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에 미친 총각-95화 (95/225)

〈 95화 〉 인어도 악어 양태(4)

* * *

상준은 낚시채비를 하여 바다로 던져 넣었다.

담배를 꺼내 피우려다 주머니에 넣어두고 생수병을 찾아 한 모금 마셨다. 주변을 살펴보니 특별한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염려되던 컨디션도 많이 회복된 것 같고 머리도 좀 맑아진 것 같다. 자신의 건강에 회복의 기미가 보이자 다슬의 생각이 떠올라 문자를 보내려다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혹시나 다슬이 잠이 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낚시꾼만이 가지는 특유의 인내심을 즐기고 있는 데, 갯바위 위로 조그만 돌게 한마리가 꼬물꼬물 기어오르고 있었다.

순간 상준은 꾼들만이 가지는 그만의 예감으로 조심스럽게 돌게를 덮쳤다.

'그래, 오늘은 네가 날 위해 희생 좀 해야겠다.'

상준은 다시 낚시를 건져 올려 돌게를 미끼로 삼아 있는 힘을 다해 멀리 집어 던졌다. 적게 가도 50m는 족히 될 것 같다. 그리고 참시 후 상준의 눈에 보랏빛 고운 섬광이 물속에서 꿈틀거렸다. 분명한 이것은 원석을 품은 변종어종이 분명하였다. 이런 것이 목격될 때는 괜스레 설렌다.

'반갑다. 보라야.'

상준은 레이저 눈빛을 발산하며 바닥을 향해 주시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놈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꼬물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뮈야. 이 놈은.'

보라빛 섬광은 상준의 바램과는 무관하게 계속 꾸물대기만 하고 행동의 변화를 주지 않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상준은 던져둔 낚싯대를 낚시꾼의 감각으로 가까이 접근시켜 잡아당겼다.

"트덕."

갑자기 낚싯대에 뭔가가 걸린듯 세차게 물속으로 차고 들어갔다.

'이번엔 또 뭐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엉뚱한 놈이 걸려 속을 썩인다. 하는 수 없이 걸린 놈부터 해결해야 할 판이다. 비록 엉뚱한 놈이기는 하나 왼팔에 전해지는 감각은 예사롭지 않다.

상준은 있는 힘을 다해 끌어당겨 릴을 감고, 또 당기고 또 감고 당기기를 반복한 결과 놈의 정체가 물 밖으로 드러났다.

'이거 농어잖아.'

그것도 입에 제대로 걸린것이 아니라 꼬리에 걸려 올라 온 것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좋았을까?

"젠장."

이것이 바로 어부지리라 한다. 평소 같으면 매우 좋아할 그런 타이밍이다. 허나 지금은 보라빛 섬광덩이가 더 신경이 쓰일 판이다. 잽싸게 농어를 건져 통에 담아 두고 새 미끼를 달려하는데 조금 전 돌게는 이미 없어졌다. 상준은 갯바위 아래 보라색 섬광을 확인해 보았으나 이미 보라는 자취를 감춘 뒤였다.

상준은 낚싯대를 바위에 걸쳐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최근에 와서 괴물들의 출현이 좀 늘어난 것 같다. 그저께는 강화도 해역에서 프로 괴물 낚시꾼 협회 최준석 회원이 괴물아귀를 잡았다는 소식도 있었고 지난 달 배포한 협회 보고서에서 희귀 괴물을 잡았다는 보고도 있었다.

상준은 주변 갯바위와 물에 잠긴 작은 돌들을 하나하나 뒤져 결국 돌게 몇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다시 낚시에 작은 돌게를 꿰어 바다에 던져두었다.

본능적으로 담배를 꺼내려다 다시 호주머니에 넣어 두고 생수 몇 모금을 들이키고 나니 담배생각이 좀 줄어들었다.

'조금 전 그 보라 덩이는 어디로 갔지?'

