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악구 백상아리(2)
* * *
상준은 순간 온 힘을 주어 챔질을 하며 줄을 감기 시작했다. 놈은 그 자리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바위와 같이 꿈적도 않으면서 자신의 몸을 물돌이 처럼 감고 있지 아니한가.
‘안되겠다. 이러다간 실이 꼬여 끊어지겠어.’
상준은 그놈처럼 같이 낚싯대를 돌렸다. 수 바퀴를 돌더니 더디어 당기기 시작했다. 괴물 사냥을 전제로 하지 않은 낚시꾼이라면 백이면 백 모두 다 줄이 끊어지거나 낚싯대가 부러져 결국은 놓치고 말 그런 상황이었다.
줄다리기는 시작되었다. 끈질긴 투지를 가지고 밀고 당기기를 한 시간 가량 걸렸을까? 드디어 그놈은 요트 아래까지 접근하였다. 머리를 치미는 그놈의 생김새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머리는 악어머리였고 몸체는 그대로 백상아리 몸뚱이였다.
“조심."
갈고리를 가지고 찍어보려는 최 주무에게 상준은 낚싯대를 넘기고 갈고리를 받아 놈의 머리통을 가차 없이 찍었다. 그제야 놈은 축 늘어지면서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자, 같이 좀 당겨.”
혼자서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할 거물이었다. 힘이라면 세상 누구에게도 뒤떨어질 상준이 아니었지만 뱃전 위로 올리는 데는 그만큼 힘이 들었다.
놈의 이름은 악구백상아리. 무시무시하기로 바다괴물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괴물고기였다.
“아!”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런 놈이 해수욕장 인파를 노렸으니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겠는가?
상준은 재빠르게 나이프를 꺼내 놈의 위장을 도려내었다. 지독한 냄새가 요트 전체를 휘감고 지나간다.
그 가운데서 놈의 오물과 뒤섞인 주먹크기의 돌 두개를 꺼내었다. 바로 수정 원석이었다. 백상아리에서 찾아낸 수정 원석은 역시 지구의 수정하고는 너무나 다르다.
세계에서 몇 개 밖에 없는 우주의 선물, 수정안경의 원석인 것이다. 상준은 손전등을 켜 수정덩어리를 비춰보니 불빛이 쉽게 통과하고 색깔이 매우 독특하였다. 지금 끗 발견된 것은 모두 갈색 수정 원석이었는데 이번엔 모두 청색수정이었다.
흡족한 기분으로 요트를 몰아 해수욕장으로 들어왔다.
[악구 백상아리]
놈의 험상궂은 모습을 본 피서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 모양만 보고도 놀란 사람들은 바다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공포에 떨었다. 어찌 되었던 이렇게 하여 혼란에 빠졌던 진호해수욕장 백상아리 사건은 그 막을 내렸다.
해수욕장 주변 상인들과 식당 주인 등의 번영회에서도 염려했던 일이 쉽게 해결되자 한숨을 돌렸고 상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였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백상아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을 즉시 병원으로 후송했는데, 악어의 이빨에 물린 것처럼 한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였고, 악구백상아리가 잡힌 후에야 상처의 원인이 밝혀졌다고 하였다. 모두가 천만 다행이었다.
백상아리는 버려둔 채 요트를 정박해두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최 주무는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동영상 이야기를 꺼내었다.
“대표님, 이수도 황금가죽 참돔 동영상도 어저께 올렸어요.”
“반응은 좀 어땠어?”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하고 있어요.”
“수고 많았다. 내가 보기에도 촬영도 잘됐고 편집도 멋지더라고.”
“예, 고맙습니다.”
“당분간 낮에는 더워서 낚시를 못하니 밤낚시에 도전해 보자.”
“예. 그럼 요트타고 하실 거예요?”
최 주무는 요트에 관심을 보였다.
“아마, 그게 낫겠지.”
“신 팀장은 휴가 잘 다녀오고 최 주무는 나갈 때 카메라 잘 챙기고.”
“예.”
“팀장님도 휴가 잘 다녀오세요.”
“응, 최 주무도 수고해.”
자정이 넘어서야 모두 헤어지고 다슬은 무슨 말을 할까, 말까하다 자기 방으로 건너갔다.
다음날 아침 다슬은 어머니 앞에서 백상아리를 잡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백상아리를 해수욕장에 버리고 왔다고 하였다. 아주머니는 백상아리 고기도 매우 귀한 것이라며 좀 아쉬워 했으나 상준이 사람을 해친 악구 백상아리라 먹을 수 없다고 하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선배, 백상아리 몸에서 꺼낸 돌덩이가 정말 귀한 것이에요?”
“그렇겠지. 희귀한 수정 덩이니깐.”
“그럼 그건 주로 어디에 사용되는 건데요?”
“전체 모양이 독특하면 희귀 수석으로 인기가 높고 보통의 모양은 가공하여 최고급 안경으로 사용 되나봐.”
“색깔과 투명도에 따라 선글라스도 만들고.”
“선글라스?”
“또 고급 안경으로 인기가 있나봐. 깨어지지도 않고 긁히지도 않고. 눈에 피로감을 없애준데.”
옛날부터 수정 안경은 인기 상품 중에 하나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선배, 오늘 밤 낚시 가신다면서요?”
“어, 낮에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그 아가씨 하고?”
“아, 최 주무. 우리 직원이야.”
“그럼?”
“이미 계획된 거야. 낚시도 하고 다큐 테인먼트 제작도 하고.”
“혹시 우리 회사에서 제작한 동영상 본적 있어?”
