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뉴 해양 박물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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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다슬의 회사와 제휴되어 있는 모 리조트로 향했다. 처음에는 고급 호텔로 잡아서 가려 했지만 다슬이 이를 만류했다. 돈이 많다고 막 쓰려고 하지않는 그녀의 모습이 예쁘게 느껴졌다. 아마 사전에 예약을 해둔 모양이었다. 그녀의 차 트렁크에서 꽤나 많은 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저녁은 밖에서 먹자.”
“뭐 먹고 싶어요?”
“고기면 다 좋을거 같아.”
다슬은 보문에서 가까운 천북 어느 한우 고기집으로 상준을 안내했다. 고기질이 좋기로 소문이 난 한우 전문집이라 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미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넓은 주차장에는 차들이 빽빽하였고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들로 꽉차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전 예약이 가능해서 곧바로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많이 듭시요.”
고기를 배달해준 동남아 출신의 아주머니 말이다.
다슬은 손수 소매를 걷어부치고 고기를 구웠다.
“내가 할게.”
“됐어요. 오빠. 오늘은 내가.”
다슬은 고기를 굽다 한점을 집어 상준의 입에 넣어주었다.
“어때요?”
“이거야, 원 꿀맛이 따로없네.”
향긋한 육즙이 펑펑 솟구친다. 소금에 콕 찍어먹으면 기가막힌다.
“어때요?”
“오, 맛있네. 많이 먹어.”
“오빠도요.”
“가위 이리 줘, 내가자를게.”
“됐어요.”
“이런 건 남자가 자른다며?”
“됐어요.”
다슬이 이 집을 알게된 것은 회사연수 차 보문단지에 왔을 때 단체로 이곳에 온 일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때 먹은 고기 맛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음식의 맛은 두 가지이다. 음식이 정말 맛있거나 배가 고팠거나. 이곳은 특히나 소문 난 집이라서 그런지 손님도 많았다. 경기는 나빠도 잘 나가는 음식집은 항상 성황을 이룬다. 참 이런 맛집들은 경기도 타지 않는 모양이었다.
식사를 한 후 보문단지 내에 동남아 타입의 손 마사지 집으로 안내하였다. 쉬고싶다는 상준의 말을 듣고 배려를 하는 모양인데. 그녀의 그런 노력 하나하나가 정말로 고마웠다.
마사지를 받는데 손아귀 힘이 얼마나 좋은지 시원하면서도 아파죽겠다. 끝나고 나니 온 몸이 날아갈 것처럼 상쾌했다. 불과 작년만 해도 누려보지 못했던 호사 중에 호사다. 맛사지가 끝나자 밖으로 나와 보문 호숫가 벤치에 앉았다.
시원한 밤바람. 불빛을 뿜어내는 대형 백조 보트가 호수에 떠다닌다.
맞은편 불빛이 호수에 잠겨 물결을 따라 아른거린다. 보고만 있어도 낭만적이다.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녀의 불그스름한 얼굴이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한때는 지진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이 줄었다고 하더니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이 붐빈다.
호수 주변의 산책길에도 사람이 많다. 야간인데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고,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어딜 가서도 운동은 뺄 수 없는 모양이다. 심지어 해외에 나갔을 때도 새벽이 되면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한국인이 많다고 들었다. 재미있는 일이다.
다음 날 아침 늦게일어나 천도교의 성지 용담정으로 향했다.
용담정은 구미산 동향 가정리에서 출생한 동학교조 최제우 선생이 신비체험을 통해 무극대도를 깨닫고 동학을 창도한 곳이다. 그는 10세 되던 해 모친을 잃었고, 16세 되던 해에 부친을 여읜 후 무예를 얻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구도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1859년 10월 경주로 돌아와 이곳을 용담정이라 하고 득도를 위해 정진하던 중 1860년 4월에 온몸이 떨리고 신선의 말씀이 들리는 신비체험을 하면서 득도에 성공하여 마침내 동학을 창도하였다. 선생이 순도한 후에 폐허가 되었던 용담정은 그후 두차례나 중건되었다가 1975년 재건축되어 지금에 이르고있다.
