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에 미친 총각-89화 (89/225)

〈 89화 〉 난태생 바다인간(2)

* * *

‘그래서 내게 죽순섬에 가고 싶다고 핑계를 댔구나.’

‘가엾은 자슥, 혼자 얼마나 고민이 되었으면 몸이 저렇게나 약해 졌을까?’

상준은 뷰리를 생각하니 무척 안스러웠다.

“육지에서 살고 싶어.”

그녀가 한 말이었다.

인간들의 문화에 적응을 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 왔는가.

그리고 또 책을 읽고, 휴대폰을 보고 공부를 하고, 검정고시까지 합격하지 않았는가?

‘현대 의학이면 해결할 수 없을까?’

정오가 다 되어 갈 무렵에 뷰리가 잠에서 깨어났다.

“우리 아침 겸 점심 먹자.”

뷰리는 아무말도 없이 식사를 하였다. 하룻밤 새 그녀의 얼굴은 더 수척해 보였다.

“저도 다른 인간처럼 사랑도 하고 가정도 갖고 싶어요.”

뷰리는 상준을 보며 눈물을 지으며 한 말이었다.

“정말 죽순섬에 갈거야?”

상준을 처다 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좌우로 흔들었다.

“그럼 지금 돌아갈까?”

역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럼?”

“아저씨 저 때문에 시간만 낭비하셨잖아요. 여기까지 왔으니 낚시나 하세요.”

“그럼 넌?”

“전 낚시 구경하며 좀더 생각해 볼게요.”

“음, 내가 무슨말을 해야 위로가 될까?”

“애쓰지 말고, 걱정도 마세요. 전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바다 괴물의 종류에 불과해요”

“그렇지 않아.”

“난생 멍크나 콜로서스와 다를게 뭐가 있어요. 겉모습만 사람들과 비슷한 것 외에는.”

“그래도 넌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상준은 이런 이야기를 해봐야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아저씨가 절 기르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인간들은 예쁘면 강아지도 기르고 고양이도 기르잖아요.”

“뷰리야.”

“전 그와 같다고 생각해요.”

“....?”

“바다 물고기도 기르고 그러잖아요?”

상준은 뷰리의 마음이 다시 평상으로 돌아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낚싯대를 꺼내 바다에 던져두었다.

그의 옆에서 멍하니 앉아 지켜만 보던 뷰리가 다시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는 잠수를 하여 물속으로 사라졌다.

‘저렇게도 예쁘고 착한 아이가.’

한참을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었다.

'시간으로 봐서는 벌써 올 시간인데?'

상준은 갑갑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뷰리야!”

바다를 향해 불러 보았으나 아무런 반응이 오지않았다.

“뷰리야.”

상준은 뷰리를 찾아보려 옷을 벗어둔 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요트 주변을 몇 번을 돌아 봤으나 뷰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다리도 풀리고 기진맥진 하였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있었지만 뷰리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뷰리야.”

상준은 목청 끗 뷰리를 불렀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요트를 붙들고 사방을 두리 번 거리며 혹시라도 뷰리가 되돌아 올까하고 기다려 봤지만 그녀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상준은 이제 모든걸 포기하고 요트에 오르려 발을 올려놓았다.

그때였다.

“아저씨!”

언제왔는지 두 팔을 뻗어 그의 목에 매달렸다.

“뷰리야.”

상준은 너무나 반가워 뷰리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그녀를 안고 요트위로 올라왔다.

순간 상준은 움찔하였다. 자신이 입은 건 팬티 뿐이었고 그녀의 몸은 전라였기 때문이었다.

뷰리를 밀치고 신속하게 옷을 챙겨입고 뷰리에게도 옷을 걸쳐주었다.

“아저씨는 나를 사람으로 보긴 하네.”

“그래, 넌 엄연히 사람이니까. 빨리 옷 챙겨입어.”

