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제주 변종 돗돔(1)
* * *
“이건 또 뭐지?”
상준은 부르르 떨리는 팔을 양 옆구리에 붙이고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수면 가까이 올라올수록 희미한 연두빛 섬광이 뚜렷해 지면서 놈의 행동은 거칠어져 갔다.
‘뭐지. 이런 빛을 내는 놈은?’
상준은 손아귀의 힘이 다 빠져나가는 걸 느끼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이놈의 무게는 당기는 힘이 아니었다.
비록 물에 잠겨있긴 해도 무척 무겁게 여겨졌다.
처음엔 버티던 힘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딸려 올라오는 놈의 체중 같았다.
“선장님. 이놈은 밧줄이 필요합니다.”
선장은 상준의 말을 듣고 손가락 굵기의 배를 묶는 밧줄을 가지고 나왔다.
마지막 발악을 하며 배의 옆면에 고개를 치켜든다.
“돗돔이다."
모두 놀라 자빠질 것 같다.
엄청나게 큰 입에 사람의 머리만한 대가리가 물 위로 치민 것이다.
선장은 밧줄을 팽개치고 다시 갈고리로 돗돔의 머리를 내리 찍었다.
그 틈을 이용하여 상준은 밧줄을 집어 들고 놈의 아가미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배의 고리에 일단 묶었다.
“야호.”
상준의 입에선 안하던 환호가 터져나왔다.
“명호씨, 촬영하고 있지?”
“네, 대표님. 잘 찍고 있습니다.”
선장과 학생, 선혜영씨 할것 없이 놀란 표정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돗돔 맞아요?”
상준은 선장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사실 선장님도 돗돔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준의 생각으론 돗돔하고는 어딘가 좀 차이가 나야한다.
이놈에게는 푸른 섬광이 비쳤기 때문이었다.
한 숨을 돌린뒤 모두가 달라붙어 놈을 끌어올렸다.
‘어디가 다르지. 변형된 돗돔은 맞는 것 같은데?’
상준은 휴대폰을 꺼내 돗돔 이미지를 검색해 봤다.
여러 개의 이미지가 올라와 있었으나 전체적인 모양이 보이지 않았다.
입만 크게 벌린 괴물같은 사진들만 찾을 수 있었다.
자세히 봐도 방금 잡은 놈과 구별이 잘 되지 않았다.
갈고리로 맞고도 놈은 아직도 퍼덕거리고 있었다.
“아저씨, 진짜 짱이 네요.”
얘는 또 짱이란다.
“돗돔의 눈이 빨간네요.”
학생의 말을 듣고 놈의 눈을 보니 진짜 빨갛다.
상준은 다시 검색을 했다.
‘음, 눈 색깔이 다르네.’
즉석에서 해체하려다 고기도 쓸겸 그냥 싣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혜영이 언제 끓였는지 믹스커피를 타서 상준에게 내 밀었다.
혜영의 눈빛은 전과 다른 것 같다.
눈빛이 달라진 건 혜영이 뿐만은 아닐 것이다.
선장도 그렇고, 학생도 그렇고, 명호조차도 달라졌다.
그런데도 상준은 뭔가가 좀 다른 느낌이었다.
“대표님, 커피.”
“고마워요.”
그리고 혜영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커피를 돌렸다.
“음, 죽여주네.”
이때 마시는 커피 맛은 세상 어느것 보다 비교할순 없다.
믹스면 어떻고 원두면 어때. 진한 커피 향이 죽여주는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낚시를 할 맛을 잃어버린 것 같다.
낚시를 던져두고 아예 대놓고 담배까지 피운다.
갑판에 앉아 그냥 바다만 바라보고 앉았다.
선혜영도 이제 김이 빠졌는지 상준의 옆에 앉아 구경만 한다.
제대로 낚시하는 사람은 학생 밖에 없다.
한참 동안을 카톡을 하랴, 사진을 찍으랴, 바쁘게 설치더니 이제 다시 낚시에 전념한다.
대단한 집념이다.
잠시 후에 학생은 참돔 한마리를 건져올렸다.
보통 때 같으면 신이나야 할 텐데 별로 얼굴에 내색하지 않는다.
상준은 결심했다.
약속 시간은 아직 절반도 안됐지만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선장님, 이제 돌아가시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됐습니다. 우리 목적은 달성됐습니다.”
“그러면 나야 고맙죠.”
결국 그들은 위미항으로 돌아왔다.
“선장님, 어디 아는 횟집 없어요?”
“횟집이야 다 알죠. 근데 뭘 하려고?”
“돗돔 먹어야죠. 이것 해체해서 조금만 챙겨가고 갈라 먹어야죠. 선장님 식구 다 부르시고.”
