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인터넷 방송(2)
* * *
상준은 자신도 서서히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몸으로 느꼈다.
“그럼 우리 펜션에서 쉬고 내일 도전해 보자.”
결국 그들은 팬션에 들러 방을 하나 얻어 하루 밤을 보내게 되었다. 다행히 펜션은 거실도 깨끗하고 두 개의 방에 침대까지 놓여 있어 큰 불편 없이 쉴 수 있었다.
피곤에 지친 다슬은 거실 쇼파에 누워 TV를 보다 금방 잠이 들었고, 상준은 TV를 보다 잠이든 드슬의 모습을 보고는 그녀를 안아 방안 침대로 옮겨 주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숨소리만 새근새근 고르게 내쉬었다.
‘자식, 겁도 없이....’
상준은 다슬의 셔츠 단추를 풀어 불편하지 않게 해준 뒤 다시 거실에 나와 TV소리를 낮춰두고 샤워를 하였다.
잠이 쉽게 올 것 같지 않았으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한편 생각하니 자신을 너무 많이 믿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리에 누워 핸드폰을 켜서 이곳, 저곳을 뒤지다가 지난번에 읽다 중단해 두었던 연재소설을 찾아 몇편을 읽다 잠이 들었다.
잠에선 깬 다슬은 침대위에 누웠다는 것을 깨닫고 시간을 보니 새벽이었다.
거실에 나와 보니 아무도 없다.
‘선배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 없는 지난밤이었다.
그것도 자신을 안아 방에까지 옮겨줘도 세상모르게 잠만자고 있었으니...
‘내가 선배를 믿고 있나 보다.’
여기까지 생각한 다슬은 상준의 방문을 빼꼼히 열어보았다.
훤한 상준의 얼굴과 튼실한 그의 허벅지가 눈에 들어온다.
깜짝놀라서 얼른 문을 닫았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르고 심장이 콩콩 뛰는 것 같았다.
‘미쳤어, 내가 미쳤어! 왜 방문을 열어봐.’
냉장고를 열어보니 생수 한 병과 믹스커피 두 봉지가 들어있었다.
냉장고 위에는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상황을 모면하려 믹스 커피를 타두고는 일부러 떠들썩하게 소란을 떨며 선배의 방문을 두드렸다.
“선배, 선배 일어나요.”
아무런 반응이 들리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이대로 있다가는 더 이상한 상황이 전개될 것 같아 목소리를 높여 문을 쾅쾅 두드렸다.
“선배, 벌써 아침이에요, 일어나요.”
“응, 알았어.”
대답을 듣고 난 다슬은 용기를 내었다.
“들어가요. 선배. 나 문 열어요.”
“잠깐.”
다슬은 어울리지 않게 터프한 것처럼 문을 활짝 열어 졌었다.
상준은 이불을 감싸 안고 부스스 다슬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밤에 감은 머리가 물이 체 마르지 않는 상태에서 잠을 잔 탓에 머리는 온통 흐트러져 있었다.
“선배. 커피.”
다슬은 침대에 앉아 정신을 채 수습하지 못하고 앉아있는 상준에게 잔을 내 밀었다.
“일찍 깼네.”
“그럼요. 그래야 또 낚시 갈 거 아니에요.”
“맞다.”
상준은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났다.
"이크."
샤쓰와 팬티만 입고 있는 자신을 보고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어, 어.”
다슬이 얼른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으나 심장은 더 콩콩 뛰었다.
‘이게 아니었는데?’
자꾸 일이 꼬이는 것만 같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 선배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너 왜 그러고 있어? 낚시 가자며?"
"예? 예."
“미안해, 내가 깜박하고.”
“아니에요. 선배.”
얼굴에 열이 올라 욕실로 들어가 세수를 한 뒤 기초화장을 하였다.
“선배, 잠 좀 잤어요?”
“응, 조금.”
“선배, 이제 밤낚시는 안하세요?”
“응, 지금 끗 주로 밤낚시를 했는데, 장마가 끝나면 이제부터는 낮에 하려고. 밤에는 모기와 벌레들이 너무 많아.”
“응, 그렇겠네.”
“선배는 앞으로 어디서 사실 거예요?”
“중산이 좋긴 한데. 어디에서 살까? 부산과 중산 중에 한 곳에 정착을 해야할 것 같아.”
“네.”
“넌 사귀는 사람 없어?”
“전에는 있었는데, 가진 것이 없다고.”
다슬은 그 이야기를 할 땐 약간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쁜 놈이네. 그래도 HK 항공이라면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인데. 결혼하고도 많이 근무하고 있잖아?”
