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에 미친 총각-7화 (7/225)

〈 7화 〉 원석 품은 물고기(1)

* * *

문제는 있었다. 아직 자신은 괴물에 관해서는 문외한, 즉, 초보에 불과하다. 괴물의 성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니 조심해야 한다. 성격이 급한 바다 괴물들은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잘못 다루면 금방 죽어버릴 수 있다. 고기의 기질에 맞게 다루어야만 한다. 책자에도 적혀 있다. 특히 괴물아귀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또한 수족관 보안이 빈약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수족관 구입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도 실수였다.

보통 물고기라면 마당의 수족관에 방치해둬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고가의 괴물고기를 밖에 방치하는 것은 그 자체로써 문제였다.

밤새 잠을 설치며 방과 마당을 몇번이나 오고갔다. 마당에 놓아둔 수족관에 괴물을 넣어 뒀더니 너무나 염려스러웠다.

‘젠장. 이게 뭔 생고생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당장 쉽게 현재 상황을 바꿀수도 없으니까. 결국 수족관을 지켜보며 뜬 눈으로 날밤을 샜다. 아침해가 뜰 무렵 수족관의 괴물이 멀쩡하다는 걸 확인하고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하품을 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치 길바닥에 엄청난 돈뭉치를 던져둔 느낌이 이런걸까? 직장인의 출근 시간을 기다렸다가 방송사 KBN에 전화를 걸었다.

“예, 팀장 공정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전에 전화드렸던 괴물 낚시꾼 연상준입니다.”

“예? 연상준씨라구요. 전에 그?”

“맞습니다. 바로 그 연상준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전화를 주시다니. 서, 설마 또 괴물을 잡으신건가요?”

“네, 이제 전화번호 가르쳐 주시면 인증샷 보내 드릴게요.”

나 이제 스마트폰 있는 남자야. 이 아줌마야.

저번에는 인증샷을 보내라고 해서 무척 서러웠었다.

스마트폰을 개통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여기에 뜬 전화로 보내면 되겠어요?”

“네, 빨리 보내주세요.”

전화를 끊고 기다린지 2­3분 지나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상준은 날아온 번호로 수신를 확인한 후 자신의 얼굴이 담긴 원석 물고기 사진을 [괴물아귀]라는 이름까지 넣어 공정희씨에게 보내 주었다.

물론 칼복을 잡았을 때처럼 대서특필 되지는 않을 것이다. 딱히 괴물 아귀를 최초로 발견한 건 아니니까.

[소중한 제보 감사합니다.]

아니, 얼마가지 않아 티브이가 아니라 인터넷 쪽에서 뉴스가 떴다. 요즘 방송국들은 공영방송과 인터넷 신문을 함께 발간하는게 일반적. 아무래도 괴물의 종류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유명세 자체가 기사거리로써 영향을 끼친 모양이다. KBN에서 낚시꾼 연상준이 또다시 괴물을 잡아 올렸다고 뉴스기사를 때렸다.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 최신 기사 하나가 더 보였다.

[칼복 최초 발견자 연상준씨. 이번엔 괴물아귀를 포획.]

'이게 포획이란 말이 맞기나 하나?'

기사가 올라간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휴대폰이 울렸다. 빛과 같은 속도에 화들짝 놀랄 정도였다. 뉴라이트 컴퍼니도 블랙월드도 아니었다. 아마도 KBN 방송사 측과 연결되어 있는 누군가인 모양이다. 자신의 폰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왠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폰 너머로 들려왔다.

“연상준씨죠? 여긴 [괴물가공] 대표 손주익입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연상준입니다.”

“잡은 물고기가 괴물 아귀라면서요? 혹시 고기 넘겼습니까? 아직 넘기지 않았으면 우리 업체에서 구입하려구요.”

“네, 아직 임자가 정해지지 않았죠.”

“그럼 우리회사에 넘겨주십시오. 비싸게 쳐드리겠습니다.”

“그럴까요? 경매가 보다 비싸게 사주시나요?”

“물론이지요. 곧 직원을 보내겠습니다. 그곳이 어디쯤이지요?”

