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바다 여인(1)
* * *
상준은 짓고 있는 회사 건물의 지하를 둘러보고 설계에 맞게 제대로 했는지 점검을 한 후 주택 지하실도 살펴보았다.
지하실 일부에 설계 변경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보일러실의 크기를 많이 줄이고 칸을 잘라 냉동실 설치를 추가하였고 창고와 방의 수도 늘여놓았다.
설계 당시엔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종종 생겨난다.
아울러 곳곳에 CCTV도 추가로 설치하고 외등과 가로등도 확충하였다.
이제야 일이 마무리 되어간다.
회사 건물은 지상 4층, 지하 2층, 집은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완공이 되어가고 회사 주차장과 주택의 정원조경도 많이 진척 되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준공식을 거친 후 새 사무실과 새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솔밭 아래 계류장 설치도 건물의 완공에 맞추어 끝이 날 것 같다. 토지 매입은 비교적 싸게 구입하였으나 건축비와 조경비는 만만치가 않았다.
남은 땅은 텃밭으로 활용하여 필요한 것들을 길러보고 싶었다.
상준은 신 팀장과 희진을 불러 준공식 계획을 세우라고 했다.
일단 둘러보고 실내장식과 소요 비품과 가구를 구입하고 구입한 물품의 적절한 배치도 연구하라 일었다.
준공식을 하기 전 잡안 살림 이사를 먼저 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일이 적정 날을 잡아 간단한 준공식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당분간 너희들은 야외 활동에 참여하지 말고 준공식 준비에만 최선을 다해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희진아, 스킨스쿠버 교육에 대해 좀 알아봤어?”
“네, 몇곳을 알아 봤는데 자체 시설과 교육용 선박까지 보유하여 이론과 실습을 겸하면서 현장 체험까지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더라구요."
"응."
"[스킨스쿠버 대해 월드]라고 그곳에서 받으면 좋겠습니다.세명 이상이면 기본 교육을 받을 때는 방문 지도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
“그럼 당장 신청해. 주 2회 정도가 좋을 것 같다. 오후 시간에 맞춰서.”
“알겠습니다. 전화해서 협의해 보겠습니다.”
상준은 업체에 연락하여 그동안 모아뒀던 보석 원석과 괴물상아를 전량 매각 처분하고 거북 황금알만 남겨두었다.
그리고는 해인(바다 인간)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밤낚시 채비를 위해 보트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때 선실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선배.”
“응, 왔어?”
다슬이었다,
“언제 왔어?”
다슬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청순하면서도 지적미를 갖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심쿵하였다.
심장 박동 소리를 그녀가 들을 까봐 염려되었다.
웬지 그녀를 가까이 하면 또 다시 상처를 입게 되지 않을까 염려 때문이었다.
정포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상준은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순간의 감정으로 자신에게 접근하여 상처만 주고 떠나갈 사람이라 판단하였다.
“조금 전.”
언젠가 그녀는 오빠라고 부르더니 다시 호칭을 선배로 바꾸었다.
“지금 나갈 거예요?”
“어, 준비 되는대로.”
“그럼 나도 같이 가.”
“저녁은?”
“.....”
선실에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다음에 같이 가면 안되겠어?”
그녀는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꼭 다문 입술은 의지력 표현의 상징물처럼 보였다.
상준은 더는 그녀를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인근 편의점에서 저녁이 될 만한 몇몇 가지와 담배를 싸서 배에 올랐다.
요트 선실은 냉방 덕분에 기온이 제법 내러가 있었다.
‘오늘 밤에도 바다 여인을 만나 볼 수 있을까?’
바다에서 온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해자도 일대에서 낚시를 하리라고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다슬이 역시 상준을 만나면 가슴 설레는 건 마찬가지였다.
너무 쉽게 접근한 것을 몇 번이나 후회한지 모른다.
'나를 너무 쉬운 여자로 본 건가?'
그러면서도 다시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요트를 몰아 해자도 먼 바다에 요트를 세웠다. 닻을 내려 정박한 뒤에 날이 어두워지길 조용히 기다렸다.
오늘 밤 미끼는 새우를 달았다.
의자를 두 개를 밖으로 가지고 나와 다슬이를 밖으로 불러내었다.
“모기 없어?”
“날씨가 더워 다 죽었나봐. 올해는 별로 모기가 없어.”
다슬이는 갑판에 나와 의자에 앉아 상준이 던져놓은 낚시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상준은 담배를 꺼내 피우면서도 눈은 남모르게 해자도 갯바위를 응시하거나 물위에 떠오를 바다의 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혹 울리는 낚시 방울의 소리를 들으며 게르치와 보리멸 등 잡어 몇 마리를 건져 올리다 제법 큰 우럭을 건져 올렸다.
“배고프지?”
상준은 다슬이께 한 마디 던지고는 준비해온 닭다리와 햇반을 꺼내 놓고 깻잎과 짱아치를 내어 주었다.
“선배는 식사했어요?”
“난 저녁먹고 왔어.”
식사를 하는 다슬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맥주 캔을 따서 가볍게 마시면서도 바다를 향해 늘 살피보곤 하였다.
“선배 저 문자 보셨지요?”
“다슬아. 너는 내가 왜 좋은데?”
“좋은데 이유가 어디 있어요? 그냥 좋아요. 선배가 그러니까 여기가 너무 아파요?”
다슬은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려 손바닥으로 심장을 가렸다.
“....”
