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에 미친 총각-19화 (19/225)

〈 19화 〉 포항까지 날아 온 그녀(2)

* * *

‘사랑은 본래 움직이는 거라며, 추억은 거져 추억일 뿐’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들은 어린애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춘기 소년소녀도 아니다.

상준은 방안 조명만 켜둔 체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침대에 누워 다슬을 바라보니 하얀 이불이 올랐다 내렸다하며 마치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 모습은 동생을 본 마지막 모습을 연상시켰다. 상준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선배, 자?”

“응.”

대답을 하는 선배는 잔다는 것인지 안 잔다는 것인지 애매한 상황이었다. 다슬은 이불을 젖히고 소파에 누운 상준을 바라보았다.

상준의 눈가에는 한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동생만 생각하면 상준의 가슴은 아려오는 것 같았다. 사나이 중 사나이 연상준도 아픈 추억 앞에는 여린 소년 같았다.

다슬은 가슴이 아팠다.

‘선배도 참 가엾은 사람이구나.’

다슬은 자리에서 일어나 상준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꾹 참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유도 모를 연민에 가슴만 찢어지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나 옆에서 그의 아픔을 달래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침이었다. 창 밖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잘 잤어?”

상준이 밝은 표정으로 다슬이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함박 웃음을 짓는 하얀 치아가 다슬의 가슴에 설렘을 준다.

“선배는?”

“나도 잘 잤지.”

“다행이네.”

“너 코 많이 골더라.”

“선배, 나 아니거든요.”

“골던데?”

다슬은 한 잠도 못자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정작 그가 어느 순간부터 쓰렁쓰렁 소리를 내며 고를 고는 걸 들었다.

“선배, 오늘 비가 오는데 어떡하죠?”

“그냥 쉬지 뭐.”

“그냥 쉬어?”

“그럼 우리 중산으로 돌아 갈까?”

“아뇨, 전 여기 있다 바로 서울로 올라갈 거예요”

상준은 휴대폰을 열어 포항에 있는 영화관을 찾아보았다.

[미드나잇 선]

방영중인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럼 우리 나가 식사하고 영화 하나 보고 올까?”

“뭐 재미있는 거 있어요?

“미드나잇 선. 어때?”

다슬이도 찿아본다.

“평점은 괜찮네.”

10시가 조금 넘어 호텔에서 나와 영화관 부근 식당을 찾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너, 나하고 있으니 지루하지 않아?”

“전 선배하고 있으면 무조건 좋아요.”

“지루하지 않냐고?”

“지루하긴요. 보기만 해도 좋은데?”

다슬은 선배에게 ‘처다만 봐도 설렌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차마 자존심에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상준은 다슬이 좀 독특한 아이 같았다.

백합 같은 하얀 피부에 시원한 목덜미며 날씬하고 가날픈 허리, 청초하리 만큼 상큼해 보이는 이 아가씨가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이 솔직하게 말해서 믿어지지를 않았다.

그 것도 황금 같은 휴가 때에.

“누가 나보고 재미없는 사람이라 하던데?”

“그건 오빠의 진가를 몰라서 그래요.”

“진가?”

‘내게 무슨 진가가 있단 말인가?’

[사랑을 꿈꿨던 낮, 사랑이 이뤄진 밤. 어두운 밤에도 네가 나의 태양이었어!]

영화에서 흘러나온 명 대사였다.

색소성건피증이라는 희귀병으로 태양을 피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여주인공 케이티. 오직 밤에만 외출이 허락된 그녀에게 어머니가 남겨준 기타 하나와 창문 너머로 10년째 짝사랑해온 ‘찰리’가 세상의 빛이었고 전부였다.

그들이 엮어가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그들은 모두 자신이 바로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영화를 보고나니 오후 세시였다.

상준은 비 오는 날이 꼭 휴가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비도 좀 그치고 했으니 포항까지 온 김에 포항 명소나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 어차피 시간이 있으니 포항 명소나 가볼래?”

“네, 좋아요. 포항이라면 호미곶이 제일 좋잖아요.”