딱히 다른 기업과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다. 상준은 그냥 [괴물가공]이란 업체에 고기를 넘기기로 하였다. 성질이 급해 오래 살지 못할 거란 염려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그런대로 꽤 잘 버티어 주었다. 몇시간이 지나고 정오 무렵이 됐을 때 [괴물가공] 직원이 상준의 집으로 찾아왔다. 살짝 지친 행색을 보아하니 차를 몰고 온 모양이다.

“괴물 아귀가 확실하군요.”

“네, 제가 책을 보고 몇번이나 확인했어요.”

“이 고기는 가끔 헌터들에게서 잡히는 고긴데 이미 가격이 거의 정해져 있어요.”

“대충 얼마나 나갈까요?”

“경매가보다 더 비싸게 500만원을 드릴게요.”

좋다.

칼복 정도의 초대박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괜찮다.

그래도 경차 한대를 살 수 있는 돈이 공짜로 생겼다.

인생이 잘 풀리려니 휴지 두루마리마냥 이리도 잘 풀린다.

“원석 가격을 제외한거죠?”

“물론입니다. 원석이 본래 비싸요. 그럼 원석을 빼 낼게요.”

괴물 가공 직원이 자동차 키 고리에 달린 조그만 칼을 꺼내더니 정확하게 아귀의 뒷머리 부근을 칼로 갈랐다.

땅콩만한 파란색 원석을 꺼내 물로 씻은 후 상준에게 건네 주었다. 그리고는 아이스박스에 아귀를 담더니 순식간에 그것을 트럭에 실었다.

“그렇게 가져가면 고기가 변질되지 않아요?”

“네, 아이스박스에 넣어 냉동 보관하면 쉽게 변질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서둘러 가야겠죠.”

상준은 파란 원석을 받아 쥐고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원석 가운데서 몇 갈래의 광선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기해서 자리를 뜨지 않고 보고 있는데, 괴물가공 직원이 다시 차를 세우더니 급하게 다가왔다.

아이스박스로 가더니 괴물 아귀를 쑤셔댄다. 잠시 후 명함 한 장과 재료를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바빠서 그만 깜박했군요. 또 괴물을 잡으면 저희들에게 꼭 좀 연락주세요. 어떻게든 상하지 않을 때 처리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이것도 받으세요. 하마터면 차를 타고 가다가 다시 돌아올 뻔 했군요.”

“이건 뭐예요?”

“아귀상아요. 흔히 괴물 고기에서 발견되곤 해요.”

상준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이 멍멍했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세부 정보를 좀 수집해야겠다.

서적에 있는 내용만으로는 전문지식이 부족했다. 직원이 바쁘게 차에 올라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상준은 원석과 상아를 어디에 보관할까 망설이다 낚시가방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다. 분명히 귀한 물건 같긴 한데. 일단은 직접가지고 다니는 편이 제일 안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좀 지났을까.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몰려왔다.

인터넷 뉴스를 본 모양이었다.

“총각. 또 한건 했다며? 우리애가 인터넷 뉴스에서 총각을 봤다던데?”

“하하. 예. 재수가 좋았네요. 저도 세번 연속으로 잡을줄은 몰랐거든요.”

“히야, 이제 우리도 총각 따라 다녀야겠네. 괴물 낚는 법 좀 배우기도 하고.”

동네 낚싯꾼들도 상준을 바라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40대 정도가 되어 보이는 아저씨들이 앞다투어서 한마디씩 말을 던졌다. 하긴 부럽지 않다면 정상이 아닐 것이다. 일반인들은 평생 동안 낚시를 해도 괴물 한번을 낚아올리기 어려운게 현실이니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역시 자신의 행운은 미친 것 같다. 그들 중 몇몇이 입을 열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해양 낚시 전문 헌터들이 괴물을 잡아 올린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그럴려면 무슨 초능력이 있어야 된다던데. 그렇게 치면 자네는 참 대단해. 헌터가 아닌데도 괴물을 낚아 올리니까 말이야. 우리는 무슨 수를 써도 통 걸리지가 않더라고.”

상준도 그 부분이 의아했다.

자신은 분명 아무런 초능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인데. 벌써 세번이나 연속으로 괴물을 잡아 올렸다.

아니, 모르겠다.

일단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 볼 일이다.

아무튼 동네 사람들이 다녀간 후 곧바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바로 블랙월드의 서동삭 과장이란 사람이었다.

“어떻게?”

