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무인도 표류(2)
* * *
“대표님, 이제 선실로 들어가서 좀 쉬세요.”
조류는 점차 수그려 들고 바람도 좀 잠잠해 지긴 했으나 칠흑 같은 어두움에서도 하늘의 별은 총총하였다.
상준은 손전등을 희진에게 내어주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힘을 쓴 탓인지 온 몸이 모두 아픈 것 같았다. 꼭 몸살이 오기전의 상황처럼.
그리고 잠이 들었다.
희진은 뱃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오싹하기 이를 때가 없었다.
연 대표와 함께 할 땐 느끼지 못했던 검은 공포가 스무 세살의 처녀에게 엄청나게 다가왔다.
갑자기 물속에서 시커먼 괴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대표님 주무세요?”
아무 대답이 없었다.
팔뚝에는 소름이 돋아나고 등줄기엔 식은땀이 송알송알 맺혔다.
선실문을 열고 손전등을 비춰보니 선실 바닥에 그가 누워있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밖에서 밤을 셀 자신이 없었다.
너무나 무서웠다. 선실 안으로 들어와서 의자에 앉아 밤을 새우기로 하였다.
요트는 아직도 흔들거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몰려오는 졸음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내려와 상준의 옆에 쪼그리고 누웠다.
사실 희진은 상준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빠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좀더 상세하게 이야기를 한다면 아빠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너무나 듬직하고 이해심도 많아 그런 것이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좀처럼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해 친구하나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왜 이 사람이 가깝게 느껴지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갈 곳 없는 자신을 채용해 주었고, 거짓말을 한 자신을 용서해 줬고, 너무나 많은 배려를 해줘서 그런 것일까?
지금 껏 살면서 자신의 능력을 믿어주거나 잘한다는 칭찬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그는 자신에게 너무나 관대한 것 같았다.
자신의 키는 불과 161Cm.
자신에 비하면 연대표의 키는 180Cm이 훨씬 넘는 거구처럼 보였다.
어떤 때는 아버지 같았고 어떤 때는 오빠 같았다.
그런 사람이니 자신 역시 쉽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도 쉬웠던 것 같았다.
희진은 온갖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바다에서 괴물이 나와 요트를 휘감고 부숴버린다.
살아 보겠다고 도망을 치는데 산적 같은 사람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엄마! 엄마!”
있는 힘을 다해 탈출해 보려 엄마를 부르는데 어머니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요.”
“희진아.”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엄마라 생각하며 와락 껴안았다.
엄마도 자신을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희진은 한없이 울었다.
“희진아.”
눈을 떴다.
엄마였다.
'.....?'
아니 연대표였다.
연대표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대표님.”
연 대표의 품에 안겨 이성을 찾다보니 상황 판단을 하게 되었다.
후다닥 자리에 일어났다.
연대표가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대표님. 제가?”
“악몽을 꿨나?”
밖으로 나온 희진은 지금의 상황에 너무나 황당했다.
꼭 어머니 품에 안긴 기분이었는데.
얼굴은 달아오르고 심장이 고동친다.
어떻게 수습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햇볕은 머리를 내리쬐고 있었다.
“대표님, 오늘 날씨가 화창합니다.”
선실을 들여다보며 희진은 소리를 질렀다.
“화창? 뜨거운 것이 아니고?”
상준도 밖으로 나서면서 하늘을 처다 보았다.
“어이, 최희진?”
“예.”
희진은 모기 소리를 내어 대답을 하였다.
“난 잘못한 것 없다. 네가 그랬지.”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 그런데 여긴 어디야?”
사방을 둘러보니 많던 섬들이 다 사라졌고 조그만 섬하나가 요트 뒤편에 덩그러니 홀로 놓여있었다.
“일단 우리 저 섬으로 가자. 저기 저 자갈밭으로 요트를 올려놓고 수리를 해보던지 하자.”
상준은 바다로 뛰어들어 요트를 밀어 보았다.
아주 조금씩 요트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를 본 희진도 함께 뛰어들어 양 쪽에서 요트를 밀어 붙였다.
조금씩, 조금씩.
한 시간 정도 소요됐을까?
