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난태생 바다인간(1)
* * *
“그렇게 해주실래요?”
뷰리는 상준의 제안이 반가운지 아닌지 감이 오질않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결국 상준이가 전화를 하여 이번 주말에 죽순바위섬에 다녀오자는 제안을 한 셈이 되었다.
사실 이것은 얼마 전에 뷰리가 상준에게 부탁한 사항이다.
그런데도 뷰리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시큰둥한 대답으로만 일관했던 것이었다.
‘가스나. 언제는 지가 먼저가자고 하더니, 대답이 왜 저모양이야.’
토요일 아침을 택하고 싶었으나 남의 눈을 의식해서 금요일 밤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퇴근 후 날이 어두워지면 요트 계류장에 나와.”
“네.”
같은 대답이지만 억양이 다르다. 할 수 없이 끌려가는 그런 목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저러나 상준의 입장에서 준비할 것도 있기 마련이다. 모처럼 찾는 죽순 바위섬이라 일단 할아버지가 그 곳에 계신다.
할아버지께 드릴 몇 가지 선물과 약주를 준비하여 요트에 싫은 다음 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한참이 지나서야 시무룩한 얼굴로 뷰리가 나타났다.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께는 낚시를 간다고 둘러대었고, 따라 나서려는 상미를 몇 번의 설득으로 겨우 집에 잡아두고 뷰리가 도착하자 신속하게 출발하였다.
‘남의 시선이 뭐가 대수냐?’
상준은 평소 그렇게 생각했다. 사업을 하며 직원이 늘어나고 지역에서의 인지도가 상승하자 작은 일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직위가 사람을 바꾸고 있다.
상준이 군에서 상병고참 근무를 하고 있을 때 자신의 대학 후배 신병하나가 자대에 배치되어 들어온 일이 있었다. 그 후배 애보다 4개월 먼저 입대한 일병을 단 졸병이 미리와 있었다. 무슨 일을 시켜보니 일류대학 출신인 대학후배 새끼는 뭐를 시켜도 어벙하기만 한데, 몇달 먼저 온 고 중퇴 일병은 무슨 일을 시켜도 곧잘 하곤 했다.
그래서 그때 상준은 느꼈다.
‘군대는 역시 짬밥이라고.’
‘그리고 또 계급장이라고.’
선배들의 말을 피부로 느낀것이 그때 같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또 하나의 다른 것을 실감하고 있다.
“조직에는 역시 직책이라고”
“직위와 직책이 사람을 바꾼다.”
행동 하나하나가 신중해지고 말 한마디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지도 모르는 상활이었다.
요트를 타면 좋아하리라고 예상했던 뷰리의 표정이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어두운 표정과 근심스런 얼굴이 밝아지지를 않았다.
“왜, 몸이 안좋은 거야?”
상준은 옆에 앉은 뷰리를 돌아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뷰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 무슨 일인데?”
상준은 아무 말도없이 눈물만 짓는 뷰리를 보며 영문을 몰라 당황하기만 하였다. 항구에서 요트가 멀어지자 그녀의 표정은 곧 폭발할것 같았다.
상준은 혹시 자신에 대한 원망이 있나하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뷰리야, 내가 네의 집에 가지못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기 때문이야.”
“알아요.”
“그래서 내가 약속을 못 지킨거야. 네가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남들은 우리를 그렇게 안보니까?”
“그 것도 알아요.” 상준은 부리의 대답으로는 전혀 원인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럼, 내가 네게 또 다른 잘못을 한 거라도 있나?”
“아저씨, 저기 저 무인도에 요트 좀 세워주세요.”
뷰리는 상준의 묻는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엉뚱한 무인도를 가리키며 요트를 세워달라고 하였다.
상준은 뷰리가 가리킨 무인도를 살펴보니 언젠가 뷰리가 상준이 사다준 옷을 입고 갯바위에서 자신을 불렀던 바로 그 섬 같았다. 그때 뷰리의 표정은 참으로 예뻤고 행복해 보였었다.
상준은 물위로 돌출한 작은 바위들을 피해 가급적 수심이 깊은 쪽으로 돌아 갯바위에 접근하여 요트를 정박시켰다. 요트 사방에 불을 켜두는 것도 잊지않았다.
“아저씨, 여기에서 낚시하세요.”
“나, 지금 낚시하러 온것이 아니잖아.”
“그래도 여기서 하세요.”
뷰리는 갑자기 입고있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리 뷰리가 어리다고는 하나 그래도 호적상 만 18세로 기록되어 있는 어엿한 소녀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주민증을 가진 아이였다. 상준은 뷰리를 그냥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뷰리는 상준의 앞에서 인간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바다 인간으로 돌아간 셈이다.
뷰리는 물위에 떠올라 발헤엄을 하며 상준을 보고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이게 제 본래 모습이에요.”
“.....?”
차마 상준은 똑바로 뷰리를 볼 수 없었다. 뷰리의 젖가슴이 요트의 불빛을 받아 그대로 모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뷰리는 갯바위 주변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무엇인가를 찾고있었다.
‘제가 오늘 왜 저러지?’
상준의 옆에는 뷰리가 벗어놓은 옷들이 어지럽게 갑판위에 흐트러져 있었다. 한참만에야 뷰리가 그물 망태 하나를 가지고 요트로 올라왔다.
“이게 뭐지?”
그물 안에는 묵직한 돌 하나와 비닐뭉치 하나가 들어있었다.
“너, 먼저 옷부터 입어.”
“그건 상관없어요. 이게 저의 참 모습이니까요.”
“.....?”
“인간의 옷을 입는다고 인간이 되는건 아니에요.”
