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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33화 (33/225)

〈 33화 〉 무인도 표류(4)

* * *

그리고 그들은 꿈속으로 잠겨들었다.

희진은 친구를 달랜다. 부잣집 딸인 친구의 발레복 같은 옷을 한번만 입어보자며 조르고 달랜다. 산적 같이 생긴 괴물 같은 놈이 친구와 함께 주희를 끌로 어디론가 간다. 친구가 도망치자 그 산적이 친구의 머리를 몽둥이로 강타한다. 트렁크에 실리는 친구를 보며 자신은 의식을 잃어 버렸다.

“엄마!”

희진은 공포에 젖어 엄마를 부른다.

어느 곳인지도 모르고 배에 실려 어느 외딴 섬으로 들어갔다.

그 섬의 바닷가에서 조개를 딴다.

엄마가 왔다더니 금방 또 사라져 버린다.

아빠인가?

“아빠!”

“희진아!”

잠에서 깨어났다.

“아빠?”

“응, 희진아.”

희진은 아빠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아빠는 희진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그리자 다시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건 분명 개꿈이었다.

앞뒤도 맞지 않고 뒤죽박죽이었다.

상준은 희진의 등을 두드려 주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불쌍하기도 하고 가엾기도 했다.

잠이 든 희진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밤바람이 땀에 젖은 상준의 이마에 시원하게 스쳐갔다.

역시 선실은 갑갑한가 보다.

벌써 수평선 넘어 훤한 새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대표님, 벌써 일어났어요?”

“너도 잘 잤어? 그런데 너 대표님이라 부르지 말랬지?”

“그럼?”

“오빠라고 해.”

“언제는 아빠라고 하라더니.”

“그럼, 아빠라고 하던지.”

상준은 희진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오늘은 우리 뭘 하면 좋겠어요?”

“뭘 하지?”

“오늘 갯바위에 붙어있는 따개비나 거북손, 배말을 따요. 라면에 넣어 먹으면 맛있거든요.”

“배말은 뭐지?”

“나중에 가르쳐 드릴게요.”

“그건 그렇고 너는 모르는 게 뭐야?”

“사실은 제가 어릴 때 섬에서 살았거든요. 외할머니와. 그때 바다에서 이런 걸 많이 하면서 살았어요.”

“어느 섬인데?

“저울도라고. 잘 모르실 거예요.”

상준은 희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살았는데?”

“그건 몰라요.”

“부모님은 어디 계시고?”

“그것도 몰라요. 아니 부산에요. 아니지 그때는 가천이었나?"

".....?"

"오빠 우리 수영해요.”

갑자기 희진은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상준은 희진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하자 바다로 뛰어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상진도 바다로 뛰어들어 희진의 뒤를 따라 헤엄을 친다.

붉게 타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였다.

언젠가는 희진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싶었다.

밖으로 나온 상준은 희진을 보고 나오라는 손짓을 한다.

카메라를 잡고 수영을 하는 희진의 모습을 한참동안 찍은 다음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어 두었다.

상준은 아침밥을 짓고 바닷물에 담그 두었던 추리닝 자루에서 낚지 몇 마리를 꺼내 놓았다.

이걸 이용하여 아침 식사를 할 참이었다.

요리를 하는 상준을 보자 희진은 재빨리 나와 기름장을 만들었다.

“낙지는 누가 뭐라 해도 기름장이 제일 맛있어요.”

상준이 다된 밥을 푸는 동안 희진은 낙지를 장만하여 일회용 쟁반에 올려놓았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성게미역국도 함께 차려 내었다.

“이만하면 되겠죠?”

“집에서 먹는 것보다 매번 더 잘 먹는 것 같애.”

“이게 다 동생 잘둔 덕분인 줄 아세요.”

“그럼 이제 오빠라고 하는 거야?”

희진은 상준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오빠 애인 예쁘더라?”

“뭐?”

“있잖아요. 다슬이 언니.”

상준은 희진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간단한 식사 후 그들의 일과는 다시 시작되었다.

희진은 상준이 내어준 칼을 들고 거북손이며 배말을 따고, 작은 홍합도 함께 채취하였다.

바위에 붙어있는 조개들은 보기 보단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영상을 확보해 두고는 섬 기슭에 올라 나무 그늘에서 쉬기로 하였다.

까마득히 먼 곳에는 큰 배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이 이제 3일째네.”

“진짜 시간 빨리 가지요?”

“힘들지 않아?”

“오빠는 힘들어요?”