“그렇긴 한데. ”
둘은 방을 정리한 한 후 다시 정포항으로 내러왔다.
정포항에는 이른 아침에도 일찍 나온 어민들을 상대로 문을 연 식당이 몇개 보였다.
“넌 식사하고 이제 중산으로 내려가. 난 여기서 낚싯배 빌려 배낚시 좀 하고 내려갈게.”
“낚싯배가 있어요?”
“응, 1인당 7만원씩 주면 다른 팀과 함께 태워주거든. 그러면 배를 통째로 안 빌려도 멀리 가서 해볼 수 있어.”
“그럼 나도 같이 배낚시 해 볼게요.”
상준은 즉시 신 기사를 불렀다.
“지금 우리 잠시 후 배낚시 출발해. 정포항 참가자미 식당으로 와요.”
상준은 날아오다시피 한 신 기사와 다슬을 데리고 시원한 가자미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은 후 낚싯배에 올랐다.
이른 시간이라 여러 척의 낚싯배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준은 준비해온 가스명수와 멀미약을 다슬이에게 먹이고 자신도 먹었다.
그리고 선장이 내준 안전조끼를 입고 다른 낚시꾼과 함께 출조를 하였다.
같이 탄 사람들은 외관상 보기에 낚시 프로들이 틀림없었다. 그 중에는 중년의 아주머니도 둘이나 있었다.
장마 기간이라 하늘은 어두워 약간의 비는 올 것 같았으나 다행히 큰 바람은 불지 않았다.
선장의 말로서는 약간의 이슬비는 뿌릴 것 같다 하였다. 일기예보에 정포 앞바다는 56mm의 비가 내린다고 했고 파고도 불과 12m 정도밖에 아니라고 했다.
“오늘 연 프로님과 함께 하게되어 영광입니다.”
“멋쟁이시네요. 키도 크고, 애인도 예쁘시고, 방송에 나온 그 아가씨 맞지요?”
“네.”
“촬영하시려나 보죠?”
“네, 괜찮겠어요?”
“뭐. 우리야 기분이죠. 덕분에.”
낚시하는 사람들은 상준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방송에서 보는 것보다 더 잘생겼다.”
겉치레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은 주로 아주머니들이었다.
“오늘 미끼는 뭐로 준비했어요?”
“지렁이 쓰려고요.”
“괴물 상어 잡으려고 오셨지요?”
“괴물이 어디 많이 있겠어요? 남미 칠레 앞바다에서 출현빈도가 높다는데.”
낚싯배는 어느 듯 정포항을 벗어나 10키로 해상 정포항 앞바다에 도착한 것 같다. 오늘은 참돔, 감성돔, 부시리가 주 대상어라 했다.
먼 바다로 나오니 파도가 제법 울렁거렸다.
“일단 여기에서 합니다. 어군탐지기에 좀 있는 것 같아요.”
일제히 꾼들은 낚싯대를 던져 대상어 잡기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난 후 30여분이 지났을까?
“왔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야무지게 생긴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챔질을 하며 당기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잠시 그쪽으로 집중하였다가 자신의 낚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베테랑 꾼임이 틀림없었다. 침착하게 올리면서 약간의 힘을 조절하더니 제법 큰 참돔 한 마리를 먼저 건져 올렸다.
“나도 왔네요.”
이번엔 조금 전까지 상준을 보며 뭣이 그리 궁금한지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묻던 아주머니께 어신의 신호가 왔다.
엄청난 힘을 과시하는 걸 보니 부시리 같았다. 남편으로 보이던 분이 부인의 옆에서 격려를 하였고, 당겨라, 늦춰라 하며 힘을 조절하여 잘 감아올렸다.
“와! 크다”
다슬이도 그들이 올린 부시리를 보면서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상준은 점점 속이 메스꺼웠다. 구역질이 날 것처럼 가슴이 울렁이는 느낌이 왔다. 상준은 속으로 남들 앞에서 소위 프로 괴물낚시꾼이란 사람이 배 멀미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시발, 다슬이 까지 데리고 와서 이게 무슨 꼴이야.’
‘참자, 참자. 우욱.’
“선배?”
“가만, 가만.”
많은 사람들이 상준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프로 헌트도 멀미를 하시네.”
그들은 상준의 멀미를 보고 꾀나 재미있어 하였다. 상준은 낚싯대를 배전에 꽂아두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 드러누웠다. 도저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아씨, 이게 무슨 꼴이야.”
상준을 따라 선원실로 들어온 다슬이를 보면서 민망하여 눈을 감았다.
