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야미도 원정(1)
* * *
방에 들어와 의자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있던 희진이가 한참만에야 티브를 켰다.
공중파 방송에서 [자연애 산다] 재방을 하고 있었다. 채널을 돌려가며 볼만한 것이 없나 뒤적이던 희진이 상준은 보며 한마디 하였다.
“오빠, 우리 술한잔 해요.”
“술은 또 왜 갑자기?”
“그냥 자면 좀 그렇잖아요.”
“마, 됐다. 그냥 자.”
희진은 거실장위에 놓여있는 야식 메뉴를 들추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여기 모텔인데요. 족발 중자 하나하고요, 소주 두병만 주세요. 그리고 콜라도 보내주시고요. 참, 7호실이에요.”
희진의 얼굴을 보니 더는 말릴 수도 없었다.
“아직 저녁 먹은지 얼마 됐다고, 벌써 배고파?”
“안주는 있어야죠.”
“....”
상준은 담배를 꺼내어 밖으로 나가려다 욕실로 들어갔다. 송풍구를 켜 놓고 피울 생각이다.
“방에서 피워도 돼요.”
욕실안에 들어있는 상준의 귀에 자그맣게 희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열면 되지, 방충망도 있는데.”
역시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한다.
잠시 후 음식이 배달되자 희진은 손수 비닐 포장을 뜯으며 소주잔을 찾았다. 냉장고 안에는 음료 두병과 생수 두병, 믹스커피 두개 및 종이컵이 들어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상준은 전혀 술 생각이 없었지만 소주 두 잔을 마셨고, 희진은 연거푸 세잔을 들이키더니 벌써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오빠, 나 오빠 사랑하는 것 알지?”
“알아.”
“알아요?”
“그렇다니까”
“....?”
“나도 널 사랑해. 술은 그만하고 자자.”
상준은 술잔을 거두고 대충 정리한 후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제야 희진이도 욕실에 들어간다.
상준은 침대에서 비스듬히 누워 TV를 보고 있는데 희진은 샤워를 한 후 가운을 입고 상준의 침대로 파고들려 했다.
“넌 그쪽 침대에서 자.”
“희진은 상준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더니 자기 침대로 들어갔다. 두 개의 일인용 침대가 나란하게 놓여 있었고 그 사이는 불과 30Cm 정도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상준은 손을 뻗어 희진의 손을 잡았다.
“희진아. 나도 너를 정말 사랑해. 그런데 넌 내 동생 같아. 이건 농담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고, 진짜 그래.”
“나도 오빠 같애. 그래도 오빠를 너무 사랑해.”
“그래, 희진아. 난 영원하게 너의 오빠로 살게. 널 보는 순간 죽은 내 동생이 살아난 것 같았어. 진심이야.”
“그럼 오빠하고 같이 잘래.”
희진은 상준의 침대로 건너와 불을 끗다.
“오빠! 실은 난 오빠가 아빠 같애. 엄마 얼굴은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아빠 기억은 나질 않고 오빠 얼굴만 계속 떠올라. 내가 어릴 때 늘 아빠는 날 업어주고, 안아주고, 뽀뽀도 해주고, 얼마나 나를 사랑했는데. 그래서 내가 이러는 거야.”
“알았다. 내가 너 아빠처럼 그렇게 해 줄게.”
상준은 파고드는 희진을 꼭 안아준 뒤 그녀를 안아 자기 침대에 눕혀주었다.
잠이 든 희진의 얼굴은 달빛을 받아 천사처럼 아름다워 보였고 평온한 그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죽은 상미의 얼굴과 많이도 닮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인근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천천히 차를 몰아 중산으로 향했다.
그 날 이후 희진은 더 이상 상준을 귀찮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준이 희진을 귀찮게 하며 스킨쉽을 하곤 하였다.
