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죽순도 금발소녀 뷰티(2)
* * *
“푸드득, 푸드득.” 날개짓이다.
이것이 놈의 반응이었다.
있는 힘을 다래 요트 위로 올려보니 중형은 넘는 개복치였다. 길이가 1m. 무게는 약 60kg 정도. 보통 개복치는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가 몸 뒤쪽에 서로 마주보고 있다. 가슴지느러미는 작고 배지느러미는 없다. 피부는 두껍고 양가죽 같다. 몸 빛깔은 등면이 푸른색이고 배면이 회색빛과 흰색이며, 몸에는 반점이 없다.
그런데 이놈은 모양부터 다르다. 등지느러미는 아예 없고 두 개의 대형 옆 지느러미가 몸통 중앙 양편에 마주하고 있으며 가오리 날개 모양으로 퍼덕일 뿐이었다. 꼬리가 짧고 뭉텅한 것은 큰 차가 없어 보였다.
온대성 어류로, 보통 바다의 중층에서 헤엄쳐 다니지만 하늘이 맑고 파도가 없는 조용한 날에는 수면 위에 등지느러미를 보이면서 천천히 헤엄치거나 뜨기도 한다. 주로 접근해 오는 해파리 등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준은 식칼을 꺼내 엄청남 크기의 배를 갈랐다. 엄청나게 많은 내장속에서 그놈이 삼킨 외계에서 온 보석 원석 덩어리를 모두 채취하고 애와 와 쓸개를 꺼내 별도 보관하였다. 소중한 한가지는 가죽과도 비슷한 등껍질을 벗겨 갑판위에 말리고 부채처럼 생긴 양쪽 지느러미에서 상아판을 뽑아내었다.
고기는 모두 두부모양으로 잘라 아이스박스에 보관하였다. 이것을 삶아 숙회를 만들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그 맛 또한 일품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있던 중에 어디선가 사람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을 살펴봐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일을 집중하려는데 “아저씨.”라고 하는 작은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
순간 상준은 잠시 헷갈렸다.
하던 일을 멈추고 랜턴을 찾아 사방으로 비춰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뷰티가 분명한데.’
“부티, 부티야?”
“예, 아저씨.”
“어디야?”
“섬에 있어요.”
그제야 상준은 무인도를 주시하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래도 보이지 않았다. 상준은 시동을 켜서 무인도로 접근하였다.
“저 어때요?”
해안에 도착하자 갯바위에 올라선 뷰티가 보였다. 자신이 선물한 여고생 교복스타일의 짧은 소매와 짧은 치마를 입고있었다. 상준이 봐도 꾀 잘 어울리는 복장같았다. 상준은 본능적으로 엄지 척을 해보이며 단화를 가지고 뛰어내렸다.
“이것도 신어봐.”
그녀는 너무나 좋아하였다.
“오빠. 저 이런 옷 정말 입어보고 싶었어요. 맨날 수영복만 입고 살아서.”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근데 너 나와 나이차이가 많아. 오빠 아니고 아저씨거든.”
“오빠가 좋은데.”
“까불지 말고.”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상준의 고민은 그녀를 언제나 바다에 홀로두면 되느냐 였다.
‘내가 너무 오지랖이 넓은건가?’
“단화 어때요?”
“응, 그러니 꼭 여고생 같아.”
“그렇죠?”
진심 상준도 그녀의 나이에 꼭 알맞은 모습처럼 보였다. 상준은 다시 요트에 올라 준비해간 간식을 내어놓았다.
빵과 사이다였다. 간식을 먹는 뷰티를 보면서 담배를 피우며 그녀의 의견을 다시 물었다.
“너 육지에서 사는것 생각해 봤어?”
“그건 안될것 같애요.”
“그건 왜?”
“전 육지 생활을 너무몰라요. 또한 바다가 좋고.”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바다를 떠돌아다닐 수는 없잖아.”
상준의 생각은 뷰티는 그냥 사람이란 생각만 들 뿐이었다. 바다에 사는 것은 아닌것 같았다.
“그건 아니에요. 돌고래가 바다에 사는 것과 같아요. 그것이 제 삶인 걸요.”
“그런가? 그러면 너가 너무 힘들것 같은데?”
“저는 간혹 외로움은 느끼지만 바다에서 유영하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행복할 것 같아요. 만약 같이다닐 친구만 있다면.”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공감도 생겨났다. 원래부터 바다에서 살아왔으니.
