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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44화 (44/225)

〈 44화 〉 괴 생명체(1)

* * *

저녁 무렵에는 다시 자리를 옮겼다. 거북섬 부근 좀 더 큰 섬 절벽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요즘 기상대는 뭐 이리 잘 맞춰. 오늘도 맑고 내일도 덮고.”

“예.?”

“그렇잖아. 가물고 무더운 건 못 맞추면 안 되나?”

“깔깔깔.”

신 팀장과 최 주무의 말을 들으니 상준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연일 폭염과 가뭄이 계속된다하니 기상대가 만약 제대로 못 맞추면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될 테니. 꼭 맞춰야 할 땐 못 맞추면서.

밤에는 또 열대야가 올려나 보다. 영남에 비해 다도해의 기온은 제법 낮다고는 하나 무덥기는 매 일반 인것 같다.

습관적으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물속으로 잠수를 해보니 생각보다 매우 수심이 깊었다. 희진이 땄던 거북손 생각이 나서 절벽 아래 갯바위에 접근해 보았다. 홍합과 거북손, 따개비 같은 것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이런 섬에도 사람이 살까?’

절벽 위를 처다보니 염소 몇 마리가 절벽을 타며 묘기를 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말발굽 같은 모양의 굽을 가진 염소가 저런 위험한 곳을 타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희진에게 손짓하여 칼과 비닐 봉투를 가져오라 신호를 보냈다.

희진의 수영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우리 저기 거북손하고 배말인가 보말인가 하는 것 좀 따가려고.”

“호호, 우리 오빠 이제 거북손 맛 아셨네?”

“뭐.?”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헤헤헤.”

무인도 같은 곳인지라 꽃바위에는 홍합을 비롯하여 작은 고등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갯바위 주변 물속에는 돌미역도 제법 붙어 있었고, 파래들도 자라고 있었다. 잠시 만에 제법 많은 조개를 채취한 후에 희진은 바위에서 멋진 다이빙 포스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손을 번쩍 드는 희진을 보니 또 전복이었다. 연거푸 몇 번을 물속으로 들어가 전복 몇개를 찾아내었다. 그 솜씨 역시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상준도 이어 바다로 뛰어들어 요트로 돌아올까 하고있는데 멀리 갯바위에 낚시를 하는 노인이 보였다.

‘여기에도 사람이 사네.’

채취한 조개와 미역을 요트에 던져두고 낚시하는 노인께로 수영을 하였다.

“안녕하세요?”

그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올라오라 하였다.”

“젊은이는 그렇다 치고 새댁은 어쩌려고 위험하게 그러고 있소?”

노인은 희진이를 새댁이라 불렀다.

“왜요, 할아버지 저 수영 잘해요.”

“참. 나...”

“할아버지 이 섬에 사세요?”

“그렇지.”

“이 섬에 몇 가구가 있어요?”

노인은 혼자 섬에 살고 있다고 하였다. 어릴 때는 15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자식들이 전부 뭍으로 나가고 어른들이 점차 하나, 둘씩 돌아가시자 점점 가구가 줄어 이제 자기 밖에 없다고 하였다. 자식들은 다 외지로 나가고... 당신도 한 때 육지로 나갔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식 집에 얹혀살기 거북스러워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하였다.

며느리와 함께 종일 집에 있는 것이 힘들었다고 하였다.

“어떤 때는 공원에 나가 다른 사람 장기도 훈수하고, 바둑도 보고.”

“네.”

“다 그런 것이 힘들어. 그렇게 해서 시간을 보내려면 하루가 얼마나 지루하다고.”

“그럴 수도 있겠어요.”

“아무리 자식들이 잘해준다 해도 이렇게 사는 것이 마음이 편하더라고.”

제일 힘든 것은 손자, 손녀가 보고 싶을 때라 하셨다. 상준과 희진은 노인의 성화에 못 이겨 섬 기슭에 있는 노인의 집으로 갔다. 한때는 대가족이 함께 살았던 곳이라서 비록 초라하고 낮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곳이었으나 큰채와 사랑채로 나뉘어져 있었고 인근 주택들은 폐가로 변해 있었다.

