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괴물 낚시 대회(1)
* * *
다음 날은 오전 내내 비가 내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어느새 장마철로 접어든 모양이다. 지난해는 장마기간 내내 비가오지 않아서 전국적으로 가뭄을 타는 곳이 많았었는데, 올해는 아마도 그렇지는 않으려나 보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텃밭에서 딴 부추로 해물 부침개를 붙였다고 안채로 건너오라고 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출출했었는데. 감사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해물부침개는 출출하던 상준의 입맛에 꼭 맞았다.
적당하게 썰어 넣은 오징어 살점, 조개 속살, 매콤한 풋고추가 부추와 조화를 이뤄 감칠맛이 끝내줬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이게 부럽다. 바닷가로 나가서 뚝딱뚝딱 하거나 근처에 어시장을 다녀오면 이것저것 신선한 해산물이 생겨나니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부침개를 먹고 있자니 막걸리 생각이 났다.
“총각. 술 한잔 줄까? 술 좀해?”
눈치가 아주 귀신 같다.
상준의 표정에서 뭔가 보이나?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좋아는 하는데 잘은 못해요.”
“그래? 그럼 딱 한잔만 해.”
무슨 토속주병 같은 것을 꺼내어 한잔 부어 주시는데 독하긴 해도 맛이 꽤나 괜찮다. 다시 부침개를 한점 집어서 초간장에 콕 찍어먹었다.
꿀맛이다.
바삭하고 짭조름하고 풍미가 끝내준다.
어머니표 부침개를 참 잘도 부치신다.
대단하시다. 상준은 아주머니의 잔에 술을 부어드렸다.
“아주머니는 혼자 사세요? 아저씨는요?”
“아저씨? 글쎄, 아저씨 어디 있더라? 하하. 아저씨는 없어.”
“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저씨 갔다.”
“어디를요?”
아주머니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얼굴에 약간의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지나가는 걸 보니 아무래도 괜한 걸 물어버린 모양이다.
저번에 나를 보고 눈치가 없는 놈이라고 하셨었는데. 이래서야 정말 눈치없는 놈이 아닌가.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아이구,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괜찮아. 벌써 몇년 됐어, 다슬이 대학교 1학년 때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졌어. 원래 울 남편이 조합장을 했는데.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그렇게 갑자기 가버리셨어.”
“그랬었군요. 뭐라고 위로를 해야할지...”
“그때부터 다슬이 이 계집애는 집에 잘 오지도 않고. 애미 우는 것이 보기 싫었는지, 아들놈도 잘 안와.”
“다슬씨한테 동생도 있군요?”
“응, 지금은 군 복무중이야. 2학년 마치고 군에 갔어. 서울에서 대학 다니고 있었거든.”
상준 역시 아버지가 없다.
왠지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때마침 아주머니가 그걸 물어왔다.
“총각도 아버지 일찍 돌아 가셨다면서?”
“네, 그래서 어머님이 분식집을 하세요.”
“나도 그렇지 뭐. 애들 다 키우려니. 그래서 수입은 얼마 안 되지만 민박을 하잖아. 그래도 요즘은 다슬이가 동생 학비를 다 내어 주거든. 우리 딸한테 고맙지 뭐.”
아주머니는 상준에게 많은 말씀을 해 주셨다. 주로 재테크와 관련된 일들이었다. 돈은 버는 것보다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대한민국에서 재테크의 첫째는 부동산이라 하셨다.
자기가 그런대로 살 수 있었던게 아저씨가 남긴 집 덕분이라고. 민박도 하고 텃밭도 쓰고, 그 때문에 이 정도라도 살고 있다고 하셨다. 또 이곳 주변 해수욕장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땅값도 점차 상승하여 장래가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잘만 투자하면 장차 전망이 있는 곳이라고.
상준은 아주머니 말씀을 들으면서 부모님 세대들이 흔히 생각하시는 그런 내용이라 생각했다. 당신들이 어렵게 살아오시면서 변화해 가는 사회를 지켜보며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부를 축적하는 방법. 지나온 그 길들이 바로 최상의 길이었던 것을. 정작 여유가 없던 당사자들은 살기가 바빠서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으면서.
“총각도 이 곳에 집이라도 한 채 마련하는 것이 어때?”
“예? 아 예. 일단 저는 부산에 건물 하나 싸서 어머님 좀 편안하게 해드린 후에.”