“아니, 난 괜찮지만. 너 말이야.”

“저야 재밌죠. 이야기 했잖아요. 요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상준은 희진에게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를 또다시 울릴 것 같아 더는 말할 수가 없었다.

“오빠, 조금 있다 낚시 하실 거예요?”

“아니, 초저녁에 하지 뭐. 계속하면 지치거든.”

“그럼 우리 점심 먹고 섬에 한번 올라가 봐요.”

“그럴까?”

“오빠는 참 좋은 사람이야.”

상준은 덤덤하게 듣고만 있었다.

둘은 어제 하루 동안 많이 탄 것 같았다. 상준의 턱에는 불과 이틀 만에 수염이 제법 자라났고 희진은 얼굴이 빨갛게 익어있었다.

“너 모자 안가지고 왔어?”

“많이 탔죠?”

“음, 약간.”

“모자 못 챙겼어요. 필요한 건 다 챙긴다고 챙겼는데.”

희진은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툭툭 치면서 아쉬워했다.

상준은 어제부터 희진의 모자를 만들어 볼 궁리를 해 보았으나 뚜렷한 아이디아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아침까지 구름 한점 없이 맑기만 하던 하늘에 점차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가벼운 바다 바람도 솔솔 불어오고.

“오늘 밤엔 비가 올 것 같애. 내러가서 점심 먹어야지.”

“점심은 제가 할게요.”

“....?”

“오늘 점심은 배말 거북손 라면입니다”

희진은 냄비에 물을 가득 부어 랜지에 올려두고는 거북손과 배말, 홍합을 깨끗하게 씻었다.

잘 씻은 거북손과 배말은 냄비에 넣어 푹 삶았고 홍합은 건네주며 추리닝에 넣어 바닷물에 담그라 주문하였다.

“이건 어쩌려고?”

“저녁에 국 끓여 먹을 거예요.”

“너 정말 모르는 것이 없구나.”

“난 태어난 후 칭찬 받는 건 오빠가 처음이에요.”

희진은 대답을 하면서도 얼굴엔 잠시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삶은 거북손과 배말을 꺼낸 후 라면을 넣어두고 그들의 살을 밝아 함께 끓였다.

하나하나 요리하는 솜씨가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게 바로 1박 2일에 나온 배말라면 입니당.”

“참 희귀한 체험은 다 해 보네.”

“맛이 어떠세요?”

“맛있어.”

“그 말 밖에 없어요?”

“정말 맛있어.”

"호호호."

그리고 그들은 즐겁게 식사를 하며 한끼를 때웠다. 섬에 오르기 전 상준은 희진에게 몇몇 주의사항을 잊지 않았다.

첫째, 뱀 조심.

둘째, 나뭇잎과 풀들이 가급적 피부에 접촉하지 않게 할 것.

셋째, 올라갈 때나 내러올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목 조심할 것.

상준이 특히 강조한 이유는 그들의 복장이 수영복과 다름없는 반바지에다 민소매 런닝 차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완만한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올랐다.

사방팔방이 온통 바다였고 멀리 희미하게 두, 세 개의 섬이 아득하게 보였다.

“너 여기서 둘러보니 돌아갈 걱정이 안돼?”

“오빠가 있는데 뭐.”

“너, 나를 너무 믿지 마.”

내러 오면서 먹을 만한 나물이 있나 살펴보았으나 제철이 아니어서 잎이 너무 세어져서 마땅한 것이 없었다.

“아야, 아야. 앗 따가워.”

그때 갑자기 희진이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팔뚝을 잡고 웅크리고 앉아 울상이 된 얼굴이었다.

팔을 잡고 들여다보니 어깨 부위가 순식간에 부어오르고 누런색 돌기가 돋아나고 있었다.

100퍼센트 풀쐐기에게 물린 것이 틀림없었다.

풀쐐기는 주로 갈참나무 잎에 붙어있으며 사람의 피부가 닿는 순간 독침을 무더기로 발사하여 엄청남 고통을 주는 놈이다.

상준은 얼른 입속에 침을 내어 발라주고는 희진을 쏜 풀쐐기가 있을 주변나무를 찾아보았다.

역시 갈참 나무였다.

나무 가지를 손으로 잘라내어 젓가락을 만들어 그놈을 잡아 돌 위에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배를 꾹 찔렀다.

나뭇잎을 갉아 먹어서인지 푸르고 누런색의 혼합된 내장의 진물이 터져 나왔다.

“이것 바르자.”

