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죽순도 금발 소녀 뷰티(1)
* * *
인기척이 있어 눈을 떳을 땐 열시가 다된 늦은 시간이었다.
“오빠, 일어났어?”
“넌 잘잤어?”
“마음 놓고 푹자고 일어났어요. 그것도 좀 전에.”
“잘했어. 잠을 푹 자야해. 그래야 건강에도 좋아.”
방송에서는 식인날치에 대한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빠. 나 동영상 찍었어.”
“......?”
“해수욕장 날치. 오빠도 촬영했어.”
“와, 너 언제 동영상까지.”
“싸이렌 소리 듣자마자 카메라 챙겨 뛰었거든. 뭔가 있을 것 같아서.”
희진은 상준과 협의하여 KBN 방송국 김진철 기자에게 제보를 하였다. 인터넷 방송에 게제하면 짭짤한 수익이 보장되겠지만 그보다 지상파에 단독제보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가지 않아 목격자 인터뷰, 날치와의 일전 소감, 마지막으로는 해자도 인근에서 날치 떼를 전멸시킨 내용까지 상세하게 보도되었고 제작자 희진이도 유명인으로 뜨게 되었다.
몇몇 방송에서는 해자도 인근 해역에 날치 떼의 주검이 목격되고 있다는 후발 보도가 나와 상준의 제보를 뒷 밭침 해 주었다.
공중파, 지상파 방송과 유명 신문사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으나 정중하게 모두 사양하였다.
“오빠, 뉴스 봤어요?”
다슬이었다.
“이번 휴가 때는 가지 않으려 했는데, 또 가야겠어요.”
“너 너무 힘들잖아.”
“아무리 그래도 안 가는 것 보단 덜 힘들걸.”
“그럼 운전하지 말고 고속버스로 와. 나 데리러 갈게.”
“네, 오빠.”
상준은 다슬의 전화를 받고 보니 마음이 설레었다.휴가를 떠난 신 팀장도 축하전화가 왔었다.
“오늘 저녁에 7시경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래,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와.”
신 팀장은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안타까워했다. 식인 날치의 모습을 볼 기회를 놓쳤다고.
“걱정 마. 최 주무가 촬영 성공했데.”
“그렇습니까. 최 주무 역시 짱이네요.”
“그래, 나중에 보자.”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전화가 왔다. 업체를 포함하여 민수, 보라에게서도 연락이 오고 어머니의 전화도 받게 되었다.
“이런 것이 사는 것이구나.”
상준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짜릿한 흥분을 느끼면서 행복이란 단어를 떠 올려 보았다.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
신 팀장은 소현이와 함께 목포로 향했다. 처음엔 신 팀장의 데이트 신청을 매번 피하다가 상준 오빠가 마련한 해수욕장 휴양소에서 함께 시간을 내게 되면서 신 팀장에 대한 신뢰감이 생겨났고 노래방과 신 팀장의 사무실에서 희진과 함께 어울리다 보니 둘 사이는 급격하게 가까워진 것 같았다.
사실 신 팀장도 사람이 반듯하고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착실한 청년이었다. 배려심도 남다르고 업무 능력도 뛰어나 인정도 받고 무엇보다도 여성들을 존중하고 친절하였다. 성격이 소탈한 소현은 아직 뚜렷한 남친도 없고 상준에게 잠시 마음이 갔으나 그는 좀처럼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방학이 며칠 남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가지 생각으로 착찹하던 마음이 신 팀장의 구애가 먹힌 셈이었다.
처음엔 해수욕장에서 그리고는 그 후 인근 어촌마을 둘레길을 걸으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게 되었고 커피숍과 경양식집. 피자집을 드나들며 믿음을 쌓아갔다.
그를 즈음 신 팀장은 소현을 영화관에 초대하였고 영화를 본 후 본격적인 데이트를 즐기게 되었다.
“소현씨, 우리 여행 한번가요.”
결국 소현은 신용만을 따라 1박 2일 계획으로 목포를 다녀왔다. 유달산 입구 노적봉과 시민의 종각을 둘러보고, 삼학도와 이난영 공원을 둘러 본 뒤 인근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압해도와 운남을 거쳐 돌아왔다. 아쉬운 점은 목포 해양 케이블카의 완공이 내년 봄으로 미루어져 계획이 약간 빗나갔을 뿐이다.
