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크라캔 길들이기(2)
* * *
“뷰리야, 잠깐 앉아봐.”
“아저씨, 나 이렇게해서 잘래.”
“너 몇살이야?”
“모른다고 했잖아요.”
“너 나이 이제 만 18세야. 누가 물으면 그렇게 대답해.”
상준은 뷰티의 나이가 육지 소녀들과 견주어 볼때 18세 아니면 19세 정도는 되어보였다.
그것도 일반 애들보다 체구가 작은.
“그리고 너 이름은 뷰티라고 했지만 너의 성은 짓지를 못했어. 너의 성을 해씨로 정하면 어떨까? 바다 해자 해. 넌 바다에서 온 뷰티니까.”
“그럼 해뷰티.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래?”
상준에게 기댄 뷰티는 고개를 들고 상준의 눈을 쳐다 보았다.
금발의 하얀 소녀가 까만 눈동자를 하고 처다보는 모습이 조그만 인형 같다는 생각이 상준의 머리를 스쳐갔다.
“그러네, 그럼 해뷰티가 좀 이상하면 우주에서 왔다니까 우뷰티? 아니지, 그것도 아닌 것 같고, 하늘에서 왔으니 천뷰티 어때?”
“아저씨, 뷰티보다 뷰리가 어때요?”
“너 본토 발음하려고 그래?”
상준은 뷰티의 금발을 손으로 만지면서 머리에서 나는 해초 같은 향을 맡아 보았다.
“음, 바다 냄새.”
“뷰리 어때요?”
“그럼 됐다. 지금부터 넌 천뷰리야. 천뷰리 됐지?”
사실 상준은 뷰리의 호적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만약 앞으로 뷰리가 육지생활을 하게 되면 자연히 신분증이 필요할 것이고, 신분증이 있어야만 각종 활동이 가능할 것 같아서다.
상준의 어깨에 기댄것이 편안한지 뷰리는 금방 졸고있었다. 잠이든 모습을 보고 있던 상준은 조용히 뷰리를 눕혀주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까지 너무나 때묻지 않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아이.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 뷰리의 끙끙대는 잠꼬대 소리를 듣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뷰리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면서 언제까지나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일찍 일어난 상준은 잡아둔 물고기 몇 마리를 양동이에 담아 바닷가로 나가 크라캔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어제 저녁 보다는 힘이 많이 빠진 것 같았으나 괴물의 본성은 어쩔 수 없었다.
크라캔은 대형 트럭을 세워놓은 듯 엄청난 크기였다. 눈은 붉게 충혈 되어있었고 다리의 굵기는 성인의 몸통보다 훨씬 더 굵었다. 빨판 하나가 손바닥 보다 크게 보였다. 보통 문어는 8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놈의 다리는 12개였다.
상준의 눈빛은 마치 레이저를 뿜어내듯 크라켄의 눈을 쏘아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어 경고 섞인 어투로 입을 열었다.
“크라켄!”
"...."
“잘들어. 난 연상준이다. 다시 말하지만 너의 목숨은 내가 쥐고 있다. 넌 앞으로 내 말을 듣는다. 알았으면 눈을 깜박거려 봐.”
지능이 얼마인지 크라캔의 눈꺼풀이 깜박거린다.
“분명히 넌, 우주의 보석을 많이 삼켰을 거야. 그래서 네가 괴물로 변했지. 지금부터 네가 지니고 있는 모든 보석을 그 자리에서 전부 토한다.”
“.....”
“내말 못 들었나?”
크라켄은 꾸역꾸역 위장에 있는 것들을 토해 놓았다.
엄청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자 이거 먹어.”
상준은 가지고 간 물고기를 던져 주었더니 순식간에 먹어 치워버렸다. 역한 냄새를 꾹 참으며 양동이로 바닷물을 퍼서 놈이 토해놓은 구토물에 쏟아 부었다.
“아저씨.”
언제 왔는지 뷰리가 불렀다.
“잘 잤어?”
“너무 편안해서 먼저 잠들었나 봐요. 미안해요.”
“무슨 소릴. 너 올라가서 주방 세제 한통만 가지고 내러 와.”
상준은 뷰리가 집으로 올라가자 계속해서 바닷물을 퍼서 크라켄의 구토물이 깨끗해질 때까지 계속 씻어내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양동이에 담았다.