현재에는 입구에 선생의 동상을 건립하여 신도들을 포함한 방문객을 반겨주고 있었다.
상준은 다슬이와 함께 조용하고 한적한 경내를 걸으면서 새들의 노래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머리를 식혔다. 다람쥐 한쌍이 설익은 도토리에 정신이 팔려 지나가는 행인을 의식하지 못하고있다.
상준은 자신도 모르게 자연에 동화되고 창도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교도의 정서에 매료됨을 느낀다. 모든 종교가 다 그러하듯이 사람을 사랑하고 덕을 베풀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자는 것.
상준은 장차 자신과 기업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지표를 찾아보려 한다. 기업은 기업 윤리와 아울러 사회적 책임이 있다.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근로자를 보호하고 합리적 이윤을 추구해야한다.
상준은 휴가기간 내내 기업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심하여 왔다.
“오빠, 이번 휴가때는 평소보다 더 말이 없어요.”
“그런가. 너 불러 놓고 내가 다른 생각에 몰입된 것 같다.”
“무슨 고민있는 건 아니죠?”
“전혀. 어떻게 하면 널 더 행복하게 해줄까 그게 고민이면 몰라도.”
“그건 걱정마세요. 안되면 저가 오빠 책임질게요.”
상준은 용담정에서 벗어나 진입로를 걸어 내려오면서 자신의 심정을 털어 놓았다.
사실 상준은 회사가 발전하고 기업이 팽창하면 마냥 기쁘라라 생각을 해왔다. 아니, 기쁜 것은 사실이다. 마음이 뿌듯하고 자부심이 생겨나고 자신도 모르게 갑질도 하고싶고, 그러나 결코 그것만이 아니란 걸 느끼기 시작했다.
어깨를 누르는 뭔가가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당장 소속 직원들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전부 가정이 있고 상당하게는 가족이 있다. 기업의 이윤추구가 가장 큰 우선 과제지만 어떻게 이윤을 추구하여 많은 직원들을 먹여 살려야 할 것인가가 고민으로 등장했다. 무조건 직원에게 높은 임금과 후생복지를 추진할 수 없었다. 그만큼 회사가 많은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그것이 회사가 살고 가족이 사는 길이다. 오너는 이것부터 해결해야한다. 그게 우선 과제이다.
“잘 할수 있을 거예요.”
“그럴까?”
“난 오빠 믿어요.”
“고맙다. 내편이 되 줘서.”
상준은 다슬의 손을 잡았다. 계곡에서 부는 시원한 산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날리며 스쳐간다.
“돌아가서 아쿠아리움 건립을 추진해야겠어. 회사 식구들을 모두 먹여 살리려면 해양박물관과 아쿠아리움을 연계시켜야 하겠어. 살아있는 어종은 아쿠아리움으로, 박제된 어종은 박물관으로.”
“박물관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면서요.”
“응, 당장, 산호류도 빈약하고, 패류도 부족해. 그동안 투자를 제대로 안했나봐. 이제와서 우리가 확충하고 있어.”
다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물관에 새롭게 괴물고기 박제전시관을 추진하고 있거든.”
“그거 인기 좋겠어요.”
“아쿠아리움도 괴물 아쿠아리움으로 설립할 계획이야.”
“대박.”
다슬은 손을들어 엄지척을 한다.
“넌 공부는 잘되고 있어?”
“근무중에는 사실 어렵고 휴가때는 열심히하고 있어요. 학원도 나가고.”
“학원에도 나가?”
“전공과목은 상관없지만 교육학 이론도 들어야하고 수업시현이 있거든. 제시된 주제로 교안을 작성하여 실제 수업을 시현해야 하거든.”
“어렵겠다. 너 지금 하는일이 연봉도 높고 더 쉬운것 아니야?”
“그래도 오빠가 올라올 수 없잖아. 그러니 내가 내러 와야겠지. 또 교직이 보람도 있고.”
“미안해. 나 때문에. 요즘 선생하기 어렵다던데?”