목포해양 케이블은 유달산에서 고하도 잇는 3Km가 넘는 국내 최장거리라고 안내판에 나와 있었다. 내년 봄에 다시 오기로 약속하였다.
상준은 저녁이 되자 다시 해자도로 출조하였다. 해자도 부근과 진호해수욕장 일대는 그런대로 낚시에 재미를 더해준다.
이 지역은 상준을 실망시킨 적은 한번도 없다. 일반 물고기도 올라오지만 괴물고기도 수시로 올라온다. 지난 번 유성의 효과인진 몰라도 국내 어느 곳보다 매력있는 곳이다.
늘 그러 했듯이 오늘도 해자도 앞바다에 닻을 내렸다가 소식이 없자 평소보다 더 멀리 진출하였다. 해자도에서 약 10해리 정도, 주변엔 작은 무인도가 몇 개가 있는 곳이다.
낚시채비를 하고나니 어느새 시간이 아홉시를 넘어섰다. 뷰테에게 줄 신발을 살펴보며 혹시라도 뷰티가 나타나질 않을까 은근 기대를 해 보았다.
올라온 어종은 해자도 인근과 별반 차가 없었다. 우럭과 볼락, 게르치가 전부이고 물매기도 두 마리 건져 올렸다.
신호가 울려 전화를 받았더니 주인집 아주머니였다.
“총각 지금 낚시하는 중이야?”
“네, 아주머니께서 이 시간에 웬일로?”
“총각, 내 이것 받아도 되나 몰라.”
“무슨 말씀이세요?”
“지난번 생일 선물로 준 보석 말이야. 이게 보통 비싼것이 아니던데? 총각 알고 있었어?”
“아, 네. 다이야 보다 10배쯤 할 걸요.”
“총각도 알고 있었네. 난 또 총각이 잘 모르고 이렇게 비싼 물건을 줬나하고.”
“걱정하지 마시고 아주머니 쓰세요.”
상준의 대답에 아주머니는 좀 안심이 되시는 것 같았다. 시내로 나가 감정을 받아보니 엄청난 가격에 놀라신 모양이었다. 값이 비싸니 부담도 좀 되었을 것이고.
그날도 중산 앞바다는 상준을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엄청난 크기의 괴물아귀가 또 올라왔다. 해자도 앞바다는 괴물아귀의 서식처처럼 보일지경이었다. 파란 보석 원석과 상아뿔을 선사하는 괴물아귀는 상준에게는 효자고기와 다름이 없었다.
일단 상아와 원식을 추출했다. 괴물아귀의 고기는 늘 저장하고 있다. 잘 씻은 다음 아이스박스에 담아 두었다. 냉동처리 할 계획이다. 얼마 전 잡은 고기도 보관해 두었다. 회사 건물 준공식때 하객들에게 제공할 계획이었다.
끝내 뷰티는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려니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어보니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방안 구서구석 어디 한 곳이 성한 곳이 없었다. 누가 봐도 상준을 잘 아는 사람의 소행이 틀림없는 것 간았다. 프로 낚시꾼의 집. 도둑은 과연 무엇을 노렸을지 뻔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혹시나?”
사무실 방에는 휴가를 다녀온 신 팀장과 희진이 있지 않는가?
상준은 방을 정리할 틈도 없이 즉시 사무실로 뛰어올라갔다. 사무실 출입문도 열려 있었다.
“역시나 였다.”
사무실 집기가 흐트러져 있었고 책과 서랍 등이 빠져나와 있었으며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이름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불길한 예감에 희진의 문을 열어보니 안으로 잠겨있었다. 일단은 다행이었다. 상준은 침착하게 표정을 바꾸어 희진의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이번엔 좀 더 큰 소리로 희진을 부르며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희진은 잠이 체 깨지도 않는 상태에서 빼꼼히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오빠?”
“괜찮아?”
“왜, 오빠. 무슨 일 있어?”
희진은 상준의 표정을 빤히 쳐다보다 기겁을 하였다. 그제야 사무실의 혼란 상태가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신 팀장.”
이번엔 신 팀장의 방문을 두드렸다.
여행에 지쳤는지 몇 번이나 문을 두드리고서야 신 팀장이 부스스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로?”
신 팀장 역시 깜짝놀랐다. 놀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괜찮지?”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둘 다 들어가서 자. 사람이 안다친 것만 해도 다행 아니야. 내일 일어나서 사무실 정리하고 일단 자자고.”