다슬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가 되자 상준은 낚시점에 들러 루어를 포함한 다양한
소모품들을 모두 구입하고 먹을 부식도 보충할 겸 마트를 방문하였다. 특히 루어도 그 종류에 맞춰 구입하였다. 피서객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아예 수영복 차림으로 활보하고 있었다. 일부는 상준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 사인을 해 달라, 요청도 있었고 악구 백상아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나타내었다.
구입한 것들을 모두 요트에 실어두고 수영복을 포함한 여유 옷도 챙긴 뒤에 엔진 점검을 해 보았다. 지난 번 낚시 후 시동이 안 걸려 어려움이 있었던 터라 확실한 점검이 필요하였다. 엔진 기술 전문인이 와서 몇 번에 걸쳐 시 운전을 해 보았으나 엔진에는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오토바이 시동 때 가끔 한 번씩은 두, 세 차례 만에 걸리는 그런 현상 같았다. 큰 염려는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서두르지만 않았다면 이왕 구입하는 걸 새 요트를 사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였으나 활용도가 높아 만족감만큼은 비교할 수 없었다.
서운해 하는 다슬이가 마음에 켕기어 음료수 몇 병을 싸서 다슬이를 찾았다.
“뭐해?”
“뭐, 그냥.”
다슬은 자기 방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슬이 방은 얼마 전까지 상준이 쓰던 방이 아니었던가?
“야, 방이 완전히 달라졌네. 에어컨도 넣었고.”
상준은 다슬의 방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약간의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늘 쓰는 방도 아닌데 뭐.”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좋네, 향기도 나고. 내가 있을 땐 창고 같았는데.”
“....”
“이번엔 언제 올라가?”
“이번 휴가는 3일.”
“그럼 모래 갈 거네.”
“선배는 언제 올거야?”
다슬은 자신의 휴가동안 선배와 같이 지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쉽게 말릴 수 없는 것이 그건 선배의 삶이면서 직업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야 뭐, 정해둔 날이 없지. 나가서 상황보고, 성과가 좋으면 더 있고, 아니면 곧 와야지.”
“난 이번 휴가 많이 기다렸는데.”
“다슬아, 할 말 있는데.”
“선배, 하지마.”
다슬은 상준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말을 막았다.
“그럼, 다음에 할게.”
“다음에도 하지마.”
다슬은 고개를 숙인 체 의자에 앉아 방바닥만 내려다보며 가만히 있었다.
상준은 다슬이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미 그녀는 상준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느 정도 짐작을 하는 것 같았다.
여성의 예리한 감이란 것이 꼭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피부로 그것을 느낄 수 있나 보다. 한때 상준도 그녀에 대한 감정이 흔들린 것은 분명하였다. 예쁘고 발랄하며 지적 매력까지 지닌
HK항공 스튜어디스라는 그 하나 만으로도.
잠시 후 최희진 주무가 큰 가방 두개와 카메라 가방을 들고 상준의 방으로 내러왔다. 희진의 옷차림도 소현이, 다슬이 못지않게 간편 복장이었다. 그만 큼 날씨가 무덥고 해수욕장 주변의 환경 탓인 것 같았다.
“대표님. 이것 전부 다 실어야 해요?”
“짐이 많네.”
“몇 가지 챙기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많아졌어요.”
“상관없어”
“낚시도 할 거야?”
“그럼요, 저 낚시하러 가요.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물론 촬영도 열심히 하고. 헤헤”
희진은 본업이 무엇인지 망각한다고 생각할까 봐 촬영이야기를 덧 붙였다.
간단하게 이른 저녁을 먹고 항구로 나갔다.
막상 해안가로 나오니 무더운 날인데도 바람은 제법 불고 있었다. 단지 습도가 높아 불쾌지수는 높을 것 같았다. 습관적으로 해수욕장 일대와 신항 외곽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천천히 바다로 운행을 하였다.
“이제 상어 출현은 없겠지.”
상진은 지금 끗 살아오면서 한 시즌에 상어가 두 번 이상 출현했다는 보도는 들은 적이 없었다.
냉방 시설을 갖춘 선실은 시원하였고 해가 넘어가자 따갑던 햇살도 자취를 감추었다. 기분이 상쾌하고 마음도 맑아졌다. 희진은 어느 아이와 다름없이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는 것에 마음이 들떠 연방 생글거리며 재잘재잘하였다.
“최 주무 우리 여기서 해보자.”
상준은 작은 섬들이 자주 나타나자 주변 갯바위 부근에서 닻을 내렸다. 시동을 끄니 에어컨은 정지되었다.
“첨벙.”
갑자기 희진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감짝 놀란 상준은 빨리 올라오라 소리를 치는데도 도리어 상준을 보고 들어오라고 손짓까지 한다.
상준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빨리 올라오라 연방 손을 흔들며 소리를 쳤지만 몇 바퀴를 유유히 수영하여 요트 주위를 돌다 상준이 내민 손을 잡고 승선하였다.
“최 주무, 겁도 없이.”
“저 수영 잘해요. 대표님. 이럴 땐 이름 부르세요. 우리끼리 있을 땐...”
“이름 부르는 게 더 좋아?”
“그럼요, 이름이 좋지요. 희진이. 예쁘잖아요. 이름이.”
“그래도 물엔 함부로 들어가지마.”
“저 섬에 사람들이 살아요?”
“저런 곳엔 없을 거고, 큰 섬에는 살겠지.”
반바지 차림의 물에 젖은 희진의 모습은 아직 앳된 여고생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