“그럼. 내 친구가 하는 횟집으로 갑시다.”
결국 일행은 선장님이 잘 아는 친구 횟집으로 가게 되었다.
프로 괴물 낚시꾼 연상준이란 말을 들은 횟집 사장님도 흔쾌히 허락하셨다.
사장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건 횟집에 걸어둘 사진 촬영이었다.
돗돔 사진과 연상준의 사진.
그것도 사장님과 함께 찍은 사진.
절차가 끝나자 본격적인 해체 작업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생선을 해체하듯 목 부위에서 꼬리까지 절반의 살을 잘라내었다.
잘라낸 한쪽 면 고기 덩어리 무게가 25Kg이었다.
두부의 약 두 배 정도로 세 덩이를 잘라 선혜영에게 챙겨두라 일렀다.
“명호씨, 민박집 사장님도 오시라고 전화해.”
그리고 또 한 덩이는 선장님께 건네주고, 민박집 사장님 것도 챙겨 두었다.
나머지 부위도 잘라 내었다.
횟집 사장님께 엄청난 양을 별도 챙겨드리고 나머지 것들은 모두 갈라 먹기로 하였다.
그리고 상준은 돗돔의 내장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저가 찾는 것은 이것입니다.”
상준의 손에는 붉은 빛 광채를 띤 연유구슬 세개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보석?”
“네, 우주에서 온 보석.”
“히야. 멋지네. 이것 값도 비싸겠네.”
“남은 고기는 모두 먹을 겁니다.”
“이걸 다?”
“네, 실컷 드십시오.”
돗돔 고기는 육류와 비슷한 식감을 주었고 가장 맛있는 부위는 양쪽 볼살과 돗돔 애(간)였다.
상준은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처음 먹어보는 돗돔 맛이다.
뜻하지 않게고 귀미항 횟집에서 때아닌 잔치가 열렸고 상준 일행은 그곳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아저씨, 정말 좋았어요.”
선장님의 딸이 돌아오는 상준을 보며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격려를 해 주었다.
“너도 짱이더라.”
상준은 학생이 잘하던 말이 생각나 엄지척을 하며 짱이라고 불러주었다.
그 학생도 어쩌면 프로 낚시꾼의 자질을 타고난 것 같았다.
“대표님, 이제 우리 뭐해요?”
혜영이 물었다.
“오늘 주말 밤이고 내일은 일요일이잖아. 뭘 할까?”
“여기까지 왔으니 제주도 한번 둘러봐요.”
“그렇게 하자. 본전은 뽑아야지.”
“서귀포 시장에 가요.”
“피곤하지 않아?”
“밤 낚시하려 했는데 일찍 마쳤으니.”
“그럼, 명호씨와 다녀와.”
상준의 말에 명호는 금방 힘이 쏟는지 혜영에게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대표님, 같이 가요.”
“아니, 난 피곤해.”
결국 명호와 혜영은 시장구경을 떠났다.
떠나는 내내 혜영은 상준을 데려가지 못해 아쉬워했다.
그들이 떠난 후 상준은 상미에게 전화를 했다.
“너 언제 부산 다녀올 일 없어?”
“왜, 오빠.”
“내가 돗돔 한마리 잡았거든.”
“돗돔. 돗돔이 어떤 고기더라?”
“어머니께 좀 갖다드리려고.”
“나, 요즘 바쁜데. 데이트도 해야하고.”
“데이트?”
“오빠, 그러지말고 공항에 내려 엄마께 다녀와. 잠시면 되잖아. 공항에서 집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나, 일행이 있잖아. 그래, 알았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가스네. 언제는 엄마보고 싶어 죽겠다더니.ㅋㅋ.'
잠시 후 상미가 다시 전화를 했다.
“오빠, 유명한 제주 돗돔 그거 잡았어?”
“응.”
“그럼, 내일 몇시 비행기야? 내 공항에 갈게. 도착시간 알려줘.”
“그래.”
기리고 얼마 후 서귀포 시장 구경을 갔던 명호와 헤영씨가 돌아왔다.
손에는 뭣인가 잔뜩 들려있었다.
“이게 서귀포 별미래요.”
“뭔데?”
“오메기 떡이라 하던가?”
그리고 혜영은 치킨을 꺼내 펼치면서 캔맥주를 하나씩 갈라주었다.
“대표님, 같이 갔음 좋았을텐데.”
“아냐, 난 좀 쉬었어.”
“명호씨, 우리 김해공항 도착시간이 몇시라 했지?”
“오후 6시요.”
상준은 맥주를 한모금 마시면서 상미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에 모든 짐을 챙겨서 민박집에서 나왔다.
간단하게 제주여행을 하고난 후 바로 렌트카를 돌려주고 바로 공항에 나가기로 했다.