저녁 운동을 하고 돌아올 땐 희진을 업어주려 애를 쓰고, 좋은 일만 있으면 안아주기도 하는가 하면 때로는 뺨에 뽀뽀를 하는 등 희진이 도리어 귀찮아 할 정도로 스킨쉽에 적극적이었다.
[뉴 해양 컴퍼니] 삼인방은 차를 몰아 전북의 관문 군산으로 직행했다. 방조제를 따라 신시도 방향으로 달리다 야미도에 내렸다. 항구 주변에 주차시켜두고 배낚시에 동승하여 본격적인 군산 앞바다 공략에 들어갔다. 야미도리 앞바다에서 낚시를 던져두고 카메라는 주변 풍광을 잡고 있는데 광어를 필두로 주꾸미, 참돔 등이 간혹 올라오더니 연이어 씨알 좋은 광어들이 줄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상준은 괴물물고기를 찾아 시선을 바쁘게 움직였으나 좀처럼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동승한 낚시꾼들은 당일 조과에 그런대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들 일행 중 상준이 프로 괴물 낚시꾼임을 알아보고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도 있었다.
신 팀장은 그들의 표정을 잡으면서 야미도 선상낚시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 그리 멀지않은 선유도 모습까지 당겨가며 촬영에 열중했다.
그때 상준은 희진이 잡아 올린 주꾸미 다리를 잘라 미끼로 사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준의 낚싯대가 당긴 국궁 활처럼 휘어지더니 초대형 광어가 올라왔다. 흔히 광어의 저항이 여타 인기어종에 비해 적다고들 하나 그것도 아니었다. 엄청난 손맛이 짜릿하게 전해오면서 당기는 버팀도 놀라울 정도였다.
‘손맛이 좋아.’
선장님 말씀으로 닻을 내린 곳이 광어 포인트라 설명했지만 희진은 참돔 낚시에 재미를 붙여 45Cm 내외 중, 소형 참돔을 연거푸 건져 올렸다.
그럴 때 마다 신 팀장과 희진은 손바닥을 마주치며 하이 파이브를 한다.
따가운 햇살도 선상 낚시꾼들의 손맛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모두 신이나 입을 다물 틈을 주지 않았다.
“또 걸렸어,”
누군가가 소리쳤다.
‘나도 물었어.“
오늘 같으면 보통사람 여럿을 낚시광으로 만들 기세였다.
그때였다. 상준의 눈에 괴물고기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상준은 자신의 기를 눈에 모으고 조용하게 소리를 내어 중얼 거렸다.
‘야미도의 괴물아. 주꾸미 맛좀 봐!’
비록 작은 목소리였으나 야무지면서 카리스마가 담긴 내공이 깃든 목소리였다.
“더르럭.”
손에 느껴지는 엄청난 파워는 예사 놈이 아님을 입증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왔어!’
왼손에 전해지는 뜰림과 오른 손에 쥔 릴의 손잡이가 율동을 하듯 흔들리면서도 늦춤과 당김을 반복하였다.
“물었어요?”
동승한 중년의 꾼이 상준을 돌아보며 묻는다. 상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놈과 싸우고 있었다. 10여 분간의 힘의 대결에서고 놈은 드디어 수면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대형 다슬조기 였다.
[다슬조기]
다슬조기는 신종물고기로 괴물 낚시대회에서 상준이 잡아 올려 우승을 안겨 준 바로 그놈과 같은 동종 괴물고기다.
‘햐, 요것 참.’
“약 6Kg은 족히 되는 놈이다. 황금색 잉어를 닮은 머리에 은색 몸통을 가진 놈이다. 5개의 다슬기 모양의 뿔 혹을 가진 괴물 물고기다. 고기 맛이 뛰어나 미식가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고기로 꼽히고 있다.
뿔 혹이 원래는 번데기 모양을 연상시켰지만 때마침 응원 온 다슬의 고마움을 남기기 위해 상준이 명명한 괴물고기 이름이다.
