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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18화 (18/225)

〈 18화 〉 포항까지 날아온 그녀(1)

* * *

마지막 포인트에 도착 무렵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모든 꾼들이 죄다 비옷을 꺼내 입고 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상준도 일회용 비옷을 꺼내어 다슬이 에게 입혀주고 자신은 좀 두꺼운 점프를 꺼내 입었다.

“선배, 비 맞아도 괜찮겠어요?”

“음, 괜찮아.”

이제 상준은 멀미도 멀리가고 남은 시간은 열심히 해서 다슬이 에게 체면이라도 좀 차려야 갰다고 마음먹었다. 감성돔 회를 잘라진 대로 바늘에 꿔어 30m 전방으로 던져 넣었다. 수심은 대략 50m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마지막 포인트가 선장의 마지막 카드라고 했는데도 별다른 입질은 하지 않았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면서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워낙 바람이 잠잠하여 낚시를 할 수는 있으나 이 정도면 보통 낚싯줄을 거두어 귀항해야할 정도의 많은 비가 내렸다.

“어머, 걸렸어.”

다슬이 목소리였다. 비록 일회용 비옷을 입었다고는 하나 모자를 쓰지 않은 다슬의 머리카락은 이미 젖어 버렸고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물은 이미 온 몸을 적시고 있었다. 비옷은 이제 겉치레뿐이었고 옷은 이미 젖을 대로 젖어버렸다. 그래도 고기가 물자 눈을 잘 뜨지 못하면서 하얀 치아가 들어날 정도로 얼굴엔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젖은 그녀의 모습은 물귀신이 따로 없었다.

“나도 물었어.”

“왔다.”

연거푸 꾼들이 소리를 지르며 내리는 빗속에서 한판 고기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상준의 앞쪽 30여m 정도에서 푸른빛 잔영이 바다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저건 뭐지?’

그 잔영은 사방으로 방황하며 대형 방어가 바다를 휘 젖으며 접근하는 것 같았다.

그때 잠잠하던 상준의 낚싯대가 꺾일 것 같이 휘어지면서 요동을 쳤다.

‘보자 어디 갔지?’

다시 확인하며 비 내리는 바다로 집중하였다.

‘왔구나.’

상준은 마음속으로 한마디 쾌재를 부르며 근육으로 뭉쳐진 팔뚝에 힘을 싣고 릴을 감기 시작했다. 놈도 살기위해 발버둥 쳤다.

“오빠도 왔어요?”

또 오빠란다. 오빠라 했다 선배라 했다 지 마음 꼴리는 대로다.

상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다해 당겼다. 만만찮은 대물이었다. 선장은 직감적으로 상준에게 대물이 걸린 것을 직감하고 뜰채 대신 갈고리를 들고 상준의 옆에 붙어 썼다.

이미 고기를 건져 올린 꾼들도, 고기를 기다리던 꾼들도, 모두 시선이 집중되었다.

“또 감성돔이에요.”

흥분한 다슬은 자신이 낚은 고기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

“잘했어. 대단하다.”

상준은 여유를 보이면서 다슬을 향해 웃어주면서도 그의 팔뚝은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아! 이놈이구나! 푸른빛 잔영의 소용돌이가’

결국 버티던 대물은 배를 드러내면서 물위에 떠올랐다. 40여분 만에 올린 쾌거였다. 누군가 떠오른 고기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괴물이다.”

“아니, 괴물 상어다.”

선장은 잽싸게 갈고리로 상어의 뒷통수에 박아 넣었다. 옆에 섰던 젊은이가 선장과 합세하여 괴물상어를 끌어올렸다. 제법 큰 놈이었다.

모든 꾼들이 환호를 올렸고 다슬이도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내리던 비도 점점 빗줄기가 약해지면서 보슬비처럼 조용하게 내리기 시작하였다.

“자. 모두 낚싯대 올려주세요. 이제 귀항합니다.”

한참의 씨름 끝에 성공한 상준은 그 빗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음, 그 잔영이 바로 괴물고기였구나.’

다슬은 상준의 옆에 꼭 붙어 서서는 상준이 내뿜는 담배 연기를 처다 보고 있었다. 배는 정포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괴물의 크기는 약 1.6m, 무게는 60Kg.

