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크라캔 길들이기(1)
* * *
“자, 이제 올라가자.”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상준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상준의 체구에 비해 너무나 작고 왜소한 몸집이었다.
몸무게를 보면 많이 잡아도 45 Kg 정도 밖에 안될 것 같았고 키도 불과 160 Cm는 될까?
거목에 붙은 매미 같다고나 할까.
사람이 귀한 외딴 섬에서 노인과 살고 있는 바다 소녀.
늘 외롭고 쓸쓸할 것이었다.
이 많은 사람 중에서 아는 사람이 오직 둘.
상준은 자신이 매둔 요트가 마땅한 장소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바람이 불어 파도라도 친다면 불안하기 그지없기 때문이었다.
'그래 요트를 이곳으로 옮겨두자.'
비록 오래된 작은 항구이기는 하나 파도를 피해 요트를 정박하기엔 안성맞춤인 것 같았다.
“너 요트타고 섬 한바퀴 돌아 볼래?”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저씨.”
상준은 뷰티를 태워 천천히 섬을 한바퀴 돌아본다.
"넌 고등 잡을 때 섬 뒤쪽에도 가본 일이 있어?"
“아니에요. 주로 집 아래쪽에서 잡곤 했어요. 이렇게 멀리 나오지는 못했어요."
“그랬구나.”
"아저씨, 저 바위 좀 보세요."
뷰티가 가리키는 곳에는 촛대모양의 바위였다.
촛대와 비슷한 모양이긴 하지만 섬 이름이 죽순도이다.
큰 바위 하나가 해안 가까이에 우뚝 솟아있었다.
'그럼 저게 죽순?'
“저것 때문에 이곳을 죽순도라고 부르게 됐구나.”
상준은 요트를 몰아 옛날 이곳 섬 주민들이 사용하던 작은 항으로 들어서서 요트를 정박해 두었다.
섬이 작다보니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선착장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되었다.
"우리 내일 죽순도 주변 탐사 어때?"
"저야 좋죠. 아저씨와 같이하면...."
뷰티는 생각했던 것보다 바다 탐사를 한다하니 매우 좋아하였다.
다음 날 아침 상준은 스킨스쿠버다이빙 준비를 하여 뷰티와 함께 바다속을 관찰하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갔다.
스킨스쿠버다이빙을 하려면 사전 준비에 유의할 점이 많이 있다.
교육을 받을때 그렇게 받았고 본인도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다이빙을 할 장소에 지형지물 및 상태를 파악한뒤 충분한 준비운동으로 최적의 신체 상태를 유지하여야 한다.
상준은 운동을 하면서도 뷰티에게 준비운동을 충분히 하도록 유도하였다.
처음 맨손 체조를 해보는 뷰티는 퍽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늘 얼굴에는 미소를 짓고 등굽히기 운동과 윗몸 일으키기 운동을 시킬 때는 깔깔거리고 장난을 치며 법석을 떨었다.
다음에는 뷰티의 신체가 다이빙에 무리가 가지 않은지. 기상 상태는 맞는지도 체크하고 준비한 장비를 점검하였다.
구조장비의 상태를 점검한 후 항상 자신과 눈을 맞추고 상대의 상황을 살펴보도록 가르쳤다.
그리고는 뷰티가 입은 잠수복 착용 상태와 웨이트 벨트가 뷰티의 부력에 정확한 량인지도 체크하였다.
마지막으로 상준은 자신의 허리에 매어둔 30cm의 비상용 단검을 확인하였다.
모든 것이 완벽한지 배운대로 하나하나 실천하였다.
“자, 입수하자.”
상준은 먼저 수중 유속상태를 확인한 후 천천히 헤엄을 치며 뷰티에게 따라 오라 손짓 하였다.
주변의 바다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적당한 바위들과 아름다운 수초들.
그 사이로 흐르는 잔잔한 조류와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의 세계를 연출하고 있었다.
