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원석품은 물고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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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땐 마음이 착잡하였다.
자신은 여친이었던 연희와 최악의 상태로 결별했건만 가슴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연희와 보라도 친구였었다.
혹시라도 연희도 참석했을까 자신도 모르게 살펴보았다.
그러나 연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신부 옷을 입은 보라의 모습은 정말 예뻤다.
“축하한다. 보라야.”
“고마워. 네가 잘돼서 무척 기뻐.”
“응,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너 연희와 헤어졌다며?”
“들었어?”
신부 대기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다.
상준은 보라의 말을 가로막았다.
“야야, 너 지금 신부야. 뭘 그런 이야기를.”
“연희 그 계집애. 지가 너 좋다고 야단이더니. 헤헤헤. 그럴 줄 알았으면 내가 널 잡았을 텐데.”
“웃기지마, 너 그런다고 조금도 위로 안되거든? 헛소리는 그만하고. 아무튼 행복해라.”
“고마워, 상준아.”
보라는 한때 자신이 좋아했던 상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연희의 모습을 떠올랐다.
고향친구 모임에 종종 끼어들어서 그렇게나 상준에게 꼬리를 쳐대놓고.최악의 상태로 이별하다니.
친구 상준이 가슴 아파 했을 것을 생각하니 왠지 모를 연민을 느꼈다. 아무튼 상준은 보라의 결혼식을 지켜본 후, 피로연 자리에서 친구 민수와 같이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 언제 시간나면 너 있는데 한번 간다."
"그래."
"그때 술 많이 사라?”
민수의 농담 섞인 말에 상준이 웃었다.
“그래, 임마. 언제 한번 보자. 그건 그렇고 준영이 자식, 안보이네.”
“요즘 바쁜가 보지 뭐.”
“그 짜슥은 완전히 말종 다됐더라. 친구 알기를 개떡같이 알고.”
“아, 그러게 말야. 우리 옛날이 좋았는데.”
상준이 툴툴댔다.
준영이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짜증이 났다.
취직을 못하고 있던 자신을 대놓고 비웃었다.
대기업에 취업한 걸 아주 벼슬처럼 여기면서.
“사실 말이 그렇지. 지가 우리보다 공부를 잘했어 뭐를 잘했어? 순 자기 외삼촌 백으로 대기업 들어가 놓고.”
“하하. 맞아. 옛날 생각난다. 또 그리고 네가 괴물헌터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헌터는 무슨. 나 초능력도 없어. 다 우연이야, 우연.”
사람은 본래 변하는 것 같다.
사랑도 변화고, 우정도 변한다.
위치가 바뀌면 사람은 더 바뀐다.
그래도 꾸준히 곁에 있어준 친구는 민수였다.
“아무튼 너 보고 싶더라.”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종종 연락하며 지내자.”
“물론이지.”
오랜만에 봤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원에 다녀온 후 상준은 월요일 날 농협에 가서 신용카드 발급을 신청하고 통장도 정리한 후 PC를 구입하여 설치해 줄 것을 요청해 두었다.
평소 불편하던 자취방에 싱크대 설치를 부탁하고 일인용 침대와 소파도 들여놓았다.
그냥 방바닥에서 생활하려하니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에.
“총각. 좁은 방에 뭘 많이 넣었네.”
“예, 아주머니. 이 집은 다 좋은데 방이 좀 좁아서요. 처음엔 짐이 별로 없었는데 갈수록 하나둘씩 늘어나네요.”
“그럼 저 건넛방과 바꿔 쓸래?”
귀가 솔깃했다.
앞으로도 계획이 많다.
좀더 방이 넓었으면 좋겠다.
“방이 또 있어요?”
“응, 우리 딸래미방 비어있거든.”
“아, 그래요? 따님이 있었어요?”
“그럼, 우리 딸 스튜어디스야. 제방은 절대 세를 못주게 하고 비워 두래. 자주 오지도 않으면서.”
“아, 진짜 그래요?”
“그럼 저방 줄까?”
“그럼 저야 좋지만... 따님이 오면요?”
“내가 지난번에 전화 왔을 때 총각 얘기 했어. 그랬더니 언제 한번 온대. 신기하다나. 티비에 나온 사람이 우리 집에 살고 있다는게.”
“아, 예.”
결국 상준은 주인 아주머니 말씀대로 넓은 방으로 살림을 옮겼다.
