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포항까지 날아 온 그녀(3)
* * *
“네, 형님! 내레이션은 누가 하면 좋겠습니까?”
“그야, 신 팀장과 최 작가지. 둘다 만능이 돼야 하지 않겠어?”
“각오하고 있습니다.”
“최 작가도 신 팀장 처럼 목소리가 곱더라고. 내 그 점도 면접에서 고려했거든.”
“예, 도착해서 형님께서 꼭 점검해 주시고 올리기 전에는 반드시 결제 받아 유튜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응, 알았어. 그리고 민박집엔 거실 외에도 방이 세 개 있거든. 그 중 방 하나는 비워둬. 간혹 최 작가 오면 사용할 수 있게.”
“예, 그래야 하겠죠.”
“그리고 최 작가에게 연락하여 한번 오라고 해. 최 작가 집이 부산이거든. 그리 힘들지는 않을 거야. 업무에 대해 협의할 것도 있고.”
“예 알겠습니다.”
중산으로 돌아온 상준은 반가워하는 주인아주머니를 만나니 이유도 없이 죄인이나 된 것 같이 많이 서먹하였다.
다슬을 만났다는 말을 하지 못하니 더 그런 것 같았다.
‘오늘 금요일이지.’
일기예보 보도에는 계속 태풍주의보가 내려있었다. 벌써 남 서해안은 많은 비가 내려 피해가 많다고 하였으나 본격적인 한반도 도착 시간은 아직 이른 것 같았다. 지금 내리는 비는 장마와 겹쳐서 강수량이 더 많은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엔 바다로 나가 볼까?’
상준의 생각을 읽었는지 주인아주머니는 반찬 몇 가지를 그릇에 담아 상준에게 건네주면서 미리 당부를 하였다.
“총각, 오늘 같은 날은 절대 바닷가로 나가는 게 아니야.”
“네? 아직 태풍이 오려면 시간이 좀 있다는 데요.”
“나도 알아. 이때 잘못하면 풍랑이 심하고 파도가 높아 갯바위가 너무 위험해.”
“네.”
“꼭 이런 때 바닷가로 나가 사고를 당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 가면 안돼.”
“예, 알겠습니다.”
상준은 주인아주머니의 만류를 듣고 그냥 쉬기로 마음먹었다. 저녁을 먹고 운동도 할 겸 부두가로 나갔더니 방파제엔 벌써 제법 큰 파도가 튀어 올랐다. 배를 가진 선주들은 배를 묶느라 경황이 없었다. 태풍 예고가 어민들에게는 또 다른 걱정과 일거리로 피해를 주는 것 같았다.
“도와 드릴까요?”
애를 쓰고 계시는 연세 많으신 동네 선주님을 보며 상준은 소리쳤다.
“어, 여기 좀 잡아줘.”
“여기요?”
“당겨. 좀더.”
상준의 힘은 보통이 아니다. 요령 부족으로 많은 도움은 되지 못했지만 힘쓰는 것은 누구 못지않았다.
“됐어, 이정도면 될 것 같아.”
“제법 큰 태풍인가 봅니다.”
“어, 서쪽으로 간다더니 갑자기 태풍이 이쪽으로 온다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젊은이, 고마워.”
“예, 들어가십시오.”
상준은 파도가 튀어 오르고 있는 방파제를 따라 등대까지 뛰었다. 뒤에서 누군가 소리를 쳤지만 상준은 파도 소리 때문에 듣지를 못하고 끝까지 갔다 돌아왔다.
“죽으려고 그래?”
“.....?”
“지금 방파제가 얼마나 위험하다고 방파제로 나가?”
“예?”
“빨리 돌아와.”
“네.”
가까이 가니 역시 안면이 있는 동네 노인 분이셨다. 파도가 심할 때는 언제 어느 때 큰 파도가 덮칠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파도의 크기가 항상 일정하지 않다고도 하셨다. 저렇게 조금씩 파도가 넘쳐오다 어느 순간 큰 파도가 방파제를 덮친다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뭐고 내 깜짝 놀랐잖아. 젊은이가 등대 쪽으로 막 달려 나가니.”
상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제야 노인은 화가 난 얼굴을 바꾸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셨다.
“저녁은 먹었나?”
