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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46화 (46/225)

〈 46화 〉 괴 생명체(3)

* * *

“우리 내일 가까이 물놀이장에 가볼까?”

상준은 꼭 마음에 두지 않고 희진의 속마음도 떠볼 겸 한마디 하였다. 날씨가 더워 싫다고 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뜨겁다.

“정말요? 그럼, 산에 가요.”

“산에 가면 죽어. 얼마나 더운데?”

“그냥 산에 올라가지 말고 계곡에.”

상준은 머리를 굴려 계곡이 좋은 곳을 생각해 봤다.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지리산 피아골 계곡이었다. 인근 펜션에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예약이 다된 상태였다.

‘될 대로 되겠지.’

상준은 희진의 말대로 피아골에 들러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요즘 희진은 대놓고 어리광이 늘어나 부담스럽기는 하다. 동생이라 생각하고, 아니 진심 동생 같아 받아주긴 하지만 갈수록 심해지니 어찌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그럼 내일 새벽에 피아골에 가보자.”

“몇 시에 출발 할래요?”

“새벽 여섯시, 좀 늦나? 5시 출발.”

사실 요즘 같은 날은 일찍 출발하여 목적지에 도착을 해야 한낮의 뜨거움을 피할 수 있고 주차난, 교통난에서 다소 해방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리산 피아골은 반야봉 기슭에서 흐르는 물과 노고단 기슭에서 시작한 물이 만나 계곡을 이루다가 내동리에서 연곡천을 형성하여 섬진강에 흘러든다. 장장 20Km가 넘는 깊고 푸른 골짜기로 광활한 원시림과 맑은 물, 삼홍소를 비롯한 담소, 폭포 등이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옛날 이곳에 곡식의 하나인 피를 심은 밭이 많다하여 [피밭골]이라 했는데 점차 이름이 바꿔 피아골이라 한다.

언젠가 한번 가을 단풍철에 몇몇 친구들과 여친을 데리고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가서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출발하자.”

“벌써 잠이 와요? 좀 있다 갈게요.”

“그럼 들어가. 밤인데도 더워.”

상준은 희진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밤이라지만 열대야는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아, 시원해. 괜히 밖에서 모기만 물리고.”

소파에 앉아 TV를 켜두고 각자 자신의 휴대폰만 만지며 시간을 보냈다. 한 번씩 희진을 바라 볼 때는 눈이 마주치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오빠, 왜 자꾸 내 눈을 피해요?”

“그래, 너 말 나왔으니 이야기 할게. 아무리 오빠라도 너 옷이 좀 너무 한 것 아냐?”

“뭐, 나만 그런가? 동네 다녀보면 다 그런걸.”

“그야, 그 사람들은 여기 온 피서객이잖아. 해수욕장에 온 사람들이야 당연한 거고.”

사실 희진은 무릎에서 30Cm 정도나 올라간 반바지에 어깨끈만 맨 런닝셔츠 하나 달랑 걸치고 앉아있으니 아무리 동생 같은 희진이지만 제대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처다 보면 너 혹시라도 오해할 것 같고.”

“오빠 나 여자로 안보잖아요.”

“야아, 씨. 희진아, 너 눈 피하지 않게 좀 편하게 해줘.”

“알았어. 나 오빠 하는 걸 보고.”

그때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총각 나야. 누가 있나?”

상준이 문을 열자 주인아주머니가 잘 익은 수박을 소반에 담아 넣어주셨다. 방 안쪽으로 기웃거리며

“아가씨가 와 있네. 내 밖에서 다 들었는데. 총각 말 맞아. 총각이 워낙 점잖아서 그렇지.”

“.....”

그래도 희진은 연방 생글생글 웃기만 하였다.

“아주머니, 잘 먹을게요.”

상준이 인사말을 하니 계속 서 있을 수도 없어 안채로 들어가면서

‘가시네 고것 참 맹랑하네.’

아주머니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상준의 방문을 한참동안 바다보다 방으로 들어갔다.

