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괴물 낚시 대회(2)
* * *
“그럼 같이 가요. 지난번 일로 보답도 할 겸. 아저씨는 낚싯대 몇 개 가지고 오셨어요?”
“맨날 아저씨래. 너랑 나이차이 많이 안나거든?”
“헤헤. 그래서 낚싯대는 몇 개?”
“두 대.”
“그럼, 저 하나 빌려주시면 안돼요?”
“뭐 그러던지.”
아주머니가 또 불쑥 끼어든다.
“소현이 학생은 방학했나?”
“아니요. 아직 방학은 멀었어요. 그건 그렇고 아저씨? 오늘은 어디로 가실 거예요?”
“글쎄. 오늘도 지난번에 갔었던 곳으로 가볼까 하는데.”
“그보다 아저씨! 해수욕장 건너편에 등대 있죠? 그 곳이 낚시가 더 잘돼요.”
“아, 진짜?”
이건 처음 들었다.
확실히 바닷가 동네에 사는 처녀답다. 새로운 낚시 포인트를 파악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낚시가방과 아이스박스를 챙겨서 오토바이에 실었다. 뒤에 타라고 소현이에게 손짓을 보내자 양손바닥을 펴 보이며 손사래를 쳤다.
“아, 잠깐만요. 저도 짐이 좀 있어요. 저희 집앞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상준은 하는 수 없이 오토바이를 대문 앞 도로 옆에 세워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동안 기다렸다가 소현이 가지고 온 가방과 자신의 아이스박스를 겹쳐 싣고, 낚시 가방은 비스듬하게 어깨에 멨다. 오토바이의 특성상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소현이를 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문에 서서 두 사람의 행동을 끝까지 지켜보던 아주머니. 그녀는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엔 조금 찝찝한 표정을 떠있다. 총각이 마음에 들어서 자기 딸하고 어떻게든 잘 되었으면 싶은데. 소현이가 저번부터 총각한테 계속 들이댄다.
‘가시네. 고것 보통이 아니네.’
상준이 등대에 도착하여 상황을 살펴보니 방파제가 설치되어있어 차량도 드나들 수 있었다. 도로처럼 만들어져 있는 이런 방파제는 공간이 넓어서 낚시하기에도 편하고 좋다. 바깥 부분은 테트라포드가 설치되어 있기에 어두운 밤에는 좀 위험해 보이지만, 반면 방파제 안쪽편은 수심도 깊고 안전해 보였다. 더군다나 안쪽은 도로를 따라 안전망도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 좋죠? 위험하지도 않고.”
“조심해. 저번처럼 또 바다에 빠지지 말고.”
“에헤헤. 그 땐 감사했어요.”
“아무튼 낚시가 잘 돼야 할 텐데.”
상준이 도구를 꺼내는 사이 소현이 돗자리를 펴고 가방을 열어 버너랑, 코펠이랑, 준비해온 그릇과 음식들을 잔뜩 내어놓았다. 과자도 있고, 음료수도 있고. 심지어 상추랑, 고추, 마늘까지 준비되어있었다. 분위기를 보아 잡은 물고기를 요리할 생각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간식을 좀 준비해왔어요. 고기가 잡히면 더 좋겠지만요.”
“간식? 이 정도면 거의 소풍 온 분위기잖아.”
“낚시하면 금방 배고파져요. 그래서 조금 준비했어요.”
막히지도 않고 술술 이야기하는 소현이를 보니 참 당돌하고 거침이 없다 싶었다. 가지고 온 짐을 모두 늘어놓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낚싯대를 빌려줬더니 금세 줄을 풀어내는 폼이 상당히 능숙하다. 소현 역시 상준을 따라 숭어고기를 미끼로 낚시를 던졌다. 본인이 말했듯 낚싯대를 던지는 포스가 초보는 아님이 확실한 것 같다.
“어쭈, 제법이네.”
“저도 낚시 경험 많다고 그랬잖아요.”
“근데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야?”
“응? 그걸 꼭 말로 해야 아세요?”
“뭐?”
대체 뭔 헛소리래.
분위기를 이해 못 한 상준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그렇게 둘 사이에 약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깐 동안 아무런 대화조차도 없이 낚시를 계속했다. 바다만 바라보고 있으니 소현이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근데 아저씨. 아저씨는 왜 그리 말이 짧아요.”
“말이 짧다고? 내가 또 뭘.”
“지난번부터 갑자기 말이 많이 짧아지셨잖아요?”
대체 뭔 소릴 하고 싶은건지.
농담으로 하는 소린지 진심으로 하는 소린지.
상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보다 나이 많아? 난 나보다 어린애한텐 말 안 높여.”
“저도 엄연히 숙녀인데. 아저씬 연세가 어떻게 되시길래요.”
“야, 넌 내가 그렇게 늙어보이냐? 연세가 뭐냐 연세가.”
“저하고 3, 4살 차이 맞죠?”
