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원석 품은 물고기(2)
* * *
“괜찮습니다. 귀한 손 한번 잡아봅시다.”
“아 예. 연상준입니다. 전 명함도 없구요.”
“반갑습니다. 백무영입니다.”
“장사도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상준이 명함을 보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깔끔한 플라스틱 명함은 꽤나 비싸보였다.
이제보니 라 적혀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언젠가 들어 본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저희들은 프로괴물낚시협회 관계자입니다. 사실 전세계로 치면 괴물 고기를 잡아 올린 헌터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괴물 고기를 낚아올린 일반인은 많지 않죠.”
“예?”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연상준씨에게 초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뭐 아직은 그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그런데 무슨 일로?"
"그래서 오는 6월 15일 당신을 초청하고 싶습니다. 저희 협회에서 주최하는 괴물낚시 대회가 있거든요.”
“낚시 대회요? 헌터들이 주최하는?
“그렇습니다.”
기분이 상당히 묘하다. 확실히 조만간 헌터들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이렇게 차를 타고 찾아와서 명함을 건네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들이야말로 자신처럼 우연찮게 괴물을 낚아 올린 사람들이 아니라 초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제가 그런 곳에 참가해도 될까요? 하지만 저는 그냥 우연히.”
“연상준씨가 얼마나 떴는데요. 연상준씨가 참여하면 대회가 좀 더 빛을 발하지 않겠어요?”
“전 아직 프로자격증이 없습니다만.”
“알아요. 그러니 더 좋은 기회죠.”
“프로 자격이 없는데도 가능한지요?”
“예, 일단 필기시험만 합격하면. 대회에서 입상하면 프로자격증도 자연히 수여 되구요. 참여비 쪼로 약간의 회비만 내시면 됩니다.”
“그럼 협회가 회비로 운영되는 셈이네요.”
“그런 것도 있지만.... 대회 참가비도 있거든요. 또 방송중개료. 협회추천 방송출연기금 등의 일부. 어쨌든 상금도 꽤 됩니다. 여러모로 좋은 기회니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런 대회가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사실 몇년 전에 번의 대회를 가졌는데 매스컴의 주목을 못 받았어요. 연상준씨의 등극으로 다시 집중을 받게되어 엄청난 흥행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 3회 대회는 대박을 치리라 예상됩니다.”
“그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 예, 고맙습니다. 그때 초청장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남자가 다시 물었다.
“근데, 실례지만 연상준씨는 어떤 초능력을 쓰고 계십니까?”
“초능력이라니요. 전 그런 것이 없습니다.”
“에이, 왜 그러세요. 우린 다 알고 있어요. 괴물을 낚으려면 약간의 초능력은 있어야 한다는 걸.”
“저는 그런 것이 없는데?”
“우리에겐 이야기해도 돼요. 우리 협회 회원만 해도 38명이나 되거든요”
“그럼 그 분들이 다 초능력이 있다는 건가요?”
“한때는 다 있었죠. 초능력 세기가 달라서 그렇지. 물론 이제 상실된 사람도 있어요.”
“아! 그래요?”
“초능력이 있었는데. 잃어버린 사람도 있고. 근대 요즘은 낚시가 잘 안되더라구요. 최근 성과는 상준씨가 최고구요. 어쩌면 다시 붐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럼 성공을 빌겠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상준은 좀 의아해 하였다.
‘난 초능력이 없는데, 그런데 어떻게?’
“얏!”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문을 보고 두손을 뻗어 보았다. 그리고 소리도 질러 보았다. 당연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초능력이 있다면 대문이라라도 덜컹하며 열려야 하지 않을까?
손님들이 온 탓에 시간이 지체되어 아침 겸 점심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낮잠으로 휴식을 즐겼다.
또 벨이 울렸다.
‘참, 휴대폰이 좋은 줄 알았더니 귀찮게 할때가 더 많네.’
[블랙월드] 서동삭 과장이었다.
“연상준씨, 다온 것 같은데 집을 못 찾겠네요. 대문 앞에 좀 나와 주실래요.?”
“알겠습니다.”
