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꼬리치는 여대생(2)
* * *
날씨가 너무 더워 에어컨 수리를 신청한지 며칠이 지났건만 다시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폭염이 지속되다보니 인력부족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수리 담당 기사가 부족하여 어쩔 수 없어요.”
서비스 업체에서 하는 말이었다.
건물만 완성되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참아보려 했던 것이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다행인 것은 신 팀장이 거처하는 민박집에는 냉방시설이 되어 있었다.
딸이 자주 집에 오지 않다보니 수리를 하지않고 방치했는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사무실로 건너가 신 팀장과 함께 자기도 했지만, 밤낮 그곳에서 생활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바닷가 마을은 본래 시원할 줄 알았다.
신 팀장과 함께 어둠이 내리기 전에 갯바위로 나갔다.
해수욕장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 온다.
가설무대가 설치되어 초청 가수의 노래가 들리더니 해수욕객의 차례가 되었나 보다.
그들의 노래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신 팀장은 이제 프로가 된 것 같다.
부지런히 카메라를 잡고 촬영에 열중이었다.
괴물 상어의 해체 동영상도 올렸다고 하였다.
지금 껏 중에서 가장 인기 있다.
올리자 마자 30만명을 돌파했다고 하였다.
그때였다.
갯바위 뒤쪽에서 야릇한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해수욕장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와 갯바위 뒤에서 들리는 소리가 이상하리 만큼 자극적이었다.
둘의 눈이 마주치게 된다.
신팀장도 들은 것 같다.
"아앙. 아앙."
괜히자신들이 긴장이 된다.
죄인이나 된 듯 그들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아무 말 없이 전자찌 만 바라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이 끝난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더 이상 자극적 신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의 눈에 푸른 섬광 덩어리가 물속에서 이리저리 유영하고 있었다.
상준은 가만히 낚싯대를 쥐었다.
‘그래, 오늘 같은 날 밤에 한 놈 정도는 올라와야지.’
놈의 움직임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고기 잘 잡혀요?”
고개를 돌아보니 처녀, 총각으로 보이는 한 쌍이었다.
조금 전 신음소리의 주인공은 아닐까?
그들의 복장은 해수욕복이었다.
해수욕장에서 갯바위 까지 수영을 하여 온 것 같았다.
"뭐 별로."
다시 돌아보니 조금 전 섬광은 사라져 버렸다.
‘시발. 했으면 그냥갈 것이지?’
혼자 중얼거리며 루어를 끼워 낚싯대를 다시 내려놓았다.
이 놈들 때문에 놓친 기분이다.
“가버렸어요?”
신 팀장은 그를 보며 아쉬워한다.
“그런 것 같아.”
두 남녀는 한참동안이나 옆에 서서 고기가 올라오길 기다리는 듯 하드니 물속으로 첨벙하고 뛰어 들었다.
“에이 시.”
신 팀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상준도 기가차서 헛 웃음을 웃었다.
“조금 전에 그 놈들 맞지요?”
“뭐?”
“있잖아요. 소리 내던.”
“그럴 걸.”
“신 팀장은 여친 있어?”
“이젠 없어요.”
“옛날엔 있었고? 하기야 신 팀장 정도면 없는 게 이상하지.”
그때 전화가 왔다.
“오빠, 저 소현이에요. 지금 어디 있어요?”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전화가 왔다.
최 주무였다.
“어, 소현아. 지금 업무관계로 전화 왔어. 좀 있다 할게.”
“최 주무 무슨 일인데?”
“덥죠?”
“어, 좀 덥네. 잘 지내고 있어?”
“팀장님 전화 받았거든요. 고마워서 인사전화 드리려고요.”
최 주무는 약간 고무된 목소리로 인사말을 하였다.
“응.”
“그리고 대표님. 상어 해체작업 영상 보셨어요? 엄청 인기 좋아요.”
“응, 들었어. 수고 했어.”
