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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32화 (32/225)

〈 32화 〉 무인도 표류(3)

* * *

해는 어느 듯 서쪽으로 기울어 섬 그늘이 그들을 덮었다. 낚시를 던져두고 희진이와 함께 섬 주위 바다 속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추리닝 바지의 발목을 묶은 후 허리끈을 당겨 자루로 만들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그를 듯 해 보였다. 제법 많은 수확물이 잡혀 올라왔다.

전복, 소라, 고동과 돌미역이 주종이었다. 가끔은 해삼과 성게도 있었다. 희진은 지칠 줄도 모르고 잠수를 계속했고 상준은 잡은 수확물을 받아 추리닝 자루에 챙겨 담았다. 돌미역은 모아 바위 위에 널고 해삼과 전복도 말리기 시작했다. 희진은 하나씩 건질 때마다 상준을 보며 환호를 하거나 하얀 웃음으로 기분을 표시하였다.

상준도 그녀의 그런 즐거움에 응답을 해주며 손을 같이 흔들어주거나 엄지척을 해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상준의 응답에 신이 난 희진은 놀랍게도 무슨 보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쉴사이 없이 바다 속을 드나들었다.

“우리 이러다 어부 되는 것 아니에요?”

한참 동안 물속으로 드나들다 지친 희진이가 하는 말이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무슨?"

“그보다 너 해녀 되는 것 아냐?”

“해녀요?”

“그래, 난 어부가 될 것 같고.”

희진은 진짜 자신이 꼭 해녀가 된 기분이었다. 한때는 할머니가 자신을 해녀로 키워보겠다고 애를 쓰신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잠시 쉬었다 해요.”

“우리 오늘은 그만하자. 갑자기 많이 하면 몸살 나.”

그들은 요트로 돌아와 잡은 수확물을 정리하였다. 제일 많은 것은 돌미역이었다. 물이 차지 않을 곳에 일일이 널어 말려두고 소라와 전복, 고동 등도 잘 다듬어 널어 두었다.

“오늘 저녁은 성게국과 해삼 덮밥.”

상준은 비록 이런 메뉴는 해본 적이 없지만 먹어본 경험으로 도전을 하였다. 희진이도 옆에서 동영상을 촬영하며 상준의 요리를 도와주었다. 요트에 저장된 물을 뽑아 밥을 짓고, 해삼을 장만하여 썰어두었다.

상준은 성게를 쪼개어 알을 모은 뒤 미역과 파를 넣어 끓이려 하자 희진이 카메라를 돌리다 말고 조언 한마디를 놓지지 않았다.

“잠깐 대표님.”

“....?”

“미역은 먼저 넣어 끓여주시고 파는 송송 설어 다끓인 뒤에 마지막으로 넣어 주세요.”

“그래?”

상진은 그릇에 뜬 밥에 잘게 썰은 해삼을 듬뿍 넣고 마늘 으깬 것과 상치, 깻잎을 썰어 함께 넣었다. 그리고 초고추장을 듬뿍 뿌려 넣었다. 그리고 성게 미역국을 내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해삼 덮밥에 성게 미역국.

“완성.”

“수고 하셨어요.”

“맛이 어때?”

상준은 희진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희진은 진심인지 과장인지 무척 좋아하며 맛있게 먹었다. 상준은 자기가 한 요리였으나 입속의 미각이 새로 살아난 것처럼 감미롭고 신선했다.

“대표님, 우리 여기 살아도 되겠어요.”

“엉?....으응.”

희진은 자신의 말이 좀 황당했음을 느끼고는 바다를 가르치며 엉뚱한 말을 하며 상황을 피해 나갔다. 날이 어둑해 지자 희진은 다시 상준을 재촉하였다.

“대표님. 우리 낙지나 문어 잡으러 가요.”

“어떻게?”

“TV 못 보셨어요?”

상준은 또 그녀가 무엇을 할지 희진을 바라보자 생글생글 웃으며 랜턴을 챙겼다.

“추리닝 자루 들고 와보세요.”