뷰리가 가져온 주방세제를 양동이에 뿌려 넣고는 집에서 흘러 내러오는 민물을 받아 담궈 두었다.
그곳에는 각종 원석과 수정, 심지어 운석도 눈에 띠었다.
아무 소용도 없는 철판 조각과 플라스틱 조각, 캔 뚜껑 등도 함께 들어 있다.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골라내고 아주 깨끗하게 몇번을 씻었다.
‘이제 냄새는 안 나겠지.’
이 정도라면 상당한 값이 나갈 것이다.
운석 중 하나는 희귀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두꺼비를 닮아 특이한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것도 아마 수석으로 팔리면 값이 더 나가겠지?’
상준은 씻은 원석과 수정 및 운석 등을 요트에 실어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저씨, 오늘은 뭐하실 거예요?”
“이젠 바다에 나가도 다른 괴물들은 없겠지?”
“설마 또 있으려구요.”
그럼 요트를 타고 중산에 좀 다녀오자.
“뭐하시게요?”
“너 신분증 하나 만들자.”
“어떻게?”
“섬에서 태어나 출생신고를 못했다고하면 정식으로 네 호적을 만들어 줄 거야.”
결국 상준은 뷰리를 데리고 중산시에 가서 새호적을 만들었다.
주소지는 죽순섬으로 잡아두었다.
성명(천뷰리), 나이(만 18세). 성별(여). 주소(중산시 진호동 죽순도 2번지). 할아버지 주소의 옆집으로 신고하였다.
이것이 바로 새로 만들어진 뷰리의 신상이었다.
담당자는 뷰리의 지문을 조사해 보니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과 뷰리에게 자세한 내용 등을 꼬치꼬치 물어보고 할아버지의 사실 확인서와 상준의 확인서를 사진과 함께 제출하였더니 모든 것을 일사천리에 해결해 주었다. 일주일 뒤에는 주민등록증이 발급된다 하였다.
은행에 가서 통장도 개설하고 신용카드도 발급도 신청하였다. 일단 상준은 뷰리의 통장에 300만원을 입금하였다.
죽순도에 돌아온 상준은 다시 괴물 크라캔의 훈련에 들어갔다.
“사람은 네 먹이가 아니다. 넌 바다고기와 해초를 먹고 살아야 한다.”
“너 이름은 크라켄이다.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와야한다.”
“알았으면 눈을 깜빡해.”
거짓말 같은 사실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루종일 훈련을 한후 상준은 뷰리에게 크라켄을 묶어두었던 와이어를 풀어주라 부탁하였다. 혹시 상준은 크라켄이 뷰리에게 해를 기칠까봐 눈을 떼지않고 지켜보고 있었고 뷰리가 접근하자 놀라는 눈치를 보이던 크라켄이 이내 잠잠해 졌다.
뷰리도 다소 겁은 났으나 상준의 훈련과 지시에 따르는 크라켄의 행동을 보고는 마음이 놓이는지 침착하게 일을 잘 수행하였다.
“넌 배가 고플테니 바다에 돌아가 먹을것을 챙겨먹고 여기에 대기해라.”
상준의 말이 끝나자 크라캔은 조용하게 바다로 사라졌다.
상준은 뷰리를 데리고 운동을 할 겸 선착장에 들러 요트를 점검하고 갯바위에 앉아 명상을 하였다.
그러고 난 후 상준은 섬의 정상으로 뛰어올랐다. 노인이 가끔 산행을 하는지 정상까지 오솔길이 나 있었다. 뷰리는 영문을 모르고 상준이 뛰자 같이뛰었다.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왜 갑자기 뛰어요.”
상준의 뒤를 따라오며 뷰리는 물었다.
“이것이 바로 운동이야. 스쿠버를 하려면 평소 체력관리를 잘 해야 하거든.”
정상이라 해봐야 해발 100m 가 조금 넘는 작은 산이었으니 운동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정상에 다다른 상준은 맨손체조를 한후 발차기를 비롯하여 기마자세 정권지르기, 허리 굽혀 펴기, 몸통 돌리기, 푸샵(푸시 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운동을 보충하고 줄 없는 줄넘기 등으로 마무리 하였다.
“아저씨는 참 재미있는 분이세요.”
“야, 임마, 이건 운동이야. 체력단련이라고.”