상준은 할 말을 잊고 파란 불빛이 들어온 찌만 바라보고 있었다. 드물게 입질이 왔지만 확실한 입질이 없었다. 자신이 대답이 없자 소현이도 옆에 서서 또다시 낚시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참 만에 상준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여기 온 것 부모님도 알아?”
“물론이죠. 미리 이야기 했잖아요. 그건 그렇고 저 어제도 아저씨 어머니 만났어요.”
“아, 그래? 진짜로?”
“어머니는 저를 매우 좋아하시는데.”
“어머니가 널 좋아한다고? 손님이라서 그런 거 아니고?”
“아닌데요?”
“....?”
어쩌라고.
소현이 생글생글 웃는다.
눈웃음이 은근히 매력적이다.
“제가 아저씨, 아저씨 하니 좀 이상하지 않으세요?”
“그럼 아저씨 아니면, 이번엔 할아버지라고 부르려고?”
“큭큭큭.”
소현이 웃음을 참지 못해 까르르 웃었다.
확실히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편한 기분이긴 하다. 이 나이에 벌써 아저씨 소리를 듣는 달갑지 않지만. 뭐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한다고 안 부를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냅뒀다. 그런데 그때였다. 소현이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온 건.
“오빠로 불러 줄게요.”
“......”
“앗! 저 물었어요. 아자!”
딴청을 피우는 걸까 아니면 고기에 집중하는 걸까. 소현이 낚싯대를 쥐고 능숙하게 감아올린다. 감아올리는 포음이 제법 능숙하다. 물 위로 끌려올라온 고기는 제법 큰 게르치였다. 바닷가에서는 꽤나 흔하게 올라오는 어종이다. 굳이 말하자면 잡어라고나 할까.
“제가 먼저 잡았어요.”
“흠, 그러게.”
“놀랬죠?”
“너 잘났다.”
소현은 틈만 있으면 제잘 거렸다.
일일이 다 대답을 하려니 가끔씩은 귀찮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귀엽긴 한데 지치기도 한다. 이래서 낚시는 혼자 하는 것이 매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사색도 하면서.
“아자! 또 잡았어요.”
“제법이네.”
“또 노인처럼 말씀하신다.”
“......”
얘 때문에 뭔 말을 못해요.
비록 큰 고기는 아니지만 챔질하는 타임을 맞추는 걸 봐서 예사 솜씨는 아닌 것 같았다. 낚아올린 고기의 주둥아리를 바늘에서 빼내며 또다시 재잘댄다.
“지난 대회 때 우승하셨다면서요? 헌터 자격증을 받은 것이 사실이예요?”
“뭐 운이 좀 좋았지. 낚시가 원래 좀 그렇잖아.”
“그 언니는 어떻게 아세요?”
“그 언니?”
“다슬 언니 말이에요.”
“아, 정다슬씨. 응, 그냥 알아.”
“방송에도 나왔다고 하던데?”
밤 9시가 가까워지자 먹붕장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상준과 소현은 무슨 내기라도 한 것처럼 번갈아서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 간혹 우럭과 게르치가 올라오긴 했으나 오늘의 대상어는 붕장어가 되었다. 애당초 숭어 고깃살을 미끼로 쓸 때는 장어가 주 대상어였기 때문이었다. 연안 바닥에 모래가 많고 적당한 돌들이 뜨문뜨문 박혀있어 장어 서식지로서는 제격이었다.
상준은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낚싯대를 안전망에 걸쳐둔 채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또 뭐라 하겠네.’
담배를 피면 소현이 잔소리가 튀어나올까봐 참고 있었지만, 한참이나 건져 올렸으니 이제 진짜로 한가치 피울 때가 되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낚시를 중단하고 담배를 피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잔소리가 나올 때가 된 것 같아 속으로 숫자를 세는데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오빠, 멋있어요.”
“엉? 뭐?”
“멋있다구요.”
“....?”
전혀 의외의 말에 살짝 놀랐다.
허탈한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해진다. 처음에 예상했던 말은 “아저씨 담배 끊어요” 였는데. 요렇게 나와야 저 애 다운데 이건 대체. 상준이 어색함을 감추려 피식 웃었다.
‘이게 아닌데.’
상준은 잡은 고기를 손질하여 다듬었다.
우럭과 게르치를 회로 뜨고 머리와 뼈를 따로 나누어 소현이 준비해온 여러 가지 재료로 매운탕을 끓였다. 그 와중에 소현이가 따로 준비해온 소고기를 구워 돗자리에 널어놓았다. 한 점 집어먹어보니 극락이다. 바닷가에서 먹는 소고기라니. 시간도 어느 듯 자정을 넘어선다.
“여기 술도 가져 왔지롱.”
소현이 종이컵에 소주를 한잔 부어 건네주었다.
