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사랑의 열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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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를 입고 물에 뛰어들었으나 막상 혼자서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잠시 물에서 수영을 하다 다른 사람들의 물놀이를 구경하게 되었다. 친구들 끼리 물장난을 하는 모습, 튜브를 낀 아이들의 노는 모습, 짝궁으로 보이는 연인들의 모습, 아이를 안고 물에 적응시키려 애쓰는 아빠 등을 물가에 앉아 지켜보는 일 외엔 별로 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신 팀장과 희진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휴양소가 설치된 곳은 사람들이 적은 한적한 가장자리 였으나 모두가 꼭 같은 모습들이라 찾기도 어려웠다.
‘이래서 혼자는 해수욕장에 가지 않는구나.’
이때 사람이 없는 안쪽 바다에서 제트스키 두대가 물보라를 날리며 달리고 있었다. 온갖 기량을 발휘하면서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시원하고 멋진 모습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물속에 들어온 아빠는 목말을 태워주며 즐기고 있었고, 연인으로 보이는 한 커플은 여친의 수영교습에 한창이었다.
상준은 순간 연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때 재경 부산출신 친구들과 함께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며칠간을 어울리던 그때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다.
수영을 그만하고 얕은 바다가로 나와 물속에 주저앉았다. 파도를 탄 물결이 배꼽 부근에서 어른거렸다.
연희는 본래 부산학생 향우회 소속도 아니면서 기어이 끼어들어 같이 어울렸다.
“오빠, 수영 좀 가르쳐 줘.”
상준을 좋아하며 마음에 두었던 연희가 본격적으로 상준에게 접근 한 것이 그때인 것 같다.
상준은 고개를 흔들며 혼자 그 일을 부정해 봤지만 끈질기게 괴롭히는 미련이란 것이 있나보다. 상준의 친구들은 곧잘 만나고 곧잘 헤어지는데 데 왜 자신은 그렇지 못하는지 가끔 자신이 원망스럽고 바보 같다는 생각도 하였다.
‘우유부단 탓일까?’
멀리서 보는 것과는 달리 날이 너무 뜨거워 낮에는 대부분 파라솔 아래에만 죽치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는 한산하다.
그때 상준의 앞으로 정말 예쁘고 날씬한 아가씨가 튜브를 들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저 아가씨께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며 접근해 볼까?’
사실 그럴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
‘그래, 어차피 휴양소 아닌가?’
‘휴양소가 뭐란 말인가? 편히 쉬면서 피로를 풀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곳. 그래 그거야! ‘그것이면 되지. 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어?’
상준은 얕은 물을 베게삼아 조용히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파도에 밀려온 작은 물결이 상준의 귓가에서 찰랑찰랑 거렸다.
“아저씨, 좀 비켜 주실래요?”
초등학생 꼬마들이 수공을 가지고 장난을 하다 누워있는 상준을 보며 자리에서 비켜란다.
“연 프로 지금 뭐하고 있어. 이 더운데 일광욕해?”
눈을 떠 보니 동네 형 김영달씨였다.
“여기 어떻게?”
“동생 휴양소 개소했다며? 나 고기 좀 사왔어.”
김영달 형의 손에는 제법 큼직한 비닐 봉투가 들려있었다.
“혼자 오셨어요?”
“어, 상훈이는 오후에 올거야.”
상준은 영달씨와 함께 천막으로 갔다. 천막에는 예상도 못한 동네 주민들이 여러 명 앉아있었다. 그리고 인근 가게에서 찬조 물품을 많이 보내주었다. 바다로 나갔던 신 팀장과 희진은 언제 돌아왔는지 그들을 대접하느라 분주하게 설쳤다.
“오빠도 아저씨와 함께 앉으세요.”
상준은 모든 것을 직감했다. 휴가가 아니라 고생길로 빠졌다고.
상준은 그냥 집으로 가고싶었다. 그들과 일일이 말대답을 해야하고 음식이랑 술이랑 나눌 것을 생각하니 막막하였다.
동네 주민들은 막걸리를 하며 삼겹살이나 부추전을 몇 점씩하고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는 걸 보면 다른 분들의 자리가 부족하여 그들을 위해 자리 양보를 하나보다. 그러나 다시 다른 분들이 교대하여 찾아들었다.
“누가 소문을 내었나?”
“지역 상가진흥회에서 방송을 하였다나? 격려를 해 달라고. 지역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분들이라고.”
‘격려?’
어떻게 보면 격려가 맞을 것도 같다. 외지에서 왔다고 괄시를 하지 않고 따돌림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격려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들 많이 찾아주시니 정말 격려가 아니겠는가?
