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아픈 추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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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서 화요일 밤까지 태풍은 이제 지나간 것 같다. 태풍의 진로가 해한 해협 중에서도 일본 쪽으로 훨씬 더 꺾인 모양이었다. 당초에는 부산, 울산, 포항 등 동해 남부 영남 해안지방에 엄청난 피해를 많이 줄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본 쪽으로 다 가져갔나 보다.
수요일 아침은 하늘이 매우 청명하였다.
한국으로 봐서는 천만 다행이었으나 일본의 피해는 너무나 큰 것 같았다. 원래 일본은 재난 대비에 있어 세계 최강이다. 그런데 이번 태풍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무엇보다 1,000mm가 넘는 엄청난 폭우에 산사태 까지 일어났으니 속수무책이었나 보다. 처음엔 잘됐다는 생각을 잠깐 했으나 너무나 많은 인명 피해를 당했다고 하니 마냥 그럴 수만은 없었다.
점심때가 될 무렵 작가 최희진이 상준을 찾아왔다. 신기사의 연락을 듣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상준은 냉동시켜 두었던 거북상어 고기 1.5K를 꺼내어 둘을 데리고 해수욕장 인근 횟집으로 갔다. 그리고 거북 상어 고기로 해물탕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한 뒤 입을 열었다.
“내가 최 작가를 오라 한 것은 셋이서 우리 일을 협의하기 위해서야. 이 자리는 내가 처음 하는 환영회라고 명명하기로 하고 사실은 업무 협의차 오라고 했어. 우리가 비록 셋 밖에 안 되는 작은 일을 하지만 일에는 체계가 있어야 할 것 같고. 우리라고 언제나 작은 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예, 맞는 말씀입니다. 이제 시작이잖아요. 열심히 해서 크게 한번 키워보겠습니다.”
신용만 기사의 말에 최 작가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니지 우선 우리 호칭부터 정리하자.”
“.....?”
“내 생각엔 우리 신 기사가 최 작가 보다 나이가 많으니 결재 라인을 위로 하고, 그 다음 내가 결재하는 것으로. 어때 최 작가?”
“예, 그렇게 해야지요.”
“그럼 호칭은?”
“....”
“뭐 좋은 호칭 없나? 직위도 좋고.”
“그럼 신 기사님을 신 팀장으로 부르는 것이. 그리고 사장님으로. 저는 주무로” 최 작가의 말이었다.
“신 팀장. 좋네. 최 주무? 좋은 생각 같은데. 그리고 나는 사장이라 하면 어색하니까 대표라고 부르자.”
“좋습니다.”
“그리고 이건 운영비 출납 통장. 이 통장은 최 주무가 관리하고.... 도장은 일단 내가 가지고 있을 거야. 필요하면 언제든지 받아쓰면 될 것이고.”
“업무 분장은 어떻게 할까? 이건 최 주무가 좀 정리를 해줘봐.”
“네, 저도 오면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고민을 좀 해 봤어요. 모든 기안은 내부, 외부 할 것 없이 주무인 저가해야 할 것 같구요. 물론 필요하신 분의 요청에 의해서 하겠지만 영상촬영과 편집은 신 팀장님이 맡아 해 주시면 되겠네요.”
“그 외에 힘이 필요한 것은 팀장님과 의논해서하고 하도록 하고...”
“신 팀장은 어때?”
“예, 그러지요. 동영상에 내레이션이 필요할 경우는 저가 할 때도 있겠지만, 때론 목소리 예쁜 최 주무님께 부탁하여 협력하겠습니다.”
“멋진 생각입니다.”
그때 식사가 들어왔다.
“사장님! 여기 소주 한병만요. 둘 다 술 좀 하나?”
“네, 조금은.”
“여기 나온 해물탕에 든 고기가 괴물 상어고기야.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이런 기회에 맛보려고 아껴둔 것이거든. 오늘 한번 먹어보고 평가 좀 해줘.”
“괴물 상어고기요? 이것 엄청 비싸다고 하던데.”
“그걸 최 주무가 어떻게 알아?”
“연 프로님이 대표이신 걸 알고 많이 찾아봤어요. 괴물에 대해서.”
“실은 저도 밤마다 뒤졌어요.”
그들의 반응은 극찬이었다. 상준 자신도 놀랄 만큼 구미에 맞았고 독특한 맛이 입맛을 돋우었다.
