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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42화 (42/225)

〈 42화 〉 황금 거북알(1)

* * *

“바다로 나갈 때는 항상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

상준이 소속 직원들에게 남긴 말이었다. 그러한 경험은 희진도 마찬가지다. 쌀과 라면, 된장과 고추장 등 기본 식 자제를 넉넉하게 싣고 감자며 양파, 무 등도 충분하게 준비했다.

“라면과 과자도?”

신 팀장의 확인에 최 주무도 또한 다시 체크하며 하나하나 확인하였다. 칼과 도마, 랜턴도 챙겨 넣고 카메라에 딸린 보조배터리와 휴대폰 충전기 까지 모두 챙겼다.

특히 이번엔 호미와 손도끼, 톱과 야전삽까지 챙겨 넣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을 느껴봤기 때문이었다.

“뭐 또 더 필요한 것 없어요?”

“매트도 있으면 좋겠던데?”

“매트는 어디 쓰시려구요?” 신 팀장의 말이었다.

“선실 바닥에서 쉬려고 할 때 모포만으로는 부족하더라고.”

그 말을 들은 희진은 재빨리 뛰어가 매트 두 개를 구입해서 돌아왔다.

“이런 거는 요트에 계속 실어 둬야겠어요.”

“최 주무, 이제 많이 늘었네.” 신 팀장의 말이다.

“네, 저도 이제 노하우가 좀 생겨서. 헤헤헤.”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뜨겁던 태양이 산 중턱에 걸리자 상준의 일행은 항구를 떠났다. 섬들이 많은 다도해 쪽으로 키를 잡았다.

상준은 희진을 돌아보며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너 이젠 장난 하지마. 이것, 저것 챙기는 것 보니 겁난다.”

희진이 깔깔대자 신 팀장은 영문을 몰라 두 사람의 표정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저 표정들 뭐야 저건. 둘이서 뭔가 썸 타는 것 같더니 어찌 보면 아닌 것도 같고.’

신 팀장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한참을 달리다 여러 개의 섬들로 둘러싸인 호수 같은 바다위에 요트를 세웠다.

“이쯤이 좋겠지?”

지난번과 같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배들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요트의 사방에 불을 밝혔다. 벌써 시간이 꾀 흘렀으나 하늘엔 별과 달이 떠 있었다.

상준과 희진은 낚시채비를 하고 신 팀장은 촬영 채비를 하였다. 접이식 안락의자를 뱃전으로 가져 나와 나란히 놓았다.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괴물 같은 섬광덩이는 보이지 않았다.

한시간 가량 지나자 배전에서 나온 불빛을 따라 무늬오징어들이 팔랑팔랑 모여들었다. 카메라에 삼각다리를 설치하여 고정시켜 두고는 신 팀장과 희진은 무늬오징어 잡이에 여념이 없었다.

낚시 재미는 이런 것이다. 대상어만 낚는 프로낚시꾼은 비록 아니지만 여건에만 맞는 다면 어떤 고기인들 어떻겠는가?

잠시 만에 무늬오징어 십여 마리는 올린 것 같다. 팔랑거리며 올라오는 무늬오징어는 한 번씩 검은 먹물을 뿜어내면서 그들의 옷과 얼굴에 웃음을 안겨주었다.

“우엑, 또 얼굴에.”

희진은 눈자위와 이마에 먹물을 뒤집어쓰고 이빨만 하얗게 웃고 있었다. 마주보는 신 팀장도 자신의 모습은 알지 못하며 희진을 향해 배가아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상준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히 번져나왔다.

“오징어 회쳐 먹어요.”

“뭐 쳐 먹어?”

희진의 말에 한바탕 웃고는 신 팀장은 도마와 칼을 가져다 놓고 먹물로 얼룩진 무늬오징어를 투명하리 만큼 깨끗하게 손질하였다. 횟감으로는 어떤 물고기보다 뒤지지 않을 것이다.

“음.”

맥주 한 캔을 따서 마시면서 한 젓가락씩 듬뿍 찍어 먹어보는 오징어 맛은 개운하면서도 달콤하였다. 구태여 꼭 초장도 필요 없고 된장도 필요 없었다. 짭짤한 물맛이 회와 조화를 이뤄 바다의 향이 나는 것 같았다.

