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섹시한 스튜어디스(2)
* * *
정작 부근에는 일반 어종도 거의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헌터들의 주변에는 긴장감이 팽배해졌다.
구경꾼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프로들도 일반 참가인들처럼 갯지렁이를 미끼로 썼다. 상준도 역시 서해 갯지렁이를 사용하였다. 그곳에 적응한 괴물고기라면 서해안 지렁이가 가장 잘 먹힐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물기만 하면 진짜 박살을 내놓을 수 있는데."
헌터들 간에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무리 이 부근이 몬스터 출현 포인트라고 해도 한달에 몇번 올라올까 말까잖아?”
“원래 낚시가 그렇지 뮈. 물고기건 괴물이건 물어 준다는 건 백퍼센트 운이야 운.”
“위험한 놈들은 이 주변에는 서식하지 않지?”
“이러다 헌터 체면에 한 마리도 못 올리는 거 아니야?”
시간은 점점 흘러 오후 네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헌터들은 가벼운 잡담을 주고 받기도 하고 담배를 피기도 하면서 물속을 줄기차게 지켜보았다.
아무리 프로라고는 하나 네시간 동안이나 제대로 된 입질 한번 받아보지 못했으니 갑갑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차라리 힘을 합쳐서 서식지가 파악되는 대형 괴물을 공략하는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아니, 그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온다.
헌터들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괴물이다!”
“....?”
하나 같이 모두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해수욕장 일대가 갑자기 소란스러워 졌다. 아예 보트를 타고 물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조차도 그 쪽으로 몰려들었다. 현재까지 괴물의 출현이 없어서 모두의 이목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누구야, 누가 잡았어?”
상준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 상황을 살펴보았다.
인파에 파묻혀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헌터들의 태도였다. 많은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팽개치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몰려가는데도, 정작 헌터들은 잠깐 일어서서 그 쪽 방향으로 고개만 돌렸을 뿐 모두 제자리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상준은 내심 그들의 태연한 태도에 경이를 보냈다.
‘역시 프로가 다르긴 달라.’
“괴물이다. 괴물.”
어떤 중년 남자가 한 아이를 데리고 본부로 오고 있었고 그 사람들 뒤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이는 고기를 든 채 환희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아이의 부모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자식이 괴물을 낚아 올릴 거라곤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구경꾼들 역시도 웅성웅성 거리며 몹시 황당해했다. 초등학생이 괴물을 낚아올렸다고? 이렇게나 수많은 참가자들을 젖히고?
낚아올린 괴물은 망둥민어라고 이미 이름이 붙은 녀석이었다. 망둥어 머리에 민어몸통을 한 반물고기 반변종의 괴물. 한때는 서해안에서 종종 잡히던 대표적인 괴물이다.
고기 맛이 일품이라 살점만 쳐도 꽤나 값비싼 식용어종이었다.
“뭐야? 초등학생 꼬마가 괴물을 낚은거야? 하. 어이가 없네.”
“설마 초능력자인가? 헌터 출신?”
“가끔씩 어린 나이에 능력이 발현되는 애들도 있긴하지.”
“아니. 부모 표정을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하하. 쟤 아버지 좀 봐. 입이 찢어지려고 하는 걸?”
“드물지만 일반인이 낚아올리는 경우도 있긴 하지.”
“만약에 초능력자라면 탐낼만한 녀석이네. 저 나이부터 괴물을 낚아올리면.”
“설마 이대로 쟤가 우승해버리는 거 아니야? 어이가 없군.”
취재진이 몰려가 괴물을 잡아 올린 초등생과 그의 아버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다른 사람이 잡지 못하면 그 초등생이 장원인 것은 틀림이 없었다. 아니. 그렇게 끝나지는 않았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한 번 해산 앞바다가 떠들썩하였다. 바로 상준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오병식 헌터의 찌가 물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왔구나.”
오병식 헌터는 얼굴에 만연의 미소를 지으며 보란 듯이 괴물을 잡아 올렸다. 이번에도 망둥민어였다. 주변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하였다. 마음 졸이던 괴물 프로낚시협회에서도 이제야 체면을 차렸다는 듯 한숨을 돌렸다. 길이가 약 50Cm, 무게는 1.6Kg 정도였다. 헌터들은 그에게 진심어린 칭찬과 격려를 했으나 동시에 약간의 질투심을 느꼈다. 헌터 세계에서의 경쟁 심리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를일이다.
“우와! 대물인데.”
“대물이 문제가 아니지. 뱃속에 원석이 있는 게 중요하지.”
“조금 전에 잡은 녀석하고 같은 종류의 괴물이군.”
“손맛은 어땠어요?”