뷰티는 간혹 눈에 띄는 소라와 전복을 잡아 그물바구니에 담으면서 상준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섬 주위를 돌아보고 바다속의 지형도 관찰하였다.
산호가 자라고있는 해저 절벽에서는 각종 해조류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물속 탐험을 계속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뒤늦게 상준은 뷰티를 돌아보고 돌아가자는 수신호를 보내었다.
뷰티도 두 팔로 원을 그리며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귀여운 것.'
뷰티도 상준을 따라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뷰티가 딴 그물바구니를 받아들고 유유히 헤엄쳐 출발지역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뷰티는 아저씨와 함께 이렇게 바다속을 함께 잠수하며 자유롭게 탐색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행복하였다.
출발 지점에 거의 왔을 무렵 상준은 갯바위에 올라서서 뒤돌아보았다.
그런데 뷰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뭐지?'
순간 불길한 예감이 상준의 머리를 강타하고 있었다. 바구니를 집어 던지고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만 기절초풍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붉은 섬광을 뿜어내는 대형 크라캔이 뷰티의 다리를 휘감고 있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빼어들고 뷰티의 몸을 휘감고 있는 크라캔의 다리를 가차 없이 찔렀다.
그러나 크라캔의 다리가 워낙 굵고 큰 탓에 상준의 칼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상준은 초인적인 힘으로 괴물과 사투를 벌이면서 겨우 뷰티를 빼내 물 밖으로 밀어올렸다.
언제 내러 오셔서 기다렸는지 할아버지가 바위에 서서 뷰티의 손목을 잡고 당겨주었다.
뷰티는 물을 먹고 캑캑거리며 입으로 물을 토해낸다.
상준은 빨리 밖으로 올라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 크라캔의 다리가 상준의 다리를 휘감고 물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아저씨!"
뷰티는 물속으로 끌려가는 상준을 보며 기겁을 하였다.
그의 본능은 초인적이었다.
놈의 다리와 몸통을 베고 찌르면서 사투를 벌이다 순간 섬광을 뿜어내는 대형 크라캔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 이놈. 내말 듣는 놈인지 시험부터 해보자.'
"야, 일단 기절이라도 좀 해 봐.’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상준의 몸을 휘감고 있던 크라캔이 스르르 몸을 풀면서 진짜 기절을 한 것처럼 온순한 모습으로 가라앉는다.
‘그럼 그렇지. 섬광을 가진 놈은 모두 내 말을 듣게되어 있잖아?’
상준은 재빨리 물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심호흡을 하였다.
"아저씨!"
"젊은이!"
죽순고 해안이 갑자기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뷰티는 상준에게 뛰어와 그의 품에 안겨 울음을 떠트렸다.
“할아버지 혹시 튼튼하고 굵은 밧줄 없으세요?”
할아버지는 창고에 가면 철사로 만든 와이어가 있다고 하였다.
상준은 재빠르게 다이버 옷(슈트)을 벗어버리고 쏜살같이 달려가서 와이어를 메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와이어를 풀어 크라캔의 목에 감아 맨 뒤 줄 하나든 놈의 다리사이로 빼내어 다시 목을 감았다.
그리고는 기둥처럼 올라온 큰 바위에 고리를 만들어 걸어두었다.
“휴, 이젠 됐다. 너 맘대로 해봐라.”
상준은 그제야 물에서 나와 할아버지가 땅위로 올라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넌 이제 내 말 안 들으면 죽을 줄 알아.”
뷰티는 다시 상준에게 안겨 훌쩍거렸다.
“뷰티, 이제 걱정 안해도 돼.”
상준은 뷰티가 따온 그물바구니를 팔뚝에 걸고 뷰티를 등에 업었다. 그 모습을 보고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그물바구니를 받아주셨다.
상준의 등에 업힌 뷰티는 상준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아직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할아버지 표정도 정신이 없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하자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셨는지 상준을 보며 더듬거리며 물었다.
“자네, 어떻게 된 일이야?”
“저 놈은 크라캔이란 놈입니다. 저 놈이 뷰티를 공격하여 뷰티가 위험할 뻔 했습니다.