“건배.”

이때가 가장 좋은 때인 것 같다. 이런 행복은 낚시꾼만이 느끼는 행복 아닐까?

“맛있어요.”

“행복해요.”

신 팀장과 최 주무도 꾼의 행복을 알아가는 것 같았다.

“저건 뭐야?”

상준이 신 팀장을 돌아보며 손가락을 가르킨다.

“바위 아니에요?”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그러나 상준은 그놈이 또 다른 괴물의 덩어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검은 덩어리의 바위같이 생겼지만 상준의 눈에는 엄청난 크기의 섬광덩이로 보이고 있으니. 상준은 즉시 닻을 끌어올린 뒤 요트의 불을 끄고 놈의 뒤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섬광덩이의 크기는 어림잡아도 대형트럭의 바퀴정도는 될 것 같았다. 놈은 점점 가까운 섬으로 접근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놓쳤나?”

섬광이 사라진 섬 주위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작은 동굴 몇 개가 양쪽에 위치하고 가운데는 제법 큰 동굴도 발견되었다. 상준은 놈이 분명 동굴 안으로 숨었다고 직감하고 동굴 안으로 보트를 몰았다. 동굴의 안쪽은 겉에서 보기와는 아주 딴판으로 꾀 넓은 바다광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어떻게 보면 계획된 설계도처럼 양편 두 개씩 네 개의 작은 동굴이 물이 차 있는 상태로 바깥 바다로 연결이 되어있고 마지막 끝 부분에 다섯 번째의 동굴은 위쪽 방향으로 비스듬한 상태로 모래와 몽돌이 뒤섞인 잘갈 밭이 드러나 있었다.

“동굴 모양이 꽤 요상하네.”

그러나 사라진 섬광은 찾을 수가 없었다.

랜턴을 꺼내어 사방을 비춰보며 탐색을 하기 시작하였다.

“무서워요.”

희진은 생소한 동굴 내부에 공포감을 느끼는지 나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상준과 심 팀장은 불빛을 비춰가며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재치 있는 신 팀장이 카메라를 꺼내 촬영에 들어갔다.

“놈도 놓쳤으니 요트에 다시 불을 켜야겠다.”

동굴의 내부가 훤하게 밝아졌다.

동굴의 천정은 돔형으로 만들어져 주황색과 갈색의 대리석처럼 매끄럽고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곳곳에 물방울이 맺혀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광장에서 뻗어나간 네 개의 작은 동굴은 그 모양이 대동소이하고 폭이 점점 좁아지며 10m 정도의 깊이에서 꼬부라진 상태로 바다와 연결된 작은 굴이었다.

상준은 동굴 끝부분 자갈밭에 요트를 정박하고 위쪽 방향으로 기어올라 탐색을 해 보니 그 또한 길이가 그리 길지 않게 하늘에 떠 있는 별빛이 보였다.

다행히 동굴안은 비교적 깨끗하고 음침한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바닥의 물은 밖에서 밀려오는 파도의 영향으로 잔잔하기 그지없고 수심은 깊고 청정 호수처럼 맑기만 하였다.

“그놈은 결국 놓쳤네.”

“여기 뭔가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물고기는 좀 있을 것 같지?”

랜턴을 가진 희진이도 사방을 둘러보더니

“이 동굴이 거북 같지 않아요?”

“거북?”

“거북의 속?”

들어온 입구가 거북의 입이라면 네발과 꼬리가 그런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생김새가 비슷해.”

“무서워.”

상준은 다시 요트에 올라 동굴 내부 모래밭에서 낚시를 던졌다. 희진은 상준의 옆에 앉아 동굴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고 있었다.

뭣인가가 있을 것 같은 동굴 내의 바다광장이었으나 좀처럼 신호는 오지 않았다. 밀려오는 파도가 동굴 입구에 부딪칠 때마다 울림 현상이 확대되어 요상한 소리로 전해져 왔다.

상준은 던져둔 낚시에 소식이 없자 루어로 교체한 뒤 다시 던져넣었다.

“물었다.”

상준은 잽싸게 챔질을 하며 당겨보았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돌 틈에 처박았나?”