수박을 나눠먹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희진을 보낸 뒤 상준은 알람을 맞춘 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금방 잠이 들었다.

몇 시쯤 되었을까?

“오빠! 오빠!”

다급한 희진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 불을 켜려는데 상준의 다리에 털썩 희진의 무게가 느껴졌다.

상준은 침대 머리맡에 있는 등을 켜면서 희진을 바라보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아니 희진아, 왜 그래?”

“오빠, 나 무서워.”

희진은 상준을 와락 끌어안았다. 상준은 희진의 어깨를 감싸 안고 등을 두드려 주며

“또 악몽 꿨구나.”

“악몽이 아니야.”

“그럼?”

상준의 품에 안긴 희진은 온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친구가 죽었어! 분명히 봤어. 친구가 죽는 걸 목격했어!”

“친구 누구?”

상준은 희진을 떼어내어 침대에 걸쳐 앉게 하고는 자신의 와이셔츠를 찾아 어깨에 걸쳐주었다.

“주희! 친구 주희.”

“주희? 주희가 아는 애야?”

상준은 어디선가 한번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었다.

“그 애가 왜? 너 혹시 어릴 때 기억 되돌아 왔어?”

“몰라. 그런데 주희를 어떤 사람이 죽였어. 그리고 나를 끌고 어디로 갔는데.”

희진은 몸을 와르르 떨었다.

상준은 희진의 옆에 앉아 어깨를 감싸주며 등을 두들겨 주었다. 희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봐서 결코 거짓은 아닌 것이 확실하였다.

“희진아.”

상준은 침착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지금 그 이야기가 모두 꿈에서 본 거야?”

희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꿈같으면서도 꿈이 아닌 것 같아. 오빠 나 무서워. 그 아저씨가 주희를 죽여 차 트렁크에 싣는 것 같았어.”

희진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

“그럼 너가 그걸 보고 기억을 잃었을 수도 있었어. 그땐 어렸으니까? 혹시 범인 얼굴은 기억하고?”

“모르겠어. 기억에 안나.”

희진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 비몽사몽에 꿈과 기억이 혼합되는 현상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겠지. 그땐 넌 어렸으니 어떻게 다 기억하겠어. 너 초등학교 4학년 이전의 기억은 전혀 없다며?”

“응.” 희진은 상준의 품에 안기듯이 하면서 몸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었다.

“오빠. 나 여기서 잘 거야.”

“그래, 그래라.”

상준은 희진을 자신의 침대에 눕혀주고 가벼운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희진을 만난 후 여기까지 오면서 희진이 했던 모든 이야기를 종합해 보았다.

결코 상상 만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스토리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희진이 초등학교 4학년이라면 10살에서 11살, 죽은 동생 상미와 같은 또래이다. 모든 것을 지금까지 다 기억하기엔 어려운 나이다. 그것도 기억상실이라는 엄청난 고초를 겪었으니 말이다.

잠이든 희진은 간혹 한번씩 깜짝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다시 잠들곤 하였다. 잠이든 희진의 얼굴은 곤혹스러울 만큼 가엾고 불쌍했다. 그리고 예뻤다.

새벽 여섯시가 되었으나 깨우지를 못하고 일어날 때까지 그냥 두었다. 희진의 방에가서 옷가지 몇 개를 가져다 머리맡에 두고는 밖으로 나왔다.

일곱시 반이 조금 넘은 때다.

희진은 문을 열고 벤치에 앉아있는 상준을 불렀다.

“일어났어?”

“응, 오빠.”

“어제 밤일 기억나?”

“기억나는데 꿈을 꾼것 같아.” 상준도 어쩌면 꿈을 꾼것이 아닐까하고 밤이 새도록 그 생각만 했다.

“오빠, 나 땜에 출발이 늦었네.”

“너 갈수 있어?”

“지금이라도 가.”