“뷰티. 괜찮아?”
그제야 뷰티는 겨우 얼굴에 화색이 돌아오면서 발목이 아프다고 하였다.
상준은 요트에 가서 구급상자를 가지고 와서 약을 발라주고 붕대도 감아주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우리 배가 고픈데 점심이라도 먹자.”
상준이 웃으면서 뷰티를 바라보니 두 사람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고만 있었다.
뷰티가 쓰는 주방으로 들어가 밥을 하고, 고기도 굽고, 방금 잡아온 전복과 소라를 삶아 밥상을 차려 툇마루로 나왔다.
“이제 식사합시다.”
뷰티와 할아버지는 입맛이 없으신지 몇 숟갈 먹지않고 숟가락을 놓았지만 상준은 공기밥 두 긄을 거뜬히 해치웠다.
“저 놈을 어쩔 건데?”
할아버지는 걱정이 되시는지 식사를 하고있는 상준에게 근심스런 표정으로 물으셨다.
“예, 저가 저놈에게 훈련을 시키서 이용을 좀 하려고요.”
상준은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세상에 호랑이는 잡아 훈련을 시킨다는 건 들어 봤지만, 문어를 훈련시킨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어.”
“그러시겠죠. 그래도 전 시킬 겁니다.”
식사를 하고난 뒤 상준은 놈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다시 바닷가로 내러왔다.
놈은 의식이 돌아와서 축구공만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바위에 몸을 칭칭 감고있었다.
“눈감아!”
신기하게도 크라캔은 상준의 말을 알아 듣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넌 이제 내 말 안 들으면 바로 죽은 목숨이야.”
이때 할아버지도 상준이 다시 바다사로 내러가자 참지 못하고 뷰티와 같이 바닷가로 다시 내러 왔다.
"....?"
멀지막이 앉아 상준의 하는 모양을 보고 있었다.
이제 웃음이 나오는 듯 했다.
“한발 들어.”
“두발 들어.”
“모든 다리 다 들어.”
크라켄은 바위에서 미끌어져 바다에 풍덩 빠졌다.
이때부터 상준은 크라켄 교육에 전념하였다.
“물 밖으로 나와.”
“물 안으로 들어가.”
“엎드려.”
“일어서.”
점심을 먹고나서 오후 내내 크라켄의 훈련에만 집중하였다.
“뷰티야. 발목 한번 보자.”
상준은 휴식을 하면서 뷰티의 발목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뼈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고 크라켄의 빨판에 발목 부위가 반점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자고나면 괜찮을 거야.”
“그때는 죽는 줄 알았어요.”
시간만 지나면 이상이 없으리라 판단되었다.
그날 밤 뷰티는 기어이 상준을 자기 방으로 끌어들여 함께 자기를 애걸하였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고도 하였다.
몇 번에 걸친 뷰티의 간청을 듣고 할아버지는 상준더러 뷰티의 방으로 건너가라 허럭을 하신다.
“뭐, 어때 젊은이.”
".....?"
“둘이 서로 가까운 사이가 아닌 가? 괜히 내 눈치 볼것 없어.”
“그런 것 아니에요.”
“어차피 저애, 자네가 데려 왔잖아. 같이 가서 자.”
상준이 뷰티의 방에 들어가니 향긋한 바다 냄새가 풍겨 나왔다.
뷰티는 죽순섬 작은 방에 상준의 잘곳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 그 옆에는 자신의 침구도 마련해 두었다.
“너 왜그래, 할아버지 보시기에 이상해 보이잖아?”
“무슨 뜻인지 알아요. 그일 생각나면 너무 무서워요. 아저씨와도 같이 자고 싶었고....”
“그래, 어째든 오늘 고생했다. 바다 탐험하려다 큰일날 뻔 했다.”
“난 아저씨가 괴물에게 끌려가는 것 보고 기절할 뻔 했어요.”
“그랬겠지. 나도 놀랐으니까.”
뷰티는 잠시 후 상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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