무엇인가 문 것 같은데 꼼작도 하지 않고 돌에 걸린 것처럼 미동도 없었다. 미끼를 물고 돌 틈 사이로 박은 것이 틀림없었다.

손 가위를 내어 막 줄을 자르르는 순간 약간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다시 강하게 챔질을 하며 재빨리 릴을 감아올렸다. 엄청난 무게로 조금씩, 조금씩 끌려나온다. 한참만에야 놈의 머리가 물위로 드러나는 순간 상준은 깜짝 놀랐다. 짙은 고동색 머리통이 박 모양으로 불쑥 치민 것이었다.

“뭐예요?”

희진이 랜턴으로 그놈을 비춰 보는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처다 보는 것이 맨대가리 대형 대왕문어였다.

“놀랬잖아.”

카메라를 든 신 팀장도 갑자기 나타난 문어대가리를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갈고리를 이용하여 끌어올리는데 제법 힘을 쏟았다.

대왕문어가 너무나 커서 살려둔 체 보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다리 하나가 어른 팔뚝크기 보다 더 큰 것 같았다.

일단 촬영을 끝낸 신 팀장은 상준과 함께 문어를 해체하였다. 일단 문어의 내장을 꺼내는데 돌덩이 같은 살점덩어리가 내장 벽에 달라 붙어있었다. 그냥 무심결에 버리려다 본능적 직감으로 칼로 덩어리를 갈라보았다. 홍옥 원석이었다.

“문어에도 원석이 있나?”

상준은 예상외의 수확이라 혼란이 일어났다.

‘일반 물고기에 원석 추출이 가능한가?’

지금 끗 원석은 돌연변이였거나 괴물고기에서만 추출되었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그렇다면 대왕문어가 작은 괴물을 잡아먹은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잠수복만 있으면 동굴 속 바다 밑을 탐색해 보고 싶었다. 희진이 정도라면 해저 탐색도 가능하지 않을까?

저울도에서 살 때 자기를 돌봐준 할머니가 해녀로 키우기 위해 애를 썼다고.

“희진아! 너 해저 탐색해 봤어?”

“그걸 해저 탐색이라 해야 하나. 어릴 때 바다 속에 잠수는 해 봤지요.”

“그럼 가능 할 수도 있겠어. 어릴 때 배운 것은 몸이 기억하거든. 우리 잠수복 살까?”

“잠수복, 좋죠. 수중 탐색하면 멋질 것 같아요.”

“대표님 제 것도.”

신 대표도 해저 탐색을 해보고 싶어 했다.

결국 상준은 해저 탐색을 위한 잠수복과 작살까지 구입하려 결심하였다. 낚시는 다시 바다로 던져졌다.

그러는 사이 희진의 낚시에 돌문어가 잡혀 올라오고 잠시 후에는 붕장어도 걸려들었다. 동굴이라 해도 특별한 건 대왕문어 뿐이었다.

모두 다시 보트에 올라 동굴 밖으로 빠져나와 주변지역을 탐색해 보았으나 바위덩이와 같았던 괴물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잠수복을 구입하여 다시 동굴섬에 돌아오리란 생각을 하면서.

간간히 잡혀 올라오는 고기들은 여느 바다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한참 후 희진이의 낚싯대가 엄청난 저항을 받았다. 희진은 예쁘고 날씬한 몸으로 낚싯줄을 감아올리느라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신 팀장의 도움을 마다하고 한 끗 손맛을 즐기려 하였다.

“예사 고기는 아닌 것 같다.”

“상준은 희진을 바라보며 힘을 주라며 주먹을 불끈 쥐자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신력 하나는 최고인 것 같다.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는 옛말이 있지만 희진의 승부욕이 바로 그런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만은 어느 구석에도 연약한 처녀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20여분이 지날 쯤에야 조금씩, 조금씩 릴이 돌아가며 서서히 놈의 정체가 들어나기 시작했다.

‘저게 붉바리 인가. 아닌데.?’

무려 길이가 90Cm에 육박하는 대형 능성어였다.

“이야. 여기에 이런 놈이 있었네. 축하한다.”

“축하한다. 최 주무!” 신 팀장과 상준의 연이은 축하와 격려에 희진은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도시어부 능가한 것 아니에요?”

희진은 하얀 치아로 웃음을 만개하여 감격의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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