툇마루에 걸터앉자 약초로 끓인 차라며 한 잔씩 내어주셨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시던 노인은 이방인의 방문이 즐거운 것 같았다.

“오늘 여기 자고가. 모처럼 온 손님인데 그냥 보낼 수는 없어.”

“저희들은 이곳에 낚시하러 왔습니다. 고기를 잡아야죠.”

“그래, 어부 같진 않고. 놀기 삼아 왔을 테니 놀다가 자고가. 우리 방도 많아.”

상준은 요트에 동료 한 사람이 더 있다고 말씀드리고 불러 오겠다고 하였다.

마을 옆에 드리워진 능선 넘어서면 선착장이 나온다고 하였다. 그 쪽에 배를 정박해 두고 길을 따라 능선을 가로지르면 동네로 들어오는 본래의 길이 있다고 하였다.

노인과 상준이 올라온 길은 해안이 높아 낚시를 할 때 다니는 지름길이라 하였다. 상준은 손짓을 하여 신 팀장을 불러 요트를 가져다 선착장에 매어두고 올라오라 일렀는데.

“대표님, 전 요트에서 낚시나 하겠습니다. 대표님은 최 주무와 함께 그곳에서 쉬다 오십시오.”

상준은 난감하였다. 몇 번 설득해도 고집을 꺾지 않자 부득이 잡아둔 물고기 몇 마리와 감자, 고추, 오이 등 반찬거리. 과자랑 술 몇 병을 챙겨 노인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런 것을 왜 가지고 와. 우리 텃밭에 채소도 많아. 동네 밭이 다 내것 이거든,”

“그야 그렇지만. 요즘 비가 안와서.”

“그 말은 맞아. 날이 가물어 많이 말라죽어.”

그 분은 혼자 외로웠는지 저녁을 먹은 후 여러 가지 말씀을 많이 해 주었다.

“그리고 젊은이. 이제 누가 이곳에 또 오겠는가?”

“아들과 손자 분들이.”

“글쎄, 그것도 와 봐야 알지. 우리 같은 사람 언제 죽을지 누가 알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노인은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으신 것 같았다.

“오늘 자네, 새댁과 함께 수영하던 데 말이야. 절벽 아래.”

“네.”

노인은 자신이 낚시하던 그 부근 바다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았다.

“예. 그런데요?”

“그곳에서 왕거북섬 알아?”

“왕거북 섬이라면?”

“그곳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동굴이 있는 작은 섬이 있어.”

“아, 예 알아요. 우리 그곳에서 낚시 했었어요.”

“이걸 아는 사람은 이제 나 밖에 없어. 그곳에서 이 섬 사이엔 사연이 있어.”

“...?”

“왜놈들이 패망할 때 전라도 일대에서 모은 많은 귀중품과 문화재를 자기 나라로 빼돌리다 여기에서 침몰했거든.”

“예.”

“이것을 본 사람은 섬 주민들뿐이야. 배가 침몰한 것은 당시에 다 알았겠지만 위치를 아는 사람은 이제 나 뿐이거든.”

“아, 그러세요.”

“왕거북 섬보다 죽순 바위섬에 더 가까워. 절벽에서 조금만 나가면 정확한 위치야.”

“한때 이곳 출신 젊은이들이 이 섬을 떠나면서 하던 이야기가 있었어.”

“무슨 이야기를요. 할아버지.”

“외지에 나가 큰돈을 벌면 그 보물선을 건지러 돌아오겠다고 큰 소리를 쳤거든.”

“그래서요?”

“그런데 그게 어디 쉽겠어? 한, 두 푼으로 건질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 이제 모두 다 잊혀진 거지. 내가 죽으면 그 보물들은 영원히 바다에 사장되고 말거야.”

노인도 젊을 때부터 이것들을 건지는 꿈을 꾸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하였다.

“...?”

“젊은이. 내 말 꼭 명심해. 그 배엔 엄청남 금괴가 있었다고 하더라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언젠가 저가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제 다행이다. 왜놈들의 짓이지만. 모두가 우리 것이라고....”

그리고 노인은 무척 피곤해 하셨다. 이 말씀을 전해주시려고 한사코 사양하는 상준의 일행을 끝까지 집으로 데려오려 한 것 같았다.