희진은 다시 바다로 들어가 무릎까지 오는 연안 지역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보자 상준은 다시 카메라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이기 때문이었다.

한참 만에 물에 잠긴 돌을 뒤적이다 낙지를 잡아 올리더니 결국 문어도 잡아 올렸다. 물에 잠긴 돌 주위를 랜턴으로 비춰 살그머니 손을 넣어 잡는 것이었다.

“너, 참 대단하다.”

“대표님, 있잖아요?”

“뭣이?”

“여기 살아도 될 것 같지 않아요?”

“글쎄.”

상준은 희진이 무안해 할까봐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을 해 주었다.

“희진아, 너도 이제 여기서는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돼.”

“그럼 뭐라고?”

“엄마라고 불러.”

“예?”

새벽잠에 희진이가 엄마를 부르며 자신의 품에 파고드는 모습이 떠올라 농담을 하였다. 처음엔 자신도 무슨 소리에 잠이 깼는데, 엄마를 반복하며 파고드는 것이었다. 궁금하였지만 물을 수는 없었다.

“대표님은 참.”

“농담이야.”

“엄마는 그렇고 아빠라 할게요.”

“뭐? 아빠?”

“헤헤헤.”

“야.”

희진은 배가 아플 정도로 웃음을 못 참고 깔깔 대었다. 어쩌면 희진은 진담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불과 몇 살 위인 상진이었지만, 꼭 오빠 같기도 하고 아빠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더는 문어도, 낙지도 올라오지 않았다. 둘은 잡은 문어의 내장을 빼내고 역시 말려두고 낙지는 아침에 먹을 수 있게 추리닝 채로 바다에 담궈 두었다. 물론 끈으로 단단하게 졸라매어...

“또 왔네.”

“....?”

“홍멸치가.”

상준은 다시 고등어 바늘을 단 낚시를 바다로 던져 보았다. 잡히거나 말거나. 그냥 던졌다. 이러다 간혹 물기도 했었기에...

그리고는 한참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 어느 순간 홍멸치 두, 세 마리가 유형하고 있는데 그 뒤를 따라 야자 크기 정도의 또 다른 괴물고기가 홍멸치의 뒤를 따라 붙고 있었다.

“어, 저건 뭐지?”

“뭣이 보여요?”

“괴물 같아.”

더 이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상준은 말려둔 홍멸치가 머리에 떠올라 희진이에게 말려둔 홍멸치를 가져오라 하였다.

신속하게 바늘을 바꾸어 홍멸치를 꿰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그놈이 눈앞에 나타났다. 상준이 천천히 실을 감아 당기자 순식간에 미끼를 덥석 무는 것이었다.

“걸렸어.”

정말 그놈은 야자크기 정도의 개우럭이었다. 바로 진호해수욕장 갯바위에서 잡은 바로 그놈이었다. 개복치 머리에 우럭의 몸통을 하고 있는... 주황색 보석 원석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바로 그놈이었다.

상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그놈의 배를 갈랐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게 뭐야. 희진아.”

“뭣이 이리 많아요?”

개우럭의 배속에는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주황색 원석 한 개와 멸치속에 들어있던 홍진주 아홉 개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확실한 것은 개우럭이란 놈이 홍멸치를 좋아하는 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이런 놈을 몇 놈만 잡을 수 있다면 목걸이와 팔찌는 문제도 없을 것이다.

“우리 이제 갑부 되는 것 아니에요?”

희진은 갑자기 상준을 와락 껴안았다. 그러는 희진을 상준도 지긋이 안아 주었다. 희진은 다시 정신을 차렸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 낚시를 빨리 던지지 않고 뭣하고 있냐고 성화를 대었다.

‘가시네. 자기 마음대로야.’

상준은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바다로 낚시를 던졌다. 바다를 바라보고 묵묵히 앉자있는 상준의 옆에 희진은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침묵만 흘러갔다.

무릎에 턱을 괴고 앉아있던 희진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졸리지?”

“네, 약간요.”