다음 날은 주문한 물건들이 모두 들어왔다.
“방이 넓으니까 좋지?”
“네. 싱크대와 소파, 책상 넣기가 좀 그랬는데 이제 다 해결 되었어요.”
“빨리 돈 많이 벌어 좋은 집을 하나 사. 소문으론 벌써 돈 많이 벌었다던데?”
“에이, 아니에요.”
“방송 출연하면 방송국에서도 출연료 들어온다며? 보석 값도 비싸고?”
상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기만 하고 넘겼다.
확실히 빠른 시간에 돈을 만든 건 사실이지만.
그래봤자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다.
재벌이 된 건 더더욱 아니다.
“총각 나중에 이사 갈땐 싱크대는 그냥 두고 가야해?”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방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꼭 싱크대 설치를 해달라고 하더라고.”
이제 식사 준비가 전보다 훨씬 수월해 졌다.
저녁을 먹고 상준은 가까운 부둣가로 나갔다.
종일 방정리에 바빠 약간은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새우를 끼워 던져두고 낚시용 의자에 앉았다. 날은 서서히 어두워져 가는데 동네 어민들이 상준의 낚시를 구경하기 위해 바닷가로 나왔다.
때에 따라서는 혼자하는 것 보다 구경꾼이 있을 때가 신날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 것 같다.
피곤해서 멀리가지도 않고 부둣가에서 작은 손맛을 즐기고 있으려니 더욱 그렇다.
담배를 피우려 불을 붙이려다 뒤를 돌아보니 동네 노인도 가까이 계셨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멀찌막이 자리를 옮긴 후 담뱃불을 붙였다.
“괜찮어. 멀리 갈것 없어. 낚시하는 사람이 담배피는 것이야 허다한 일이지. 어떻게 늘 자리를 피해.”
상준은 고개를 꾸벅한 후 건너편 방파제에 서 있는 등대불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운 후 제자리로 돌아왔다.
바로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야광찌가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 낚시를 하면서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왔네, 왔어.”
구경하던 아저씨가 소리를 지른다.
상준은 잽싸게 낚싯대를 당기며 릴을 감았다.
금방 물가로 끌려 올라왔다.
“농어네, 농어가 들어왔어.”
“여긴 농어가 잘 안되는데. 농어 떼가 들어왔나?”
상준이 중자 크기의 농어를 건져 올리자 주변 사람들이 우르르르 집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상준의 주변엔 갑자기 많은 야광찌들이 깜박이고 있었다.
이래저래 유명세를 얻은탓인지 사람들 앞에서 낚시를 하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
“총각. 새우 몇마리만 좀 빌립시다.”
“나도 좀 해보려는데 미끼 좀 주겠나? 몇 마리만.”
“하하. 그렇게 하세요.”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흔히 있는 풍경이다.
아예 작정하고 낚시를 하지 않으면 얻어 쓰는 것이 일상 같았다. 상준은 연거푸 농어를 건져 올리는데. 동네 사람들 중에서도 농어 낚시에 성공한 사람도 간혹 생겨났다. 물론 꽝인 사람들 더 많긴 했었지만.
“농어떼가 그 새 가버렸나?”
한참 동안 소식이 없자 한 아저씨가 낚싯대를 접으면서 중얼거렸다. 시간이 흐르니 물고기가 올라오는 횟수가 뜸해졌다. 상준도 좀 지루한 느낌이 들자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낚시찌를 바라보며 괜히 투덜댄다.
“야, 좀 큰거 한번 물어봐라.”
그때였다. 갑자기 찌가 요동을 쳤다.
하지만 상준은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움직이지 않았다.
찌의 움직임으로 봐서 옆 사람이 상준의 낚시 줄을 걸어버린 것 같다. 물고기가 낚인게 아니었다.
이것 역시 낚시터에서 흔한 일이다.
관용과 배려, 이런 게 다 똘레랑스다.
“미안해요.”
옆 사람은 그래도 제법 낚시 경험이 있어보였다.
낚시대를 쥐고 조절을 하더니 요행이 자신의 낚시만 건져 올렸다.
역시나 잘 안된다.
갑갑해서 담배를 꺼내 들때였다.
그때였다. 야광 형광찌가 자취를 감춰 버렸다.
'왔다.'