“나 같은 사람은 초저녁만 되면 곧 잠이 와. 나이를 먹어서 그렇겠지. 지금 자면 새벽잠이 없어 아침엔 또 일찍 잠이 깨고... 고마워 젊은이. 사양하지않고 친구가 되 줘서.”

“네, 주무세요.”

“그리고 말이야. 젊은이는 부인 데리고 저 방을 써. 둘이 자는 데는 불편하진 않을 거야.”

노인이 잠자리로 들어가자 상준은 희진을 데리고 해안으로 내러왔다.

바다에 뜬 요트에서는 밤낚시에 빠진 신 팀장의 모습이 사방에 켜진 조명등에 의하여 훤히 다 보이고 있었다.

“가자.”

“오빠, 잠깐만.”

노인이 앉아 낚시를 하고 있던 그 갯바위에서 희진은 상준의 팔을 잡았다.

“오빠. 우리 여기 좀 앉았다 가요.”

“그럴까?”

“난 오늘 그 자연인 노인댁에서 자고 오는 줄 알았어.”

“그래? 나도 그렇게 할 까 생각도 했는데....너가 좀 불편해 할 것 같아서.”

“사실 난 지난번에 오빠께 모든 걸 털어놓은 뒤부터 악몽은 이제 꾸질 않아.”

“그건 다행이다.”

상준은 희진의 말에 진심으로 격려를 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그건 악몽이 아닌 것아. 그래서 더 무서워.”

“그럼 악몽이 아니라면.”

“그건 악몽이 아니고 현사인 것 같애. 내가 겪은 사실.... 그래서 혼자 자기가 더 겁이나.”

“이야기 한번 해봐.”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아. 오빠 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상준은 희진의 어깨를 당겨 안으며

“말을 해야 알지.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사실 난 종종 저녁을 먹고 오빠 방에 가잖아. 혼자 사무실로에 있다가 내 방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겁이나. 다시 내러가 오빠 방에 갈 수도 없고.”

“그럼 와야지. 그건 그렇고 어떤 꿈이야?”

“내 친구가 나쁜 사람에게 죽은 것 같애. 그리고 난 후 기억이 없어. 내가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를 하는 희진은 순간 몸서리를 쳤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친구도 기억나고?”

“그걸 모르겠어. 알 것, 알 것 같으면서도 기억이 나질 않아.”

상준은 다시 희진의 어깨를 꼭 감싸주고는

“너 요즘 표정이 좀 밝아져 걱정을 안했는데. 우리 돌아가서 병원에 가보자.”

“조금만 더 있어봐. 그래도 옛날 보단 잦은 일이 아니니.... 그런 꿈 말고 오빠와 함께 낚시도 하고. 수영도 하는 그런 꿈도 꾸거든. 그러고 나면 너무 좋아요.”

“사실 나도 그런 꿈은 꿔. 사람은 누구나 현실에 있는 일은 가끔 꿈속에서도 나타나거든.”

상준도 가끔 꿈을 꾸면서 신 팀장과 희진이랑 낚시를 하거나 다슬이와 여행을 하거나 요상한 꿈을 꿀 때도 있다. 괴물고기를 잡아 올려 벼락부자가 된 이야기나 괴물을 만나 목숨을 잃을 뻔한 그런 꿈도 꾸었다.

더구나, 희진이와 있었던 꿈속 내용은 스스로 생각해도 창피스러워 남들에게 감히 이야기도 할 수 없는 비밀도 있었다.

“그래도 전에는 악몽만 꿨어요.”

“조금만 기다려. 오빠 집 다되면 우리집에서 같이 살아. 방을 여러 개 넣어 설계했거든.”

“정말 이예요?”

“전에 내가 그런 말 하지 않았나?”

“그건 그냥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했는데.”

“우리 이제 요트로 가자. 신 팀장이 우릴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오빠 그게 싫으세요?”

“뭐, 그렇다기보다. 넌 내 동생이니까.”

“그럼 가요.”

둘은 바다로 뛰어들어 요트를 향해 천천히 헤엄을 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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