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에 미친 총각-34화 (34/225)

〈 34화 〉 가슴이 너무 아파(1)

* * *

미끼를 갈아 다시 던진 후 10여분이 지났을까?

“딸랑딸랑 짜르르”

“왔다.”

낚싯대 방울이 밤바람을 가른다. 상준은 챔질을 한 후 재빨리 감아 올렸다. 요동치는 손맛이 붕장어였다.

‘제법 큰데.’

“장어다.”

희진이 언제 아팠냐는 듯 환호를 질렀다.

“장어 구워먹어요. 진짜 맛있어요.”

“오케이.”

상준은 낚싯대를 던져두고 식칼을 찾다 순간 요트 공구박스가 떠올랐다. 한 번도 사용해 보진 않았지만 요트를 인수할 때 공구박스를 넘겨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선실에 들어가 서랍을 열어보니 케이스에 들어있는 과일칼 두개와 드라이브 세트, 망치, 가위, 그 외에도 기능을 알 수 없는 몇 가지 공구들이 수북하게 들어있었다.

‘병신, 왜 진작 이생각을 못했지.’

다시 딸랑이가 요란하게 울렸다.

“네가 올려봐.”

상준은 과일 칼을 챙겨 도마를 펼쳤다.

“와, 커요. 아까 보담.”

상준이 장어를 빼 내고 미끼를 달아주자 다시 던져 넣었다.

“멀리 날아간 것 같아요.”

“그럼 그냥 세워둬.”

상준은 그녀에게 랜턴을 잡고 불을 비추게 한 뒤 장어 손질을 하였다. 즉시 손질하여 말려두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이었다. 손질이 끝나자 희진은 랜턴을 쥐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소주와 막걸리를 한병씩 내어 오더니 초장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

“소주 한잔 하죠.”

“너 술 먹으면 물린 곳이 가려워질 텐데.”

“이젠 괜찮아요. 장어는 바로 먹어야 제맛이에요.”

결국 상준은 장어 한 마리를 썰어 갑판위에 놓았다. 희진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즉시 잡아서 그 자리에서 먹으니 진짜로 짱 이었다.

간혹 울리는 방울소리를 들으며, 불도 없이 캄캄한 밤에, 요트 위에서 먹는 술과 장어회는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맛에 대해 떠들지 마라.

“한잔 더하세요.”

“너도 한잔 더.”

그들은 그렇게 무인도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은 서로 술을 자제하며 조금씩 마시다 시간이 지날수록 술잔이 돌아가는 회전이 빨라졌다.

“오빠. 술 몇병 사왔어요?”

“맥주 2병, 막걸리 두병, 맥주캔 두개.”

“그래도 혼자 먹을 생각은 아니었나보네. 짝을 맞춘걸 보니.”

상준은 희진의 말을 들으니 이유 없이 좀 당황스러워져

“넌?”

“전 소주 세병”

“허허, 너 답다.”

“소주 한병만 더해요.”

결국 그들은 맥주캔 만 남겨두고 주거니 받거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술이 과하다거나, 많이 취한 것 같은 분위기는 아이였다. 분위기가 좋으면 술맛이 더 좋다고들 하지 아니한가?

“오빠. 제게 하고싶은 얘기 있죠?”

“응, 궁금해서.”

“저 사실 고아와 다름없어요.”

희진은 결심한 것처럼 모든 걸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둡던 밤이 조그만 조각달의 빛을 받아서 마주 앉은 희진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으나 그녀의 표정을 다 읽을 수는 없었다.

슬픔과 외로움이 가득찬 얼굴이란 것을 느낌만으로도 알 수는 있었다.

희진은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언제부터 인가 할머니와 함께 저울도에서 살았다고 하였다. 해녀이신 할머니는 홀로계시면서 희진이에게 물질(해녀)을 가르치려 무던히 애를 쓰셨다. 희진은 그 때가 차라리 행복했다고 하였다. 5학년이 된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란 분이 할머니 집에 나타나셨다고 했다. 희진은 자신에게 부모님이 계신 것은 그때 처음 알았는데 부모님을 따라 가천으로 갔다고 하였다.

“너의 아빠, 엄마니 가서 잘 살아라.”

희진은 그때 할머니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으며 그 할머니가 외할머니란 것도 그때 알았다.

