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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87화 (87/225)

〈 87화 〉 아쿠아리움 인어쇼(2)

* * *

갯바위에 앉아 담배를 꺼내 피우면서 곰곰이 자신의 주변을 생각해 보았다. 남자들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다. 머리가 복잡하고 뒤숭숭 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렇게 조용히 낚시를 하고 있으면 머릿속에 꼬여있던 복잡한 일들이 한 가지씩 정리되어 간다. 일이 잘 안 풀리는 것도 이때 생각하면 대안이 나올때도 가끔씩 있다.

그래서 태공들은 낚시를 더욱 즐길지도 모른다.

바다를 향해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일이 평화로워 보이고 자신도 그 속에서 자연과 동화한다.

그때 무슨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다슬의 전화가 왔다.

"오빠, 나 내러가고 싶어."

"아직 공부 포기한 건 아니고?"

"포기 못해서 이러고 있는거 아니야. 포기했음 당장이라도 가지."

"얘기가 그렇게 되나?"

상준도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다슬이에게 포기하라고 권하고 싶다. 공부란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계속 공부할 때도 힘이 드는데 몇년을 쉬다 다시 공부하려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오빠 보고싶어 죽겠어."

"나도 그래."

"사업은 잘되지?"

“응. 그냥 그러고있어.”

사실 다슬은 상준에게 전화를 하는 것보다 부산에 계신 상준의 어머니와 동생 상미께 더 많은 통화를 하는 것 같다.

안면도에서 준 상준의 힌트에서 느낀 이후부터다. 그때 상준은 한마디 밖에 안했었다.

“너, 부산 어머니께 전화해 봤어?”

그때가 바로 상미를 찾고 난후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오빠, 지금 뭐하고 있어?"

"낚시."

"좋겠다. 어딘데?"

"소라도 앞바다."

"좋겠다. 난 공부하다 힘들어서 전화했는데."

“나도 이거 일이야. 노는게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힘들면 쉬엄쉬엄 해.”

"그래, 난 휴간데도 쉬지도 못하고. 오빠 많이 잡아. 또 전화 할게."

어째튼 다슬은 야무진 구석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내는 뭔가가 있다.

어떤 때는 한없이 약해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강한 뭣이 엿보이곤 한다.

전화를 끊고 얼마 되지 않아 전자찌에 반응이 나타났다. 챔질을 하여 올려보니 20cm급 감생이였다.

감생이를 놓아주고 조금 지났을까. 다시 어신의 상준을 찾아 왔다.

이번엔 배도라치가 걸려 올라 왔다.

"시발, 오늘 왜이래."

상준은 혼자 투덜거리며 다시 미끼를 바꾸어 달았다.

아무리 욕심 없이 즐기려 해도 어느 정도는 물어줘야 만이 낚시할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상준은 다시 여러 가지 상염을 하다 뷰리를 떠 올렸다.

지난번 죽순 바위섬에 다녀오고 싶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표정이 예사롭지 못하다. 미심쩍기 는 했지만 꼬치꼬치 물을 수는 없었다. 외관상 보기에도 몸이 많이 약해졌다는 걸 인식할 수 있었고 건강을 걱정했으나 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러냐고 했더니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 상준은 뷰리의 표정에서 곤혹스러워하는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뷰리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 확실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이지?’

누구에겐가 위로를 받고 싶은 건가?

그러나 더는 물어보지 못하고 넘어가고 말았다.

한번은 꼭 뷰리를 데리고 죽순섬에 다녀와야 할것 같다.

저녁 무렵부터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리더니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상준은 한기를 느껴 비옷을 덮어 입고 낚싯줄을 갈고리에 걸어서 고정시켜 두고 선실로 들어왔다.

번쩍하고 번개가 칠 때마다 사방이 잠깐 밝아지는가 하더니 잇따라 천둥소리가 하늘을 진동하였다.

“꽈과광”

요즘에 와서는 자주 듣지 못한 천둥소리였다. 상준이 어릴때는 이런 부류의 천둥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최근에는 거의 듣지못한 소리다.