제일 먼저 간 곳이 민속촌이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혜영은 아예 상준의 팔에 팔장을 끼고 연인처럼 행세하려 하고 있었다.
혜영이 그럴 때마다 명호 보기에 늘 거북스러웠다.
어떻게 보면 장난기 같고 어떻게 보면 진심인 것 같다.
“명호는 여기 처음이야?”
섭지코지를 향한 언덕길을 걸으면서 상준이 물었다.
“전 대학 다닐때 친구들과 한번오고 이번이 두번쨉니다.”
“혜영씨는?”
찰싹 붙어있는 혜영을 보며 상준이 물었다.
“와, 대표님. 저 물빛 좀 봐요.”
[올인] 촬영지역으로 가는 바다절벽 위를 걸으며 혜영이 바다를 가리켰다.
혜영의 말처럼 비취빛 바다 물색이 곱기가 이를데가 없었다.
“우리 여기 기념 촬영하고 가요.”
“응, 내가 찍어줄 테니 둘이 같이 서봐.”
상준은 휴대폰을 들고 두사람을 세우려 하자 혜영은 지나가는 관광객을 불러 세워 기어이 같이 찍자고 졸라대었다.
끝까지 버티려니 더 어색하고 그냥하자는 대로 하자니 명호 보기에도 민망하였다.
성산일출봉을 둘러보고 난뒤 휴식시간을 가진후 식사를 하고 렌트카를 반납하였다.
렌트 회사에서는 미니버스를 제공하여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다.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상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상준은 일행을 돌려보내면서 돗돔고기 봉투를 명호와 혜영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봉투 하나는 상미의 차에 싫었다.
그때 명호는 고기통을 열어 참돔 한마리와 감성돔 한마리를 비닐봉투에 담아 상미의 차에 실어주었다.
"대표님. 잘 다녀오십시오."
"회사에서 뵐게요."
두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어머니 댁으로 향했다.
일요일은 어머니가 쉬는 날이시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할 무렵 상미는 전화를 하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고?"
어머니는 뜻밖의 두남매가 함께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황이 없어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너거 둘이 갑자기 웬일이고?"
“엄마보고 싶어서.”
"왜 무슨 일 있나?"
"오빠가 엄마 보고 싶다해서."
"야는 왜 또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
"어머니 식사하셨어요?"
"아니, 나 혼자 먹을 꺼 천천히 먹을라꼬."
상준은 주방으로 들어가 밥통을 열어보니 밥은 충분해 보였고 돗돔 고기를 절반으로 잘라 절반은 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해 노릇노릇 굽고, 나머지 절반은 얇게 썰어 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감성돔과 참돔을 장만하여 참돔은 냉동실에 넣어두고 감성돔은 역시 회를 쳤다.
그리고 간장에 고추냉이를 넣은 소스를 만들고, 참기름에 소금을 썩은 참기름 소스를 만들어 두 가지를 함께 식탁위에 올렸다.
평소 어머니가 드시던 기본 반찬도 함께 꺼내 식탁위에 얹었다.
“이게 무슨 고기고?”
"이건 저가 잡은 제주 돗돔입니다. 한번 맛이나 보세요."
"엄마, 오빠가 효자인가 봐."
"내가 뭐, 네가 효녀지."
"고맙다. 너희 둘다 효자, 효녀다."
상준의 어머니는 아무것도 아닌걸 가지고 콧등이 찡하는 걸 느끼게 되었다.
돗돔 스테이크는 생각보다 맛이 쫄깃하고 고소하였다.
식감이 좋아 감성돔과 더불어 어머니와 상미는 맛있게 먹었다.
“참 귀한 음식이다.”
“그렇죠. 어머니.”
"내가 아들, 딸을 잘둬서 이런 호강을 하는구나."
그날 밤 상준은 밤늦게까지 어머니와 함께 사업 이야기와 낚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상미도 틈틈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대화의 소재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너, 김부장과 데이트 하는 거 맞지?"
"김 부장 누구?"
"어머니, 얘가 민수하고 데이트 하나봐요."
"민수라니. 너 친구?"
"네."
"어떻게 그렇게 됐어?"
“엄마, 다 오빠 때문이야. 오빠가 민수 오빠를 불러들였거든."
"무슨 말이고?"
“어머니, 민수가 우리 회사일 도와주고 있어요. 아쿠아리움 관장을 맡았거든요."
“잘 했다. 민수면 아마 잘해내겠지.”
“엄마, 오빠가 날 민수 오빠께 팔아넘겼어.”
“내가 언제?”
“민수 정도만 되면야. 무슨 걱정할라꼬.”
어머니께서는 다른 말씀은 하지않으셔도 민수를 상당히 믿고 계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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