“그리고 빅뉴스 하나 있어.”
“....?”
“지금은 당장 민박집에서 업무를 보지만, 조금 있으면 큰 사무실로 옮길 거야. 곧 집을 지을 예정이거든.”
“좋겠다.”
“우리 작지만 긍지를 가지고 일해 보자고.”
“예.”
“그리고 당장 최 주무는 필요한 컴퓨터 두 대랑.... 내 컴은 있으니까..., 집기, 식사용품, 주방 용품, 생활용품 포함 일체를 구입 신청하고, 참! 민박집에 최 주무 독방도 있으니. 빠른 시일 내에 업무 개시가 가능하도록 수고 좀 해 주고.”
“네.”
“그리고 신 팀장은 많이 도와주고. 그리고 나는 이사 갈 때 까지 지금 사용하는 내방 쓸거야.”
“알겠습니다.”
“참, 블로그에 올린 동영상 보셨어요?”
“잘 된 것 같던데...내 신 팀장께 미리 이야기 했지만 동영상
제작 및 편집, 내레이션 등은 전문 기사와 작가가 알아서 하고.”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괴물 낚시 외에도 일반 낚시. 괴물고기 요리. 먹방 등 다양하게 제작하여 올릴 생각입니다.”
“그런 것은 최 주무의 협조가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단 완성된 동영상은 인터넷 방송에 올려 볼게요. 주제를 괴물 아귀 낚시라고 해서.”
“응, 처음부터 너무 기대는 하지마.”
식사를 한 후 해산하였다. 오후 조금 늦게 상준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태풍 후의 바다는 잔잔함 그 자체였다. 이 때가 바로 기회인 것 같다. 진호 해수욕장을 건너 갯바위에 올랐다. 언제 보아도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측 해안쪽 절벽을 따라가면 반도처럼 뻗어 나온 소나무 울창한 해안 절벽이 보이고 좌측 해안선은 깨끗한 모래밭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곳이 바로 진호해수욕장. 해수욕장 앞쪽 바다 위에는 작은 아름다운 섬 해자도가 떠 있다. 해자도는 일 년에 몇 차례씩 바닷길이 생겨난다. 해와 달이 만들어 내는 신비의 바닷길이다.
상준은 바다를 향해 일발의 낚싯줄을 던져 넣었다. 7월이 들어서면서 낚시 시간을 바꾸기로 했다. 아무래도 여름철은 낮 낚시가 제격일 것 같았다.
이제 상준은 바다를 볼 때마다 푸른 빛 섬광을 찾는 습관이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못 본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지금 자신의 앞에는 괴물 고기란 없다는 뜻인가?’
찌가 물속으로 세차게 들어간다. 방어였다. 방어는 낚시인에게 삶의 희열을 준다. 한판 대방어와 씨름을 하고 나면 무한한 쾌감과 만족감을 안겨준다. 오늘 상준은 그런 쾌감과 승부욕을 마음 껏 느꼈다.
‘오너라. 방어도 좋고 히라스도 좋다.’
오늘은 아무래도 대박을 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프로들만이 느끼는 특별한 예감이라 할까?
“오늘 좋다. 한번 보자.”
상준의 염원이 담긴 목소리가 창공을 향해 떠났다.
순간 찌가 심하게 요동치며 오른 쪽 꽃 바위 방향으로 무서운 속도로 이끌어가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굽이친다.
‘왔어.’
한판 전투가 벌어졌다. 진호 해수욕장 끝판 갯바위에서 밀고 당기는 전쟁이 벌어졌다. 릴을 감으려 해도 감기지를 않고 오히려 실을 당기며 역 방향으로 풀려 나간다.
“찌르륵, 찌르륵.”
상준은 낚싯줄을 늦춰주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챔질을 다시하며 감아 올렸다. 당기고 늦추면서 감고 또 감고....
상준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낚싯대를 받쳐든 상준의 옆구리는 통증을 느꼈다.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 갑자기 그놈이 하늘을 박차며 뛰어 올랐다. 어마 어마한 대형 상어였다.
‘낚싯줄을 끊어 버릴까?’