“그럼, 전산망으로 결재 올릴게요. 지금 바다죠? 들어가셔서 결재 부탁합니다.”
“그럼 최 주무는 언제 오는데?
“전 팀장님 휴가 다녀오시면 7월 마지막 주에 5일간 쓸게요.”
“알았어요.”
“아, 그리고 메세지 보낼 테니. 내용보고 결재 올려줘.”
“알겠습니다.”
잠시 후 상준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물고기 떼가 파도처럼 물위로 튀어오르고 그 뒤를 추격하는 주황색 섬광이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뭐야, 저건?”
“매가리 떼 같죠?”
“그런데 그 뒤에?”
“.....?”
순간 신 팀장이 섬광 덩어리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잊고 한 말이었다.
말을 꺼내다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매가리 때는 상준이 서 있는 갯바위 아래까지 몰려와서 파도처럼 솟아올랐다.
그러자 주황색 섬광은 갯바위 주변에서 빙글빙글 돌다 다시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상준은 재빨리 30 m 정도 거리에 정확하게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미끼가 가라앉지 않도록 릴을 감으며 늦췄다 당겼다를 반복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미끼를 툭툭 치며 릴을 따라 빙빙 돌다가 급기야 덥석 미끼를 물었다.
“그렇지. 이번엔 용서 안해.”
재빠르게 챔질을 하여 머리 뒤쪽까지 잡아당겼다.
“크럭.”
“뭣이 붙었어요?”
“응, 그런 곳 같아.”
“물었다.”
상준은 있는 힘을 다해 낚싯대를 당기며 릴을 감기 시작한다.
놈의 크기는 알 수 없으나 발버둥을 치고 버티는 힘이 만만치가 않았다.
밀고 당기며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었다.
“야, 좀 올라와 줘.”
순간 그의 눈에 보이지 않은 힘이 자력처럼 뻗어 나갔다.
“스르르.”
그렇게 발버둥치던 놈의 정체가 물위로 뜨오르며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다.
한 손으로 뜰채를 늘어뜨려 놈을 잡는데 성공하였다.
“대단한 놈이야.”
50 cm 정도의 개복치형 우럭이였다.
흔히 말하면 개우럭이다.
주황색 원석이 들어 있는 대표적인 괴물 물고기였다.
상준은 자동차키 고리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내 즉시 배를 갈랐다.
그 큰 개우럭 복부에서 10개 가까운 원석을 찾아내었다.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잡은 개우럭 한 마리에서 원석 30여개가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곳에서 발견된 원석에 비하면 색깔이 곱고 품질이 우수하여 매우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원석은 지구에 존재하는 원석이 아니라 지구에 떨어지는 운석이 폭발할 때 타다 남은 잔해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런데 고기가 왜 운석 잔해를 먹게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비단 이번 원석뿐만 아니다.
대부분의 원석이 이런 과정을 밟으면서 특정 특정 고기를 변형시킨다.
원래부터 지구에 괴물고기가 유입될 때 부터 내제된 원석도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개우럭이 삼킨 주황색 원석은 숙주의 수명을 연장시켜 일반 물고기보다 평균 수명이 배 가까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오래 살기 위한 물고기의 본능인가?'
인간들에게도 수명 연장의 효과가 있을지 관심이 주목되는 부분인 것이다.
원석을 꺼낸 상준은 개우럭을 바다에 던져 버렸다.
“대표님 고기는 왜 버리세요?”
“이 고기는 맛이 없다고 해.”
그때 다시 소현의 전화가 왔다.
“오빠, 바쁜가 봐요?”
이제 대 놓고 오빠로 호칭한다.
언젠가부터 제멋대로 오빠로 부른다고 한 것 같다.
“응, 좀.”
“전화 받으실 수 있어요?”
“무슨 일인데?”
“이제 저 방학했어요. 지난 번 약속 하셨죠?”
“무슨 약속?”
“참, 오빠. 방학하면 저하고 낚시 다니기로 했잖아요?”