상준은 오래 전부터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놈이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계휴양소에서도 늘 주위를 기웃거리면서 엿보는 놈이 있었다. 괴물낚시 비법을 탐지하려는 자거나 그렇지 않으면 보석 원석을 노리는 놈일 꺼라 생각하고 있었다.
도둑이 들었다는 일 하나만으로 희진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빠, 여기서 자면 안돼?”
“신 팀장 있잖아.”
“내 숙소에도 도둑이 들었더라고. 낚시하고 오니. 그래서 여기 올라온 거야.”
상준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와 CCTV를 확인하였다. 고목나무 사이에 자신만이 아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것은 수족관을 다시 놓을 때 수족관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설치한 것이었다.
CCTV를 확인하였더니 상준은 예상은 꼭 들어 맞았다. 자신의 주변에서 늘 맴돌던 바로 그 놈이 분명했다.
신고를 하자는 신 팀장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얼마가지 않아 그놈은 분명 다시 나타날 것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정리하랴, 사무실을 정리하랴 오전 내내 바쁘게 움직였다. 다행히 큰 손실은 없었다. 보석을 노린 놈이라 평소 도난 예방에 신경을 많이 쓴 상준의 노력 탓에 귀중품은 도난당한 것이 없었다. 놈도 아예 다른 것은 훔치지않고 귀금속만 노린 것이 분명하였다.
도둑이 든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상준과 그의 직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상준은 자신의 주변을 맴돌던 놈의 인상을 생각하니 만약 다시 만난다면 알아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요트를 점검하고 연료도 보충할 겸 항구로 나갔다. 어민들 몇몇이 가게 앞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상준을 보자 자리를 내어주며 앉으라고 권했다.
“정말 우리 조업 나가도 괜찮을까요?”
“예, 날치 때문에 그러시죠?”
“이번 피해자가 한, 두명이 아니던데?”
“그런 것 같습니다.”
40중반의 어민이 먼저 물었다. 그러자 함께 있던 주민도 걱정이 되는 지 말을 받았다.
“자네가 모두 잡았다고는 하던데. 다 잡았는지는 모르잖아?”
어민들은 식인 날치가 다 잡혔는지 그것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바다에 돌아다니는 식인 날치를 어떻게 한꺼번에 다 잡을 수 있었는지 의문인 모양이었다.
“저도 어제 밤에 바다로 다시나갔는데 별 일은 없었어요. 실은 저도 잘은 모르죠.”
“하지만 오늘 밤에도 낚시하러 나갈 예정입니다.”
“아무튼 자네도 조심은 하게. 우리도 무작정 쉴 수는 없고 좀 더 지켜보다 나가야지.”
“그렇게 하십시오.”
“아무튼 고마워, 방송보니까 한결 마음이 놓이더라고,”
요트 정비와 연료를 보충하고 채비를 마친 상준은 어제 밤에 다녀온 무인도를 향해 키를 잡았다.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배는 새로운 기분을 선사하였다.
오늘은 꼭 만나서 준비한 신발을 전해주고 싶었다.
간밤에 일했던 그 자리에서 요트를 멈추고 조업에 들어갔다. 말이 조업이지 상준의 하는일은 낚시였다. 전업 어민 중에도 낚시를 가지고 조업하는 어민들이 상당수 있다. 어종에 따라 고기를 잡는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낚시를 던져두고 무인도를 살펴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가장 가까운 무인도와의 거리는 불과 100여 미터 안팎 정도였다.
작은 돌 문어를 걸어 올리고는 영 소식이 꽝이었다.
얼마를 지났을까?
상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엄청난 크기의 넓은 섬광덩이가 천천히 바다에서 유영을 하나 덥석 미끼를 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냥 유영을 계속했다.
직감적으로 이놈은 그냥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빨리 낚싯줄을 뱃전 거치대에 감아버렸다.
더는 멀리가지 못하고 요트 주변을 이리 저리 맴돌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때마다 상준은 거치대에 걸린 줄을 조금씩 당겼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이런 미련 곰탱이는 처음인 것 같다. 당기고, 멈추기를 수십번 한 뒤 드디어 놈이 요트에 붙었다. 상준은 갈고리를 이용하여 놈의 머리를 날까롭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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