가 좌로 돌아간다.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대어보니 심장 뛰는 느낌이 전해 온다.
‘휴, 살았구나.’
정신을 차리고 담배를 찾았으나 담배가 있을리 만무하였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자신의 몸에는 팬티 한 장과 허리에 찬 대도만 걸려 있었다.
'그랬지.'
물에 뛰어 들 때 이미 모든 옷들을 벗어 던졌었다.
사람을 구해보겠다고 대도만 차고 손전등만 든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 행동이었다.
손전등을 켜서 다시 여자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쿨럭, 쿨럭"
이제야 여자의 얼굴이 제대로 들어온다.
옷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고 남은 것이라곤 팬티하나와 한쪽 끈이 떨어진 브라지어 뿐이었다.
목에 걸려 있는 것은 찢어진 티셔츠 조각뿐이었다.
'맛있겠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시간에 그 생각을?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아직도 완전하게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콜록거리는기침 소리가 아직도 폐에 물이 덜 빠진 것 같았다.
'한번더 해 줄까?'
호흡을 들이켜 그녀의 입에 대고 깊게 불어넣은 다음 길게 빨아당겼다.
연거푸 구강호흡을 시켜줬더니 다시 물을 쏟아 놓는다.
손전등을 끄고는 가만히 옆에서 지키보고 있었다.
작은 벌럭거리는 아랫배와 미세한 움직임이 정신이 조금씩 돌아 오는 것 같았다.
이제야 사방을 둘러 본다.
보이는 것들은 섬을 등진 자신의 위치와 앞쪽 바다만 보일 뿐이었다.
'일단 먹을 것을 찾아 봐야 할 것 같다.
물가에 나가 전등을 켜서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먹을 것이 보일이가 없다.
기껏해야 돌미역.
그 외엔 보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미역이라도 따야할 것 같다.
한참 후 다시 돌아왔을 땐 여자는 잔뜩 질린 얼굴로 공포에 젖어 있었다.
그를 보자 목부터 와락 껴안는다.
오들오들 떨고 있다.
"추워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허벅지에는 괴물에게 물린 것 같은 긴 상처가 여러개나 보였다.
팔뚝과 옆구리. 목덜미 까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깊이가 깊지 않는 상처였다.
“안심하세요. 여긴 안전한 곳입니다."
안심시키려고 말을 했지만 자신 역시 걱정이 된다.
희미한 눈썹 달에 비친 상준을 보며 그녀는 다행히 약간은 마음을 놓는가 싶었다.
“여긴 어디에요?”
“글쎄요.”
"문어 잡았던 아가씨 맞죠?"
문어를 낚았다며 건너편 배에서 소리치던 그 여자 같았다.
아가씬지 아줌만지는 알 수는 없었다.
"네."
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야.”
아가씨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
그제야 자신의 행색을 알게 된 것 같다.
두손으로 재빨리 가슴을 가렸으나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B컵은 충분히 될 것 같다.
모른 체 하며 돌아 앉아 방금 따온 미역을 돌에 얹어두고 대도 손잡이로 콩콩 찍고 있었다.
‘왜 맨날 여자들만 걸려들지?’
‘남자 같으면 힘이라도 될 텐데?'
'여복이 많은 탓일까?'
찍은 미역에서 끈적끈적한 진물이 흘러나왔다.
"이리 와 봐요."
"....?"
"팔좀 보자구요."
그녀의 팔을 당겨 상처난 부위에 끈적한 미역물을 발라주었다.
"다리도."
목덜미와 팔뚝, 허리까지.
잘 다져진 미역을 골고루 발라준다.
그래도 여자라고 부끄럽나 보다.
‘지금 부끄럼타고 있을 때냐고?’
두 손으로 허벅지를 가린다.
그녀의 손을 무심하게 걷어내고 허벅지 깊숙하게 미역 진물을 다 발라 주었다.
‘처다보긴 왜 자꾸 처다봐.'
그렇지 않아도 신호가 오는데.
자기는 또 왜 그러냐고.
이 마당에 그건 왜 서냐고?
'시발, 왜 이래?’
‘여기도 무인돈가?'
'웬 우리나라에 무인도가 이리 많지?’
"잠깐."
"엄머."
그녀를 덥석 안아 자갈밭을 벗어나 섬 기슭 마른 풀밭으로 옮겨 놓았다.
'어머도 아니고 엄머는 또 뭐야?'
조금 있으면 그곳까지 물이 차서 올라올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문어 많이 낚았어요?”
생뚱맞은 소리를 한다.
‘문어고 뭐고 도리어 잡히겠다.’
“아까 그것 뭐였죠?”
괴물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글쎄요. 어두워서.”
“건너편 요트에서 낚시한 분 맞죠?”
“네.”
이제야 제 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
“상처는 괜찮아요?”
“죽는 줄 알았어요. 시집도 못가보고.”
그새 친해졌다고 은근 처녀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만하니 다행입니다.”
“추워요.”
9월의 밤바람은 제법 쌀쌀하였다.
여긴 바다 어느 곳.
무인도가 틀림없다.
입은 옷도 그렇고 물까지 함북 뒤집어썼다.
밤이 깊어 갈수록 추울 수밖에 없다.
“조금만 참아 봐요. 날이 세면 좀 나아질 테니.”
상준은 다시 손전등을 켜 남은 미역을 가지고 나왔다.
그냥두면 물에 휘쓸려 갈 것 같았다.
그리고는 다시 상처 난 부위에 발라주었다.
배도 고팠다.