“그렇다고 들었어요.”
“시험도 시험이지만, 얘들도 힘든 다던데?”
“학원 강사들도 그랬어요. 그래도 난 합격만 하면 잘해볼 거야.”
“그래, 진심은 통한다고 하잖아.”
그들은 최재우 선생 생가를 둘러본 후 해물 샤브샤브 전문집에 들어갔다.
“너도 육류보다 해물을 좋아하는 것 같애.”
“그렇지. 오빠도 좀 그런 것 같애.”
“응, 우린 좋아하는 음식이 비슷한가봐.”
숙소로 돌아온 상준은 츄리닝을 입고 운동을 하기위해 호수가로 나왔다. 호수 주변을 가볍게 뛰면서 몸을 풀고있었다.
“야, 연상준.”
상준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맞네, 상준이.” 준영이었다.
“여긴 어떻게.”
“우리 여기 휴가왔어. 너 창업했다며? 자식, 내 그럴줄 알았어. 사업은 잘돼?”
“응, 그냥그래.”
“사실 어제 밤에 나 너 봤어. 어떤 여자하고 같이 있기에 모른체 지나갔지.”
“....?”
“이거야?”
상준은 세끼 손가락을 펴 치켜들었다. 상준은 웃으며 준영의 어깨를 툭 쳤다.
“너 많이 무게잡혔다. 이제 사장티가 좀 나.”
“넌 여전하구나. 잘지내지?”
예나 지금이나 준영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고 사는 아이다. 그래서 그런지 스트레스 같은 것은 받지않고 살 녀석이다. 요즘은 그런 성격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우리 여기 좀 앉자.”
준영은 산책길 옆 벤치를 가리키며 상준의 팔을 잡아 당겼다.
“넌 여기까지 무슨 일로?”
“나도 휴가”
“좋겠다. 넌 사장이니 휴가도 너 맘대로 하겠네.”
“뭐.”
“오빠, 여기 있었네.”
다슬 이었다. 혼자 숙소에 있으려니 갑갑했던 모양이었다.
“어, 여친인가 보네.”
준영은 다슬의 아래 위를 살펴보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자신은 상준의 둘도 없는 고향 친구며 현재 모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 이러지 말고 여기 들어가서 술이나 한잔해.”
상준은 마음같아서는 운동중이라 다음에 하자고 하고 싶었으나 준영이 워낙 반가운 척 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준영의 손에 잡혀 인근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늘 내가 쏠게.”
준영은 주인을 불러 파전과 도토리 묵, 막걸리를 시켰다. 병을 흔들어 상준과 다슬에게 술을 권하고는 몇잔의 술을 연방들이켰다.
술이 들어가자 처음에는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험담으로 시작하여 상사들의 험담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주임은 어떻고 과장은 어떤데 나중에 가더니 팀장을 비롯하여 자기 부서 이사와 사장까지 들먹이며 물고 뜯었다.
“다슬씨, 직장이 어디세요?”
“상준이가 어디가 좋아요?”
급기야 다슬이에게 관심을 보이더니 급기야 한마디하였다.
“너, 연희씨랑 왜 헤어졌어?”
“너 벌써 술 취했어?”
“술 취하긴. 요즘 막걸리 먹고 취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래, 알았다. 이제 일어서자.”
“그 애 너 많이 좋아했잖아?”
“그만 가자.”
“아직 술이 남았는데 가긴 어딜가?”
상준은 그만 화가 치밀어 한방 먹일까 생각했다. 지는 친구라지만 친구도 아닌 놈이.
그때 상준의 폰이 울렸다.
YC 건설 김현석 이사였다. YC 건설은 아쿠아리움 설계, 제작, 시공에 많은 노하우를 가진 국내 굴지의 기업이었다. 바로 상준의 회사 사옥을 지었던 해당 업체이기도 하다.
상준과는 업무관계로 알게 되어 비교적 가깝게 지내왔고 최근에는 어디서 아쿠아리움 건설 계획의 정보를 얻어 상준에게 수시로 연락하는 YC 건설의 중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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