다시 번개가 하늘에서 떨어져 바다를 행해 내리치는 것 같다. 그리고는 잠시 후 천둥소리가 귀를 찢는다.

“따닥, 따다닥. 콰르르릉.”

선실에 앉아 있자니 겁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후 비가 쏟아진다 싶더니 앞이 안보이도록 요트를 두드려 댄다. 요트안의 빗소리는 더 요란스럽다.

“투두, 투두. 폭우가 쏟아진다. 그리고 요트는 심하게 요동쳤다.

‘뭐지?’

상준은 약간 긴장되었으나 창밖으로 가만히 내다보았다. 요트 사방에는 불이 켜져 있으나 보이는 것은 거의 없었다.

‘또 괴물이 나타났나?’

상준은 장도를 뽑아 손에 쥐었다. 일단 마음을 굳게먹고 만약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죽고 살기로 싸워볼 작정이다. 결심만하면 무서울 것도 없다.

다시 번개가 번쩍하였다.

“과르릉, 꽈꽝."

‘시발, 천둥소리까지 왜이래?’

그때 또다시 요트에 충격이 느껴졌다.

창밖을 내다보았으나 여전히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뮈지?'

요트 네귀퉁이에 밝혀진 불빛도 솟아지는 비 때문에 바깥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요트를 갯바위에 단단히 매어두어 쉽게 끌려가지 않는 것이었다. 번쩍이는 번개불을 이용하여 바깥 상황을 내다보았다.

“흡.”

갈고리처럼 시커먼 긴 발이 요트를 휘감고 엉켜붙어 있었다. 문어다리 같기도 하고 괴물 낚지 같기도 하다.

'저건 대체 뭐지?'

다시 번개가 번쩍이며 순간 요트를 비춰주었다.

요트 갑판에 엉켜있는 물체는 분명 바다 괴물이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놈이다.

영화 아니면 만화에서 본 그런 놈이다.

그럴 때마다 영화원작을 쓴 작가나 만화 작가가 존경스럽다. 상상 중에 동물이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 걸 보면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당장 자신의 요트에 달라붙어있는 괴물이 더 걱정이다.요트에 켜둔 사면의 불을 모두 꺼버렸다. 이 불빛을 보고 분명히 놈이 요트를 공격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제발, 좀 없어져라.’

상준은 은근 빌어보았다. 요트의 흔들림이 없어지자 약간은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사라졌나?’

다시 번개가 번쩍일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며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었다.

“끄르륵.”

무슨 소리인지 다시 선실 밖에서 바닥을 긁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그리고 다시 요트가 흔들거렸다.

‘아직 붙어있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번개가 자주 번쩍이더니 기다리다 보니 번개도 치지 않는다. 번개불을 이용하여 놈의 동태를 살펴보려 하는데 좀처럼 때를 맞춰주지 않는다.

‘요트 불을 다시 켜 볼까?’

앞이 보이지 않던 빗줄기도 많이 가늘어졌다.

그때 다시 번쩍하고 번개가 내리 꽂혔다.

봤다. 이건 분명 해룡 중에 해룡 씨써펜트였다.

‘아니, 저것이.’

그렇다고 이놈은 보석을 지닌 보석 괴물도 아니고 원석괴물도 아니다. 만약 원석 괴물이라면 놈이 지닌 섬광이 상준의 눈에 비칠 것이다.

상준은 선실문을 걸어 잠건 상태에서 놈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뿐 특별한 묘책은 떠오르질 않았다.

‘일단 기회를 보자.’

한참의 시간이 지나가고 밤은 점점 깊어갈 무렵 바람이 서서히 잠들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요란하던 천둥과 벼락도 잦아들었다.

‘하늘이 좀 개인 것 같네.’

억수 같이 쏟아 붓던 비가 멈추면서 서서히 하늘이 걷히는 것 같았다. 이제 괴물의 정체도 점점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건 분명 해룡이다.’