“죽이죠. 감 만으로 괴물인지 알았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역시 오병식 헌터입니다.”
오병식 헌터는 과거에 제1회 괴물낚시대회에서도 입상한 경험이 있다고 하였다. 한때는 프로 괴물낚시꾼 중에 가장 인기 있고 조과가 좋은 낚시꾼이었다고 하였다. 특히 해양 헌터들의 대다수가 몰려다니며 괴물을 사냥하는데 반해, 그는 혼자서도 괴물을 끌어올린 이런저런 전적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최근에는 슬럼프에 빠져 조과가 좋지 않았으나, 어찌되었건 국내의 해양 헌터들 중에서는 꽤나 얼굴이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다.
‘나도 잡고 싶다.’
상준은 다시 자리에 앉아 던져둔 낚싯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해수욕장 수심 때문에 찌를 달지 않고 멀리 던져두었다. 약 100m 정도의 거리는 될 것 같다. 하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와서 담배 한가치를 빼어 물려다 주변에 어린아이들이 눈에 띄어 하는 수 없이 인적이 뜸한 외진 곳에 가서 기분 좋게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 역시 소식은 없었다.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누군가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여자를 쳐다봤다.
섹시하게 생긴 예쁜 여자였다.
아니,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이 여자가 왜 여기에 왔지?'
“저 다슬이에요. 정다슬.”
“어떻게 여길.”
“응원하러 왔어요.”
“저를요?”
“네, 상준씨.”
주변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찰칵거렸다.
이거야 원 희한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연 상준씨와 어떤 관계인지 물어봐도 돼요?”
“음, 여자 친구에요”
다슬의 농담 섞인 대답에 상준은 피식 웃었다.
“낚시 할 때 자주 같이 다녀요?”
“음, 가끔요. 이제 낚시 방해되니깐 좀 가주세요”
“한 마디만 더요, 상당히 미인이신데. 혹시 애인 아니세요?”
“뭐, 아무렇게나 생각하세요. 그만 방해되니.”
“예, 알겠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상준은 겸연쩍게 의자에 앉았다.
"여기 좀 앉아도 되죠?"
그녀는 상준의 고기통을 당겨 아예 의자로 삼아 옆에 앉았다.
확실히 유명세를 타면서부터 여자들의 댓시가 늘어난는 기분이다.
물론 오랫동안 사귀어 온 여자 친구와 결별한 상태이니만큼 마음에 꺼릴 것은 전혀 없었다.
아니, 그 일은 생각하지말자.
스트레스 받으니까.
정다슬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사진이 찍히면 곤란하실 텐데?”
“뭐, 어때요? 상준씨는 곤란해요?”
“저야 뭐, 남자니까.”
“그럼 저도 괜찮아요.”
당돌한 여자다.
뭐 상관없다.
“그 보다 고기 소식은 안오나 보죠?”
“네. 입질이 거의 없어요.”
“저도 어릴 때 낚시 좀 했거든요.”
“아, 그래요?”
“바닷가에서 자란 애들은 다 낚시 경험이 있어요.”
“하긴. 그렇겠죠.”
'아... 지금쯤 소식이 올 때가 됐는데?
'후딱 안 물고 뭐하는 거야?'
'다슬씨도 보고 있는데?'
호준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호호호. 그러게요."
"들었어요?"
그때였다.
거짓말처럼 상준의 낚싯 초리대 부분이 부르르 떨었다.
시간은 이미 대회 종료 한 시간 전인 오후 여섯시였다.
상준은 오늘따라 더 침착하게 움직였다.
자신의 특기인 왼손으로 낚싯대를 콱 잡고는 천천히 릴을 감기 시작했다.
그 역시 헌터들이 모여있는 부근이다.
조과 촬영에 초조하게 기다리던 기자들이 우르르 주위를 에워쌌다.
“여기 물었어요.”
“뭐지? 무슨 고기 같아요?”
“글쎄요. 처음 잡는 고기 같습니다.”
기자들의 촬영도 촬영이지만 다슬씨가 보고 있어서 괜히 더 멋있는 포스를 제공하고 싶었다.
입을 꾹 다문 체 팔뚝 근육을 은근히 과시하면서 잠시 멈추었다 다시 감는다./
바늘에 걸린 녀석이 좌우로 요동치며 물 밖 2m정도 하늘로 치솟다 다시 물속으로 내리 꽂혔다.
"우와!"
누군가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뭔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걸린 건 틀림없었다.
“음. 제법 큰 놈 같네.”
30여분이나 씨름을 하던 상준은 결국 그놈을 제압하여 백사장으로 끌어올렸다.