“어제 밤엔 소나기가 좀 내렸다더니 오늘 밤엔 구름 한 점 없네요.”
“그래.”
“오빠는 낚시하면서 주로 무슨 생각하세요?”
“요즘은.” 상준은 고개를 돌려 다슬을 바라보았다.
“이사는 곧 하시겠네요?”
“그래야지. 준공식 전에는 모든 것을 끝내야지.”
그때 다시 방울 소리가 들렸다. 상준이 바라보니 작은 섬광이 미끼를 문 것 같았다.
“원석 물고기가 문 것 같아.”
“...?”
상준은 어제 밤에 이어 또다시 괴물아귀를 건져 올렸다. 그러나 크기는 어제 밤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의 작은 크기였다.
상준은 아귀의 원석과 상아를 추출한 후 고기를 얇게 발라내어 소금을 친 참기름 소스와 함께 내어 놓았다.
“이것 먹어봐.”
상준은 먼저 소스에 찍어 맛을 보자 다슬도 상준을 따라 아귀회를 기름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다슬은 눈을 감고 한참동안 맛을 음미하다 다시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상준은 아귀회를 먹은 다슬의 표정을 살펴보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다슬은 가벼운 콧소리와 함께 짧은 탄성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
상준은 아귀회에 대한 다슬의 평을 물어보고 싶었으나 더는 뭐라고 물을 수가 없었다. 상준의 가슴도 무너지는 것 같았다.
“선배는 내게 왜 좋으냐고 했지? 그럼 선배는 내가 왜 싫은데?”
“이야기 했잖아.”
“아니, 얘기 한적 없어. 내가 왜 싫어? 어디가 싫어? 싫은 점이 있으면 내가 고칠게.”
상준은 다슬을 자리에서 일으켜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등을 두드려 주며 조용하게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넌, 너무 완벽해.”
“그런 말로 나를 위로하려 하지말아요.”
“왜 싫어. 왜 싫어하냐고?”
“난, 너가 너무두려워.”
“....?”
상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다슬은 고개를 들고 상준의 얼굴을 뚫어지게 처다 보더니 와락 상준을 밀쳐버렸다. 그리고 바다로 뛰어들어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잠시 휘청이며 정신을 차리고 뛰어든 곳을 보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상준은 신속하게 신을 벗고 깊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캄캄한 바다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물속으로 드나들며 반복하여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절망과 후회가 상준의 가슴을 오려내고 있었고 혼 몸에는 힘이 풀려 팔과 다리가 뻣뻣해지고 의식이 가물가물 멀어지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스스로 주문을 외워 정신을 수습하려 애를 쓰면서도 기가 빠진 사람처럼 허물허물 거렸다.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저기요.”
‘무슨 소리가 들렸나?’
“여기요?”
정신을 찾으려 애를 쓰며 앞을 바라보니 한 여자가 다슬을 안고 상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17에서 19세 정도의 황금색 금발 [뷰티 걸]이었다. 다슬은 의식을 잃은 상태로 두 사람에 의해 요트에 올려졌다.
상준은 재빨리 인공호흡을 하며 응급조치에 들어갔다.
손목을 잡고 맥박을 집어보니 가벼운 미동이 손끝에 느껴졌다. 상준은 그녀의 입에 자신을 입을 맞춰 깊게 빨아 당겼다.
“쿨럭, 쿨럭”
다슬은 입에서 물을 토해 내면서 쿨럭쿨럭 기침을 하였다. 다시 입을 맞춰 구강호흡을 진행했다. 금발 뷰티 걸이 상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다슬의 몸을 옆으로 돌려 누이고서는 얼굴도 옆으로 돌려주었다. 다슬의 입에서는 다시 주르르 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걱정 마세요. 조금만 기다리면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뷰티 걸은 스르르 바다로 잠수해 버렸다.
“여보세요.”
그 또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참만에야 깨어나는 다슬을 보며 상준은 다시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아득하며 다슬의 옆구리에 이마를 대고는 가물가물 의식이 혼미해져 갔다.
그리고는 무작정 시간이 흘러갔다.
정신이 먼저 돌아온 사람은 다슬이었다. 눈을 뜨고 보니 요트 안이었다. 허리가 거북하여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의 옆구리에 이마를 붙인 선배의 코끝이 자신의 아랫배에 붙어있었다.
‘흐윽, 이런 상황에 또 왜 이러는가?’
‘내가 미쳤어. 내가 미쳤어.’
‘왜 내가 갑자기 그런 짓을 해서, 선배 얼굴은 어떻게 보지.... 미쳤어.’
바닥을 짚고 일어나 앉으려는데 선배의 손은 자신의 손목을 꼭 쥐고 있었다. 잠이 들었는지 실신을 하였는지 선배의 머리가 무척이나 무거웠다. 코끝에서 나오는 다뜻한 숨결이 올라간 티셔츠 사이로 자신의 배꼽을 간질이고 있었다.
“음.”
소리를 내어 봤으나 꼼작도 하지 않았다. 다슬이 점차 정신을 챙겨 선배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니 그의 입가엔 연분홍 립스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으윽, 그럼 선배가 인공호흡을.’
‘몰라. 난 이제 어떻게.’
다슬은 의식을 찾은 후에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가만히 있으려니 환장 할 노릇이었다. 선배의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온 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이럴 바엔 차라리 기절을 한 척하고 누워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잠이라도 든 척 하고 일어나지 말까?’
돌발적인 행동으로 이런 상황을 만든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