“신 팀장! 수고 많다.”
“수고는요. 무슨. 이게 다 재미 아니겠어요?”
“넌 생각이 나보다 낫다.”
“오빠는 뭘 좀 드셨어요?” 희진이도 전혀 힘들어 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수영복을 입고도 얼굴에 땀이 송알송알 맺혀있었다.
“오빠, 좀 드세요, 구경만 하지 말고.”
희진은 다시 상준에게 권한다.
“먹고 있어. 너희들도 먹어가면서 해.”
“걱정 마세요. 우린 분위기 봐 가면서 먹고 있어요.”
점심때가 될 무렵엔 동네 출신 대학생 현석이도 오고 잠시 후에는 소현이 동생 성민이도 왔다. 그들은 신 팀장과 함께 동네 분들의 뒷바라지를 하였다.
“누나도 좀 있음 올 거예요.”
성민의 말이었다.
‘시발, 아예 다 작정을 했네.’
상준은 혼자 중얼거리며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다행이 소현이가 와서 보고만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희진이를 도왔다. 희진의 손도 한결 여유가 생겼다.
“희진아. 너 여기서 좀 쉬었다 해라.”
“희진은 수영복 차림에 앞치마를 맨 요상한 복장으로 음식을 장만하다가 상준이 부르자 앞치마를 풀고 물로 뛰어들었다. 땀범벅이 된 모습을 상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는 것 같았다.
“소현아. 너도 음식 좀 먹으면서 해, 상민이랑, 현석이도.”
나중에는 주인집 아주머니도 다녀가시고 마을 회관 노인들도 다녀가실 쯤 소현이 아버지와 어머니도 다녀가셨다.
“그래, 연군, 좋은 일 한다. 동네 노인들도 챙기고. 고생이 많다.”
소현이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가시네. 집에서는 손끝하나 꼼작도 않으면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더니 소현이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 이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동네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결국 첫날은 동네 어른들을 위한 잔치가 된 것 같았다.
“오빠. 우리 수영하러 가요.”
잠시 틈이 생겨난 소현이가 상준의 손을 잡아 당기니 신 팀장도 성민이와 현석이, 희진을 보면서 물에 들어가자고 제안을 하였다.
이제야 좀 분위기가 살아났다. 물에 들어간 아이들은 온갖 장난을 다하면서 어울려 놀았고 상준은 천막에서 지킴이 역할을 하며 간혹 한 번씩 바다로 뛰어 들었다. 날이 어두워 곳곳에 불이 다 들어와도 저녁 먹을 생각은 아무도 하지않았다.
동네 분들을 접대하면서 이것, 저것 주워먹어 그런 것 같기도 하였다.
상준은 그들을 위해서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재들 모두 고생했잖아. 그렇다면 저녁은 내가 준비하자.’
먼저 밥을 충분하게 지어 놓고 삼겹살도 굽고, 물고기도 굽고, 상추와 고추 등을 탁자위에 올리고 쌈장과 초장 등도 함께 올려 두었다. 두 개의 탁자위에 제법 음식들이 예쁘게 차려졌다.
“선배!”
고개를 들어보니 168Cm의 늘씬한 장신에 수영복 차림의 하얀 피부를 가진 아가씨가 천막 앞에 서 있었다. 다슬이었다.
“언제 왔어?”
“방금요. 퇴근해서 오니 이렇게 늦었네. 근데 선배 혼자 뭐하세요?”
“너 참 잘 왔다. 나 지금 바쁘니 좀 도와라.”
결국 다슬이를 휴양소 식구들의 저녁 준비에 끌어넣었다.
“오늘 낮에 손님이 많았다면서요?”
“응, 첫날 휴양은 실패했지. 어머니께 들었어?”
“네, 바쁜 것 같으니 빨리와서 도우라고 전화가 왔어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리고 여럿이 와서 도와쥤어.”
회도 준비하고 재첩국도 끓이고 모든 준비가 다 되었을 땐 아홉시가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가서 식사하라고 해. 재들 오전부터 엄청 고생들 했거든.”
다슬이 물가에 가서 식사하라고 전해주었다. 모두들 천막으로 들어오면서 탄성을 질렀다.
“오빠 고마워요.”
“아저씨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은 다슬이와 내가 함께 준비했다. 실컷 먹어라.”
“감사합니다.”
“이런 데 술이 없으면 안되지.”
누군가가 막걸이와 소주를 들고와서 모두에게 한잔씩 부어 주었다.
“위하여!”