“그럼 들어가 자.”

“저 혼자요?”

“난 조금 더 해보다 들어갈게.”

한참을 더 버티던 희진은 결국 먼저 일어나 요트 안으로 들어갔다. 종일 물속으로 드나들었고 신이나 설쳐 대었으니 피곤한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상준은 홍멸치를 끼워 다시 바다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휴대폰 배터리도 방전이 되어버려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도 감이오질 않았다.

사실 중산시 진호동에서는 누구하나 상진의 동태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인집 아주머니와 딸 다슬이, 그리고 신 팀장은 알고 있겠지만 낚시를 하기위해 바다로 갔다고만 생각을 할뿐 누구하나 의심하는 그런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신 팀장은 휴가를 떠난 상태였고, 다슬인 상준을 기다리다 출근하기 위해 회사로 갈 것이며, 주인아주머니도 사고 같은 것은 상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어선 하나만 지나가면 그 뿐일 것이다. 태평양도 아니고 인도양도 아닌 그냥 한반도 남쪽 작은 섬일 테니까? 그때 인기척이 났다.

“흐응, 흐응”

희진이었다.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은 희진의 목소리였다.

“왜?”

“무서워서 혼자는 못자겠어요. 잠이 오질 안으니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그때였다. 다시 낚시를 문 놈이 있었다. 추측했던 대로 개우럭이었다. 정성스럽게 원석과 진주를 모두 꺼내어 깨끗하게 씻어 주머니에 담아두고 옆에 앉은 희진을 바라보았다. 다시 그녀는 꾸벅꾸벅 졸며 앉아있었다.

‘잠이 안온다고 하지 않았나?’

미끼를 바꾸어 막 바다에 던지려는 순간

‘후더덕’

꾸벅거리던 희진이가 넘어지려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안되겠다.’

상준은 낚시를 접어 낚시 가방을 정리한 후 취사도구와 아이스박스 등을 전부 챙겨 파도가 오지 않은 자갈밭 위쪽으로 모두 옮겨두고 잊은 물건이 없나 랜턴을 비춰가며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다른 것은 보이지를 않았다. 그리고는 희진이를 깨웠다.

“희진아 가자. 자러가자.”

희진은 꼼작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상진은 희진을 안고 요트 안으로 들어갔다. 희진의 몸은 너무 가벼웠다. 이런 몸으로 종일 바다에 뛰어들곤 했으니.... 무더운 열기를 받은 요트는 한밤이 되도록 제대로 식지 않아 선실 안은 바깥 기온에 비해 후끈한 열기가 남아있었다.

일단 소파에 희진을 눕혀두고 요트 바닥에 모포를 편 다음 조심스럽게 희진을 눕혀주었다. 뭐라고 잠꼬대처럼 중얼중얼 하다가는 조용하게 잠이 들었다.

잠이든 희진의 모습은 아직도 나이답지 않게 고딩과 다름없는 앳된 소녀 같아 보였다.

상진은 요트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 보았다.

괴물고기 홍멸치 떼를 보게 되었고, 요트 시동이 걸리지를 않아 조류를 따라 흘러갔고, 무인도에서 하루를 보낸 일들....

전복과 해삼을 찾아 무수히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

문어를 쥐고 해맑게 웃는 모습,

자신의 품에 안겨 엄마를 찾던 희진이.

상준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자신의 상상에 대한 강한 부정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그럴 일은 없지. 절대 그런 일은.’

순간 상진은 어릴 때 떠나간 초등 4학년의 어린 동생의 얼굴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해보았으나 장신의 상준이 짧은 소파에 누워 잔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 하였다. 하는 수 없이 희진의 옆에 누워 잠을 청해 보았다. 그녀의 숨소리가 새근새근 귓전에 와 닿는다.

상진은 심장이 고동쳤으나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잔잔한 파도 소리는 갯바위에 부딪히며 무인도의 노래처럼 아득히 들려왔다.

그리고 상진은 무인도에 갇히면서 하루 빨리 구조선박이 와 주기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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