상준은 챔질을 한후 왼손으로 낚싯대를 쥐고 허리에 붙이고 오른손으로 천천히 릴을 감았다.
낚싯대가 심하게 흔들린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팔에 전해오는 묵직함이 장난이 아니었다.
“우와. 큰놈 같애.”
“맞아, 대물이야.”
요동을 치는 낚싯대를 보며 사람들이 환호했다.
벌써 누군가는 뜰채를 쥐고 올러 채비부터 하는 것 같다.
상준은 눈인사로 감사를 표했다.
끌려오면서 놈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이럴땐 낚시대를 위로 치켜드는 게 제압하는 기술이다.
“아, 이놈 봐라. 힘좀쓰네?”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낚싯대를 치켜들고 가만히 있었다. 힘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20여분이나 씨름을 한 후에야 겨우 뜰채로 건져냈다. 드디어 그 모습을 들어난다.
그런데 어이없게 그냥 물고기가 아니었다.
낚시꾼들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괴, 괴물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잡힌 고기는 [거북상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었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노의 등이 현란하였다.
무지개 색의 등껍질을 가져 빛깔이 더 찬란한 것 같았다. 크기는 불과 60Cm 정도에 불과하였지만 주변 사람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또 괴물?”
“뭐야 저 총각이 또 낚았어?”
“허어.”
상준은 가는 신음을 하면서 고기를 건져 통에 담았다.
그리고 어디엔가 전화를 한 후 주위 사람들에게 농어를 몇마리 갈라주고 일찍 귀가하였다.
기분이 째진다. 무척 잡기 힘든 괴물을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낚아버렸다.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소식을 듣고 우르르 몰려왔다. 인터뷰를 해주고 프로 괴물낚시대회에 대한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개중에는 프로 괴물낚시협회 관계자도 있었다.
“방금 괴물을 잡아올리셨다죠? 이젠 헌터와 전혀 다를바가 없으신데요?”
“우연입니다. 제겐 아직 발견된 초능력이 없으니까요.”
“아, 이번에 프로괴물 낚시 대회에 연상준씨도 참가한다면서요?”
“네, 협회분들께서 초청해주셨습니다.”
“잘 모르는 시청자들을 위해서 [프로괴물낚시대회]가 어떤 대회인지 구체적으로 좀 말씀해 주시죠.”
관계자가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그럼 이번 대회는 꼭 프로헌터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예상인원은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약 5.000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야, 엄청나네요. 저도 이번에 참여 한번 해 볼까 하는데. 가능하지요?”
“그럼요, 누구나 다요. 처음엔 참가 자격을 프로헌터로 제한하려 했는데. 워낙 참가시켜 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잘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 입장에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입상하면 상금은요?그리고 혜택은? 그리고 참가비는? 간단하게 요약 좀.”
“예, 상금 총액은 3억이구요 입상하면 상금 뿐만 아니라 협회에서 제공하는 프로자격도 부여됩니다. 괴물을 낚아올리는 건 이미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이야기이니까요. 아, 참고로 1인 참가비는 20만원입니다.”
“예, 대단한 대회 같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인터넷에서 아래로 주소가 나가지요? 회원 가입 후에 신청하시면 됩니다. 당일은 아마도 큰 축제가 될 것 같습니다. 가족, 친구, 낚시 동호회 등 많이 참가하여 싱그러운 유월 중순의 휴일을 해산 바닷가에서 즐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상준은 집으로 왔다. 급한대로 수족관에 넣어둔 괴물을 들여다왔다. 괴물이라고 하지만 이 녀석은 그다지 공격성이 높지는 않다. 물고기의 이름은 전 세계에서 오래 전에 몇 번 잡힌 적이 있는 거북상어였다. 거북상어는 빨간색 원석과 잇빨 상아, 특히 등껍질이 아름다워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상어고기 또한 식감과 맛이 뛰어나 미식가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고기였다.
‘나한테 정말로 초능력이 있는건가?’
수족관 뚜껑을 덮으면서 특수 수족관으로 다시 제작 교체한 것을 매우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비상벨을 점검한 후 방으로 들어왔다. 낮에 자는 습관 때문인지 한참 후에야 잠이 들었다. 그래도 특수 수족관으로 바꾸고 비상벨까지 설치하고나니 저번처럼 뜬누으로 밤을 지새우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몹시 상쾌하였다. 다시 수족관에 가서 거북상어를 구경하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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