부모님의 생활이 워낙 어려워 외갓집에 맡겨두고 돈을 버느라 그리 됐다 하였다. 부모님을 따라 가천으로 갔었는데 중학교에 진학하여 수영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바닷가에서 일찍부터 수영을 배우고 물질(해녀)을 배우느라 남달리 수영을 잘한 것이 그리 된 것 같다고 하였다. 지역 대회에 출전 할 때마다 입상을 하기도 해 고등학교에서도 수영을 특기로 하여 진학이 결정되어 있다고 하였다. 비록 집은 가난 했으나 하나 밖에 없는 무남독녀라 고등학교 진학은 걱정을 안했다고 하였다.

“저는 의례히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줄 알았어요. 수영 코치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중학교 졸업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겨울날, 수영 연습을 마치고 늦게 집에 들어서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고 계셔 문 밖에서 듣고만 있었다.

“당신, 정신 나갔나? 우리 형편에 고등학교는 무슨 고등학교.”

“특기생으로 진학하면 학비를 안낸다고 하잖아요.”

“그래, 그렇다 치자. 내 애도 아닌데 왜 내가 이 짓을 해가면서...”

“또, 또, 그 소리. 낳지는 못해도 우리가 데려 온지 3년이나 됐어요. 지도 모르고 있잖아. 우리가 부모인 줄 알고.”

얘기를 하면서 희진의 울음은 점점 커져갔다. 이야기 할 때 마다 흑흑 흐느끼며 가슴을 파고드는 아픔을 느꼈다.

상준은 가만히 희진에게 다가가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남아 있던 술을 손수 부어 몇 잔을 연거푸 마셔버렸다.

“그래, 실컷 울어.”

희진은 치밀어 오르는 오열을 참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집을 나와 버렸어요.”

인기척을 느끼고 엄마가 따라 나왔으나 무작정 달렸다고 하였다. 그날은 날은 춥고 바람도 엄청 많이 부는 날이었다고. 그 후 희진은 방황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식당 종업원, 목욕탕 때밀이, 미용보조, 옷가게 점원, 세상에 안해 본 것은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 후 어느날, 할머니가 계신 저울도를 찾았는데 그때 그 할머니가 일러주셨단다.

“넌 내가 섬 부두에서 주어왔단다. 누군가 배로 와서 저울도 부두에 너를 버리고 자기만 혼자 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넌 아무것도 몰랐어.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것 같았어. 너 나이, 이름, 부모님이 누군지도 전혀 몰랐어. 너가 살던 곳 까지.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그리됐을까?”

“너가 부모라고 부르던 사람은 너의 친부모가 아니고 내 딸과 사위란다. 자식이 없어 너를 보냈지. 몹쓸 것들.”

그 후 희진은 마음을 고쳐먹고 부산으로 가게 되었고, 어느 식당에서 일을 하며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으나 학비가 모자라 휴학을 한 것이라고.

“알고 보면 전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에요.”

“음”

“그러나, 다행이 오빠를 만나서 얼마나 기쁜 줄 모르겠어요.”

“그럼 넌, 아직 부모님 소식은 전혀 모르겠네.”

“알면 뭘 하겠어요. 저를 버리고 갔는데.”

“전 어릴 때 기억을 모두 잃었어요. 아마 충격을 받았나 봐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말 못할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너가 악몽을 꾸는구나.”

“저는 간혹 어릴 때 기억이 아닐까 하는 악몽을 꿀 때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조차....분명하지도 않고.”

상진은 희진의 아픔과 고통이 꼭 자신의 아픔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희진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지 아무리 고심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희진은 사랑이 너무 고픈 것 같았다.

상준은 희진의 손을 꼭 잡아주었지만쥐어짜는 듯한 가슴 통증애 쓰러질 것만 같았다

“희진아, 내가 어떻게 하면 널 도울 수 있을까?

“아니에요. 대표님, 전 대표님이 너무 고마워요.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대표님이 꼭 저의 은인 같으세요.”

“내가 뭘 한것이 있다고.”

그들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하늘은 잔뜩 흐리면서도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희진은 상준에 대한 호칭을 대표님이라 부르다가 때때로 오빠라 호칭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냈다. 새벽이 가까워져서야 선실 안으로 들어가 잠이 청했다.

자리에 누웠으나 쉽게 자지 못해 뒤척이고 있었지만 푹푹 찌는 듯한 밤의 열기도 새벽이 되면서 식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잠이 들었다가 정오가 다될 무렵에야 희진이 먼저 눈을 떳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상진이 자신의 손을 꼭 쥐고 잠들어 있었다. 살며시 손을 빼내 밖으로 나왔다.

간혹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며 소나기라도 올것 같은 날씨였다.

“오빠, 일어나 봐요. 비가 올것 같아요.”