해수욕장 일대는 신종 괴물을 보기 위하여 장사진을 쳤고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되었다.
신종 괴물은 잉어를 닮은 황금색 머리에다 은색 조기의 몸통과 꼬리를 달고 있었다.
입은 잉어 입을 닮아있었고 머리에는 번데기 같은 모양의 돌기 5개가 돋아있었다.
명백한 신종 괴물고기였다.
길이는 약 60Cm. 무게는 약 3.5Kg.
괴물 중에서도 괴물.
오늘의 장원이었다.
협회에서도 경사가 났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괴물낚시에 참여했는데 제대로 된 소식이 없자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상준이 결국 한방을 먹인 것이었다.
아니, 오병식 헌터에 이어서 두 번째 전과였다.
물론 그런 상준을 마음에 안들어 하는 일부 헌터들도 존재하고 있었지만.
“뭐, 뭐야? 저 자식 또 낚았어?”
“신종이래! 미친! 이게 말이나 돼?
“말로는 자기한테 초능력이 없다고 말하고 다닌다던데?”
“분명히 뭔가 숨기는게 틀림없어.”
방송국도 난리가 났다.
신종 괴물은 절대 숫자가 많지 않다.
신종이 도대체 왜 신종이겠는가?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으니 신종이다.
기자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연상준씨, 축하드립니다.”
“정말 놀랍군요. 또 신종 괴물을 잡으셨군요.”
“이 보석 물고기의 이름을 무엇으로 명명하실겁니까?”
상준 또한 황당함을 느꼈다.
아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다. 흘낏 정다슬을 돌아보자 그녀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동안 턱을 매만지며 생각하다가 기자의 말에 답했다.
기가 막힌다. 이제 주변 헌터들은 자신을 명백히 초능력자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해안가 전체가 완전히 난리였다.
“흠... 그러니까... 다슬조기라 명명하겠습니다.”
“왜 다슬조기라 하시는지요?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머리에 있는 황금색 보석이 다슬기를 닮아서?”
“아, 그렇군요. 자세히 보니 다슬기를 닮았네요.”
지구상에서 다슬조기란 새로운 괴물이 등장했다.
몬스터 도감에도 실릴거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신종으로 연구가 진행될 것이다. 대회장 전체가 시끌시끌 주체 할 수 없을만큼 난리가 났다. 아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정확하게 저 사람에게로 찾아가서 물리는 게 말이 되나? 말 된다.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오로지 결과, 실적일 뿐이다.
“오늘의 우승은 연상준씨! 준우승 오병식 프로! 3위는 초등학생인 손무영입니다!”
딱 세 마리만 올라오고 그 외에는 더 이상 괴물을 잡은 사람이 없었다. 깔끔하게 1, 2, 3등이 정해지자 사람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대회의 우승 상금은 2억, 준우승 6,000, 3위 4,000이었다. 그 외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기념배지를 수여하였다.
아울러 상준과 초등학생 손무영은 협회로부터 헌터 자격증도 받게 되었다. 어찌되었건 이번 3회 대회는 주목도가 높아서 헌터 협회에서도 꽤나 짭짤하게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고한다. 또한 연상준이라는 인물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상준이 헌터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게 됐다. 또한 초등학생밖에 되지 않는 어린 손무영이 괴물 낚시계에 등장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모든 언론이 이번 괴물낚시대회를 부각시켰고 연상준, 오병식, 손무영을 스타로 발돋음 하도록 며칠간을 두고 조명하였다. 간간이 정다슬의 얼굴도 화면에 비치면서, 연상준의 여자친구라고 말한 저 여자와 보석다슬조기의 이름에 뭔가 연관된 것이 있는게 아니냐 하는 추측성 보도도 나오곤 했다. 뭐 상준으로서는 즉흥적으로 붙인 이름이긴 했지만.
그러나 그 물고기가 얼마나 팔렸는지, 어떻게 처리 됐는지는 더 이상 묻는 사람도,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없었다. 상준은 다슬기와 비슷한 황금색 보석을 한 개만 남겨놓고 보석가공업체에 넘겨주었고 이번에도 고기는 냉동 보관하였다. 몇 번이나 고기가공 업체에서 연락이 왔으나 끝내 판매를 거절하였다.
“흐아. 끝났다.”
대회를 마친 후 그날의 모든 행사가 종료되고. 협회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먹고 나니 어느 듯 밤 10시가 훌쩍 넘은 뒤였다. 헌터들은 정확하게 두 스타일로 나뉘어졌다. 연상준와 친하게 지내며 지지하는 쪽과, 그를 질투하면서 멀어지는 쪽으로. 노골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육지건 해양이건 헌터들간의 신경전은 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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