“음, 그것도 괜찮지. 어머니 생각도 하고 기특하네.”
“하하.”
“그런데 소현이가 왜 자넬 만나려고 하지?”
아주머니는 좀 신경이 쓰이는지 다시 물었다.
항상 느끼는데 민박집 아주머니는 의외로 소현이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글쎄요.”
“소현이 하고 사귀는 거야?”
“예? 아니에요. 어제 아니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음. 그랬었지?”
무슨 말을 더 하려다 말을 멈추는 아주머니.
그렇게 부침개를 다 먹어치운 상준은 감사 인사를 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컴퓨터 포털 사이트를 뒤지다 새로운 뉴스를 발견했다. 동해안 정포항에 괴물고기가 발견되었다는 뉴스였다.
어떤 어부가 고기를 잡다 함께 걸려 올라오다 그물을 찢고 도망쳤다는 것이었다. 이빨이 날카롭고 상어처럼 생긴 괴물고기라 하였다. 목격한 사람은 같은 어선을 탄 선장 뿐 아니라 동남아 출신 선원과 지역출신 어민도 함께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와, 이거도 버릇이네. 괴물 내용만 나오면 손이 멈추니.’
곧바로 가지고 있던 도감에서 괴물상어를 찾아보았다. 성격이 포악하고 이빨이 날카로워 매우 위험한 녀석이라는데. 외국의 사례에선 괴물 상어에 의해 해수욕장 피서객이 피해를 입은 것이 여러 번 있었으며, 이로 인해 당국이 여러모로 주의를 당부하였다고 하였다.
‘생각보다 훨씬 더 사나운 놈인가 보네.’
이런 뉴스는 자연히 프로 헌터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아, 생각해보니 자신도 헌터 자격증을 받은 어엿한 헌터인데. 초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는 자신이 저 괴물 녀석을 잡아올릴수 있을까? 장마가 끝나면 곧 해수욕장이 개장될 텐데. 어쩌면 해당 지역 상인들에게 큰 충격을 줄지도. 나중에 기회를 봐서 정포항에 한번 들러보리라 마음을 굳혔다.
빗방울이 점차 굵어지면서 수요일 밤은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PC를 들여다 보다 지난 낚시대회 뉴스를 찾아들어갔다. 자신에 대한 보도 자료니까 관심이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칭찬과 격려 댓글도 많이 있었지만 악성 댓글도 많이 보였다. 반박 댓글을 쓰려다 마음을 비웠다.
[와, 미쳤네. 일반인이 헌터들이 참가하는 낚시대회에서 1등이라니.]
[괴물을 몇 번이나 낚았으면 레알 인생 로또 친 듯. 개 부럽다.]
[아님. 연상준도 초능력 있음. 벌써 헌터 자격증도 받았다던데.]
[그건 우승해서 받은 거 아님?]
[얘 요즘 들어서 뉴스에 너무 자주 뜸. 짜증남.]
[연상준이 뭐하는 듣보잡. 난 관심도 없음.]
[병신. 관심 없는데 댓글은 왜 다냐?]
[옆에 저 여자 뭐임. 개 나대네.]
이미지 란에는 정다슬과 자신이 나란히 앉아서 낚시를 하는 장면도 게시되어 있었다. 아마 대회 때 찍힌 사진 같은데, 바로 고기통을 깔고 앉은 다슬의 사진이었다. 고기를 올릴 때 놀라워하는 정다슬의 사진도 함께 게제 되었고 두 사람의 관계를 마음대로 엮은 억척의 댓글도 많이 보였다.
‘미안하다고 전화를 하고 위로를 해 줘야하나?’
자신땜에 괜히 구설수에 올라버린 그녀. 그러나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괜히 전화해서 알려주는 계기가 되면 더 곤란할 것 같았다. 어쩌면 모른 체 넘어가는 것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하긴 그 날 그녀의 모습을 보면 언론에 보도되는 걸 별로 마음에 담지 않을 것도 같았다. 뭐 어때요. 상준씨는 저 때문에 곤란해요 라고 묻기도 했었고.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느정도 그친 것 같았지만 뒷산과 바다에는 하얗게 안개가 덮여있었다. 오늘은 낮에 바다로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채비를 했다. 간밤에는 출조를 놓쳤기 때문에, 아침을 먹자마자 하천 어귀로 나갔다. 간혹 비가 온 후 하천물이 불어나면 바닷물과 만나는 하구에서 낚시가 잘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잔잔한 물고기들이 쉽게 올라오고 숭어 때가 간간히 보일 때도 있었다. 새우를 끼우고 숭어를 겨냥하여 낚싯대를 던졌다. 오래지 않아 입질이 오는데 손맛이 일품이다. 몸부림치는 숭어의 짜릿한 손맛은 낚시꾼이라면 모두가 반할 만 하다. 애당초 괴물을 잡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 헌터들이야 일반 물고기는 외면하는 경우가 많지만.