잡아 둔 농어를 다시 확인해 보니 엄청 큰 놈은 틀림없었다. 평소라면 낚시꾼들에게 대 환영을 받을 만한 놈이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때를 잘못 타고난 것 같다. 죽는 것도 때와 장소를 잘 택해야만 영웅도 될 수 있고, 역적도 될 수 있다.

그때 다시 상준의 눈에 보라색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음."

상준은 가는 신음을 토해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 놈에겐 레이저 눈빛도 먹혀들지 않고 카리스마가 깃든 말도 소용없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때였다.

드디어 놈이 달아둔 미끼를 살짝 물었다.

"그럼 그렇지.'

가볍게 챔질을 한 후 줄을 당겨보았다. 반항도 거부도 없이 그냥 묵직한 느낌만 팔에 전해진다. 천천히 릴을 감으며 가슴에 전해오는 묘한 스릴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쾌감. 바로 그것이었다. 이 쾌감을 느껴보려 수많은 태공들이 밤을 지새운다. 겨우 끌어올린 상준의 앞에 엄청난 크기의 대게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대형 대게. 야호!"

상준은 혼자 흥분에 빠져들었다.

'내게 이런 어복이 찾아오다니.'

상준이 흥분한 이유는 바로 이놈이 일반 대게라 해도 흥분 할 판에 보물까지 지닌 보물 대게가 아닌가.

다리 하나만 해도 온 식구가 배가 부를 것 같은 맛있는 대게. 자신이 얼마나 대게를 좋아하는가?

한때 상준은 대게 한번 실컷 먹어 보는게 소원아닌 소원일 때가 있었다.

신속하게 끈으로 양쪽 다리를 몇개씩 겹쳐 묶어 겨우 요트에 실을 수가 있었다.

이정도면 오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아직도 해가 조금 남아 있었다. 다시 작은 돌게를 미끼로 달아 바다에 던져두었다.

그리고 난 뒤 가칭 인어도를 살펴보았다.

한 바퀴를 다 돌아봐도 둘레가 불과 얼마되지 않았다. 500m는 될까? 섬의 높이도 불과 해발 40m 정도.

섬 주변 대부분은 바위로 된 절벽이었고 상준이 오르고 있는 곳이 그래도 비교적 완만한 암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암반 한쪽 옆에는 습한 구덩이가 보이고 구덩이 주변에는 푸른 이끼가 아래쪽으로 쭉 뻗어있었다.

‘잘하면 저곳에서 샘물을 얻겠어.’

낭떠러지 아래는 크고 작은 갯바위로 둘러싸여 있고 절벽 곳곳에는 크고 작은 수목들이 칡넝쿨처럼 매달려 있었다.

정상에 올라보니 펀펀한 갈대밭이 족이 200여 평은 충분할 것 같다. 갈대밭 곳곳에 갈참나무와, 소나무가 뜨문뜨문 돋아나 있어 고적한 풍경은 면해주고 있었다.

저 멀리 육지 쪽에는 어슴푸레 해자도가 혼자 떠 있고 중산 신항의 모습도 감으로 알아볼 정도였다.

다시 요트에 돌아왔을 땐 서산에 해가 걸려 있었다. 생수병에 남아있는 물을 마시며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까마득히 멀리 해자도의 모습이 점같이 작아 보이고 중산의 모습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오는 곳. 분 명 이 섬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섬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며 목격한 사람들도 한, 두명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냥 그곳에 있는 섬. 그냥 무인도로 남아있는 섬으로 소외됐을 것이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곳으로....

계류장에 도착 했을 때는 저녁 일곱시가 될 무렵이었다.