“그게 뭐예요?”

희진은 울상이 된 얼굴로 상준을 쳐다보았다.

“따끔따끔하며 아프지? 풀쐐기에게 물린 거야. 이것 바르면 금방 나아져.”

“그것이 뭐라고요?”

“응급약.”

상준은 희진의 어깨에 골고루 발라주었다.

잠시 후에 자리에 일어서면서 상준을 바라보며 갑자기 약이 어디서 나왔냐고 의아해 하며 물었다.

“내 침이야.”

“침 말고?”

상준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차마 풀쇄기가 터진 물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당분간 물에 들어가면 안 돼. 물이 묻으면 다시 쏘거든. 엄청 아프니까 물 조심해.”

상준은 그놈이 풀쐐기란 놈이며 나뭇잎과 접촉하지 말라고 한 뜻을 알려주었다.

산에서 내러온 상준은 해가 넘어가도록 나무 그늘에서 시간을 보냈다.

희진은 통증이 가라앉는지 홍합을 삶아 파를 설어 넣은 다음 국처럼 밥을 말아 먹자고 하였다.

뽀얀 홍합 국물은 시원하면서도 속을 편하게 해 주었다.

“넌 절대 물에 들어가지마. 어깨에 물이 닿으면 다시 통증이 재발될 수 있어.”

식사를 하고난 상준은 바다를 지켜보며 괴물고기의 동향을 살폈으나 보이지 않았다.

작은 물고기를 썰어 찌를 달지 않는 상태에서 가급적 멀리 던져두고 낚싯대 끝 부분에 방울을 달아두었다.

그리고는 요트에 기대어 낚싯대를 세워두었다. 희진이 하던 것처럼 돌을 뒤져서 낚지나 돌문어를 잡아보기 위해서였다.

희진은 요트 선창에 의자를 내어놓고 상준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좀 잡혀요?”

손전등 불빛에 비친 상준의 모습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없어.”

“조금 큰 바위나 돌 틈 같은 곳을 잘 비춰보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상준은 희진이 일러주는 대로 꼼꼼하게 뒤졌으나 무엇보다 파도를 일으키는 물결 때문에 통 보이지 않았다. 물결이 어른거려 있다 하드라도 잡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안돼요?”

“안돼. 보이질 않아.”

참다못한 희진이가 결국 요트애서 내러와 바다에 발을 담그었다.

“안돼.”

“뭐, 수영할 것도 아니니 허벅지 까지만 들어갈 거예요.”

희진은 구부려 이 돌, 저 돌을 뒤지며 5분이 체 되지 않아 결국 낙지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잡았어요.”

“잘 잡네.”

상진은 좀 창피하기도 하고 허리도 아파 추리닝 자루를 들고 수진이 뒤로 따라 다녔다.

얼마되지 않아 몇 마리의 낚지와 돌 문어들을 건진 뒤 큰 문어가 나타났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허리를 굽혀 손으로 쫒아가던 희진은 문어가 깊은 곳으로 도망치자 자신도 모르게 팔을 뻗어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앗 따거.”

갑자기 희진은 풀쐐기에게 물린 팔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아파요.”

“물에 잠겼구나. 그만 잡고 빨리 밖으로 나가.”

상준은 희진을 데리고 물 밖으로 급히 나와 그곳에 다시 침을 발라주면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더니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여자들에게 독성이 더 강한가?”

희진의 표정을 보면서 풀쐐기의 독성이 이렇게도 강할까 하는 의아심이 생겼다.

자신의 경험으로는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요트에 가자.”

어두운 밤의 바닷가는 요트가 가장 안전할 것이다. 파도는 밀려오고 돌들이 많아 잘 못 자칫하면 발목을 삔다거나 넘어지기가 십상이었다.

요트 위에서 희진이 물린 부위를 점검하였으나 붉은 반점만 약간 보일 뿐 부어있던 부위도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데 상준은 깜짝 놀랐다.

물에 젖은 그녀의 러닝셔츠가 온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데 가려야할 안쪽 브라가 없어져 버렸다.

움찔하며 자신도 모르게 랜턴을 끄면서 물러서는데 눈치를 챈 희진이 아무렇지도 않는 목소리로 태연하게 말했다.

“계속 젖어있어 가려워서 벗어버렸어요. 좀 말려두려고요.”

‘누가 물어 봤냐고.’

상준은 할 일 없이 낚싯대를 거두어 미끼를 바꾼 다음 다시 던져 넣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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