이런 상황이라면 상미나 뷰리가 있으면 먹고 살 일은 걱정 없을 텐데?
‘이 아가씨도 도움이 될까?’
“아, 배고파요.”
사람이 생리는 비슷한 것 같다.
자신이 막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했는데 금방 따라 지도 그런다.
‘나보고 어쩌라고?’
그러나 차마 그 말은 못했다.
“좀 있다 날이 밝아오면 먹을 것이 있을지 찾아봅시다.”
“아저씨는 결혼 했어요?”
지금 이 마당에 그건 또 생뚱맞게 왜 궁금한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건 왜 궁금한데?’
말은 못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나이는?”
아무래도 이 아가씨 자신 보다 어리다는 판단을 한 모양이었다.
“수물 일곱.”
“내가 누나네. 까마득히 어린 동생이네.”
“몇 살인데 그래요?”
“서른 다섯.”
“흡.”
모양은 꼭 고딩 같더니 나이는 많은가 보다.
“집은 어디세요?”
“통산.”
“동생은?”
그새 말이 바뀌어 동생이라 한다.
“중산”
"우리 가까이 않으면 덜 춥지 않을까?"
상준은 아무말 없이 캄캄한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머리엔 크라캔의 안전이 걱정이 되었다.
분명 괴물과 싸움을 하던 것은 크라캔 같았었다.
그의 부름에 가까이 왔다가 다른 괴물을보았을 것이다.
분명 크라탠이 도와준 것 같았다.
크라캔이 아니었으면 저 여자를 구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자신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었다.
크라캔을 불러 무인도에서 탈출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크라캔?"
"크라캔. 괜찮아? 여기 좀 와."
어느 새 그 여자는 상준의 옆에 찰싹 달라 붙어있었다.
"미안해. 너무 추워서."
그러는 여자가 이해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갈수록 더 기온이 내러가고 몸에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크라캔이었다.
몇번을 불렀으나 응답하지 않는 것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상준은 여자를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랜턴을 켜서 섬 기슭을 살펴보았다.
“목말라.”
‘나보고 그럼 어쩌라고. 내 목도 마른데. 내가 보호자냐고?’
상준은 자리에 일어서서 이리저리 랜턴을 비춰보고 있었다.
"볼일 보려고?"
".....?"
"나도 볼일 보고싶어."
'그런데 어쩌라고?'
말없이 상준은 주변을 살펴보다 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팔짱을 끼고 그의 뒤를 따라온다.
‘무서워서 저런가?’
여자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도 갑자기 소변을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동안 많이 참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럼. 여기서 볼일 보세요."
상준은 랜턴을 끈 다음 몇 발자국을 더 걸어간 후 볼 일을 본 다음 잠시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다시 불을 켰다.
'저게 뭐지?'
절벽 아래쪽에 바람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옅은 동굴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바람을 피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지켜보고 있던 여자는 상준이 부르자 얼른 다가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요. 추위는 좀 면할 수 있을 거예요."
여자는 먼저 굴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여자가 자리를 잡자 바닥에 깔려 있는 큰 돌을 골라 밖으로 던져 버리고 동굴 앞과 옆에 있는 풀과 나뭇잎 등을 깔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사실 이곳은 동굴은 아니었다.
동굴이라 하기엔 깊이가 너무 짧고, 구덩이라 부르기는 좀 깊은 곳이었다.
오랫동안 파도에 깎여 조금 들어간 구덩이일 뿐이었다.
"여기 들어와 앉아. 훨씬 덜 추워."
상준도 추위를 면해보려 안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캄캄한 굴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있기가 거북스러웠는지 얼마 가지 않아 여자가 먼저 자신의 신상을 털어 놓았다.
그 여자는 철없는 어린 시절에 연애를 하여 나이 스무 살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언제는 시집도 못가고 죽을 뻔 했다더니. 그 사이 자기가 한 말을 까먹었나 싶었다.
당시 그들은 세상 물정을 너무나 몰랐고 살아갈 능력이 없어 고생만 하다가 결혼 삼년 째에 헤어졌다고 하였다.
"그럼?"
지금은 친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아버지 낚시에 따라 온 것이 이런 화를 당한 것이라고 했다.
옛날부터 자신은 무슨 일을 해도 되는 것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삶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 틀림 없어 보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참 딱한 여자 같았다.
"동생이라고 불러도 되나? 동생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야?"
아예, 대놓고 누나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뭐 그냥. 낚시도 하고."
"음. 요즘 취직도 잘안되고, 낚시하는 사람들 중에 실직한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
여자는 상준을 보며 딱하다는 말투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는 내내 크라캔이 나타나 주길 기다리고 있었으나 소식이 없었다.
크라캔만 나타난다면 이곳에서 벗어나는 건 일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추위가 가시자 졸음이 몰려 왔다.
여자도 어느새 자신의 팔을 베고 잠이든 것 같았다.
잠이든 여자는 하루 일에 지쳤는지 곤혹스럽게 보였다.
상준도 자리를 비집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 든 것 같았다.
혜영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자신의 품안에 파고들었다.
'꿈인가?'
"대표님. 조심하라 했잖아요?"
“혜영씨가 어떻게?”
“저 추워요. 좀 안아주세요.”
혜영은 상준의 가슴을 만지며 자신의 입술을 상준에게 내밀었다.
"혜영씨, 이러면?"
자신의 입술로 상준의 입을 막으며 몸을 끌어당긴다.
자신의 물건이 솟구쳐 올랐다.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자신의 중심이 주체할 수 없을 뿔룩하게 솟아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