상준의 수확에 동승한 모든 분들이 함께 박수를 보내주면서 사진 촬영에 열중하였다. 상준은 즉석에서 5개의 보석 원뿔을 발취하고는 고기는 아이스박스에 넣어 상하지 않도록 보존하였다.
그 후로도 오후 늦게까지 꾸준한 조과로 광어의 손맛을 톡톡히 보고 난 후 회항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배에서 [주식회사 블랙월드] 서동삭 과장에게 연락이 왔다. 대답은 상준도 놀랄 지경이었다.
황금 거북알은 보석으로 가공된 일이 전혀 없었고 전량 수석애호가들이 소장하고 있다고 하였다. 한때 중국 광시성 경매시장에서 한 개 값이 한화 1억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고 하였다. 보석으로 가공되면 더 큰 가격으로 팔릴 수도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는 것이었다.
상준은 약간의 신음을 토하며 다섯개의 황금 거북알 판매를 제의 하였다. 서동삭 과장은 윗사람과 협의하여 한 개에 2억의 대금 지불 약속을 하였고 곧 확인차 방문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아울러 다슬 조기의 황금보석도 넘겨주기로 약속하였다.
“지금 우리가 군산에 있습니다. 4일 후 수령증을 준비해서 중산에서 만나요.”
“절대 다른 곳에 넘기시면 안 됩니다.” 심심 당부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야미도항에 도착한 그들은 차를 몰아 신시도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저녁을 먹고 나서 여정을 풀었다.
“오늘 같은 날 술한잔 하셔야죠.”
“그럴까.”
저녁 식사 후 식당 주인의 추천을 받아 어느 민박집에 숙소를 정해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였다.
“우리 월영봉 야경보러 가시죠.”
신 팀장의 제안으로 월영봉에 올라 야경을 구경하며 산책하고 있을 때 [프로괴물낚시협회]에서 메일이 날아왔다.
단합대회 겸 프로 괴물낚시꾼 협의회를 갖자는 내용과 회원들의 활동을 담은 회원활동보고서를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상준은 메일을 보고 난 후 참여 불가의 문자를 보냈더니 즉시 장사도 프로의 전화가 날아왔다.
“장사도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참여 부탁합니다.”
상준은 간단하게 참여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유감을 표시하였다.
“회비는 계좌로 송금하겠습니다.”
“그보다 활동보고서 출간에 필요한 개인 활동사례 원고 부탁드리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아, 그래요? 사양하면 안될까요?”
“부탁드립니다. 듣기로는 가장 활발한 성과를 얻고 계신 걸로 아는데.”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원고는 원고지 56매 정도로 요약된 내용과 현장 활동사진을 꼭 첨부해 달라는 내용 이었다.
월영봉은 불과 200m도 체 안되는 얕은 산이지만 섬에 위치하는 다른 산들처럼 주위 풍경을 골고루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 있었고 새만금휴게소와 산아래 주차장에서 나오는 불빛이 묘하게도 조화를 이루어 더욱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혀라.” 상준은 산길을 내려오다 갑자기 희진의 앞에 앉아 등을 내 밀었다.
“오빠! 괜찮아요.”
“내가 괜찮지를 않아서 그래.”
상진은 억지로 희진을 등에 업고 산 아래로 내러 왔다. 희진은 불과 163Cm정도의 신장에 몸무게는 불과 50Kg이나 될까. 매우 가벼운 느낌이었다.
“업혀보니 어때?”
“꼭 아빠등 같았어요.”
“앞으로 내가 자주 업어줄게.”
상준은 희진을 업고 내러오는데 한편 마음이 흡족하면서도 한편으론 왜 진작 동생 상미에겐 그러지 못했는지 가슴이 저려왔다. 아무도 모르게 후회의 마음이 눈시울을 적셨다.
‘시발. 내가 또 왜이래.’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기분에 이러는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젠장, 내가 요즘 왜 이러나. 미친것도 아니고.’
“내일은 무녀도항 갯바위 낚시에 도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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