“아무튼.”
상준은 하산할땐 뷰리를 등에 업고 집까지 내려왔다. 뷰리의 발목은 뛰는 것으로 봐서는 이상이 없어 보였고 피부만 울긋불긋 멍이 들어있었다.
상준은 뷰리를 대신해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였다. 먼저 텃밭에 가서 고추와 오이 등을 따와 서 잘 씻어둔 다음 참돔을 장만하여 회를 떴다. 그리고 세 개의 그릇에 밥을 퍼 넣은 다음 준비한 참돔회를 갈라 푸짐하게 넣었다. 그리고 오이를 총총 썰어 골고루 넣은 다음 양파를 채로 썰어 같이 넣었다.
마지막으로 다진 마늘을 넣어 고추장과 식초, 설탕으로 새콤달콤하게 만든 초고추장을 뿌리고 볶은 참깨도 살짝 뿌린후 밥상에 올렸다.
“저녁 식사 합시다.”
할아버지와 뷰리가 마루로 나오자 밥상을 내어놓았다.
“먼저 회 덮밥을 먹을 분들은 그냥 숟가락으로 잘 섞어서 드시면 되고요, 물회를 드실 분은 여기 있는 물을 조금 부은뒤 잘저어서 드시면 됩니다.
상준은 먼저 물을 조금 부은 다음 젓가락으로 충분하게 젖어 주었다.
“음, 맛있다.”
상준은 먼저 시범을 보이자 할아버지와 뷰리도 물회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아저씨. 맛있어요.”
평소 식당에서 물회를 먹을 때는 회는 별로 보이지 않고 채소만 가득했는데 오늘은 참돔회를 푸짐하게 넣었으니 맛이 있을 수밖에.
노인과 뷰리도 맛이 있는지 음미하는 듯 맛있게먹었다.
“젊은이. 좀더 먹어도 될까?”
“네, 더 드세요.” 이번엔 할아버지는 회 덮밥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거 정말 맛있다.”
“와~ 맛있어요. 아저씨.”
그들은 상준의 요리에 환호하며 즐거운 저녁식사를 즐기게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상준은 흐뭇하였다.
저녁을 먹고 낚싯대를 챙겨 선착장으로 나갔다. 이제 상준의 옆에는 늘 뷰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뷰리는 매우 영리했다. 할아버지께 한글을 배웠고, 숫자 개념도 이해하였으며, 어느 듯 곱셈과 나눗셈 까지 모두 익혔다. 영어와 중국어는 글은 잘 쓰지 못했으나 어느 정도의 회화는 가능한 것 같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일찍 훈련을 시킨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몇 마리의 가자미와 우럭을 잡아두고 실험을 해보았다.
“크라켄, 어디있어?”
상준은 바다를 향해 조용히 불러보았다.
한참 후에 선착장 가까이서 크라켄의 머리가 물속에서 올라와 눈을 껌벅이며 쳐다보고 있었다.
상준은 잡은 가자미를 크라캔에게 던졌더니 다리를 뻗어 받아먹었다.
“잘했어.” 상준은 칭찬과 함께 박수를 쳐 주었다. 뷰리도 옆에서 상준을 따라 박수를 쳤다.
그런데 이놈이 서서히 상준이에게 접근을 하였다.
“너 왜그래. 거기에 멈춰.”
크라켄은 긴 다리를 뻗어 주먹만한 보석 원석을 상준의 앞에 던져 놓았다.
“너 정말 영리하구나.”
크라켄은 낮에 자신이 토해낸 구토물에서 상준이 골라내는 보석 원석을 보아둔 것 같았다.
“고맙다. 다시가서 쉬어라.”
상준은 남은 물고기를 다시 던져주었다.
섬 주위에는 육지에 비해 물고기가 많은것 같았다. 참돔이랑, 우럭, 가자미 등이 많이 올라왔다.
“아저씨, 저랑 여기에서 살면 안돼요?”
“또 그 소리. 난 할일이 많다고 했잖아. 네가 꾸준하게 단련을 해서 육지생활에 적응하게 되면 가까이 와서 살도록 해. 넌 육지에 오기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살 수 있을 거야.”
그날 밤도 상준은 뷰리와 함께 바다로 유영하는 꿈을 꾸면서 행복한 죽순섬의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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