“그러나 아저씨. 저도 어디 쉴곳이 있으면 무척 좋겠어요.”
“쉴 곳?”
“편안하게 앉아 쉬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잠도 잘 수 있는 일정한 쉼터 같은 곳.”
“그건 그렇겠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그런곳 없을까요?”
상준의 머리에 죽순 바위섬이 머리를 스쳐갔다. 왕거북섬 넘어 홀로 외롭게 살고계시는 노인이 있는 섬.
“너 혹시 죽순 바위섬 알아?”
뷰티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상준은 생각했다. 그곳에 가면 할아버지도 계시고 외롭지도 않을 거고.
상준은 뷰티에게 죽순 바위섬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곳에 살면서 바다도 드나들고 전복과 조개도 마음대로 따먹고, 미역과 파래, 다시마도 풍부하고, 그녀에게는 꼭 맞을 것 같은 적절한 곳 같았다.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세요?”
“아주 좋은 분이시지. 아마 뷰티를 많이 사랑해 주실거야.”
“그럼 한번 가봐요.”
결국 뷰티는 상준을 따라 죽순 바위섬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고 할아버지도 뷰티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상준과 노인은 뷰티가 거처할 방을 정해 깨끗하게 정리하고 생활에 필요한 주방 용품과 가재도구는 요트에서 사용하던 것을 모두 내어 주었다. 사랑채에는 할아버지께서 사용하시고 큰 채는 뷰티가 쓰도록 배려해 주었다.
할아버지도 무척 좋아했다. 뷰티가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으시고 손녀처럼 따뜻하게 보살펴주셨다.
‘말못할 사연이 있는 아이겠지.’
뷰티는 오히려 각종 어패류와 해초를 따서 할아버지께 나누어 드리고 종종 바다에서 유영을 하며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휴식처를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 뷰티는 틈틈이 할아버지와 대화도 나누고, 낚시도 하고, 산나물도 캐면서 외롭게 떠돌던 집시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며칠을 함께 보낸 상준은 뷰티가 점점 섬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섬에서 잡은 괴물고기와 원석도 여러개 확보하였다.
“뷰티. 난 이제 돌아가야 해.”
“벌써?”
“나도 내 생활이 있잖아.”
뷰티는 눈물을 찔끔하며 아쉬워했다.
“뷰티. 넌 이제 자유인이야.”
“고마워요. 아저씨.”
“넌 언제라도 너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
“......”
“육지로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도 돼. 바다로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도되고.”
“아저씨는 이제 안오시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 이제 내 마음도 많이 편해졌어. 한번씩 올 거야. 필요한 것 있으면 구해올 것이고.”
상준은 섬을 떠나면서 뷰티를 손을 꼭 쥐어주었다.
“아저씨 자주 와야 해?”
[금발의 바다소녀].
그녀를 남겨두고 상준은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즉시 요트에 필요한 걸 다시 보충하였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뷰티에게 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보아 추가로 필요한 것을 모두 챙겨서 다시 섬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뷰티를 두고 천천히 요트를 몰아 어느 무인도를 지나치고 있는데 무인도 갯바위에서 거대한 검은 물체가 물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저건 뭐야? 내가 잘못 봤나?“
그때 물결이 갈라지며 요트를 향해 접근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때는 무조건 줄행랑이 최고지.’
상준은 미처 확인해 볼 겨를도 없이 전속력을 내어 요트를 몰았다. 그 뒤로는 알 수 없는 거대한 물체가 요트를 따라 오는 것 같더니 서서히 물결이 사라지고 없었다.
‘뭐지?’
상준은 약간의 공포심을 느꼈으나 곧 잊어버렸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다슬의 문자가 날아와있었다.
[오후 6시. 진주터미널 도착 예정]
상준은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시간에 맞춰 진주로 출발했다.
‘다슬을 만나면 뭐부터 하지?’
차를 몰면서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설레었다.
상준은 처음 다슬이를 봤을 때 넋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멍하니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반쯤 정신을 잃은것 같았다. 너무나 아름다워 숨이 다 멎는 것 같았다.
‘제 눈에 안경. 그것 이었을까?’