결국 그들은 자갈밭 부근 작은 갯바위에 요트 정박에 성공하였고 즉시 바위에 묶어두었다.
“일단 우리 밥부터 해 먹자.”
희진은 매우 신이 난 것 같았다.
꼭 자신이 영화에서나 나올만한 무인도에 갇힌 주인공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초딩 저학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상준은 그냥 무덤덤한 것 같이 보였으나 실은 대표로서 직원인 희진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기 위해 애써 표정을 감추고 있었다.
섬 전체를 돌아보진 않았으나 무인도임에 틀림이 없었다.
상준은 어릴 때의 일이 생각이 나 해안 바위틈을 살펴보며 조개를 줍고 돌미역도 땄다.
그리고 잡아둔 물고기를 꺼내어 간단한 요리를 해서 일단 식사를 하였다.
이제 중산항으로 전화를 하여 동네 형들에게 구원요청을 하면 그것으로 끝일 것이다.
동네 형들은 낚시 프로면서 어선을 가진 어부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간단하게 생각했던 상준의 생각에 문제가 생겼다.
전화가 불통이었다.
몇 번을 시도 했으나 아예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답답해진 상준은 다시 요트에 올라 몇 번이나 키를 꽂아 시동을 걸어보았으나 그 또한 실패했다.
‘그럼 해결 방안은?’
한 가지 뿐이었다.
흔히 무인도에 갇힌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
지나가는 선박뿐이었다. 여기에선 유람선도 무역선도 아닌 유일한 선박, 어선뿐인 것이다.
“희진아.”
조개를 잡느라 해안 돌들을 뒤적이고 있던 희진을 불렀다.
“우리 갇혔어.”
“네, 알고 있어요.”
“통화도 안 돼.”
희진의 표정은 전혀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우리 조개나 캐고 물고기나 잡아요.”
그때 상준은 희진의 말이 지금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인 것 같았다. 무작정 그냥 있을 것이 아니고.
상준은 다시 요트에 올라 낚싯대와 카메라를 챙기고 바닷가에 필요한 도구들이 있나 살펴보았다.
다른 것은 전혀 없었다.
식사를 준비한 휴대용 버너와 가스통 몇 개가 있고 냄비 두 개와 몇몇 개의 그릇, 칼과 도마, 그런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트를 구입할 때 함께 넘겨받은 모포 두 장과 통발이 있기 때문이었다.
해안을 따라 이리 저리 살폈으나 더 이상은 쓸 만한 것이 보이지를 않았다.
‘누가 올 때까지 고기나 잡자.’
상준은 바위에 올라 낚시를 던져두고 거치대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간밤에 잡아 두었던 홍멸치를 꺼내 붉은 빛을 발하는 홍진주를 모두 추출을 한 후 멸치는 소중하게 아이스박스에 보관하였다.
마침 낚싯대에 신호가 왔다.
엄청 큰 가오리가 달려 올라온다.
카메라를 받은 희진은 상준의 눈을 피하면서도 자신이 할 일은 곧잘 하였다.
언제 잡아 보았는지 작은 돌들을 들어내고 모래와 흙을 뒤져 꼬막도 캤다.
사실 식량은 걱정되지 않았다.
낚시를 오면서 미리 준비한 것이 넉넉하기 때문이었다. 고기를 잡아 반찬만 만들면 며칠 정도는 거뜬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때 상준은 작고 희미한 섬광 두, 세 개가 물속에서 노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보였다. 사라졌다, 반복하면서. 그것도 작은 주황색
‘일단 잡아보자.’
낚싯대를 거두어 다시 조용히 던져 넣었다.
그때였다.
첨벙하는 소리를 내며 갯바위에 서 있던 희진이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가스나, 하필 이때.’
상준은 던져둔 낚시에 소식이 없자 방해를 받은 느낌이었다.
희진은 물속을 드나들며 몇 번을 시도 하더니 손을 번쩍 쳐들었다.
“전복, 전복 땄어요.”
상준은 손을 번쩍 들어주얶다.
‘가스나. 전혀 쓸모없진 않구만.’