순간 상준은 장마가 끝나면 곧 개장될 진호해수욕장 여름 풍경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뛰어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 떠올랐다. 상준은 손에 다시 힘을 주었다. 상준의 머리에 초등 4학년 때 행방불명이 되어 죽음으로 돌아온 여동생 상미의 얼굴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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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일찍 잃은 상준의 어머니는 삶의 의욕을 잃고 지내다가 자신에게 딸린 두 남매를 보고 겨우 마음을 잡아 살기로 작정하였다. 워낙 형편이 어렵다 보니 처음에는 남의 집일이나 식당일, 공장 잡역, 목욕탕 청소 등 일을 가리지 않고 해보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하면서 지냈다.
그래도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악착같이 저축을 하였다. 아이들이 먹을 음식은 식당에서 일을 해 주고 얻어온 것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았고, 입는 옷들은 주인집 아이들이 작아서 못 입거나 낡아서 버리는 옷들을 챙겨 입히기도 했다. 적어도 초등학교 까지는....
상준의 동생 상미는 상준과는 달리 늘 그것이 불만이었다. 다섯 살이나 위인 오빠에게 엄마가 한 일은 기억에도 없거니와 중학생인 오빠에겐 잘 해 주시면서 유독 자신에겐 이런 옷들을 가져다주는 어머니를 무척이나 야속하게 생각하였다.
“너도 중학생이 되면 좋은 옷 많이 사 줄게.”
어머니의 설득도 상미에게는 들리지 않았고 친구들의 예쁜 옷을 늘 부러워하였다. 오빠에 비해 자신에게 소홀히 하는 엄마에 대한 불만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너 오빠도 초등학생 때까진 너처럼 그랬어. 넌 이제 4학년이잖아!”
“거짓말 하지마! 엄마는 늘 오빠뿐이야.”
그 날은 무엇에 토라졌는지 아침부터 엄마에게 짜증을 낸다.
“상미야.”
“엄마. 그러면 나 집 나갈 거야.”
“너 지금 오빠에게 혼날래?”
동생 상미의 철없는 말에 상준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평소엔 늘 동생을 불쌍하게 생각해온 오빠 상준도 그날 아침에는 왜 버럭 소리를 질렀는지.
그 날이 바로 여름 방학을 한 7월 말의 마지막 일요일 아침이었다.
가끔 어울리던 목욕탕집 딸 주희와 상미는 방학을 맞아 해수욕장으로 놀러 가자고 약속한 날이었다. 그 외에도 몇 명의 친구가 더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수영복에 있었다. 갑자기 수영복을 사달라는 상미의 말을 쉽게 들어줄 어머니가 아니었다.
달래고...또 달래도 들을 수도 없었다. 해수욕장에 가는데 수영복 없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화근이었다.
12년 전 100만 인파가 돌파한 해수욕장에서 여자 아이 두 명이 실종되었다. 실종이라기보다는 행방불명이 더 맞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같이 간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에 돌아왔지만 끝내 상미와 주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6개월 뒤 상미는 죽은 시신으로 돌아왔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상태였으나 옷과 신발은 상미 것이 확실했다.
상준이 본 마지막 동생의 모습은 하얀 가운을 뒤집어 쓴 상미의 시신뿐이었다. 더 이상은 볼 수도 없었다. 옷과 신발로 엄마는 상미임을 확인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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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가량의 사투를 벌이던 상어는 결국 상준에게 투항하였다. 낚시로 올린 상어는 식인 상어였다. 갯바위에 올라온 상어를 상준은 무자비하게 다루었다. 누군가 지켜본다면 상어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오토바이에 상어를 묶어 마을 회관으로 가져갔다. 노인들은 무척이나 좋아들 했다.
할머니 한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거 잘라서 가마솥에 넣어 푹 삶아야 해.”
“삶아서 뭐 하려고?”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반문하였다.
“초장에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지. 고기 보담 머리가 더 맛있어. 뼈까지 먹을 수 있어.”
“이걸 삶아서 먹어?
“이건 잘라 간돔배기를 만들어야 해! 그러면 제사 때 쓰면 몇 년은 쓰겠네.”
저마다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 한 마디씩 하고 계실 때 그 중에서 힘깨나 쓸만하신 분이 식칼을 들고 상어를 집어 들었다. 회관 마당의 평상위에 상어를 올려서 드디어 해체 작업에 돌입하셨다.
그분은 상어 해체 작업에 일가견이 있으신 모양이었다.
상준은 인사를 한 후 돌아서려 하다가 워낙 능숙하게 해체하는 모습에 그만 자리를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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