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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40화 (40/225)

〈 40화 〉 사랑의 열병(2)

* * *

둘은 그날 밤 이슥하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민수는 상준에 비해 술을 잘 마시면서 성격도 소탈하여 남자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휴양 첫날밤에는 모두 한곳에서 뒹굴며 보냈는데 이제 지쳤는지 하나, 둘 집으로 들어가곤 하였다. 모두가 가까이 사는 집이 있어 그런 것도 같다.

“그래, 근무는 할 만 하냐?”

“음, 처음엔 좀 자존심도 상하고 일에 몰입하지 못했었는데 이젠 점점 애정도 생겨나.”

“다행이다.”

“차라리 잘 됐지 머. 큰 회사에선 나 같은 사람 존재감 찾기도 어렵겠지만 우린 그렇지 않아. 모두가 다 한 식구 같고.”

민수의 표정엔 진심이 담겨있었고 상준이 봐도 믿음이 생겼다.

“맞아. 그런 것은 있을 거야.”

“이제 나도 열심히 해서 우리 회사 키워볼 거야. 점차 커가는 모습 보는 것도 좋지 않겠어?”

“그럼. 넌 할 수 있어. 나는 믿어.”

상준은 손을 들어 주먹을 내밀자 민수도 같이 응답하였다.

“너는 어떤데? 가끔은 간접으로 너 소식 듣지만.”

민수가 상준을 보며 물었다.

“나도 열심히 할 거야. 참, 나 사무실과 집 짓고 있어. 준공식 할 때 연락할까?”

“축하한다야! 연락해야지. 월차 내서라고 꼭 올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늦게야 둘은 천막안에서 잠이 들었다.

“선배, 선배,”

상준의 어깨를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눈을 껌벅이다 자세히 보니 다슬이었다. 아직 술기운이 조금 남아있는 상준이었다. 상준은 다슬이를 데리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왜, 아직?”

“네, 풍경이 너무 좋아 놀고 있는 사람들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럼 진작 이야기 하지?”

상준은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 다슬이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피곤하지 않아? 언제 올라가?”

“친구와 맞춰 휴가 날짜를 조절하여 나중에 연장근무 하기로 하고 일주일 휴가 받았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연장 근무하고 하고나서 그 다음엔 연장해서 쉬고. 휴가를 몰아서.”

상준은 물에서 놀고있는 사람들을 보며 킥킥 웃었다.

“너 내게 할 말 있지?”

상준은 직감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언제까지나 모른 척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

“나 언젠가 너게 물었지? 너의 친구들과 동료들에 대해서.”

“선배, 그땐 제가 대답을 잘못했어요.”

“잘못하긴. 너 말이 다 맞아. 나도 알아.”

“모든 스튜어디스가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지난 번 상준은 다슬의 친구들이 주로 어떤 사람들과 사귀는지, 결혼한 배우자들은 주로 어떤 사람인지를 물은 적이 있었다.

‘주로 스튜어디스는 어떤 사람들과 사귀고 어떤 사람들과 결혼을 하드냐고.’

그때 다슬은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때부터 선배가 한 발물러서서 자신을 대한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만. 나, 네 마음 모르는 건 아니야.”

“그럼 선배.”

“내말 들어봐. 네 정도면 누구 보다 쟁쟁한 신랑감이 줄을 설 거야?”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요?”

“다슬아, 난 그들만큼 네게 해줄 것이 없어. 난 이제 시작이야. 넌 본래 네 꿈이 있을게 아니야. 지금 와서 그걸 포기하면 안돼. 나중에 후회하게 돼.”

다슬은 상준의 얼굴을 한참이나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거리며 해수욕장 인파속으로 묻혀가고 있었다.

상준은 멀찍이 다슬의 뒤를 따라 갔다. 아무리 이곳이 자기가 살던 곳이기는 하나 혼자 보내기엔 모두가 들떠있는 해수욕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거리가 있기는 했으나 그녀는 분명이 울고 있었고 움푹 페인 모래밭을 걸어가며 휘청거리고 있었다.

‘내가 또 죄를 짓는 것인가.’

그녀의 발길은 집으로 가는 길이 결코 아니었다.

다행히 젊은 남녀 한 쌍이 방파제 계단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고, 그녀도 결국 계단에 앉아 고개를 파묻고 우는 것 같았다. 인기척을 느낀 남녀 커플이 자리에서 일어나 해수욕장으로 사라진 뒤에도 오래도록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등대에 나갔던 청년들의 소리가 왁자지껄 들리더니 다슬이에게 치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아가씨 오늘 바람맞았네.”

“아니구만. 오늘 뭔 일 있었어. 우리 술이나 한잔하러 갈까?”

그들의 목소리는 얼른 들어도 술 취한 취객들의 목소리였다.

다슬은 약간의 공포를 느꼈으나 그녀 특유의 당당함을 발휘하며 여전히 팔짱을 끼고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놈들은 다슬이의 팔을 잡아챈다.

“오빠가 오늘 재미있게 해줄게.”

“이것 놓으세요.”

다슬이 그들을 뿌리치자 어깨를 툭툭치며 횡설수설하였다.

“그만 가세요.”

참다못한 다슬이 한마디 더 한다.

“가시네. 우리가 도와줄게. 술한잔 하자고.”

그들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고 다슬의 머리와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러는 중에 급기야 한 놈이 다슬의 허리를 안고 들어 올리려고 하였고 한놈은 그녀의 발목을 잡고 끌고가려 하였다.

“이것 놔!”