“선배! 멀미약을 먹었는데, 왜 그렇죠?”
“몰라. 아침을 괜히 먹었나?”
그때 또다시 속이 울컥하여 빨리 뱃전으로 뛰어 나왔다. 몇 번을 연거푸 솟아내었다. 죽을 것만 같았고 어지러웠다. 다시 뱃전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도시어부 봤지요? 그기 그때 누구더라. 밑밥 많이 주면 낚시가 잘 된대요. 오늘 낚시 대박 나겠어.”
“나도 봤지...근대 우리 연프로님이 배멀리 하는 건 아무도 모를 걸.”
그때 한 아주머니가 멀미약이라면서 작은 병을 내밀었다. 상준은 무조건 병을 받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선실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선배, 괜찮아?”
다슬은 걱정이 되는지 상준의 이마를 짚어보다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아주었다.
“넌 나가 낚시를 해. 조금 누워 있으면 좋아질 것 같애.”
그때 밖에서는 감성돔을 올렸다고 야단법석이었다. 다슬은 상준이 눈을 감고 조용해지자 다시 밖으로 뛰어 나갔다. 낚시꾼 중에서 간혹 한 마리씩 올리고 있었다.
“오빠, 나 감성돔 또 올렸어.”
‘이제 대 놓고 나보고 오빠라고 하네.’ 상준은 비록 선실에 누웠으나 밖에서 나는 소리는 다 들렸다.
“처녀가 더 났네. 제법 크잖아.”
“오빠. 아니 선배. 나 낚았어요.”
“알아들었어. 너라도 계속 낚아.”
“알았어요. 선배. 우리 먹을 거는 내가 다 낚을게.”
다시 다슬은 선창으로 나갔다. 그날 다슬이는 참돔, 감성돔 등 여러 마리를 올리고 흥분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 상준은 잠깐 자고 일어나니 한결 좋아졌다.
“자, 낚시 걷으세요. 한번 옮깁니다.”
조황이 뜸해지자 선장이 다른 포인트로 옮겨 주었다. 그리고 선장은 낚시꾼이 올린 고기를 몇 마리 얻어 회를 치고 매운탕을 끓여 밥과 함께 갑판위에 올려 놓았다.
“자, 틈틈이 식사하고 고기 잡으세요.”
상준은 입에 아무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다슬이를 비롯한 꾼들은 멀미도 하지 않고 잘도 먹었다.
그때 업무 담당자 최희진씨께 전화가 왔다. 보내준 동영상이 어디가 부족한지 체크를 좀 해주고, 고기를 잡아 올릴 때 큰 포스를 취할 것과 말을 할 때도 똑똑하고 조금 큰 소리로 할 것
등을 주문하였고 주위 사람들께 부탁을 드려 조과에 대한 반응을 적극적으로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생각 했던 것 보단 좀 귀찮은 데가 있네.’
멀미를 참고 겨우 버티는데 최희진씨의 긴 주문은 약간의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총각 좀 괜찮아요?”
조금 전 멀미약을 내어 준 아주머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상준을 보며 한마디 던졌다.
“고맙습니다. 그 약 먹었더니 많이 좋아졌어요.”
“오빠, 좀 좋아졌어?”
“응.”
“나 세 마리나 잡았어.”
“그래, 너가 나보다 훨 났다. 내가 멀미할 줄은 생각도 못했어.”
다슬은 상준이 어떻게 되었던 자신의 기분은 째지는 것 같았다. 연방 생글생글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자, 오후 다섯시 까지만 하고 그만 돌아갑니다.”
“알겠습니다.”
꾼들은 오전에 잡은 고기에 어느 정도 만족을 하는 것 같았다. 상준은 이제 빈속인 데다 추가로 약을 먹어서인지 진정이 되고 보니 살맛이 났다. 점심을 먹은 빈자리에는 먹다 남은 감성돔 회가 몇 점 남아있었다. 상준은 남아있는 회를 미끼통에 담아두고 다시 낚싯대를 손에 잡았다.
상준이 낚시에 다시 도전하자 다슬은 고기를 낚아올린 무용담을 하면서 얼굴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후 한참동안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성급한 한 손님이
“선장님, 한번만 더 옮기시죠?”
선장은 약간을 망설이더니 그럼 저만 아는 특급 비밀 장소에 잠깐만 들릴게요. 그런데. 비가 곧 올 것 같은데...“
“비가와도 상관없어요.”
“맞아, 상관없지.고기만 잘 잡히면.”
선장은 다시 다른 포인트를 찾아 한참을 가다 닻을 내렸다.
“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기가 마지막 포인트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