뷰리는 바다에서 마음 끗 유영하며 자신의 일들을 정리하였다. 어머니를 일찍 떠나보내고 망망대해에서 혼자 살아왔으니 자신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나이가 들어 성장하면서도 최근에 와서야 자신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했고 수족관에서 생활하다 보니 난생어종과 난태생 어종이 다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자신도 결국 1년에 한번 난생한다는 사실을.

멍크도 그랬다. 그러고 보니 콜로서스도 그랬다.

얼마나 많은 충격을 받았을까?

“뷰리야. 왜 그렇게 멀리갔어. 어디 다녀 온거야?”

“아저씨,”

“그래, 뷰리야.”

“전 물속을 한참동안 유영하면서 돌아오지 않으려고도 생각해 봤어요.”

“뷰리야.”

“그런데 자꾸 아저씨 얼굴이 눈앞에 선하고 상미언니 얼굴과 부장님 모습이 떠올랐어요. 이 분들을 떠나 살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 잘 생각했다.‘

“나도 너 없이는 못살것 같다.”

결국 뷰리는 혼자만의 비밀로 고민을 해오다 상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되었고 고민과 갈등으로 괴로워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며 앓고 있다가 상준에게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고 자신의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이번에 또 알게 된 것은 이미 자신은 인간 세상 깊숙하게 들어와 버렸다는 것과 혼자 살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아저씨, 전 언제든지 아저씨가 원하시면 어디든 달려 갈 수 있어요."

"고맙다. 뷰리야.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아저씨, 저도 심해로 들어가면 아저씨가 원하는 것들을 구할 수가 수 있어요. 가끔씩은 저와 먼 바다로 나와 바다인간으로서 체력을 얻도록 도와주세요."

"알겠어. 그 정도는 내가 언제든지 해 줄 수 있지."

"그럼 이제 낚시에 집중해 보세요."

상준은 미끼를 바꾸어 달고 바다에 던져 넣었다.

오늘도 뭔가가 올라올 것 같다.

처음에는 가자미를 건져 올렸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찌가 물속으로 처박혀 딸려 들어갔다. 재빨리 챔질을 한 후 릴을 감아 올렸다. 당겨지는 손맛이 장난이 아니었다.

제법 큰 감성돔 한 마리가 미끼를 물고 따라 올라왔다. 잡은 고기를 고기통에 넣으려다 도마를 꺼내 와서 회를 쳤다. 비닐을 모두 제거한 다음 머리를 잡고 목뼈에 칼날이 부딪칠 때 까지 지그시 눌렀다. 그리고는 꼬리 방향으로 등뼈를 따라 살살 밀고 내러갔다 꼬리 목에 칼이 닿았을 때 살집을 도려내었다. 다시 고기를 뒤집어 놓고 꼭 같은 방법으로 도려내었다.

손바닥 보다 큰 넓적한 감성돔 살점 두 바닥을 도려낸 다음 껍질을 벗겨내고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는 다시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한 후 도톰한 모양으로 회를 썰었다.

식감이 좋으려면 도톰한 정도로 듬뿍, 듬뿍 썰어야 제 맛이 난다. 상준은 다시 선실에 들어가 초장과 된장을 적당하게 혼합하여 산초가루를 들고 나왔다. 다른 손에는 캔맥주가 들려 있었다.

상준은 캔을 따서 뷰리에게 건네주고 자신도 따서 한모금 마셨다.

시원한 맛이 온 몸을 번져 나갔다. 뷰리도 상준을 따라 캔을 들이켰다.

“자, 우리 감성돔 회맛 한번 보자.”

상준은 회를 집어 초장에 살짝 찍은 다음에 뷰리의 입에 넣어주었다.

“맛이 어때?”

뷰리는 눈을 지긋이 감으면서 감성돔 회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상준도 역시 맥주와 회를 교대로 먹으면서 제철 감성돔 회에 빠져들었다. 급기야 뷰리도 젓가락을 들고 회를 먹느라 집중하였다. 자신을 고민을 점점 잊어 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의 얼굴도 많이 밝아졌다. 어쩌면 그녀도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세월이 가도 잊을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그때였다.”