둘은 피아골로 떠날 준비를 하면서 아침은 가는 길에 먹자고 하였다. 휴가철을 맞은 지리산 피아골은 차량이 많고 주차할 곳도 마땅하지 않았다. 역시 피아골은 단풍철 못지않게 여름도 나름 절경이지만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붐비고 있었다.

계곡에 위치한 식당 앞 곳곳에는 평상을 빌려주거나 식당 손님들께 자리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햇볕을 피할 수 있는 나무 그늘 아래도 마찬가지였다. 쉴만한 곳은 대부분 다 가족단위거나 단체 피서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해수욕장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다모인 것 같더니 계곡에 오니 이번에는 계곡으로 다모인 느낌이었다.

요행이 주차를 해두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서 개울물에 발을 담궜다.

“오빠, 시원하죠?”

옆 사람들을 둘러보니 참외, 수박 할 것 없이 개울물에 담궈 두고는 수시로 물놀이를 하다 건져 먹으며 가족간의 화목과 친구들의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제일 신이 나는 것은 어린이들이었다. 꼬마와 놀고 있는 젊은 아빠, 엄마의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귀엽다.”

얕은 물에서 튜브를 탄 아주 어린 아기와 그 옆에서 애정 어린 눈길로 아기를 지켜보는 신혼부부를 보면서 희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오빠도 빨리 결혼해서 저런 꼬마가 생겨야 할 텐데.”

“야, 너 꼭 할머니 같은 소릴 하고 있네.”

아이들 노는 모습을 한창 바라보고 있던 희진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오빠, 우리 가요.”

“벌써?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우리 점심 먹었어요?”

“너 저기 저 사람들 보니 배가 고팠구나.”

사실 상준이도 겨우 자리 잡은 것이 아까워 버티고는 있었지만 배가 고팠다. 개울에서 먹을 음식을 준비해 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야외에 나와 제일 불쌍한 것은 남들은 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배가고파 구경하는 것이다.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인지 이젠 식당에도 자리가 비었다.”

“우리 삼계탕 먹을까?”

“음식이 나오기 전 인삼주라면서 조그만 술병에 삼향기가 그윽한 술을 내어주었다. 인삼주를 마시고 난 뒤 뒤늦게 먹는 삼계탕도 일품이었다. 확실이 이곳은 음식맛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오빠, 오늘 내러 갈거야?”

“가야지.”

“우리 남원가서 쉬었다 가.”

“또 남원?”

“...?”

순간 상준은 착각을 했다. 전에 왔던 코스와 너무나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희진이 그걸 놓칠 아이가 아니었다.

“옛날 애인하고 왔구나?”

“아냐, 친구들하고.”

“내일 아침 일찍 신 팀장 출근할 텐데?”

“뭐 어때. 우리도 일찍 출근하면 되지. 팀장님 빨리 와도 10시경 쯤 돼야 도착할 텐데.”

“.....”

상준은 차를 남원으로 몰았다. 문득 옛날에 다녔던 코스 그대로 밟아보고 싶었다. 남원에 도착하여 추어탕을 먹으면서 미꾸라지 두부도 주문하였다.

[미꾸라지와 두부를 솥에 넣어 가열하면 뜨거움을 느낀 미꾸라지가 모두 두부 속으로 파곤 든다고]

“이 말이 정말일까?”

늘 궁금하던 미꾸라지 두부다. 두부 사이에 뜨문뜨문 미꾸라지가 들어있었다. 이것을 가로로 잘라 간정소스에 찍어 먹으니 그 맛이 독특하였다.

역시 고소하고 독특한 맛을 안겨주었다.

숙소도 역시 같은 곳을 택했다. 오래된 탓인지 옛날 보다는 깨끗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어떡할래?”

“뭘요?”

“너 방 따로 잡아줄까?”

창구에 서서 희진은 돌아보며 의견을 물어보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준의 팔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 말을 창수 앞에서 내게 물으면 난 어떡하라고 그래요?”

“그리고, 뭐 하러 방을 따로 잡아요?”

창구를 벗어난 희진은 상준을 향해 눈을 흘기면서 옆구리를 꼬집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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