“네, 뉴스를 봤습니다. 혹시 괴물 아귀는 벌써 파셨습니까?”

“괴물 가공이라는 회사에 팔았어요. 상아랑 원석은 남아있구요.”

“오오.다행이군요? 상아하고 원석을 저희에게 넘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잘 됐다.

고기 자체는 괴물 가공에.

다른 재료는 블랙월드에.

이대로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깔끔하게 다 처분 할 수 있다.

“가격만 잘 쳐주신다면야.”

“우리 회사 이사님을 만나셨죠. 양만선 이사님 말입니다.”

“예.”

“그럼 이사님 말씀도 전하고 내일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상준은 점차 자신이 노리는 괴물 낚시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과 상식이 쌓여가는 느낌을 받았다. 책도 책이려니와 관련업계의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할수록 무엇인가 얻는 게 있는 것 같았다.

언제 기회가 되면 다른 괴물낚시 헌터들을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그들이 자신을 만나주려고 할때 이야기겠지만.

“크! 아무튼 대박인데?”

저녁 무렵이 되어 갈때 상준은 밤낚시 준비에 열을 올렸다. 누가 뭐래도 낚싯대를 물속에 집어넣어야 괴물을 잡던 대물을 잡던 결판이 난다.

상준은 이제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낚시에 몰입되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해주셨던 말씀도 떠올랐다.

[무슨 일을 해도 재미가 있어 반쯤 미쳐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그때 아버지는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이제 점점 낚시에 미쳐가는 것 같네.’

고기통을 메고 낚싯대를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바다로 향했다.

정말 낚시가 이렇게 좋을 줄은 미처 몰랐다.

머리 아픈 잡념이 생기지 않아 좋았고, 타인과 마찰이나 갈등이 없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래, 이게 프리랜서가 아니고 뭐겠는가?

남에게 아첨하지 않아도 되고,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다. 특별히 욕심을 낼 이유도 없다.

주는 대로 받고 노력한 만큼 얻으면 되니까.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에 빠져 하룻밤을 그냥 즐기기만 하였다.

조그마한 물고기 몇마리와 큰 우럭 몇마리가 지난밤에 얻은 수확의 전부였다.

그럼 뭐 어떤가?

어젯밤에도 경차 한대를 물속에서 건져냈는데. 아니, 상아를 팔아치우고 원석을 팔면 또 추가 수익이 얼마가 나올지도 잘 모른다.

이보다 더 행복한 고민이 있을까. 낚시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 전화였다.

“예, 어머니!”

“잘 있제? 밥은 잘 묵고 있나?”

“물론이죠 어머니. 아주 꿀맛이예요.”

“울 아들, 또 한건 했다며?”

“하하.”

“근데 지난 일요일 네 친구들 있잖아?”

“친구 누구요?”

“와, 가들. 민수하고 준영이. 참 그라고 보라가 시집간단다.”

보라가 결혼을?

하긴 그런 조짐이 보이긴 했었지.

언제 가나 했더니 날이 잡혔나보다.

“가들 너 전화번호 묻기에 가르쳐 줬다. 괘안 채?”

“예. 이제 괜찮아요.”

“가들이 전화 할끼다. 너 칭찬 많이 하더라.”

“예.”

“우째든지 밥 잘묵고 건강이 최고대이. 우리 아들 화이팅.”

정감어린 전화를 끊고 집에 도착했다.

곧바로 수족관에 덮어두었던 천을 열어젖히고 물고기를 정리했다. 우럭 세마리와 제법 큰 게르치는 수족관에 넣어 두고 자그마한 몇 마리를 건져 우물가에 앉았다. 아침 식사로 잡어지리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때.

낯선 승용차 한대가 대문앞에 섰다. 짙은 썬팅으로 안쪽편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적어도 2­3명의 사람이 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승용차 문이 열리면서 낯선 두명의 신사가 집으로 성큼 걸어들어왔다.

시큰둥하게 쳐다보자 허리를 90도 푹 숙이면서 인사를 한다. 매우 정중한 태도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무래도 블랙 월드의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대답대신 각자 명함을 꺼내 상준에게 건네주며 악수를 청했다. 상준은 생선 비린내가 날것 같아 얼른 손을 씻었으나 물기가 묻어있어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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