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사랑의 열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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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자 상준은 바다에 뛰어 들었다.
인적이 많은 사람들 사이를 한창 벗어나 안전라인까지 나갔다 돌아오길 반복하면서 옛날 수영실력을 점검해 보았다. 수영실력은 몇 년 쉬었다 해서 잊어버리거나 쉽게 녹슬지는 않는 것 같았다.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체력이 향상되고 근육이 살아있다 보니 어릴 때 보다 오히려 좋아진 느낌이었다.
몇번을 왕복하다 피서객들이 많은 곳을 피해 한적한 갯바위 쪽으로 헤엄쳐 나갔다. 갯바위에 올라 해수욕장과 바다 멀리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 생각에 젖어 들었다.
이곳은 늘 상준이 자주 찾는 낚시 포인트다.
집과 거리가 멀지 않으면서도 늘 상준에게 짭짤한 조과를 올려주는 곳이다. 간혹 피서를 온 아베크족들이 그들만의 밀회를 즐기러 오는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그만큼 크고 작은 갯바위들이 몽돌과 모래로 뒤섞여 해안에서 바다까지 이어져 있으면서 사람들의 눈에서 은폐할 수 있는 지형지물도 풍부하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갯바위 뒤에서 소곤거리는 연인들이 포옹을 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그런 사람들도 보였다. 그들이 찾는 주요 요소가 바로 이런 한적한 분위기에다 멀리 내다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이 사람들에게 매력을 제공하는 요소들일 것이다.
“오빠, 여기 있을 줄 알았지.”
소현이었다.
“언제 왔어?”
“휴양소에 갔더니 팀장님과 희진 언니 둘 밖에 없어서 여기로 왔어요.”
“수영이나 하지 그래.”
“전 수영을 잘 못하잖아요. 이안류 이야기도 있고 겁이 나서.”
“넌 바닷가에 살면서 어떻게 수영을 못 배웠니?”
상준은 지난 일이 생각나 소현이에게 물었다. 어촌 출신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수영은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몰라요. 그것도 사람 나름이죠. 몇번을 시도 했지만 결국 실패했어요.”
“그럼 물치네.”
“물치?”
“노래 못하면 음치, 술을 못하면 주치, 길 못 찾으면 길치....뭐 그런 것처럼.”
“호호, 그런가? 말이 되네, 물치. 물고기 이름 같기도 하고.”
“그런데 왜 날 찾았어? 무슨 일 있나?”
“아니. 오빠 혼자 외롭게 여기 앉아 신세타령을 하고 있나 해서. 호호”
소현은 깔깔 웃으면서 상준을 찾은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을 하지않았다.
얼마 후 상준은 그녀를 데리고 얕은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헤엄쳐 천막으로 돌아왔다.
신 팀장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기타를 치면서 희진이와 함께 어울려있었다. 소현이도 곧 그들과 어울리자 손뼉을 치고 노래도 부르며 분위기에 젖어들어 곧 잘 어울렸다.
비록 사람들과 떨어진 외진 휴양소였으나 공공지역이니 소리를 죽여 가급적 조용하게 그들의 분위기는 더해만 가고 있었다.
“우리 노래방 갈까요?”
목소리를 죽여 조용히 노래하던 신 팀장이 갑자기 노래방 생각이 났는지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
“가요. 가요.”
희진과 소현이도 신 팀장의 말에 동조하며 노래방에 갈 것을 적극 주장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좀처럼 신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표님 같이 가요.”
“오빠 같이 가요.”
상준은 하는 수 없이 노래방으로 전화를 해 보았다.
“빈 방 있어요?” 아직 진호해수욕장 주변에는 노래방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좀 있다오면 방 하나를 비워주겠다고 하였다.
“대략 몇 분 뒤에?”
지금은 빈방이 없어 있는 손님 중에서 마치고 나가면 비워두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먼저 전화를 하겠다고 배려도 해 주었다. 노래방 점주도 상준을 잘 아는 젊은 분이다.
“40분쯤 지난 뒤에 한번 가봐. 그 때쯤 방이 빌 수도 있데. 난 조금 더 있다가 천천히 갈게.”
그들은 그렇게 약속하였다.
그때 꼭 문자가 왔다. 행안부에서 제공하는 폭염주의보 안내 문자였다. 잠시 후 다시 휴대폰에 신호가 왔다.
상준은 문자를 열어본 후 그냥 폰을 닫았다.
진호노래방도 피서객들이 붐벼 빈방이 없었다. 한번 방을 차지하면 아예 내어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뒤늦게 방에 들어선 신 팀장 일행은 무슨 한풀이를 하는 것처럼 마이크가 손에 놓일 틈이 없었다. 무한한 젊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한 참을 지난 후 상준이 들어서자 마이크를 내어주며 노래를 하라고 야단들이었다.
상준은 중년들이 좋아하는 옛 노래 박현빈이 부른 “대찬인생” 부터 시작하여 최근 유행하는 비투비의 “너 없인 안 된다.”를 열창하였다.
난 지금 네게 가고 있는 길이야, 봄의 끝보다 훨씬 빠르게
할 말이 있는 걸 말하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 것 같아.
아마도 살것 같아 너랑 숨쉬면, 정신 못 차리겠어, 눈이 감기고.
I just want you to know, I’m the real one that you’re looking for
걱정은 불안함 안에 가둬, 건너편에 다 놔두고, 이제부터 우리 사진 주워 담아, 네 손아귀 안에, 아기자기 걸어 둘 거야. 어디든지 보이게 해줘, 나 없인 안된다 해줘.