눈을 뜬 상진은 간밤의 일이 모두 꿈만 같았다. 희진의 얼굴을 보니 어제 밤의 일들은 모두 잊은 것 같다. 상진은 모두 꿈속에서 있었던 이야기 같았고 현실이 아닌 먼 나라의 어떤 소녀의 이야기로 착각될 정도였다.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펴면서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러보았다.

“야! 야!”

상준은 그냥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배고프죠?”

“그런데, 넌 괜찮아?”

밤새 옛 이야기를 털어 놓으면서 펑펑 울던 희진이가 생각나 그녀에게 물었다.

“속이 후련해요. 그런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니.”

“다행이야.”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할곳이 없었거든요. 이제야 좀 살것 같아요.”

“음, 그럼 우리 아점 만들어 먹자.”

“예, 조금만 기다려 줘요.”

희진은 추리닝 자루를 물에서 꺼내 식사준비에 몰입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상준은 그녀를 꼭 지켜줘야겠다는 진심어린 마음이 생겨났다. 그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저렇게 잘 자란 희진을 보니 한편은 대견스럽고 한편은 애처로웠다.

“오빠. 가스가 별로 없어요. 쌀도 그렇고.”

“큰일이네. 좀 더 많이 가져올 걸.”

“걱정 마세요”

“......”

상준은 머릿속에 가스와 쌀이 떨어졌을 때를 상상해 보며 대처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여기서는 굶어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해산물이 풍부하고, 섬에도 찾아보면 뭔가는 있을 것 만 같았다.

빗방울이 점점 많이 떨어져 의자를 안쪽으로 들여놓고 말려둔 모든 것들을 선실 안으로 옮겨 놓았다.

“식사준비 다됐어요.”

탁자를 옮겨 밥상처럼 사용하여 상을 차렸다.

“쌀을 반만 사용했어요. 한번 더해 먹게.”

그러고 보니 밥그릇에 푼 밥이 평소보다 조금 적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쌀을 좀 더 아껴 먹을걸.”

“걱정하지 말라니깐요.”

“근데 너. 옷 안입을 거야?”

상준은 마주앉은 희진이를 바라보기가 거북스러워 눈을 피하면서 충고처럼 말했다.

“뭐, 어때요. 우리 밖에 없는데.”

“아직 안 말랐어?”

“불편하잖아요. 덥고. 그리고 오빠는 날 여자로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런게 어디 있어.”

“자자, 맛 좀 보세요. 장어에요.”

희진은 간밤에 잡은 장어를 몇 토막 구웠고 나머지는 뼈와 머리들을 넣어 탕을 끓였다.

“이게 제가 식당도우미 할때 들은 건데요, 남자들에게 그렇게 좋데요.”

“너, 참, 못 말리겠다.”

희진은 상진의 밥술에 구운 장어를 올려주며 생글생글 웃었다. 상준은 자라면서 어머니가 종종 자신의 숟가락에 고기를 골라 올려주시던 생각이 나서 눈시울이 뜨끔하였다.

요트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와, 국물이 시원하네. 장어국도 맛있고.”

“저 음식 솜씨 짱인거 인정하시는 거예요?”

“응, 맛있어. 너도 많이 먹어.”

“오빠도 음식은 별로 가리지 않죠?”

희진은 연거푸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상준의 밥에 올려주었다.

‘이런 건 보통 할머니들이 하는 컨셉인데.’

“그러지 말고 너 많이 먹어.”

“오빠. 저 아예 진호동으로 이사 오면 안되겠어요?”

“부산은?”

“이제 곧 원룸 월세도 내야하고 또 조금 있으면 계약금도 올려 달라하고. 지금 우리 사무실로 쓰는 민박집 방 비워있으니 어차피 월세 나가니까 그곳으로 오면 안되겠어요?”

“너 방이야 비워뒀지만 불편할 텐데... 신 팀장도 있고.”

“그래서 처음엔 부산에 가서 주로 있었지만 왕래하기도 불편하고.”

“너가 괜찮다면 그렇게 해.”

대답을 하고 나니 신 팀장과 희진이 한집에 거주한다는 것이 조금 께름칙하였다.

“너 휴가는 어떻게 할 거야.”

“이런 것이 휴간데 뭐 또 휴가를 가요.”

“친구하고 약속 했다면서?”

“그건 그냥 한 말이지요. 뭐 좀 있는 것 같이 보이려고.”

“참! 내.”

‘뭐 좀 있는 것 같이 보이려고....큭큭’

상진도 그냥 웃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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