‘와, 오늘은 이거다.’
상준에겐 숭어회의 맛을 더해주는 비법 아닌 비법이 있었다. 우연하게 알게 되긴 했는데, 숭어회를 두툼하게 썰어서 약한 사과식초에 잠깐 동안 담궈 두었다가 냉동실에 넣어 살짝 얼리면 가장 맛있고 식감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숭어를 아이스박스에 가득 채워서 만족한 기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처럼 솜씨를 발휘하여 숭어회를 도톰하게 썰어 식초에 담근 뒤, 한 쟁반 가득 주인집 아주머니께 넣어드렸다.
“아주머니 냉장고 냉동실에 잠깐 뒀다가 조금 얼었다 싶으면 그때 드세요.”
“어라? 이거 회 아니야?이게 무슨 고기지?”
“예, 흔한 숭어 몇 마리 잡았어요.”
“총각, 고마워.”
초장에 와사비를 마련해서 상을 차렸다.
결국 자신도 밥 한그릇에 점심 반찬으로 숭어를 맛보면서 그 맛에 스스로 만족하였다. 참 쫀득쫀득 야들야들. 이래서 바다낚시를 그만 둘 수가 없다니까. 설령 매 번 매 번 괴물을 잡지 못한다고 해도.
‘뭐 이만하면 살맛도 나잖아.’
‘이만하면 내 인생 나쁠 것도 없잖아!’
허세가 아닌 진심, 이건 진심인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일주일은 금방 흘러갔다. 어제 까지만 해도 장마가 오락가락 하더니 토요일 아침부터 하늘이 많이 개었다. 소현이가 주말에 보자고 하더니 오후가 되었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망할 계집애. 기다리길 관두고 밤낚시에 도전하기 위해서 출조 준비를 시작했다. 미끼의 종류를 생각해 보다 숭어를 한번 이용해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미끼를 쓸 것들은 무한 많으니까 뭐든 자신에겐 상관없지 않을까?
상준은 점심 때 먹고 남은 숭어회 몇 점과 새로 한 마리 숭어고기를 추가하여 미끼통에 담아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정말로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미끼는 상관없으려나? 모르겠다. 일단은 미끼가 상하지 않게 하려면 아이스박스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잡은 고기를 싱싱하게 보관하려면. 그런데 그때였다.
“아저씨! 낚시 가시려구요?”
“아, 깜짝이야! 뭐야? 보자고 해놓고 이제야 왔어?”
“뭘 또 놀라시고 그래요. 아, 우리 어머니 말씀 들으셨죠?”
“...?”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소현이었다.
저번에 물에 빠졌었던 그 동네 여자아이. 대학생치고는 좀 앳되게 보이는 외모를 하고있지만 이래봬도 성격은 똑 부러진 편이었다. 상준과 소현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그 때.
주인집 아주머니가 미리 지키고 있었던 사람처럼 불쑥하고 나타났다. 주인아주머니를 본 소현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소현이는 성격이 유달리 발랄한 것 같다. 좋게 말하자면 사교성이 뛰어난 거지만.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그래, 소현이구나. 근데 무슨 일로 우리 집 총각 보자고 그랬어?”
“잉? 그걸 아주머니가 어떻게 아세요?”
“총각한테 들었지. 그런 그렇고 무슨 일이야?”
캐묻는 듯한 질문.
소현은 살짝 짜증이 나는지 볼에 바람을 넣었다.
그래도 퉁명스럽게 대답하지 않고 딴청을 피웠다.
요즘 들어 느끼는데 주변 분위기가 좀 기묘하다?
“아, 별 거 아니예요. 그건 그렇고 아저씨 오늘 낚시가세요?”
“어? 아, 뭐. 그럴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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