속으로 중얼거리며 저쪽으로 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다시 낚싯대를 거치대에 걸어두고 바위 위에 놓인 카메라를 손에 잡았다. 한참 후에 다시 물 밖으로 몸이 올라왔다.
“또 땄어요.”
“칼만 좋으면 좀 많이 딸 건데.”
물 밖으로 나오는 희진을 보니 갑자기 상준은 심장 박동이 높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카메라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귀엽고 깜직한 모습이었다. 카메라를 돌려가며 전복을 잡아주고 새하얗게 웃고 있는 희진의 모습을 클로즈업 하였다.
“많이 있어?”
“네, 조금요. 근데 잘 떨어지지 않네요. 칼이 시원찮아.”
상준은 허리춤에서 키 뭉치를 풀어 작은 나이프를 꺼내 주었다.
“첨벙.”
언제 배웠는지 다이빙 포스도 그런대로 잡혀있다.
카메라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고 주변 풍경과 매어둔 요트와 무인도 섬을 차례대로 잡은 뒤 물 위로 올라오는 희진을 다시 잡았을 때 그녀의 손에는 제법 큰 전복이 들려있었다.
그러는 사이 상준의 낚싯대에서도 신호가 왔다.
역시 홍멸치, 즉시 홍진주를 뽑아내고 아이스박스에 넣어두었던 멸치를 갯바위에 말렸다. 이대로 두다가는 부패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홍진주는 팔찌나 목걸이를 만들면 제격이겠지.’
잡은 홍멸치는 모두 일곱 마리였다.
목걸이를 만들려면 몇 마리가 필요할까? 상준은 얼른 계산을 해 봤지만 감이 오질 않았다.
‘모르겠다. 그냥 꾸준히 잡아나 보자.’
그러나, 더 이상 소식이 없다.
“문어요.”
언제 올렸는지 작은 돌문어를 한손에 쥐고 물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다시 카메라는 희진을 잡았고 문어를 쥔 그녀의 손을 크게 확대시켰다.
“수영 언제 배웠어?”
“중학교 때 수영선수 였어요.”
“음, 역시.”
희진은 약간 의시 대는 듯한 자세로 수영 포즈를 취한다.
“우리 잡은 전복하고 문어하고 데쳐 숙회해서 먹어요.”
“숙회 좋지.”
희진은 밖으로 나와 요트를 드나들더니 잠시 후 일회용 쟁반에다 전복과 문어숙회를 잘라 초고추장과 함께 가지고 상준에게로 왔다.
“힘들지 않아?”
“재밌어요. 구조할 어선이 빨리 오면 안 되는데.”
상준은 휴대폰 연결도 되지 않자 내심 불안하고 초조하였다. 예상하는 만큼 빨리 선박을 만나지 못한다면 큰 일 아닌가?
“우리 여기 온건 아무도 모를 텐데. 신 팀장과 다슬이도 며칠간 바다에서 낚시하는 걸로만 알고 있을 텐데?”
“뭐 어떻게 되겠죠.”
한편 염려가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경험에 즐거움을 느끼는 건 사실이었다.
“홍멸치는 많이 잡았어요?”
“잘 안되네. 목걸이 만들려면 진주가 몇개 정도 필요할까?”
“음. 60개 정도. 팔찌는 30개”
“그렇게나 많이.”
“요즘 목걸이 진주 다섯 개라도 만들 수 있어요.”
“어떻게?”
“목걸이 줄을 18금으로 하면 앞에만 요렇게 진주를 달고.”
희진은 자신의 목 아래쪽에 손가락을 모아 방울처럼 만들어 붙여 보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럴 것 같다는 감이 잡혔다.
그렇다면 꼭 홍멸치 잡기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지 않는가?
어느 순간부터 괴물고기의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자신에게 알지 못할 초능력의 원천을 분석해보니 어느 날 해수욕장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유성의 섬광이 머리에 떨어진 것과 우연하게 삼킨 괴물고기에서 구슬 같은 뭔가를 먹게 된 것이 괴물고기와 인연을 맺게 된 원인이라 분석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디선가 놀고 있을 괴물고기들을 유인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과 유인된 괴물을 쉽게 잡을 수 있는 방법만 터득하면 프로 괴물 사냥꾼으로 완성되는 길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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