“예, 먹었습니다.”
“동네 회관에 성금을 많이 냈다며?”
“아, 아닙니다. 그저 성의만 조금.”
“아니야, 요즘 젊은 사람들 안 그래. 자네는 집이 부산이라며?”
“예.”
“내, 자네 이야기 많이 들었어. 자네 같은 사람들이 우리 어촌에 많이 와야 하는데.”
상준은 인사를 하고 노인과 헤어진 뒤 집까지 뛰어 돌아왔다. 주민 대부분이 자신에 대해진심으로 걱정을 해주시는 것 같았다.
샤워를 하고 Pc를 켜 이곳, 저곳 방문 중인데 알래스카 앞바다에 대형 괴물고기가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괴물고기를 잡았다는 뉴스는 세계 곳곳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괴물고기의 사진들은 심심찮게 올라온다. 그러나 이런 괴물고기들은 대부분 일시적 변동이거나 장애 물고기. 아니면 돌연변이 등이 허다한데 문제는 경제적 가치에 있다.
프로 괴물 낚시꾼이 노리는 것은 이런 종의 괴물고기가 아니라 경제적인 가치를 지닌 물고기를 노린다. 상준도 사실 이런 종류의 고기를 잡은 일이 있었다.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는 놓아주긴 했으나 가치있는 괴물이라면 값비싼 보석 원석을 지녔거나 괴물 상아를 보유했거나 아니면 고가의 가죽을 지녀야만 괴물의 가치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고기의 맛이 라도 유별나 미식가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상준은 저녁 내내 인터넷에 뜬 괴물고기들을 살펴보고 그 가치성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밤 10시가 좀 지나서 전화가 왔다. 다슬의 전화였다.
“오빠, 저 잘 도착했어요. 진작 도착했는데. 피곤해서 바로 잤거든. 자고나니 벌써 10시지 뭐야.”
“응, 피곤했을 거야.”
“오빠, 즐거웠어. 그리고 고마워.”
다슬은 이제 대 놓고 오빠라고 부른다. 상준은 다슬의 전화를 받고 보니 자신이 먼저 전화를 걸었어야 옳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밖에는 여전히 비 내리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였고 가끔씩 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멀리서는 천둥소리도 들려왔다.
한참 후 이번에는 어머니 전화가 있었다. 이제 오늘 일을 끝내고 가게 문을 닫으셨나 보다. 태풍이 오니 절대 바닷가로 나가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이셨다.
대한민국이 독일 전차군단에 승리하여 온 나라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월드컵 16강에 진출하지 못하고도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있다니 상준은 기쁘면서도 약간은 아쉬웠다. 멕시코와 스웨덴 전에서 결코 우리 선수들이 밀린 상황은 아니란 판단 때문이었다.
독일은 80년 만에 16강 진출에 실패하여 슬픔 속에 잠기고, 승리한 우리는 물론, 영국이나 브라질도 과거의 감정을 되 세기며 마치 자신들이 승리한 것처럼 좋아한다. 우리의 선전으로 16강에 진출한 멕시코는 코리아를 외치며 축제 분위기라고 한다.
비는 밤새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태풍이 오려면 꽤 시간이 남았는데도 간간히 부는 바람과 처마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깨었다가 아침을 맞았다.
잠자리에 누워 괴물아귀 고기를 먹으면서 마지막 남은 큰 덩어리를 먹은 기억이 났다.
‘그때 내가 삼킨 것이 뭘까? 순간 느낌은 아주 작은 구슬 같았는데.’
‘그럼 아귀에도 구슬이 있나?’
‘그 때 얼굴이 화끈하며 눈앞이 번쩍하지 않았나? 뭔가?’
‘한번 나중에 실험을 해보자. 바다 속 괴물이 보일는지?’
일요일 아침은 거짓말처럼 조용하였다. 뭉게구름 사이로 뜨문뜨문 하늘이 보였다. 일부지방에서는 폭우로 인해 피해를 입은 곳도 있는가 보다. 이대로 간다면 태풍이 지나가면 많은 피해가 예상되기도 하였다.