상준은 그가 하자는 대로 원석과 아귀상아를 넘겨주었다. 며칠 후 통장 계좌를 확인 한 후 괴물낚시 프로 자격증을 받기 위해 필기시험을 치렀다. 평소 두뇌가 명석한 상준은 필기시험에는 간단하게 합격할 수 있었고 대회에 참가하여 프로 자격증을 받을 궁리에 열중하였다.
품질이 괜찮다는 명품 낚싯대도 추가로 한벌 구입하였고, 결혼식에 입고 갈 양복도 한 벌 샀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모터사이클과 승용차였다. 모터사이클은 당장 현찰을 주었고 자동차는 일부 할부로 구입했다.
구입한 양복을 입고 방안에 걸린 작은 거울을 들여다보니 자신이 생각해도 꽤 멋져 보이는 것 같았다.
‘상준아, 이게 원래 네 모습이야. 짜식. 잘생겼네.’
아무리 봐도 자신은 낚시꾼이 맞다.
낚시가 천직이다.
'그놈 참 멋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무한한 칭찬을 해준 뒤 오늘도 낚시를 위해 출조에 나섰다.
오토바이에 낚싯대와 가방을 싣고 신나게 달렸다.
오늘은 좀 멀리 가서 해보자. 스피드도 즐겨보고, 폼도 좀 잡을 겸 기동력도 있겠다. 멀리 간들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어둡기 전에 채비를 완료하고 담배를 내어 한 모금 빨았다. 내뿜는 담배 연기에 흐릿하게 스쳐가는 얼굴들이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 동생의 얼굴. 그리고.
상준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다. 상준이 중학교 2학년 때 초등학교에 다니던 상미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몇달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바로 잃어버린 상미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경찰서로 달려갔으나 이미 상미는 병원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상준은 하얀 가운을 뒤집어 쓴 상미 밖에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상미의 옷과 신발을 확인 한 후 오열을 토해내었다. 그 시기가 상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
몇달을 방황하던 어머니를 보고 상준은 울면서 상미가 저렇게 된 것은 자신 때문이라 자책해 보기도 하였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상준은 어느 날 가출을 결심하고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갑갑하여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죽어버린 동생도 미웠고, 자신을 내팽개친 엄마도 미웠다.
막상 집을 나왔으나 갈 곳도 없었다. 아직 나이가 어려 마땅히 일을 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우연히 시장통을 배회하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떤 형을 만나 그의 자취방으로 갔다. 그 형도 학교에서 잘렸다고 했다. 시골 부모님이 모르고 있어 그래도 용돈과 먹을 것을 좀 챙겨준다고 하였다.
“그럼 형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취직을 해야지. 중국집이나 오락실이나.”
그 형은 무슨 일로 퇴학을 당했는지 말하진 않았으나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상준은 그 형에게 집을 나온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너 여기 며칠 있다 집에 들어가라.”
“예?”
“네 어머니 한번 생각해 봐라. 아버지 일찍 돌아가셨지. 동생 사고 나서 죽었지. 네까지 가출하면 어떻게 사시겠니?”
상준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내일이라도 들어가야겠다.
그의 말이 가슴속까지 와 닿았다.
다음 날 상준은 잠에서 깨자 형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내가 더 잘 할게.”
어머니는 상준을 끌어안고 한없이 우셨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되셨다. 상미의 흔적도 모두 없애고 남은 사진도 모두 불태우셨다. 그 후 어머니는 상미에 대해 한마디도 안하시고 오직 상준에게만 모든 것을 걸었다.
한때 상준은 엄마가 모두 잊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느 해 아버지 기일 날.
기제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어머니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꿈을 꾸시나?’
상준은 방문을 열고 어머니 방문을 열려고 하는데 소리 죽여 울고 계시는 어머니를 보았다. 엄마의 손에는 상미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그날 밤 상준은 한잠도 자지 못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효도를 하는 것만이 자신의 할일이라 결심을 하였다.
상준은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상준이니?”
“네, 어머니.”
“왜. 무슨 일 있나?”
“일은.... 무슨. 이번 일요일에 부산 내러 갈게요.”