그동안 상준은 마음속으로 그녀를 몇 번이나 범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던 애를 쓰면서 그녀로 인해 상처를 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자신이 탐낼 수 없는 그런 존재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에게 왔다.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을 것 같다. 한때 상준은 그녀를 보면서 이성을 잃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루 빨리 그녀가 이성을 되찾기를 기다려 왔고 결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의 시간과 기회를 줬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에게 남았다. 자신을 스스로 행운아라 여겼다.
다슬이 버스에서 똑똑 내려 상준에게 다가온다. 입가엔 온통 수선화 같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냥 상준은 그녀를 꼭 안았다. 예견치 못한 상황에 다슬은 당황했다. 남들이 보고있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돌발적인 상준의 행동이었다. 상준이 결코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에 더 당황하였다.
“오빠.”
“고마워.”
상준은 다슬의 캐리어를 챙겨 차에실었다.
“일단 저녁부터 먹고.”
“진주는 그쪽에 맛 집이 많던데?”
“그쪽 어디?”
“촉석루 뒤편요.”
상준은 촉석루 부근으로 차를 몰아 일단 촉석루 주차장에 주차하였다.
“뭐 먹을래?”
“오빠. 내가 쏠께. 여기까지 마중 나와 주었는데.”
“아냐. 넌 다음에. 오늘은 내가. 사실 며칠 동안 한건 했거든.”
상준은 다슬을 데리고 스테이크 전문집으로 들어갔다.
“오빠. 여긴 꽤 비쌀 텐데?”
“음, 술도 한잔해야지.”
상준은 비프 스테이크와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자리에 앉은 다슬은 식인 날치 이야기를 거 냈다.
“오빠, 해수욕장 날치 사건 영상 봤거든.”
“봤어. 오빠 멋있지?”
“근데, 나 조머조마 해서 죽을뻔 했어.”
“재미난 건 아니고?”
“오빠가 파이프로 날치를 막고, 치고 할땐 아유.”
“그래? 난 재미있었는데.”
상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포음을 잡았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정말 전멸시킨 거 맞아요?”
“아마.”
“동네 어민들 좋아했겠다.”
“아직 다 잡았다는 걸 믿을 수 없나봐. 조업을 미루는 어민들이 많거든.”
상준은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았고 그 사이 주문한 식사가 배달되었다.
“위하여!”
와인글라스를 부딪치며 상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슬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준의 미소가 보고 싶어 다슬은 그를 만나고 싶은지도 모른다. 가슴이 뛰는 것은 상준도 마찬가지였다.
“오빠, 희진이 있잖아.”
“응, 왜?”
“정말 동생할거야. 친동생 처럼?”
“응, 희진은 내동생이야. 난 그 애를 너만큼 사랑해.”
다슬은 예쁘고 착한 희진이가 마음에 걸리는 건 사실이었다. 또한 약간의 질투도심도 생겨났다. 혹시 오빠가 여자로써 희진을 가까이 하지 않나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오빠와 희진은 업무 관계로 늘 가까이에 머물고 있으니...
“다슬아, 너 다른 생각하면 안돼.”
“그게 아니고, 오빠.”
“너도 나처럼 희진이 아껴줘. 우린 남매야. 아마 전생에서 남매였을꺼야. 틀림없어.”
“알았어. 오빠. 나도 노력할게.”
“고맙다.”
“자, 한잔 더.”
그들은 와인 잔을 부딪치며 신뢰감을 쌓아갔다. 그들이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는 저녁 아홉시 무렵이었다.
“그래, 그런것 같아. 그래서 더 측은하기도 하고.”
“우리 촉석루에 올라 좀 쉬었다 가요.”
“그래, 사실 술기운도 있고 바람 좀 쉬고 가는 것도 괜찮겠지.”
와인 몇 잔에 약간의 술기운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문 닫을 시간이 한 시간 밖에 안 남았네.”
그들은 촉석루에 올라 멀리가지 않고 주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준은 남강을 바라보며 생각해 보았다.
외부에서 괴물고기가 유입되었다면 민물에도 돌연변이 괴물이 있지 않을까?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단지 민물은 다른 나라와 차단되어 있어 직접 우리나라에 떨어지지 않는 이상 존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바다는 다르다. 세계 어느 해역에 괴물이 존재해도 다 통하기는 쉬울 것이다.
‘언젠가는 민물에도 도전해 봐야겠지?’
큰 댐이나 큰 강이라면 괴물민물고기가 있을 수도 있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