아침 식사를 하고 상준은 부두로 나갔다. 어제도 쉬었고 밤은 위험하니 오늘은 낮 기간에 잡어라도 좀 잡아 보겠다는 것이 상준의 생각이었다. 미끼를 준비해둔 것이 따로 없기 때문에 수족관에 들어있던 작은 고기를 잘라 미끼로 썼다. 잘하면 도다리 몇 마리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아직 선박의 피해는 없는 것 같다. 밤을 지샌 어민들이 피해를 점검하기 위해 선착장으로 나온다. 이런 날에 바다에 고기를 잡으려 출항하는 선박도 없고 상준처럼 낚시를 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더구나 오늘 같은 일요일이면 제법 많던 낚시꾼들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더니 조그만 볼락이 물려 올라 왔다. 그리고 또 던졌다. 그리고 조용했다.
침묵을 지키던 상준의 낚싯대가 이번엔 조금 다르게 요동친다. 낚시를 하는 상준도 구경을 하는 동네 어민들도 누구하나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이 바로 그런 분위기다.
‘내가 잘못 본 걸까.'
아무리 바다를 살펴봐도 지난 번 같던 섬광은 없었다.
“벵에네.”
구경을 하던 누군가의 말이다.
“제법 크다.”
약 40Cm정도 되어 보이는 벵어돔 한 마리가 상준의 낚시에 걸려들었다.
“역시 젊은이 좀 달라.”
“그러니 프로라고 하지.”
“여기 벵어돔 자주 올라오나요?”
상준은 옆에 계신 어촌 계장에게 물었다.
“아니야, 여기는 벵어가 잘 안 올라와.”
“파도에 밀려서 그런가?”
상준은 혼자 말처럼 중얼 거렸다.
“지난번에 여기서 농어도 낚았다며?”
“아마 지구 온난화로 남동해안 어종에 변화가 있나 봅니다.”
상준은 어느 방송에서 동해안의 수온 상승으로 난대성 어종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라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였다.
그 후에도 상준은 볼락 몇 마리와 벵어돔 새끼를 포함하여 몇 마리를 더 건져 올렸다. 오후가 되자 하늘엔 다시 비구름으로 덮쳤고 바람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낚시를 던져두고 항구에 나온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또다시 휴대폰에서 진동이 왔다.
“야, 나 민수.”
민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지낸 둘도 없는 고향 친구였다.
“응, 잘 지내?”
“어, 여기 누구와 같이 있게?”
“누군데?”
“상준아, 나야.”
준영이였다. 흔히 말해 붕알 친구라고 생각하며 한손으로 꼽아왔던 그 친구 준영이. 적어도 자신이 취준생으로 절망의 맛을 보기 전까진.
“응.”
“지금 뭘해?”
“낚시.”
“야, 너 오늘도 낚시해?”
“내가 뭐 할게 뭐가 있어, 낚시나 할 것이지?”
“너 돈 많이 벌었다며?”
“.....”
“내, 너 얘기 많이 들었어. 너 출세했다며?”
“너희들 어떻게 만났어?”
“우리 고향 친구 아니야. 당연히 만나지.”
“......”
“우리 한번 갈게. 부산 내러 가면. 민수하고 같이 한번 갈게. 너 술좀 많이 사라.”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정작 민수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남의 전화를 가로 채고는 지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끊어 버린다.
그리고 난 뒤 민수에게 뒷말을 하였다.
“자슥, 상준이 자슥, 많이 변했네.”
“변화긴 뭐. 그런 애 아니야.”
“전화 받는 것 보면 모르나? 자슥 지가 언제부터 프로 헌터 됐다고.”
“준영아! 상준이 절대 그런 애 아니니까 그런 말 하지마.”
준영이 계속 상준에 대한 험담을 하자 민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낸다.
“준영아, 너 상준이 모르나? 언제 개가 마음 한번 바뀐 것 본적 있어?”
“야, 너 왜 그래?”
“야, 나, 다 참을 수 있어도 상준이 뒷다마 까는 것 나 못봐.”
“자슥, 내가 뭐라 했는데 지랄이야.”
그들은 우연히 길에서 마주쳐 인근 커피숍에 앉아 고향 친구 상준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래도 한때 같이 어울리던 고향 친구를 만나고 보니 상준이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 모양이었다.
저녁에 집에 있는 상준에게 민수가 다시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