위기를 느낀 다슬이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놓긴 뭘 놔. 좋은 말로 가자면 가는 거지. 웬 지랄이야.”

상준은 더 는 참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역시 취객들이었다.

다슬의 다리를 잡은 놈의 면상을 한방 올려붙였다.

“그만하고 가.”

“넌 뭐야?”

상준은 놈의 팔을 비틀어 놈의 등 뒤에 쿡 눌러주었다.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려보니 건장한 젊은이가 버티고 있다. 기가 한풀 꺾인 것 같다.

“시발, 제수 없게.”

그놈은 어깨를 만지며 한발 물러서며 비틀거린다.

“니게미, 우리가 어쨌다고 지랄들이야. 지가 우릴 유혹해 놓고.”

“그만 가라.”

상준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는 달리 카리스마가 담긴 경고성 발음이었다.

그제야 같은 일행이 두 사람을 잡으면서 싸움을 말리는 척 하였다.

상황을 판단하고 말리는 놈들은 그래도 술기가 덜한 놈들 같았다. 상준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료들을 끌고 방파제 밖으로 사라졌다.

“가자.”

다슬의 팔을 잡자 상준의 팔을 뿌리치고 다시 엎드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상준은 그녀의 뒤에 서서 가볍게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자 못이기는 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선배 말처럼 그렇게 하려고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게 안되는데 어떻게!”

“미안해.”

“의사면 뭣하고 변호사면 뭘 해. 쉬는 날만 되면 미치겠는 걸.”

“미안하다. 내가 못나서 그래.”

“오지 않으려고 별 짓을 대해도 그게 안되는데 어떻게 해.”

상준은 다슬이를 대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 그녀를 대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발길을 돌려 돌아오면서 상진은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주인집 아주머니 얼굴이 상준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사람 살려!”

“살려 주세요.”

어느 듯 달이지고 새벽이 오고 있을 무렵 바다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해수욕장을 뒤흔들었다. 삼십 여명이 넘는 해수욕객이 바닷물에 휩쓸려 끌려가고 있었다. 119 안전구조대 요원들이 바다로 뛰어들었고 사이렌이 울리면서 구명정도 떴다.

어디선가 배가 달려왔다.

상준은 자신도 모르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물 위에 뜬 사람들이 파도에 밀리듯이 안으로 쭉쭉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며 바닷가로 나오려는 사람, 튜브를 끼고 소리를 지르며 계속 안쪽으로 휩쓸려 가는 사람, 제자리에서 옆 사람을 붙잡고 발버둥치는 사람 등 새벽 바다가 혼란에 빠졌다.

상준은 정신없이 사람들을 붙잡아 제트스키에 태워주고, 구명정에 밀어 올리고, 튜브를 잡아 끌어내기도 하였다. 말로만 듣던 이안류였다.

이안류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짧은 기간에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흐르는 좁은 표면 해류를 일컫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귀중한 생명을 잃는 수도 있다.

119 안전요원들의 신속한 대처로 다행이 모두 구조되었다. 위급한 상황에 직면하고 보면 아직 우리 사회는 시민정신이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외로 용감하고 의리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평소에는 모두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살만한 나라인건 틀림이 없었다.

이번 사건으로 야간 개장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게 되었다.

텐트에 돌아오니 민수는 아직 쿨쿨 자고 있었다. 상준과 함께 마신 술 탓일 것이다. 상준도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인기척이 나서 눈을 떴다.

“너 빨리 왔구나.”

“네, 어제 밤은 너무 피곤해서 들어가 잤어요.”

“잘 했어. 아침 땜에 나왔지?”

“네, 헤헤”

“오늘 아침은 모두 라면 먹자. 국물 좀 많이 부어.”

희진은 잠깐 생각하는 듯 한다.

“우럭지리 한번 만들어 볼게요.”

“우럭지리?”

“간밤에 친구 분과 술 많이 드셨잖아요. 친구도 오셨는데 라면은 좀 그래요.”

결국 희진은 밥과 우럭으로 아침밥을 준비하였다. 우럭지리는 참으로 시원해서 술 마신 다음 날 속도 편안하고 숙취에도 그만일 것 같았다. 우럭과 무와 양파의 조화. 간은 소금으로 조절하였다. 매운탕과 달리 고추 가루를 일체 쓰지 않고 말갛게 끓인 것이 일품이었다.

친구 민수도 칭찬이 자자했다.

“너 동생 정말 대단하다.”

민수도 상준이 어린 동생을 잃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친구다. 상준이 동생이 살아있다면 아마 희진씨처럼 저런 아가씨리라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민수의 칭찬에 희진이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침 식사 후 조금 있다가 민수는 부산으로 떠났다. 배웅을 위해 주차장까지 따라 가는 길에 상준을 보며 한마디 하였다.

“밤늦게 너를 찾은 그 아가씨가 바로 너 여친이지?”

“잠들지 않았어?”

“글쎄, 그게 좀.”

“마음에 들면 잡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리고 얼마 후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친구를 보냈다.

사흘째는 거의 손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신 팀장과 희진은 이제야 휴식을 하며 진정한 휴양을 하는 것 같았다. 틈틈이 물에 들어가서 수영도 하고 천막안 의자에 앉아 바다를 내다보며 명상도 하면서 음료과 과일을 꺼내 목도 축이면서 안식과 같은 휴가를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직업의식이란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동안 올린 동영상과 방송프로에 대한 반응을 첵크하는 것은 업무에서의 해방과는 무관한 것인지 휴식을 하는 가운데도 신 팀장과 최 주무는 엄지를 내 보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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