노래를 마치고 그들끼리 즐겁게 놀도록 자리를 비워주고 나오려는데 소현이 춤을 추자고 상준을 붙잡았다.
상준은 가볍게 팔, 다리를 흔들며 간단한 포스만 취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왠지 더는 흥겨워 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난 가서 천막 지키고 있을 테니 천천히 놀다와.”
천막에 돌아온 상준은 의자를 내어 천막 앞에 앉아 피서객들의 노는 모습들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계휴양의 마지막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자정이 훨씬 넘어 신 팀장 일행은 휴양소로 돌아왔다.
“신 팀장 잘 놀더라.”
“대표님 노래 죽이던데요. 뭘.”
“맞아요. 죽여줘요.”
“스트레스 모두 풀었어?”
“예” 소현이와 희진이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소현인 아직 노래가 부족했는지 가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늘 밤이 하계휴양 마지막 밤이야.”
“그럼 내일, 모래부터 오빠는 뭘 하실 거예요?”
“뭘 하긴, 일을 해야지.”
“그렇지 참. 꼭 낚시하는 건 일 같지 않단 말이지.”
소현은 깔깔 웃으며 천막 안에 있던 의자를 가지고 상준의 왼편에 놓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먼 바다 낚시할 때 같이 가기로 약속했죠?”
“내가 언제?”
“제가 그랬잖아요? 그럼 싫단 말이에요?”
“......?”
상준의 주변 사람들은 상준의 일을 취미활동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신 팀장과 최 주무를 제외하고는.
“난 그게 일이야. 취미 활동하는 것이 아니야.”
“알아, 누가 뭐랬어요?”
“남 일하는데 자꾸 끼어들면 안되는 것 아냐?”
“내가 뭐 남인가?”
“.....?”
소현이 상준의 옆에서 계속 떠들자 희진은 질투의 눈길을 보내며 자신도 의자를 가지고 나와 상진의 오른 편에 앉았다. 그러자 이번엔 신 팀장마저 의자를 가지고 밖으로 나온다.
“오빠 우리 다음엔 어디 가서 일을 할까요?”
“희진은 은근슬쩍 소현의 말을 의식하여 의도적으로 일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낮엔 너무 뜨거워서 말이야.”
“그럼 밤에 일하러 가요.”
신 팀장도 낮보단 밤이 더 좋다며 밤낚시를 하자고 하였다.
“희진이도 가려고?”
“네, 저도 도와야죠. 이렇게 단합대회도 했는데. 내일 자료 정리해서 인넷방에 올리고 모래 밤에 가면 되겠어요.”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소현이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준의 손을 잡아당기몌 물에 들어가자고 야단이었다.
상준이 일어서자 신 팀장과 희진이도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번 하계 휴양으로 신 팀장과 소현이, 희진이, 이 세 사람의 벽도 조금씩 무너지고 친근감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수영도 하고, 물장난을 하고, 노래방에도 가고, 요리와 식사까지 함께하면서.
소현은 노골적으로 상준의 목에 매달리며 수영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신 팀장이 자진해서 가르쳐 주겠다는데도 굳이 상준에게 수영을 배우겠다며 노골적으로 고집하였다.
보다 못한 희진이가 소현을 끌고 수심이 깊은 안쪽으로 끌고 가서 밀어넣어 버리자 소현은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첨벙.”
이를 본 신 팀장이 재빨리 뛰어들어 소현이를 안고 얕은 곳으로 나와서는 수영을 가르쳐 주겠다며 달래고 있었다.
“소현씨, 제가 소현씨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신 팀장은 소현에게 관심이 있는지 진심을 담고 수영지도에 열중하였다. 워낙 운동신경이 둔한건지 물에 대한 공포가 큰 것인지 구별은 할 수 없어도 얼굴만 내어밀면 자꾸 물속으로 가라않았다.
다행인 것은 얼굴을 담그고 하는 헤엄은 약간씩 진전하는 희망이 보이자 소현은 점점 수영 레슨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희진은 상준과 경쟁이라도 하듯 프로 수영 선수처럼 바다를 유형하며 마치 돌고래가 물을 즐기듯이 수영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의 하계휴양 마지막 밤은 지나가고 있었다.
이튿날 오후 휴양소에 옮겨졌던 모든 집기와 천막을 철수하고 찬조를 받은 주변 상가의 그릇들을 돌려주면서 모든 일정은 막을 내렸다.
불과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으나 피부는 타고 얼굴에는 반점이 생겨났으며 어깨에는 작은 수포들이 생겨 약간의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 만큼 며칠간 기온이 높았고 햇볕마저 뜨거워 상준을 포함한 [뉴 해양 컴퍼니] 가족들뿐만 아니라 10여년 만에 나타난 무더위 탓에 바다를 찾은 대부분의 피서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과 함께 여러가지 후유증도 남겨주었다.
상준의 휴대폰 메시지 중에는 다슬의 문자도 날아와 있었다. 몇번이고 상준은 다슬의 문자를 곱씹어보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갈등에 빠져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배 말처럼 그럴 수는 없어. 차라리 나보고 죽어라고 해.”
신 팀장과 희진은 [작은 괴물 홍멸치]를 제작 동영상 제작, 완성하였고 [갯가의 헌터]라는 주제로 해서 희진의 문어와 낚지 잡는 모습을 소상하게 소개할 수 있는 동영상을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렸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준비를 하기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그리고 그 일을 즐기면서 할 때가 가장 효율성과 능률적이라 말을 하지 아니한가.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살고 싶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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