그리고 그녀는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유영을 하는 뷰리의 모습은 실로 아름다운 예술품 같았다.
유연한 몸놀림과 빠른 잠수 실력은 한마리의 인어가 자유롭게 놀고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상준은 지금 끗 뷰리를 보면서도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정말 우아하고 멋진 몸짓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무엇인가 찾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찾기에 저러는 것일까?’
한참 후 뷰리는 다시 망태 하나를 건져 올랐다. 그리고 천천히 다리를 흔들며 상준이 탄 요트위로 올라오려 하였다.
상준이 얼른 손을 잡아주자 물속으로 다시 머리까지 잠기더니 돌고래가 솟구치듯 쑥하며 솟아올라 요트위에 껑충 뛰어올랐다.
참으로 아름답고 고운 얼굴이었다.
언제 아팠냐는 듯 활기를 되찾아 상준이 보기에도 착각을 할 정도도 싱싱해 보였다.
그리고는 옷을 하나, 하나 입기 시작했다.
옷을 다시 챙겨입은 뷰리는 방금가지고 나온 그물망태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멍하니 그물을 지켜보던 뷰리는 실망인지, 안도인지 구분할 수는 없는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대체 너 무얼 찾고 있어?”
그러나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다음 나머지 그물에서 비닐뭉치를 꺼내어 하나하나 풀어헤쳤다.
상준은 유심히 그녀의 행동을 지켜만 보고있었다.
몇 겹으로 된 뭉치를 풀어 상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거 아저씨께 드리는 선물.”
그 뭉치 속에는 작은 원석들과 아름다운 구슬이 한움큼이나 쏟아져 나왔다.
“뷰리야.”
“전 이런건 필요 없어요.”
“왜 필요 없어. 이것만 하면, 네가 하고 싶은것 다 할수 있는데.”
“전 어차피 인간이 아니에요. 발가벗고 사는 바다 생물에 불과해요.”
그녀의 표정이 비장해 보였다.
“그건 무슨 소리야?”
“전 한때 제가 다른 인간들과 꼭 같은 줄 알았어요.”
뷰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상준을 처다보았다.
“다를게 뭐가 있어. 넌 인간이야.”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전 인간이 아니에요.”
“넌 완벽한 인간이야.”
“저도 얼마 전까진 그런줄 알았어요.”
뷰리는 드디어 울음을 폭발했다.
그녀의 울음소리에는 한없는 고뇌가 섞여있었다.
“왜그래. 뷰리야?”
오랫동안 소리 내 엉엉울던 뷰리는 차츰 진정을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야 깨달았어요. 전 육지 인간과 다르다는 걸.”
“무슨 소리야. 뷰리야. 자세하게 말해 봐.”
“그럼 아저씨, 저 안아줄 수 있어요?”
“그거야. 넌 아직 어리고. 그리고 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잖아. 너도 알잖아?”
“전 난생 바다 인간(해인)이거든요.”
뷰리는 잠시 멈췄던 울음을 다시 폭발했다.
“뭐?”
상준은 뷰리의 말을 듣고 무슨 말인가 잠시 생각하다 충격에 빠졌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알아듣지 못하다가 그만 바닥에 주저않고 말았다.
난생인간 이라면 알을 낳는 인간이란 뜻이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뷰리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그의 품에 파고들어 목이 아프도록 통곡을 하였다.
“저도 멍크와 다름없단 말이에요. 어쩌면 좋아요. 아저씨.”
뷰리의 눈물은 끝이 없었다.
울고 또 울고.
결국 그녀는 모든 사실을 상준에게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본인도 몰랐다고 했다.
바다 생명체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바다에서 온 자신에 대해서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자신의 아랫배가 아픈가 했는데 정체모를 알을 낳게 됐다는 것이었다.
차마 그것이 자신이 낳은 알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그 알을 넣어 보관해둔 곳이 오늘 건진 빈 그물이었다고.
결국 그것은 무정란이었고 자신은 결국 난생 인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고.
바다 생물의 공통점이라고.
모든 말을 다 털어놓으며 때때로 한번씩 오열하였다.
“바다에 사는 포유류들은 대부분은 다 새끼를 낳아요. 그런데 파충류와 어류들만 알을 낳아요.”
상준은 그녀에게 어떤 위로도 할 수가 없었다.
오래되지 않은 어느 날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자신이 배란한 알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그리고 그녀는 밤을 세워가며 이 무인도 까지 와서 자신이 낳은 알을 그물망에 넣어 바다 물속에 담궈둔 것이었다.
뷰리의 마음을 달래줘야 할 텐데 상준은 대체 그 방법을 몰랐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뷰리 뿐만 아니라 자신 조차도 그 생각을 해본 일은 전혀 없었다.
그냥 바다에서 온 여자.
육지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날 상준은 그 무인도에서 밤을 새웠다.
이튿날 아침 요트안에서 쓰러져 있는 뷰리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였다.
일단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갯바위에 붙어있는 미역과 고등을 주워 모았다.
정성을 다해 고등 알을 넣은 미역국을 끓여 두고 뷰리가 깨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지금 뷰리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잠에서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던 상준은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정말 바다에 뷰리 말고 또다른 바다 인간이 과연 없을까?’
언젠가 뷰리가 자신 외에는 더 이상 바다 인간이 없을 꺼라 했고, 사람들이 말하는 인어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모른다. 이 넓은 바다를 어떻게 그녀가 다 알 수 있겠는가?’
‘바다 괴물조차도 처음 보는 괴물이 허다히 많은데 바다 인간인들 다 보았겠는가?’
상준은 어디에서 바다 소년이라도 찾아오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뷰리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았고 자신에 대한 열등감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무한한 상상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엾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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