“그럼 호미곶으로 간다?”

상준은 차를 호미곶으로 몰았다. 운전 중에 신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절곶으로 가고 있으니 그쪽으로 오라고.

“자네, 운전 경력 많아?”

“네, 조금.”

“안전 운행. 조심해서 와.”

“예 형님.”

내비를 찍어 달리다 보니 남포항 IC가 지나가고 있었다.

“내일 서울 갈 때 여기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면 될 것 같아.”

“네”

해맞이 광장 주차장에 차를 대어두고 해안 일출명소, 새천년 기념관, 연오랑 세오녀상 등을 둘러본 후 다슬의 요구로 몇 컷 기념사진도 찍었다. 인근 바다에서 젊은 신혼부부가 꼬마 하나를 데리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낚시하는 모습을 보면 상준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 낚시꾼의 특성인 것 같다.

“고기 좀 잡았어요?”

“방금 와서. 잘 안됩니다.”

그는 상준을 보지도 않고 눈은 찌에만 고정한 체 대답을 하였다. 보통 잘 안될 때는 방금 왔다고들 이야기 한다. 그러나 오전까지 비가 내렸으니 그 사람의 말이 맞을 것 같았다.

‘이 사람도 낚시를 어지간히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그분들의 복장은 결코 낚시하러 온 사람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고기통을 들여다보니 작은 볼락 한 마리와 보리멸 두 마리가 전부였고, 부인은 아이에게 아빠가 잡아 올린 고기를 보여주며 아이와 함께 셀카를 찍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잡았어요.”

꼬마의 목소리다. 꼬마의 나이는 5­6세 정도 되어 보였다. 고기통에 들어있는 보리멸을 따라 손을 휘졌다가 결국 붙잡은 모양이었다.

“참 잘했어요.”

아이 엄마의 목소리였다.

“아빠! 아빠 잡았어요.”

“그래, 잘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아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가족간의 신뢰가 듬뿍 담겨있었다.

그러한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행복감을 준다.

다슬이도 그 모습을 보며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준은 꼬마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너 무슨 고기 잡고 싶어?”

“붕어요.”

아이의 대답을 듣고 아이 엄마는 까르르 웃었다.

“붕어는 바다에는 없어.”

“그럼 우럭.”

아이의 대답을 들으니 아이 아빠는 민물고기, 바다고기 할 것 없이 종종 낚시를 하는 사람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상준은 아이의 아버지께 양해를 구했다.

“이것 가지고 한번 잡아 볼게요.”

아이의 엄마가 낚시를 하다 세워둔 것으로 짐작되는 낚싯대가 옆에 있었다.

상준은 바로 그 낚싯대를 들고 아이 아빠에게 동의를 구하자 그 사람은 그제 서야 상준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아니, 연상준 프로님 아니세요?”

“네, 저를 알아요?”

“그럼요, 고기 잡는 사람은 다 알지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나 한번 잡아 볼게요.”

상준은 미끼를 끼워 멀리 던져 넣었다. 다슬이도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슬이 선배의 체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를 할 때쯤 드디어 상준의 낚싯대가 요동을 쳤다.

“물었어요.”

그때 상준은 자신이 잡은 물고기 옆으로 푸른 섬광 덩어리가 스쳐가는 걸 보게 되었다.

‘그럼 저것이 괴물고기?’

“다슬아! 방금 저 앞에 뭔가 못 봤어?”

“아뇨.”

“아주머니는요?”

“못봤습니다.”

“....?”

아이의 엄마도 상준이 고기를 잡지 못하자 이유 없이 자신이 미안해지려 할 쯤 드디어 걸어 올린 것이다. 대물 우럭이 거짓말처럼 올라왔다.

“야.” 무엇보다 꼬마가 제일 좋아했다.

“선배.”

다슬이도 약간 흥분하였다.

“대단하십니다. 연 프로님!”

아이의 아빠는 두 손을 비비면서 우럭을 빼어 고기통에 담았다.

“아닙니다. 이건 순 운으로 건진 겁니다.”