소라도 근해에 저런 해룡이 있었다니. 상준은 미끼지 않았지만 눈앞에 나타난 현실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내 오늘 저놈을 잡아 박제로 만들거야.”

박제로 만들어 박물관에 비치하면 분명 인기를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다. 이 부근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놈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상준은 침착하게 장도를 쥐고 선실 문을 열었다. 다리 하나가 2m는 될 것 같다. 상준은 놈의 다리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분명히 절단 되었다. 조용하던 놈이 괴성을 지르며 다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상준을 낚아채려 정신없이 설쳤다. 상준은 신속하게 이리저리 피하며 다리 하나를 향해 다시 칼을 휘둘렀다. 만화에 나오는 검객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끼악”

괴성을 지르며 자신의 꼬리로 요트를 내리쳤다.

우둥퉁!

상준은 선채 옆으로 몸을 날려 놈의 목을 향해 작살을 쏘았다. 놈의 동작도 무척 빨랐다. 상준은 빗나간 작살을 되감기를 해두고 반대편 작살을 다시쏘았다.

‘맞았어.’

맞은 건 맞지만 정조준은 못했다. 놈은 다시 뒷발을 요트위로 드러냈다.

‘이때다.’

상준은 칼을 들어 놈의 옆구리를 보기좋게 찔렀다.

‘성공이다.’

씨써펜트는 마지막 발악을 다하기 시작했다.

“크라켄, 좀 보자.”

이정도 되면 크라켄을 불러도 별 상처는 입지 않을 것 같다. 씨써펜트는 동작이 민첩하고 유연성이 좋아 잘못하면 크라켄이 더 위험하다. 크라켄은 도착하자마자 씨써펜트를 움켜쥐어 요트 위로 밀어 올렸다.

상준은 이제 한숨을 돌리고 담배를 꺼내 불부터 댕겼다. 그리고 한 모금을 쑥 들이킨 후 씨써펜트를 향해 훅 품어내었다.

‘시발 넘.’

상준은 즉시 씨써펜트의 배를 갈랐다. 예상했던 되로 놈의 뱃속에는 원석도, 보석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운석도 없었다.

지켜만 보고 있던 크라캔은 상준이 손을 흔들자 잠수하였고 떨어진 다리를 챙기고는 놈의 피를 완전하게 뽑아낸 뒤 신속하게 중산항으로 귀항하였다.

요트 계류장으로 들어온 상준은 관리인들을 불러 놈의 시신을 말리도록 하고 박제 전문가를 찾아 씨써펜트의 박제를 부탁하였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방부제를 뿌리고 떨어진 다리는 원상태로 연결시켜 완전한 박제를 완성시켰다.

[씨써펜트]

키 3m, 앞 다리 1,2m. 뒷다리 2m. 무게 약300Kg. 중형 씨써펜트였다. 놈의 박제는 해양박물관 괴물전시관에 걸리게 되었다.

뷰리는 박제한 씨써펜트에 대해서도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흡사 바다의 모든 생태계와 생물의 특성을 모조리 독파하려는 듯 밤낮으로 공부에 열중했다. 그러면서도 직장에서의 직책은 빠짐없이 수행하였다.

상준은 약해져 가는 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뷰리가 살고 있는 빌라에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두 사람의 인연을 잘 모르는 직원들의 눈을 의식해서 쉽게 빌라를 드나들지 못했다.

가끔은 한번씩 뷰리를 불러 식사도 같이하고 싶었고 대화도 같이 하고 싶었지만 그 역시 어려운 실정이었다. 만약이라도 이상한 소문이 나돌게되면 어떤 결과가 온다는 걸 최근 방송에서도 자주 봐 왔기 때문이었다.

뷰리도 어쩌면 상준의 입장을 이해할지 모른다.

결국 상준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전화뿐이었다.

“뷰리야. 나야. 이번 주말에 바위섬에 다녀올래?”

바위섬이란 죽순섬을 뜻한다. 바로 죽순바위섬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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