상준은 칼을 꺼내 대게의 다리를 하나하나 잘랐다. 상미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미 관리인은 퇴근한 후였다. 오토바이를 몰아 해안로를 따라 계류장 까지 나오라고 하고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형 두 분과 다슬이 어머니, 소현이 어머니, 횟집 사장님까지 오시라고 하였다. 생각나는 대로 요트 계류장으로 뭔가를 들고 오시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게 다리 하나씩을 선물하였다. 대게의 다리를 보자 그들은 모두 기겁을 하였다. 하나만 푹 삶아도 온 가족이 모여 실컷 먹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오토바이에 실어 정원에 있는 정자로 옮겼다. 일부는 대형 냉장고에 보관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정자에 두게 했다. 이제 남은 건 게딱지 순위다. 대게 등이 바닥에 닿게 하고 배 부분이 위로 오게 했다. 그리고 조심조심 오토바이에 묶었다. 정자 옆 가마솥에서 삶을 예정이었다.

“상미야. 우리 대게 파티하자.”

“지금?”

“너 초대하고 싶은 사람 다 불러라.”

상미의 얼굴이 화색이 돈다. 보나마나 민수부터 부르겠지.

“민수 오빠?”

“우리 정원으로 좀 와.”

“그냥 묻지 말고 내러와.”

그리고 상미는 집 가까이 사는 사람, 기숙사에 있는 사람 모두를 불렀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 상준은 대게의 배를 열십자로 잘라 탁구공 크기의 보라색 원석 10여개를 모두 골라내었다.

“아저씨,”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뷰리가 상준을 보자마자 아저씨라 부른다.

뷰리의 말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상준의 표정과 뷰리의 얼굴을 보며 입을 벌린다. 순간 뷰리가 실수한 걸 깨닫고 얼른 말을 바꾼다.

“아저씨, 아니였네. 총무부장님?”

뷰리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신 부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저씨 닮았나?”

그 소리를 듣고 모두 한바탕 소리나게 웃고는 대게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뼘씩 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다음은 대게 게장.

“음, 대게 향.”

원래 대게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이 대게 게장이다. 그런데 이놈은 거짓말을 좀 보태면 열배는 더 맛이 났다.

대게장의 량만 해도 대형 가마솥에 반 솥은 넘는다. 일부 참석자들은 밥을 찾는다. 게장은 역시 밥에 비벼먹는 것이 맛있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상미는 준비해 둔 오빠의 저녁밥까지 모두 챙겨 나와서는 게장 한 그릇에 밥을 놓아준다. 모두 다 받는다.

“대게 파티.”

그렇게 하고도 많이 남았다. 상준은 얼른 남은 대게 장을 양동이에 퍼 담아 동네를 한 바퀴 돌아왔다. 조금 전 대게 다리를 보내줬던 바로 그 집들이었다. 집집마다 게장을 한 그릇씩 갈라주고 집으로 돌아오는데도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샤워를 하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25년만에 찾아온 대형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뉴스에 뜨는 화면에서는 길바닥에 자동차가 뒤집히는 장면들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고 있었다.

그때 상준의 폰에 벨이 울렸다.

“오빠.”

“응. 다슬아. 좀 어때?”

“오빠는 어디야?”

“집.”

“대게 파티 했다며?”

“응, 넌 좀 어떠냐고?”

다슬의 목소리는 아직 완쾌된 건 아닌 것 같았다.

“좀 괜찮아.”

“대형 대게라며?”

“그래. 좀 크더라.”

“나도 먹고 싶은데.”

상미는 가족들이 다시 먹을 수 있을 수 있도록 보관해 두었고 게장은 별도 냉동시켜 두었다. 상준의 생각도 다슬이와 아주머니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량은 될 것 같았다.

“그건 걱정마. 너 먹을 만큼은 뒀어,”

다슬은 내일 하루 더 병가를 내겠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에 대고 뽀뽀라도 하고 싶었으나 상미가 옆에 있어서 더는 하지 못했다.

오늘 획득한 보랏빛 원석을 깨끗하게 씻은 다음 하나 하나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 중 한 개에는 나비 같은 무늬가 박혀 있었다.

이런 원석에 생물의 몸체가 박혀있거나 곤충이나 벌레가 들어있다면 그 값이 생각보다 비싸다고 들었다.

그 놈은 따로 골라 보관해 두었다.

내일은 다시 소미도 근해로 나가 도전할 계획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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