상준과 다슬은 상어를 싣고 포항 어판장으로 달렸다. 고기를 해체하는 전문가를 찾아 의뢰를 했다. 먼저 상준은 상어에서 나온 지느러미 상아와 이빨 상아를 모두 챙겨 넣었다. 이 상아가 괴물 상어의 가장 가치있는 보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상어의 한쪽 볼살을 골라 고기통에 담아두고 나머지는 모두 경매 처분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괴물상어의 쓸개에 희귀 구슬이 들어있다는데 이번에 잡은 괴물에는 구슬이 보이지 않았다.

괴물상어의 고기는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평생 동안 한번은 괴물 상어의 맛을 보기 위해 유명 횟집마다 엄청난 예약 손님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얼마 전 방송에서 괴물 상어가 나타났다는 뉴스를 듣고 전국의 미식가들과 괴물 가공회사에서 괴물상어고기를 구입하려고 야단이었다고 하였다. 포항이 그만큼 동해안 지역에서는 수산물 집산지로 유명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 얻은 소중한 정보는 괴물 상어는 고기값도 비싸지만 내장의 각 부위가 더 값비싼 약용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형님, 오늘은 대박하나 나온 것 같습니다.”

“응, 최희진씨 전화 받았나?”

“예, 뭐. 어제 동영상에 대해서. 이야기 좀 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카메라를 의식하지 마시고 평소처럼 하시면 됩니다. 몇번하다 보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테니까요.

“하다 보면 점점 좋아지겠지.”

“그렇겠죠.”

상준은 [우주보석] 대표 신수라에게 문자를 보내었다. 괴물상어의 상아들을 넘겨주기 위해서다. 우주보석 또한 괴물보석 가공업체로 새로 뜨고 있는 회사이다. 괴물 상어는 지느러미 상아와 이빨 상아가 가장 값이 나가면서 품질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중, 남미에서 찾는 손님이 너무 많아 없어서 못 파는 매우 귀한 존재였다.

상준은 다슬이를 데리고 포항에 위치한 한 호텔에 투숙했다. 시간이 급해 상어 처분을 서둘렀으나 두 사람의 상태는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비록 유월의 마지막 주중이기는 하나 비에 함박 젖어 약간의 한기가 날 정도였다. 한기를 피하려 난방을 틀었다. 이제야 비옷을 벗은 다슬은 본능적으로 거울을 들여다 본 후 입을 딱 벌렸다.

선배 보기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이 모습으로 내가 그리 떠들었나?’

창피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여 얼른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미쳤다. 미쳤어!’

자신의 모습을 목격한 다슬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하여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상준은 자신의 젖은 점프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TV를 켜서 멍 때리고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가 왔나?’

“누구세요?”

“똑똑.”

밖에서 두드린 소리가 아니었다.

바로 욕실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상준은 약간 긴장을 하면서 욕실 문에 붙어 서서 나지막이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선배, 저 가방 좀 가져다 줘요. 절대 가방 열지 말고.”

“알았어.”

상준은 다슬의 가방을 욕실 문 뒤에 붙어 서서 안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그리고는 호텔 밖으로 나와 편의점에 들러 백반 몇 개와 와인 한 병을 챙기고 난 뒤 트렁크를 열어 초고추장과 와사비 간장을 꺼내고 일회용 쟁반과 젓가락, 나이프 등을 챙긴 후 상어 볼살을 탁자 위에 꺼내었다.

방으로 돌아왔을 땐 다슬이 짧은 드레스를 입고 그 위엔 호텔에서 제공한 가운을 걸치고 앉아있었다.

“아직 추워?”

“샤워하고 나니 좀 좋아졌어요.”

“오늘 고생했어.”

“고생은. 오늘 얼마나 즐거웠는데요.”

“그래?”

상준은 준비해온 것들을 탁자위에 올려놓은 다음 볼살을 꺼내 얇게 썰었다. 펜션이면 어떻고 호텔이면 어떠랴.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였다.

“식사하자.”

“밥?”

“우리 저녁 안 먹었잖아.”

그제야 다슬은 자신들이 식사를 하지 않고 지금 끗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말없이 하나하나 챙겨주는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다슬은 고맙기도 하고, 한편은 자신이 너무 생각이 없는 아이 같았다.

“이것 상어 볼살이야. 한번 먹어봐.”

“선배는 참 너무 좋은 사람이야.”

“그걸 이제 알았어?”