“왜? 무슨 일이고?”
“그냥요.”
“알았다. 너 뭐 묵고 싶노?”
“어... 잔치국수?”
“자슥아! 잔치국수가 뭐 맛이다꼬 그라노?”
“어머니가 해주는 국수가 먹고 싶어서요.”
“알았다. 조심해서 오래이.”
“예.”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나니 왠지 자꾸 눈물이 솟아졌다.
일요일 일찍 엄마가 계신 부산으로 달렸다. 그동안 잡은 횟거리를 잘 장만하여 얼음을 채워 차에 실었다. 상준은 어머니께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정성스럽게 내어 놓았다.
“이거 자연산 우럭이네.... 이거 비쌀 건데.”
“뭐가 비싸요. 이건 돈도 아니예요.”
“네 차도 샀네.”
“예, 급히 다닐 일이 많아서... 그보다 어머니. 오늘 쉬는 날이죠?”
“그래, 일요일 아이가. 학생들 없을 때 쉬어야지.”
“우리 아침 먹고 놀러 나가요.”
“그라자, 난 니하고 놀러 가면 제일 좋더라.”
어머니는 장사를 하실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표준말을 쓰신다.
하지만 아들만 만나면 경상도 사투리가 저절로 나오시는 모양이다.
그만큼 편하고 가까워서 그런가. 하긴 자신도 사투리가 종종 튀어나올 때도 많이 있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오랜만에 해운대를 찾았다. 어머니 가게에서 해운대까지 새로 확장된 도로가 쭉 뻗어 있었다.
“아! 좋다. 바람도 시원하고.”
상준은 운전을 하면서 왼손을 창밖으로 내어 바람을 쐬었다.
“야야! 조심하거라. 그라다 손 위험하데이.”
“예, 괜찮아요.”
“근데 너. 소현이 학생 아나?”
“그게 누군데요?”
“갸는 너 안다던데?”
어머니는 고개를 갸우뚱 하신다.
“....?”
“니하고 같이 낚시도 했다던데?”
“아, 그 가시네.”
상준은 얼마 전 주말 낚시터에서 만난 남매가 떠올랐다.
“갸가, 그래도 대학생이데이. 우리집에 가끔 온다. 칼국수 먹으러. 어떤 때는 동생하고 같이 오기도 하고... 근데 니는 가 어예 아노?”
“전 잘 몰라요. 그냥 낚시하는데 지들도 동생하고 같이 낚시하러 왔더라구요.”
“글나?”
“네.”
“애가 개안트라. 요즘 애들 같지 않고 싹싹하고 어른도 알고... 요즘 희안한 아도 많데이.”
“네.”
어머니는 상준과 대화하는 가운데 식당에 가끔씩 들리는 소현이를 들먹이며 칭찬을 하신다.
그 계집애가 그렇게 개념이었던가.
어머니 눈에는 예쁘게 보이신 모양이었다.
“와, 니 졸업할 때 왔던 연흰가 뭔가 하는 갸는 요즘 연락 안오나?
“예.”
“갸아 하고는 완전 헤어 졌뿟나?
“뭐, 헤어지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가아는 그때 니 디게 좋다카더니... 하기사, 가아 보단 소현이가 더 났제?”
“하하. 그런 사이 아니에요.”
그날 상준은 어머니와 함께 정말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모처럼 어머니와 함께하여 행복하였다.
어머니가 말아주신 잔치국수는 두고두고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가끔씩 이런 시간을 가져야하나 싶었다.
중산으로 돌아온 상준은 며칠 뒤 선박조종사자격증 시험을 쳤고, 그 후에는 실기시험에도 합격하였다. 시험이라면 그런대로 자신을 가진터라 책을 몇 번 보지 않았는데도 필기시험은 곧잘 합격하였다. 그러나 실기는 운동 신경이 뛰어나고 판단력이 빨랐으나 결국 두 번째 시험에야 겨우 합격하였다.
선박조종사 자격증을 받은 상준은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도 언젠가는 망망대해로 나가 엄청난 괴물고기를 건져 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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