“내가?”
“참나, 어쨌든 내일 집에 가요. 약속 잊지 마세요.”
그리고 소현은 전화를 끊었다.
“누구시죠?”
신 팀장도 소현의 목소리를 들었는가 보다.
“응? 아니야. 좀 맹랑한 애가 있어.”
소현의 전화를 받고 보니 당분간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소현은 아침부터 찾아와 말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엇을 잡았으며 얼마를 잡았냐?
값은 어느 정도냐?
뭐 하나 그냥 놓지는 것이 없었다.
“동생은?”
“보충수업 때문에 마치고 온데요.”
“낚시는 어디로 가세요?”
“낚시보다 해수욕이 좋잖아?”
“전 낚시가 더 좋아요.”
“당분간은 항구 가까이 할 예정이야. 그러지 말고 넌 해수욕이나 즐겨.”
상준은 소현이가 따라 붙지 않았으면 했다.
해수욕을 즐기며 놀기를 권장해 보았다.
그러나 소현은 피부가 망가진다며 해수욕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낚시가 좋잖아요. 재밌고.”
드디어 에어컨 기사가 도착했다.
불과 10여분 만에 수리가 끝나 버린다.
더위를 참고 며칠을 기다려 온 지난 시간이 너무나 아깝고 황당한 기분이다.
소현은 냉장고를 열어 얼음을 꺼내 냉커피를 타서 기사에게 준다.
"오빠도 한잔해요."
상준에게도 커피잔을 내 밀었다.
누가 주인인지 당황스러웠다.
“수고 했어요. 아저씨.”
“아!, 예, 안녕히 계세요.”
“이제 좀 살겠네.”
소현의 말이다.
“이제 여기 와서 책 좀 봐야겠다.”
“나 지금 나가봐야 하는데?”
상준은 매일 정오가 되면 해수욕장 일대와 방파제 주변을 돌아보고 온다.
요즘 일과가 된 것이다.
“어디 가세요?”
“문 닫아야 하는데?”
“그냥 다녀오세요. 여기 있을 테니까.”
“....?”
상준은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메가폰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참, 맹랑한 아가씨네.'
꼭 자기 집처럼 행세한다.
상준은 해수욕장을 천천히 걸으면서 해안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바글거리는 백사장을 걷는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보였다.
경제가 어렵고 실업자가 어떻고 하는 말들이 이곳에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전화가 왔다.
잡은 고기를 한 번씩 몰아가는 횟집 사장이었다.
바로 남진의 “님과 함께”가 삶의 꿈이 였다는....
“일전에 그랬지. 중고 요트가 하나 나왔던데. 좀 싸더라고?”
“그래요? 얼마쯤 하는데요?”
“지금 중산 본항에 정박해 있는데 중고품이라 좀 싸. 요트가격이 천차만별이거든. 신제품은 몇 억이 훨씬 넘어. 이건 8,500이야. 잘하면 좀 더 싸게 살수도 있을 걸. 생각 있으면 연락해.”
“운행 자격은요?”
“전문 요트 자격증 말고도 일반 선박운행자격으로 할수 있는 거야.”
“네.”
“이건 원양 항해도 되고, 낚시도 할 수 있고, 어군 탐지기, 레이더 등도 갖추고 있거든.”
상준은 즉시 집으로 돌아와 횟집 사장을 태워 중산 본항으로 출발하였다.
“지금 건물 올리고 있다며?”
“예.”
“잘했어. 이곳이 중산 신항이 확정되면서 저 뒤편에 아파트도 들어섰고 해수욕장도 정리되어 희망이 있어. 시에서 나오는 우회도로 개설도 될 것이고.”
“네.”
“더구나 자네는 지역 발전에 기여를 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잖아.”
“고맙습니다.”
사장님은 앞으로 잘 지내자고 한다.
요트를 살펴보니 외관상 보기에는 깨끗하였다.
4년 됐다니까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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