다시 상준은 낚싯대를 던졌다. 연거푸 세 마리가 상준의 낚시에 걸려들었다.

“다슬아, 이제 가자.”

“감사합니다.”

“영진아, 아저씨께 인사해야지.”

“아저씨, 안녕”

“그래, 바이, 바이.”

귀여운 꼬마 가족을 뒤로하고 그들은 발길을 옮겼다. 다슬은 상준의 낚시 솜씨에 내심 감탄했다.

“오빠, 정말 천재야.”

“뭐? 천재는 아니지... 옛날에는 나도 그런 말을 들은 때는 있었지만.”

“그럼 신이다. 낚시의 신.”

“고기만 잘 낚으면 뭘 해?”

상준의 대답에 다슬은 까르르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상준에게 바짝 붙어서 팔짱을 끼웠다.

그때 한통의 전화가 왔다. 우주보석(주) 신소라 대표였다.

“연 프로님. 지금 어디시죠?”

“예, 여기 호미곶입니다.”

“아! 그러세요. 마침 저가 대구에 내러와 있거든요.”

“아, 예”

신소라 대표가 바로 호미곶으로 오겠다고 하였다.

“지금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일행이 있거든요.”

“저에게 넘겨주실 것은 어떤 것들이라 했지요?”

“별 것은 없습니다. 조그마한 노랑색 괴물아귀 원석 하나와 아귀상어 두 개, 그런데 이건 아주 작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괴물상어 이빨과 지느러미 상아 일체”

“반드시 저에게 넘겨주셔야 합니다.”

“네, 걱정 마십시오. 내일 10시경 정포항에서 봅시다.”

상준은 신소라 대표와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선배, 누구예요?”

“우주보석이라고 괴물보석을 가공하는 회사야. 원래 부친이 사업을 하면서 회사를 많이 키웠는데 갑자기 돌아가시고 외동딸이 사업을 물려 받았나봐. 요즘 원석 부족으로 좀 어려운가봐.”

“사장이 여자야?”

“응”

“선배 그 여사장 잘 알아요?”

“아니, 처음 만나. 우연히 연락처만 알지.”

“나이는?”

“약 40쯤 되는가봐.”

“놀랬잖아요?”

“놀라긴?”

“그냥 놀랐어요.”

그리고 말을 얼버무렸다. 그들은 다시 구룡포로 내러가 그제께 묵은 펜션으로 다시 발길을 옮겼다. 서해안을 따라 올라 간다던 태풍의 진로가 급히 우회전 하여 다음 주 월요일에서 화요일 사이에 대한해협지난다고 하였다. 낚시를 하는 상준은 늘상 일기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것이 프로 정신인가 보다.

이번 정포항 낚시도 나름 성공했다고 자평하였다. 무엇보다 여기서 다슬이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되어 그것도 기뻤고 괴물상어를 낚은 것도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다음 날 아침 정포항에 들러 우주보석 대표 신소라씨를 만났더니 소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고 그는 아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우주보석 영업부장 이상윤입니다.”

누가 봐도 회사를 이어받을 차세대 같이 보였다. 나이는 이제 30대 중반으로 보였다.

“우리 아들 잘 부탁드립니다.”

신소라 대표도 연세에 맞지 않게 매우 정중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쳤다.

모든 원석과 상아를 넘겨받고도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상준과 다슬도 헤어졌다. 떠나기 싫어 몇 번이고 망설이는 다슬을 상준은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각기 자기 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할 대까지 차량 비상등 깜박이를 켜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울산 JC에서 헤어졌다. 한 사람은 언양 방향으로 한 사람은 해운대 방향으로.

조수석에 앉아있던 신 기사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형님! 최 작가 문자입니다. 비공개 블로그 만들었다하네요. 아이디와 비번 알려왔어요”

“블로그?”

“최초 동영상 완성 됐다고 보시고 수정 필요한 부분 댓글 달아 달래요. 그러면 수정하겠다고.”

“나도 살펴 볼 테니 그 부분은 자네가 최 작가와 의논해서 완성하라고, 때로는 내레이션이 필요할 수도 있을 테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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