상준은 백반을 따서 다슬의 앞에 놓아주며 볼살의 맛을 보고 평가를 해 줄 때 까지 지켜만 보고 있었다.

“선배, 이거 정말 묘한 맛이에요.”

“어떤데?”

“말로 표현 못해요. 진짜 맛있어요.”

상준은 겨자간장에 볼살을 살짝 찍어 맛을 보았다. 생각했던 대로 맛이 독특했다. 바다에 사는 어류인데도 꼭 소고기 갈빗살과 비슷한 식감을 주었다.

“자, 건배.”

와인을 따서 한잔씩 하면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뭐 꼭 반찬이 많아야 맛있는 건 아니다. 배가 고파 시장하고 처음 먹어보는 상어 볼살회가 모든 것을 채워 주었다.

“선배와 같이 처음 이 고기 맛을 본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내일 출근 안하는 거야?”

“금요일 저녁에는 올라가야 해요. 토요일 아침에 출근해야 하거든요.”

식사를 마치고 상준도 샤워를 하려고 욕실에 들어가려는데 다슬의 폰에 벨이 울렸다.

“응, 엄마.”

“나 요즘 바쁘거든.”

그리고는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듣고만 있다. 상준은 욕실 안으로 들어가 샤워를 하면서 따뜻한 욕조에서 한참 동안 몸을 녹였다. 오늘 하루 동안 많은 일을 치렀다는 기분이 들었다.

상준은 욕조에서 나와 속옷을 갈아입고 늘 가지고 다니던 츄리닝을 입었다. 방안의 기온도 이제 제법 따뜻해 졌다.

“누구 전화야?”

“우리 엄마.”

“.....?”

“저 여기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

“선배, 그 애가 선배 좋아한다면서요?”

황당한 질문에 아무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왜, 우리 동네. 소현이 있잖아요.”

“몰라. 지난 주말에 봤어. 나 낚시하는데 따라 오더라고.”

“.....”

그리고 둘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TV에서는 곧 태풍이 온다는 뉴스가 흘러 나왔다. 기상대 예보가 서해안을 따라 경기도 까지 올라간다면서 많은 비를 대동하고 있으니 대비에 만전을 다하라는 보도였다.

다슬은 한참동안 티브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어느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잠잠하였다.

“너 사귀다 헤어진 사람 말이야. 그 사람 뭐하던 사람인데?”

상준은 갑자기 다슬이가 사궜다는 그 사람이 궁금하였다. 다슬의 눈은 드라마에 집중되어 거리낌 없이 대답하는 것 같았다.

“의사.”

“의사?”

“결혼한 친구들은 없어?”

“몇 명 있어요.”

여전히 눈은 티브이를 집중하며 대답하였다.

“주로 어떤 사람들과 결혼했어?”

“응, 의사도 있고, 회계사도 있고. 음, 파일럿도 있고.”

“와! 막강하네. 직업 좋고, 재력 있고. 그런데 넌 그 사람과 왜 헤어졌어?”

“몰라, 자기가 의사라고 갑질 하잖아. 키 몇개는 준비해야 한데.”

다슬은 시큰둥 하게 대답하였다.

“의사라고 다 그런 건 아니잖아.”

“그야 그렇겠죠. 근데 꼭 갑질하는 놈이 있어. 바로 그 놈처럼.”

“너 회사 사장은 갑질 안해?”

최근 언론보도에서 나온 모회사가 생각나서였다. 그제야 다슬은 상준을 바라보며

“몰라. 우리들이야 모르지.”

“응”

“오빠는 사귄 사람 없었어요?”

“응, 조금.”

상준은 연희의 얼굴을 잠깐 떠올리다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부정도 긍정도 않은 대답을 하였다.

“왜 헤어졌어?”

“나 취준생 오래 했잖아. 가버렸지.”

“그렇다고 가?”

“싫으면 가야지. 싫은 사람 곁에 어떻게 있겠어?”

“....?”

상준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젖혀 눈을 감았다. 그러고 있는 상준을 유심히 바라보던 다슬은 아무 말 없이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고 누워버렸다.

눈을 감은 상준은 지난 일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어쩌면 그녀는 상준의 첫사랑인지 모른다. 초등학교 때 옆 반에 있던 여자 아이를 마음속으로 좋아한 일은 있었지만 사랑을 한 것은 연희가 처음 아닐까?

다슬은 또 침대에 누워 무슨 생각에 빠져 있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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