밤참은 역시 맛이 있었다. 음식을 먹으니 혼자 보다 둘이 먹는 게 꽤나 운치가 있었다. 소고기의 육즙이 가져다주는 향긋한 고소함을 겹겹이 쌓아올리고, 소주로 입안과 목구멍에 묻은 기름기를 싸악 씻어 내리니 기가 막혔다.
“사실 오빠! 오빠가 지난번에 날 구해 주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고. 그날 너무 오빠 옆에서 촐싹대기만 한 것 같아.”
“아니야. 너만 할 땐 본래 다 그렇지.”
“오빠, 또, 또,노인 말투.”
“하하. 내가?”
알코올이 좀 들어간 탓일까.
두 사람의 거리가 많이 가까워졌다.
말투도 지극히 자연스러워졌고.
“그래서 뭔가 오빠에게 보답하고 싶었거든. 근데 막상 뭘로 보답해야 할지 그걸 모르겠어.”
“이만하면 됐어. 이걸로 충분하니 더 이상은 애쓰지 마.”
“고마워, 오빠. 그리고 나 오빠 생겨서 너무 좋아.”
소현의 말 속에는 은근히 진심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약간은 연애감정을 품고있는 것 같기도 한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새벽 일찍 철수하여 소현이를 데려다 주면서 간밤에 잡은 고기 대부분을 함께 보내줬다. 어차피 배를 채웠으니 잡어는 필요 없었다.
“오빠, 방학하면 올게요. 그때 또 낚시해요.”
“그래. 나중에 또 연락해.”
“아참, 오빠 번호 좀 찍어줘요.”
소현은 끝까지 잊지 않고 상준의 전화번호를 입력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신에게도 발랄한 여동생이 생긴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고개를 가로저어 생각을 떨쳐내고 이번엔 밤낚시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대체로 낮보다 조황은 좋지만 위험하기도 하고 벌레도 덤벼서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여름이 되면 다시 낮 낚시로 전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주인아주머니께 드릴 고기도 별도로 담아 안채 주방 앞에 가져다 두고, 먹장어 몇 마리를 수족관에 넣어둔 채 샤워를 한 뒤 깊은 꿈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꿈속에서는 낚시를 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얼마가지 않아 요트를 타고 운월도 해안선을 따라 해상 유람을 즐기다가 아득하게 먼 천애의 낯선 곳에서 괴물 고기를 만나 사투를 벌였다.
해양 괴물을 잡는 수많은 어선들이 대양에 운집해 있고, 너도 나도 괴물을 잡겠다고 용기를 내고 있는데 갑자기 바다에서 날치 떼와 같은 괴물 고기들이 낚싯배를 공격해왔다. 비명과 괴성이 들리고 그들과 싸우는 용감한 전사가 있는가 하면, 아이들을 지키려 발버둥치는 부모의 모습도 보였다. 자신 역시 주걱을 들고 요트로 향하는 날치 때를 후려치다가 잠에서 깼다.
‘미친. 이게 무슨 개꿈이야?’
선박에 있는 사람을 공격하는 괴물고기가 있었던가. 어느 영화에서 본 기억 중에는 대형문어가 여객선을 공격하거나, 고래가 새끼를 잡아가는 어선을 따라가는 그런 장면을 본적이 있긴 하지만. 모르겠다. 만약 괴물날치가 사람을 공격한다면? 생각만 해도 좀 끔찍할지도.
‘오늘은 휴일이네.’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책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소현이었다.
“오빠! 엄마가 고맙다고 전화하래요.”
“응? 뭐가?”
“고기 많이 보내줘서요. 우리 식구들 낮에 장어회 먹었거든요.”
“아, 그래? 다들 맛있게 잡수셨어?”
“네, 다들 맛있다고 그랬어요. 그럼 안녕.”
소현이가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에다 낯을 가리지 않은 발랄함까지 가지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나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앞으로 이곳에서 오래오래 머무르다보면, 지역 주민들을 많이 알게되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생길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촌 특유의 친절함이 때때로는 참견과 흡사한 성가신 일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소리다.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인터넷 방송 ITM 편집부장이라는 인물에게 연락이 왔다. 지난번 낚시대회 때 촬영한 영상이 있는데, 괴물고기를 잡아 우승하는 부분을 방송에 내고 유튜브에도 올릴 계획인데 협조를 해 달라고 말해왔다. 특히 자신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공개된다는데. 그냥 놔두기는 애매했다.
“그럼 저하고 계약을 하셔야 할 듯 한데요.”
“허락해 주시면 커미션을 지급할 테니 계좌번호를 알려주세요.”
그런데 그 때 벼락이라도 내려치듯.
상준의 머리에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번개가 머리를 때리는듯한 짜릿한 감각.
갑자기 새로운 계획 하나가 떠올랐다.
요즘 다들 한다는 인터넷 방송.
자신이 직접 해보면 어떨까?
‘괴물을 낚아 올리는 인터넷 방송을 해보면 어떨까?’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것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다만, 특별한 컨텐츠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을 뿐.
‘일단 사람부터 구해보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