한참동안 물놀이에 빠진 탓인지 늦게 먹는 저녁 식사가 꿀 맛 같았다.
“식사 후 설거지는 남자들이 하는거다.”
상준의 한마디에 모든 남자들이 앞장서서 설거지를 해결하였다.
“내일은 손님이 별로 없겠죠?”
“아마도.”
식사 후에 희진이 끓여준 커피를 마시며 하루 중에 있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횟집 사장님이 다시 나타나셨다.
“사장님께서 보내주신 고기 잘 먹고 있습니다.”
상준은 횟집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요트는 어때?”
“네, 요트 아주 정상입니다.”
“다행이네. 사실 나도 요트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소개는 했지만 걱정이 되더라고.”
“예, 잘 쓰고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고 내 차에 그늘 막 부직포하나 싣고 왔어. 누가 차에까지 가서 같이 들고 오자고.”
“그늘 막을 요?”
“낮에 와서 보니 천막 속인데도 너무 뜨겁더라고. 그래서 천막 위에 덮어 치려고.”
“아, 예. 고맙습니다. 그기까지 신경 써 주셔서.”
결국 신 팀장이 현석이와 성민이를 데리고 횟집 사장을 따라 나썼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내일 낮에 하는 것 보단 밤에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이 시간에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결국 설치된 천막위에 그늘막 부직포를 덮어 쉬웠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희진이었다.
“와, 좋겠다. 이제 좀 그늘 같겠어.”
모기향을 피워두고 밤이 세는지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제 가고 싶은 사람은 가도 좋고, 있고 싶은 사람은 있어도 좋다. 상준은 자유행동을 선포한 후 탁자를 치우고 넓은 천막안에서 아무렇게나 뒹굴다 새벽이 되어서야 골아떨어졌다.”
“아침 해가 떠오르니 천막 깊숙이 햇볕이 들어왔으나 꼼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하루 중 가장 시원하고 조용한 시간이 이때인 것 같다.
오직 다슬이만 혼자 일어나 상준의 자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여름휴가는 좋은 것 같다.
오랜 친구 민수도 휴가를 얻어 상준을 만나러 진호해수욕장에 왔다.
그들은 오랫동안 아무말도 않고 반가움의 표시로 얼싸안았다. 누가 봐도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상준과 민수는 초등때부터 절친이었고 대학시절 부산 4인방이라면 재경대학 향우회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휴가 며칠 주드나?”
“일주일.”
천막 안에서 희진이 내어주는 막걸리와 해물 부추전을 나누어 먹으면서 끈끈한 우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누구?”
“여긴 동생.”
“여긴 후배.”
“여긴 이웃 동생.”
“그럼 애인은 이중에 누구지?”
“저예요.”
당돌하게도 희진이 얼른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상준을 처다보며 생글생글 웃어넘겼다.
상준은 그런 희진을 보며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맞나? 참말이가?”
상준을 바라보며 갑자기 튀어나온 민수의 사투리에 모두가 한꺼번에 와르르 웃었다.
“아인데. 아이구만.”
다시 모두들 한바탕 웃고는 하나, 둘 여자들이 바다로 뛰어 들자 남자들도 그 뒤를 따라 물에 뛰어 들어갔다.
밤이 되자 바다는 더욱 붐볐다. 모든 피서객이 물에 뛰어 든 것 같이 부딪히고 엉겨 붙어 있어 해수욕장 생동감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천막에 남은 사람은 민수와 상준이 뿐이었다.
“여긴 야간에도 물놀이 하나보지?”
“응, 아직은.”
“대부분은 오후 여섯시면 금지하는데. 피서객 안전 때문에.”
“아마 여기도 곧 그렇게 되겠지. 작은 곳일수록 제한 시간이 없거든.”
상준도 그 점이 늘 걱정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정리도 안됐고 모래가 작아 찾는 이가 별로 없었다고 들었다.
“너 내러온 김에 며칠 놀다가라.”
“놀고는 싶다만 집에도 가봐야지.”
“너 아직 주현씨 만나니?”
주현씨는 민수의 여자 친구이다. 주현은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고 민수는 상준이와 서울에서 다녔으니 자주 만날 수가 없어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었다.
“응. 만나긴 만나.”
“무슨 대답이 그래?”
“다 내가 못난 탓 아니겠나? 중소기업에 봉급 쥐꼬리 만하지. 자주 오지도 못하지. 왜 안 그러겠어?”
“그래도 주현씨 같은 사람 없다. 잘 잡아. 이번 휴가 때도 자주 만나고.”
상준은 진심으로 친구 민수를 생각해 충고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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