상준의 눈에 희미한 섬광이 햇살을 받은 수면에서 어른거렸다.

“뷰리야. 너 혹시 저기 저 연두색 섬광이 보여?”

“그것도 안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대부분의 인간들은 저걸 못봐.”

“설마.”

저게 바로 원석을 삼킨 물고기야. 보석을 지닌 물고기란 말이다.

“그럼 저것만 잡으면 되는 것이네요?”

“그런 셈이지.”

뷰리는 다시 옷을 벗어던지고 속옷 차림으로 물에 뛰어 들었다. 잠시 후에 뷰리의 손에는 40Cm급 쏨뱅이 한 마리를 건져 나왔다. 이 놈의 쏨뱅이도 원석을 삼킨지가 오래된 놈인지 양 날개가 두 배 정도가 되었고 꼬리 날개가 작은 부채만 하였다.

뷰리의 솜씨는 “세상에 이런 일이”란 TV 프로에서 본 민물어신 같았다. 맨 손으로 물고기를 끝도 없이 잡아내는 사람. 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네가 바로 어신이네.”

“놀라셨어요?”

“응.”

“언제든지 저만 데려오면 저런것 정도는 문제없어요.”

상준은 방금 뷰리의 솜씨를 보고는 묘한 욕심이 발동하였다. 인간의 욕심이 이런 것일까?

뷰리가 잡아온 쏨뱅이의 배를 갈라 작은 보석원석 하나를 꺼내 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바로 모든 사람들이 노리는 보석 원석이야. 이것 하나가 제법 값이 나가는 것이거든."

"이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을 거예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너도 너의 생활이 있잖아."

"그럼, 아저씨. 우리 서로 딜을 해요."

"어떻게?"

뷰리는 한참동안 가만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아저씨께 필요한 것을 찾아드리고, 아저씨는 저에게 뷰리가 살 수 있게 활력을 주시고."

"음."

"사실 전 아저씨께 바라는 건 없어요. 아저씨는 저의 생명의 은인이시고 저가 살아오면서 처음 느끼는 행복을 주셨잖아요. 그것이면 됐지 뭘 더 기대하겠어요."

상준도 잠시 망설였다. 이런 아이를 잠시 이용해 볼까하는 생각을 했던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웠다.

"그래, 우리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처럼 편하게 지내."

"아저씨. 또 그러신다."

“좋아 그래.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낚시도 하고 수영도 하고. 네가 원하는 건 다 해줄 테니.

“좋아요.”

"이제 돌아가도 되겠지?"

"예, 그래요."

뷰리는 어제 밤 무인도로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얼굴이 밝아지고 생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중산 신항, 상준의 요트 계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넘어 간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뷰리를 먼저 집으로 보낸 뒤 고기와 버릴 쓰레기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베란다에 서 있던 상미가 두 손을 흔들어 상준을 환영하며 웃고 있었다.

"오빠."

손을 흔들며 맞이해 주던 상미가 현관으로 들어서는 오빠의 짐을 받아서는 잡은 고기가 어떤 고기인지 확인을 하였다.

"원석 물고기도 봤어?"

"응."

상준은 호주머니에서 쏨뱅이에서 추출한 원석 두개를 상미에게 건네주었다.

"요것도 예쁘네."

"응. 예뻐."

"근데 오빠. 낚시 누구하고 갔다 왔어?"

상미는 뭔가 낌새를 챘는지 미심쩍은 얼굴로 오빠를 처다 보며 물었다.

"나 혼자 간다 했잖아."

"피, 혼자가 아니던데?"

“요트가 계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잘 안보였지만 멀리서 들어올 땐 분명 옆에 누가 있던데?”

"쓸데없는 소리."

"오빠 바람피우면 알지. 다 이를 거야."

"아니라고."

"그러니 더 의심스러운데?"

"상미야."

"알았어. 내 한번은 봐 주지."

"자슥, 참."

상준은 자신이 특별한 잘못을 저지른 일이 없는데도 얼굴이 화끈 열기가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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